• Title/Summary/Keyword: 근대적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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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는 존재하는가: 지역연구와 지역의 의미 (Does Altai Exist?: Area Studies and the Meaning of "Area")

  • 남영호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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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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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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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알타이라는 명칭은 어족의 이름, 알타이 산맥 일대에 거주하는 민족의 이름 그리고 알타이어족의 사람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이름 등 여러 가지로 쓰이면서도, 그것이 의미있는 단위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이 논문에서는 알타이 어족의 분포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주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데에 이러한 논란의 핵심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알타이 문화권이라고 부를만한 문화적인 공통성과 역사적인 접촉이 있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근대를 겪으면서 의미있는 단위인 민족으로 묶어지지 않았고 또 그러한 의식이 형성되지도 않았기에 문화적 유사성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소비에트적인 근대화를 통한 종족 정체성의 재구성과 러시아,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강력한 개입, 불교, 기독교등 외래 종교의 뒤늦은 전래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타이를 지역 연구의 단위로 설정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이 지역에 특이한 현상만은 아니다. 이는 지역 설정이 물리적 환경에 따른 자연적인 경계 획정이 아니라, 문화정치적 관계에 따라 인위적으로 권력관계가 분배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타이의 사례는 그 지역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지역연구에서 지역을 균일한 "문화"를 지니는 것으로 미리 전제하는 것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함축을 지닌다.

애니메이션 감상을 통한 근대 과학기술 문명 탐구 - 미셸 오슬로의 <세 명의 발명가>를 중심으로 (Learning the Civilization of Modern Science and Technology through Animation Film: Focusing on Michel Ocelot's )

  • 윤경희;최정윤;박유신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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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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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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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술 감상 수업을 진행할 때 미셸 오슬로의 단편 애니메이션 <세 명의 발명가>를 교재 텍스트로 활용하기를 제안한다. 이 작품은 우선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 아름다운 이미지, 흥미진진한 줄거리로 인해 학습자들의 호기심과 주의력은 물론 지적 욕구와 학습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오슬로는 이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오로지 종이 공예만 사용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민속 예술의 명맥을 이으면서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는 여성 감독 로테 라이니거의 기술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여성과 아동 인물도 발명가로 설정함에 따라서, 성인 남성만 지식과 기술이라는 인간적 역량의 주체로 간주했던 근대의 인간상을 전복한다.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은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의 이미지로 표상되는 인간우월주의적 근대인을 넘어서 포스트휴먼을 생성시킨다. 포스트휴먼은 인간이 과학기술, 상상력, 윤리적 실천을 통해 다른 타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안의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 물질과 탈중심적인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를 교수 학습하는 과정에서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 윤리, 사회 등 타 교과와의 통합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애니메이션의 감상은 이처럼 포스트휴먼이라는 첨단의 주제에 당면하여 통합 교과 수업을 수행하는 데 매우 적합한 교육적 방법이 될 수 있다.

현대 건축 표면의 인터페이스로서의 Urban Screen화에 관한 연구 (A Study about Urban Screenization of Modern Architecture Surface as Interface)

  • 김지연;박승호
    • 한국HCI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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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HCI학회 2006년도 학술대회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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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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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뉴미디어의 특성을 지니며 더욱 다양한 가능성과 관계를 열어나가게 된 오늘날의 현대 건축은 근대 이전의 구축적 양식 중심의 형식으로부터의 탈피, 디자인 분야의 심미적 발달, 자연 친화적인 관점으로의 발달,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중심의 건축 발달 등으로 인해 구조, 실체와의 관련성 이외에 표면(surface)으로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감상적인 공간 구조를 낳고 있다. 이는 표면이 공간적인 효과를 내는 표면을 통해 새로운 소통의 길이 열리게 되고 건축물 그 자체의 자율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주변 컨텍스트에 동참하게 되므로 경계 영역으로서의 의미를 전달하는 인터페이스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최근에는 더욱 적극적인 미디어 재료의 사용으로 건축의 표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독립된 스크린으로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그에 더해 다양한 미디어 아트 작업의 차용으로 표면의 스크린화는 더욱 진화하며 이전과는 또 다른 효과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공간 사용자의 능동적인 수용 형태를 인지하고 건축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주체가 됨을 시사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건축 표면이 가진 인터페이스로서의 특성과 최근의 적극적인 미디어 재료 사용 및 미디어 아트 차용을 통한 다양하고 새로운 소통의 시도를 분석해 봄으로써 건축 표면이 가지는 더욱 넓은 범위에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건축 그 자체가 가지는 특성 안에서 뿐만 아니라 수용자와의 상호관계 안에서 또한 연구해 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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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계몽기 한국연극사의 전통담론 연구 II (A Study on Tradition Discourse in Korean Modern Drama between 1894 and 1910)

  • 백현미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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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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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7-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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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근대계몽기 한국연극사의 전통담론은 대개 전통(연희)에 대한 내용개량의 성격이 강했다. 근대 진입기이면서 국권상실기였기 때문에 개량의 방향은 애국과 개화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논의의 주체는 유교적 지식인, 애국계몽론자, 그리고 식민주의에 침윤된 개화지식인으로 나눌 수 있고, 이들은 각각 상풍패속론, 극계개량론, 신연극론을 주창했다. 을사조약 체결 이듬해인 1906년, 유교적 예악론자들은 협률사의 전통연희가 민심을 어지럽힌다고 비판하면서 상풍패속론을 전개했다. 이 상풍패속론은 국권 수호를 위한 절박한 문제의식을 지닌 지식인들이 유교적 예악론을 근거로 하여 연희 일반에 대한 부정론을 편 것이다. 외래극장문화와 공연문화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 의식의 충돌을 보여준 이 상풍패속론은 극장문화의 시대적 의미와 역할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첫 예로 주목할 수 있다. 1907년 정미7조약 체결 이후 애국계몽론자들은 중국 량치차오 논의를 수용 재해석하면서 '국권 수립을 실현할 민족영웅'을 소재로 한 전통연희 개량 극의 출현을 앙망하며 '극계개량'을 외쳤다. 그리고 1908년 이인직은 판소리 전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은세계>를 원각사에서 공연하면서 '신연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관리의 탐학과 우매한 백성들을 비판하며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논의를 전개했다. 이렇게 1908년을 전후해 일본 신연극과의 연관 속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신연극에 대한 논의는 곧 '연극개량' 논의와 구별 없이 사용되었고, '극계개량'이라는 용어를 대체해갔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기 사진기록물의 성격과 생산, 유통 과정 (The Facets of Photographic Records on Korea in Modern Era)

  • 박주석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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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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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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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의 개항 이후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대를 찍은 사진기록물은 당시의 기술적 수준이나 대외 개방의 정도를 감안하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한국 관련 사진기록은 서구 사회에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인쇄한 서적의 삽화, 화보 신문이나 잡지의 도판, 빈티지 프린트, 사진엽서, 스테레오 사진, 카드형 사진, 랜턴슬라이드(Lantern Slide) 등 다양한 형태로 보급되었고, 현재도 상당량이 남아 있다. 관련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조선 사람이 처음 사진에 찍힌 1863년부터 1910년 이전에 촬영된 한국 관련 사진은 최소 3,000점에서 4,000점 이상이고, 같은 사진이 중복되기는 하지만 발행된 사진엽서의 수는 25,000점 이상이며, 그중 대부분이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본 논문은 근대 초기인 구한말 한국 관련 사진기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로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이를 전형적인 사진가 또는 기관의 활동 사례를 들어 분석했다. 사진에 찍힌 대상은 분명 한국 또는 한국인의 모습이지만, 사진의 생산 주체는 거의 대부분 제국주의의 부역자들인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었다. 사진의 경우 생산 주체의 필요나 관점에 따라 사실 관계의 왜곡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그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사진의 내용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의도와 생산 및 소통 경위가 파악되어야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실제 경험자가 없는 시대의 사진기록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독하는 문제는 근대 한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폭넓게 연구하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투시도적 표상에서 공간의 투사로 -2차원 그림의 3차원 투사를 활용하는 현대건축의 경향에 대한 연구- (From Perspectival Space to Projected Space -A Study on Architectural Design Using Three Dimensional Projection of Two Dimensional Drawings-)

  • 이상헌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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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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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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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Many contemporary architectural avant gardes tend to use painting as a medium to create architecture which goes beyond the rationalized spatial conception of modem architecture represented by perspectivism. They produce non perspective drawings to represent spatial Ideas, and expand it through poetic imagination to create an unexpected architectural form and space. This paper attempts to analyze the historical origin and background of dominance of drawing in the production of architecture. It was with the invention of perspective that architectural representation became important tool for architectural production. Thereafter, drawing was considered prior to actual building and architecture was considered a three dimensional realization of two dimensional drawing. Modernist avant gardes such as Cubism shattered the rationalized pictorial space of perspective and found a new pictorial space. They tried to extend it to three dimensional space through parallel projection largely based on the Hildebrand's theory of pure visibility. However, due to the ambiguity of the position of the viewing subject, their attempts could not succeed in creating a new architecture. The new architectural avant garde of the 70's rediscovered the early 20th century avant gardes in their attempt to create a new architecture which can register the fragmented spatial condition of contemporary society, and used painting as a medium to create architecture. Their difference from the early avant gardes was that they used poetic imagination rather than parallel projection in the process of projecting three dimensional space and form from the painting. However, their architecture cannot escape the scopic field of perspectivism in that they rely on the picture plane and the distance between object and viewing subject. Therefore, I conclude that in order to create architecture which goes beyond the rationalized space of modern architecture, it is necessary to resort to other tradition of modern architecture than visual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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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의 근대적 역사관 비판 (Merleau-Ponty's Critical Examination on the Modern View of History)

  • 류의근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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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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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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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는 메를로-퐁티의 실존적 역사 이론에 의거해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결론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헤겔에서 역사적 경험은 절대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으로서 이해되고 이것은 변증법적으로 서술된다. 그리고 헤겔의 역사는 절대 정신의 실현을 향해 달려가는 보편적 목적론의 역사이다. 이러한 헤겔의 목적론적 역사관은 인간이 역사에 의미를 줄 수 있고 이성에 목적을 줄 수 있었던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 바꾸어 말해서 의미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 즉 의미 가능성의 문제를 전제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헤겔은 역사의 의미와 목적의 지각적 토대 즉 육화된 자기 의식에서 해명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에서 역사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 또는 계급 의식이다. 그리고 계급은 생산 관계에 의해서 산출된 사회적 실재이다. 그러나 계급은 체험된 실재로 존재하지 않으면 현실화할 수 없다. 계급 없는 사회를 가져오는 계급 투쟁 역시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프롤레타리아 의식으로 가치 부여하는 의식이 없으면 촉발될 수 없다. 계급 의식의 탄생과 투쟁의 시작은 노동자가 타자의 주체성 및 물질적 대상 세계와 만나고 협력하고 대결하면서 자신의 생활 세계의 구조와 의미를 지각하기 시작하고 이해하며 혁신하게 되는 시간적 경과를 거치면서이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우리의 육화된 실존이 세계와 교섭하는 데서 구성되는 의미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발턴(subaltern)'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자생 신종교 사상 - 수운, 증산, 소태산의 비교를 중심으로 -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 New Religious Thought Generated by Indigenous Korean Religions from a Subaltern Perspective: Focusing on Choi Je-woo, Kang Il-sun, and Park Jungbin)

  • 박종천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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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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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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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근대 한국의 자생 신종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 등은 모두 몰락한 양반 출신의 '잔반'(殘班)으로서, 본격적인 종교활동에 앞서 시골 서당의 훈장, 농민, 장사꾼, 술사(術士) 등의 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으며, 상층 양반으로부터 하층 상놈으로 전락하여 주변화된 서발턴적 위상으로 인해 다양한 서발턴들의 표현할 수 없는 염원과 원한을 종교적으로 대표/재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성 질서의 질곡을 폭로하고 일탈하면서도 새로운 대안 질서를 이념으로 제시하지 않았던 조선 후기 '밀레니엄적 주변종교' 운동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지배층의 서발턴적 규제와 억압을 전복시키고 기성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후천개벽'의 새로운 대안적 비전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한 '유토피아적 대안종교'로서 탈-서발턴(post-subaltern)적 종교를 제시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사상이 서발턴을 대표/재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교적-사회적 주체로서 탈-서발턴의 사회적 비전을 구현하는 다양한 양상을 비교하여 분석함으로써 근대 한국의 자생적 신종교가 유토피아적 대안종교 사상임을 논증하였다.

이주, 젠더, 스케일: 페미니스트 이주 연구의 새로운 지형과 쟁점 (Migration, Gender and Scale: New Trends and Issues in the Feminist Migration Studies)

  • 정현주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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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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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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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 연구는 페미니스트 이주연구의 화두인 '이주의 여성화' 에 내포된 스케일 이슈를 각종 문헌을 통해 분석하였다. 젠더선별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는 페미니스트 이주연구는 거시적 스케일에서 뿐만 아니라 미시적 스케일에서 형성되는 젠더관계와 다양한 스케일에서의 과정이 상호 접목되는 양상을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이주연구가 국가별 수준에서, 젠더요인에 대한 피상적 고려에 그친 것을 비판하면서, 페미니스트 접근은 지구적인 노동의 성별분업, 초국가적 가족연계망, 이주여성의 몸과 가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재생산을 통해 역동적으로 재구성되는 젠더관계를 주요 연구주제로 상정한다. 최근 국제거 주요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이주여성은 국경과 공적 사적 영역을 넘나들며 근대적 젠더관계와 그 경계를 교란하고 있다. 이들의 경계넘기의 젠더정치학은 다양한 스케일의 창출을 수반하는 스케일의 정치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개인의 증대된 에이전시와 가족관계망의 초국가적 확장을 통한 국제이주의 증가는 이주여성들에 의한 초국가적 스케일의 생성인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페미니스트 이주 문헌에서 나타나는 스케일에 대한 오해를 시정하고 페미니스트 지리학의 연구 성과를 접목하여 양 학문분야의 의사소통을 증진하고자 한다.

국리의 동원, '국민'의 형성: 한국사회 '국민' 담론의 계보학 (Mobilization of Gookmin, Formation of 'Gookmin': A Historical Study of the Discourse of 'Gookmin' in Korea)

  • 전규찬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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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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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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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연구는 한국 사회 내 주도적 담론, 지배적 정체성으로 작동하고 있는 '국민'의 기원을 추적해 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민족'이나 '민중', '시민', '인민'과 마찬가지로 '국민'은 식민지 근대가 배태한 매우 특수하고 역사적인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에 대한 언어사회학적, 문화정치학적 고찰은 거의 없었다. 주체와 현실을 이어주는 일종의 이념적, 인식적 창틀로서 '국민'이라는 말이 어떠한 문맥 하에서 탄생하였는지 계보학적으로 쫓아보는 것은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 연구는 '국민'이라는 담론의 본격적 탄생 시기를 일제식민지 후기에 두고, 당시의 국가총동원체제가 여러 다양한 물리적 장치를 조건으로 해서 어떻게 '국민'이라는 담론과 주체를 형성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보통사람들을 '제국의 일분자'로 동원코자 한 일제라는 전체주의적 국가체제가 '국민'의 배후에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국민' 담론의 선전적 한계와 파시즘적 본성을 밝히고자 한다. 본 연구는 지배적인 '국민' 담론에 대한 역사유물론적인 해체 작업으로서, 기본적으로 문화연구와 문화정치의 입장에서 접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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