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계몽(啓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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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 대한 신지지 내용분석- 자연지리를 중심으로 (A Study of Contents Analysis on Questioning Daehan- Sin- Gygi - Focusing on the Contents of Physical Geography -)

  • 강철성
    • 한국지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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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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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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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20세기 초 개화기 때, 이태국이 편찬한 '문답 대한신지지' 내용 중에서 서문과, 내용 목차, 내용 체계, 주요 내용(자연지리 부분) 순으로 내용을 분석하여 당시의 지리관을 고찰하였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문답 대한신지지 교과서 서술 내용은 대체로 전통적 지리관을 극복하고, 실학사상에 근거하여 과학적 지식을 도입한 계몽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자연지리 내용을 중시하고, 총론은 계통적 접근 방법으로, 각론은 지지적 접근 방법으로 행정 구역에 따라 조선의 각 지방을 서술하였다. 백과사전적인 현상 사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조직화, 구조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내용체계와 자연지리 내용 분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한문으로 기술되어 한문을 해석하는 고충을 어느 정도 덜게 하였다. 둘째, 간명하면서도 명료하여 기억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배우기가 쉽다. 셋째, 산세, 지세, 기후, 하천, 도서, 해만 순으로 서술하였는데, 과학적인 자연지리 서술내용은 적으나, 최초로 질문-응답의 방법을 취하여 서술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고 사료된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반-도핑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와 과제 (A Study on the Anti-Doping Communication from Niklas Luhmann's Systems Theory, its' Limits and Tasks)

  • 송형석
    • 한국체육학회지인문사회과학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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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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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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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루만의 체계이론에 입각해서 기존의 반-도핑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기존의 반-도핑 커뮤니케이션은 도핑의 원인과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개인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 방법도 적발, 처벌, 교육을 통한 계몽 같이 철저하게 선수나 지도자 같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스포츠체계와 그 주변 체계들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져 생겨나는 도핑현상을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의 결과로 단순화시킬 뿐만 아니라, 스포츠 및 주변체계들의 성찰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체계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시키는데 기여하고, 선수나 트레이너 같은 개별 행위자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를 부과함으로써 도핑방지노력이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만든다. 도핑 퇴치 노력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체 중심 차원을 넘어서 스포츠조직과 사회적 기능체계들의 차원에서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

알피에리의 비극 『사울Saul』과 『미라Mirra』에 나타난 새로운 인간의 이상 (L'idea dell'umanità nuova nelle tragedie Saul e Mirra di Alfieri)

  • 장지연
    • 이탈리아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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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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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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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Vittorio Alfieri fu celebrato dagli uomini del Risorgimento come "l'iniziatore ed il padre della rinascita" e il creatore della coscienza nazionale. Per questo è lodato da Foscolo, Manzoni, Leopardi, Mazzini, Gioberti, Oriani, Carducci. Ma insieme con i suoi meriti politici, anche i valori artistici delle sue opere non debbono essere dimenticati. Anche sul pensiero e sull'opera dell'Alfieri influirono le ideologie tipiche del secondo Settecento, l'Illuminismo e il nascente Romanticismo, in lui intrecciandosi e scontrandosi ad un tempo. Il suo interesse per lo studio dell'uomo, per la concezione meccanicistica del mondo, la lontananza dalla religione per l'assoluta libertà e l'avversione verso il dispotismo, collegano Alfieri alla dottrina illuminista. I temi letterari illuministici, volti a chiarificare le coscienze e ad apportare il progresso sociale e civile, sono affrontati dal poeta non in modo distaccato, ma con l'emotività e le inquietudini del pensiero romantico. Ma i letterati romantici dell'Ottocento furono piuttosto ostili all'opera dell'Alfieri, accusandola di astratezza, di lontananza dagli interessi e dalla realtà della vita moderna e di assenza di senso storico. Invece nei primi anni del Novecento, Croce lo presenta come iniziatore della nuova letteratura italiana, con la quale egli avrebbe in comune l'individualismo, la passionalità, l'amore per la solitudine, la malinconia. Anche se gli manca l'ansia religiosa sul fine e il valore della vita e l'interessamento per la storia, ecc., secondo il Croce si può definire un protoromantico. Nelle sue opere ci sono, sotto l'aspetto dell'Illuminismo l'odio istintivo contro la tirannide e l'amore per la libertà, e sotto quello protoromantico esplode l'urto violento di sentimenti e passioni e l'esaltazione della morte eroica dei protagonisti. E anche Saul e Mirra descrivono l'idea dell'umanità eroica che muore dopo una lunga vicenda di miseria e di abbiezione. L'idea dell'umanità nuova in Saul e Mirra è l'idea degli uomini nuovi che egli desiderava.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학기술의 책임과 기후변화윤리 - 책임을 중심으로 - (The Responsibilities of the Science Technology and the Ethics of the Climate Changes)

  • 변순용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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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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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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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기후변화와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왔던 유형의 문제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기후변화의 예측, 완화 및 적응을 위한 인간의 행위에서 요청되는 윤리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우선 기후변화윤리의 담론에서 나타나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강한 의미의 인간중심주의는 인간 종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환경교육에서는 약한 의미의 생태학적으로 계몽된 인간중심주의 논리로 환경윤리적 요청을 정당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윤리의 담론에서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기후변화의 윤리와 과학기술에서 탈인간중심주의화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인 고려의 대상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윤리에서 제기되는 요청들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합의는 과학적인 근거와 사회구성원들의 가치에 기초해야 한다. 둘째, 기후변화로 파생되는 문제는 시급한 문제이면서도 장기적인 성격의 문제이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윤리교육을 통해 기후변화가 갖는 윤리적 의미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끝으로, 기후변화윤리교육에서 지속 가능성은 기후변화윤리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당위적 요청들을 정당화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반도팔경 선정과정을 통해 본 경관인식 (A study on the perception of landscape through the selection process of Bandopalgyong - eight beautiful scenary in Korea - within Japanese colonial period)

  • 김해경;안경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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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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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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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는 다양한 매체가 창간되었고, 발행 부수 확보를 위한 미디어 이벤트를 실시했다. 이중 "삼천리"는 1929년 창간호에서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서 '반도팔경'을 선정하는 미디어이벤트를 기획했다. 이에 반도팔경의 선정과정과 선정된 반도팔경에 대한 분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도팔경의 선정은 당시의 지식인에 해당하는 문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이다. 팔경으로 선정 가능한 경승지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은 명시하지 않았다. 젊은이 계몽, 민중 계몽, 아름다운 경승지 소개가 목적이며, 문인들의 반도팔경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둘째, 반도팔경에 선정된 경승지는 금강산(金剛山), 대동강(大洞江), 부여(扶餘), 경주(慶州), 명사십리(明沙十里), 해운대(海雲臺), 백두산(白頭山), 촉석루(矗石樓)이다. 선정된 팔경은 경승지의 규모나 영역에서 일관성이 없으며, 일부 문인은 선정되지 못한 경승지를 거론하면서 교통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셋째, 기행문으로 발표된 반도팔경 경승지인 백두산과 부여 낙화암에 대한 경관인식이다. 백두산 경관에 유구한 역사와 민족 정기를 대입시켰으며, 조선시대를 부정하면서 부여는 고도 백제로 빈 공간이라고 했다. 기행문은 실제 답사를 다녀온 후 작성된 것이 아니라 기존 발표한 내용을 재편집했다. 넷째, 김동환의 편집으로 1941년 기행문 형식의 "반도산하"가 발간되었다. '사적'과 '경승'으로 구분하여 팔경을 선정하였으며, 보존해야 할 경관과 향유하는 경관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본 연구는 1929년 선정된 반도팔경의 분석을 통해서 일제강점기 지식인인 문인의 경관 인식을 도출했다. 이는 미디어 이벤트를 통한 새로운 선정 방식과 기행문을 통한 경관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실증적 연구로써 의의가 있다.

동아시아 4개국 학생들의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 비교: 과학캠프에 참가한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10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Comparison of Perception Differences About Nuclear Energy in 4 East Asian Country Students: Aiming at $10^{th}$ Grade Students who Participated in Scientific Camps, from Four East Asian Countries: Korea, Japan, Taiwan, and Singapore)

  • 이형재;박상태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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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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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5-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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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연구는 일본 Nara Woman's University Secondary School에서 이루어졌던 과학캠프에 참가한 동아시아 4개국(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10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한국 학생 12명, 일본 학생 46명, 대만 학생 9명, 싱가포르학생 10명으로 전체 77명에 대하여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였다.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의 전체 평균 비교 결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학생들 순으로 나타났다. 일본과 동아시아 3개국(한국, 대만, 싱가포르) 학생들 간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의 t 검증 비교 결과 동아시아 3개국 학생들이 일본 학생들보다 높게 나타났다(p<.05).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의 하위 영역별로 평균 비교 결과 기술성 영역에서는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학생들 순으로 나타났고, 동아시아 3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과의 기술성 영역의 t 검증 비교결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p>.05). 관리성 영역의 평균 비교에서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학생들 순으로 나타났으며, 동아시아 3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간 t 검증 비교 결과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p<.05). 유용성 영역의 평균 비교 결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학생들 순으로 나타났으며, 동아시아 3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간 t 검증 비교 결과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p<.05). 안전성 영역의 평균 비교 결과 한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학생들 순으로 나타났으며, 동아시아 3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간 비교 결과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p<.05). 과학 캠프에 참가한 동아시아 4개국 가운데 한국 학생들의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하위 모든 영역에서도 높게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정부에서 원자력사업자와는 별도로 원자력홍보전문기관을 설립하여 원자력 발전에 대해 과학적, 객관적 정보를 가지고 활발하게 계몽 및 홍보활동(원자력문화 활동)을 펼쳤고, 학생들이 이에 대한 홍보를 많이 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우리나라보다 12년 앞서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일본의 경우 원자력홍보전문기관인 일본원자력문화진흥재단의 원자력문화 활동을 학생들과 성인 등을 대상으로 계몽 및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과학캠프에 참가한 동아시아 4개국 중 가장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하고 운영을 하고 있으나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방사능 누출에 따른 피해와 우려로 인하여 일본 학생들의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낮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원자력 관련 기술이나 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관리된다는 정보보다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대재난이나 중대한 사고들에 대한 정보가 대중의 위험인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대형 사고들은 그 빈도가 매우 낮지만 한 번의 사고만으로도 해당 기술에는 비정상적인 위험이 존재한다는 강한 신호(signal)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신호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와 인식을 고착시켜 최종적으로는 원자력 관련 기술에 대한 낙인화(stigmatize)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를 지지하였다. 이를 통해 원전의 안전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의 정책전환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으며, 한번 형성된 인식이나 결정은 계속 보강, 유지되어 교정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샤르댕의 아동 교육 장르화 -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의 계몽주의적 아동관 (Chardin's Genre Paintings of Child Education: The Enlightenment Views on Children of the French Bourgeois Class in the 18th Century)

  • 고유경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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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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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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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is paper examines four genre paintings on the subject of child education by Jean-Baptiste-Sim${\'{e}}$on Chardin(1699-1779). The Governess, The Diligent Mother, Saying Grace, and The Morning Toilette garnered critical attention after they were exhibited in the Salon from 1739 to 1741. After the exhibition, the paintings were made into prints and frequently sold to members of the bourgeois class in Paris. The iconographical details of Chardin's genre paintings have, thus far, been compared to Dutch genre pictures of the seventeenth century. Further, most studies conducted on Chardin's paintings focus on formal analysis rather than the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s. Through attempting social-contextual readings of Chardin's educational series, this paper argues that the significance of Chardin's painting series of child education lies in his representation of the ideal French bourgeois family and the standard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in the eighteenth-century French Enlightenment period. In each of the four child education paintings, Chardin depicted a mother with children in a domestic space. Even though this theme derives from traditional Dutch genre paintings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visual motifs, the pictorial atmosphere and the painting techniques of Chardin all project the social culture of eighteenth century France. Each painting in the child education series exemplifies respectively the attire of a French gentlemen, the social view on womanhood and the education of girls, newly established table manners, and the dressing up culture in a 'toilette'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Distinct from other educational scenes in previous genre paintings, Chardin accentuated the naive and innocent characteristics of a child and exemplified the mother's warmth toward that child in her tender facial expressions and gesturing. These kinds of expressions illustrate the newly structured standard of education in the French Enlightenment period. Whereas medieval people viewed children as immature and useless, people in the eighteenth century began to recognize children for their more positive features. They compared children to a blank piece of paper (tabula rasa), which signified children's innocence, and suggested that children possess neither good nor bad virtues. This positive perspective on children slowly transformed the pedagogical methods. Teaching manuals instructed governesses and mothers to respect each child's personality rather than be strict and harsh to them. Children were also allotted more playtimes, which explains the display of various toys in the backgrounds of Chardin's series of four paintings. Concurrently, the interior, where this exemplary education was executed, alludes to the virtue of the bourgeois's moderate and thrifty daily life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While other contemporary painters preferred to depict the extravagant living space of a French bourgeoisie, Chardin portrayed a rather modest and cozy home interior. In contrast to the highly decorated living space of aristocrats, he presented the realistic, humble domestic space of a bourgeois, filled with modern household objects. In addition, the mother is exceptionally clad in working clothes instead of fashionable dresses of the moment. Fit to take care of household affairs and children, the mother represents the ideal virtues of a bourgeois family.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four genre paintings of child education by Chardin articulate the new standards of juvenile education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as well as the highly recognized social virtues between French bourgeois families. Thus, Chardin's series of child education would have functioned as a demonstration of the ideal living standards of the bourgeois class and their emphasis on early childhood education in the French Enlightenmen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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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의 위상 변천으로 본 과도기 지식 장(場)의 변화 - 양계초(梁啓超)의 소설계혁명(小說界革命)을 중심으로 - (The Change of the Knowledge Field in a Transition Period based on the Transition of the Status of Chinese Novels - Focusing Liang Qichao's Assertion, the Revolution of the Novel World)

  • 정선경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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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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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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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고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통과 근대의 전환기 양계초(梁啓超)의 소설계혁명을 중심으로 중국 소설의 위상 변천과 근대 지식 장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전통소설은 어떻게 평가되어 왔는지, 근대소설은 어떻게 국민을 계몽시키고 어떻게 정치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었는지, 또 소설은 지식 장의 변화에서 어떤 역할을 추동하고 있었는지 고찰하고자 했다. 특히 서구문화의 충격과 유입에 중점을 맞춰온 그 간의 연구경향에서 간과되기 쉬웠던 중국 자체 내 지적(知的) 축적과 변화를 아울러 조명하고자 했다. 먼저 전통시기 소설에 대한 평가와 분류 방식을 검토했다. 소설을 지식장의 변화를 살펴보는 하나의 텍스트라고 상정할 때 시대마다 변화된 인식과 목록서의 분류방식은 학문적 위상을 반영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후 소설과 정치사회의 관계, 소설과 글쓰기 문체의 두 가지 방면에서 양계초의 소설계혁명을 고찰해 보고, 근대 지식사회의 변화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근대를 사유하는 한 방식으로 소설을 이해하고자 했다. 양계초는 소설을 문학의 최상층으로 부각시켰다. 수천 년간 유지되어온 정통문학 시가의 위상을 밀어내고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통속문학소설을 위치시켰다. 서구 문명의 외래적 충격은 중국소설을 우민(愚民)을 계몽시키는 도구이자 지식을 전파하는 매개체로 만들었고 이전 어느 시기에도 부여받지 못했던 최고의 위상으로 격상시켰다. 소설 자체의 심미적 예술성에서 근거한 것이 아닌, 정치 사회적 효용성에서 기인한 평가라는 한계점이 있지만, 소설은 구국을 위한 생존의 담론이었고, 국민의 정신을 개조하고 망국의 위기를 전환시켜줄 지식의 담지체였다.

근대계몽기 석정 이정직의 논어관과 학습의 방향 (Viewpoint on the Analects of Confucius and the Learning Direction of Seokjeong JEONG-JIK LEE in Modern Enlightenment Period)

  • 이승용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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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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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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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석정은 근대계몽기라는 위기의 시대에 문장보국을 실현하고자 한 지식인이다. 그는 주로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자신의 현실 인식을 표출하였다. 그는 "유고"에 "논어"에 대한 <논어 10문 10답>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는 학생들과의 수업 교재로 활용하고자 작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 <논어 10문 10답>에 드러난 석정의 논어 인식과 그것의 학습 방향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는 "논어"의 핵심 사항인 인(仁)에 대해 '사람다움이나 사랑'의 일반적 관점이 아닌, 호인유폐(好仁有蔽)와 관과지인(觀過知仁)의 관점에서 반성적 성찰의 시대인식을 보였다. 인(仁)과 덕(德)에 대해서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이에는 당시 열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석정의 생각이 반영되었다 할 것이다. 군자와 명(命)의 관계에는 군자는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인재로서 명(命)을 알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 학습의 방향은 크게 종입지방, 군자지류, 수문이해로 살펴보았다. 종입지방은 학습자의 특성에 따라 단점을 보완해 주는 방향을 취하고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지식의 습득이 아닌 도덕적 실천에 학습의 중점을 두고 있다. 군자는 크게 3단계로 나누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학습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기준을 마련한 것이지, 모든 제자들을 이에 맞추어 분류할 수는 없다. 수문이해는 문장에 따른 적합한 풀이이다. 동일한 개념을 "사서"에서 달리 주석한 이유를 석정은 '소시소절 필착필섬(所始所切, 必着必贍)'의 원칙을 가지고 문맥에 따라 강조점을 둔 것이지, 뜻이 다르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20세기 한국 문화재 인식의 이데올로기적 영향과 변화 (Ideological Impacts and Change in the Recognition of Korean Cultural Heritage during the 20th Century)

  • 오춘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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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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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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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문화재 인식의 출발점이 되는 문화재 '선택'에는 당시 지배 권력의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반영된다는 가정을 세웠고, 이를 20세기 한국의 사례를 통해 증명하였다. 먼저 대한제국 후기(1901~1910)에는 조선시대부터 가져오던 과거 유적들에 대한 관점을 거의 유지하고 있었다. 국가가 중요하게 보호하려 한 대상은 왕릉과 왕실기록물들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 유적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에 자극받은 계몽주의 지식인들에 의한 주체적 문화재 인식 시도가 있었으나 제도화되지 못하였다.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일본인들 주도로 문화재 조사와 제도화가 진행되었고, 이는 현재 한국 문화재 관리체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고적 조사, 지정, 보호, 선양 활동은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합리화함과 동시에 식민주의 사관을 반영하는 것들이었다. 국내 민족주의자들이 계몽적 차원에서 고적애호 운동을 벌였으나, 이는 일본인들이 기획한 고적조사 성과에 기초하였다는 한계가 있었다. 해방 후(1945~2000)에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문화재 복구와 복원 활동들이 있었고, 여기에도 정권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었다. 그리고 1997년의 '문화유산 헌장' 제정은 문화재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수단이 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가 되는 일이었다. 지난 20세기 동안 한국에서는 정치권력의 선택에 따라 문화재의 내용이 변하였다. 이 선택에는 당시 권력이 문화재에 대해 가지는 문화적인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었다. 이런 문화재 선택의 배경에는 개념어와 사회의 상호 보완적 관계, 즉 집합기억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이 작용하고 있었다. 지배집단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피지배집단에 각인시키려 하는데, 그 수단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전통문화에 관련된 집합기억, 즉 문화재 선정과 활용에 관여함으로써 이를 실현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