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경전학파(經典學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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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傷寒) 의학사(醫學史)에 관(關)한 연구(硏究) (III) - 상한학파(傷寒學派)의 형성과 발전시기(명${\sim}$청)(明${\sim}$淸)를 중심으로 -

  • 김기욱;박현국;정성채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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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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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6-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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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통과이상적연구(通過以上的硏究), 장상한학술적성숙기(將傷寒學術的成熟期), 칙지명대여청대관여상한의학사적내용정리(則至明代與淸代關與傷寒醫學史的內容整理) 여하(如下). 1. 명청시대적시대배경사상한학적내용갱풍부(明淸時代的時代背景使傷寒學的內容更豊富), 촉진상한학술적발전(促進傷寒學術的發展) 병차출현료흔다관여상한적저작(幷且出現了?多關與傷寒的著作), 단실제상야출현료상한론내용적중복여지론술일반부분(但實際上也出現了傷寒論內容的重複與只論述一般部分), 혹저자립안조잡적처방지폐단(或著者立案粗雜的處方之弊端). 차기우출현각종상한학파적리유(此期又出現各種傷寒學派的理由), 시인위당시류행적사조(是因爲當時流行的思潮), 칙정주리학적영향여명대문단부고(則程朱理學的影響與明代文壇復古), 의고적추향(擬古的趨向), 환유금원시대적백가쟁오등(還有金元時代的百家爭嗚等), 성료형성상한학파적기초(成了形成傷寒學派的基礎). 2. 위료불실거상한론적본래의식(爲了不失去傷寒論的本來意識), 주장정리화고정원문회부왕숙화이전모양적착간중정파시왕안도기료개단(主張整理和考訂原文恢復王叔和以前模樣的錯簡重訂派是王安道起了開端), 방유집확대료기의식(方有執擴大了其意識). 유창여침명종시대표저학파학자(喩昌與沈明宗是代表這學派學者), 장로(張?) 정응모(程應?) 주양준(周揚俊) 오겸등수료저학설(吳謙等隨了這學說). 3. 주장(主張)'존왕(尊王)(숙화(叔和))찬성(贊成)(무기(无己))'적유호구론파(的維護舊論派), 주장료불능수변개상한론삼음삼양편적배렬여순서(主張了不能隨變改傷寒論三陰三陽篇的排列與順序), 문자(文字), 구문(句文), 문장(文章), 고세식(高世?), 진념조등인(陳念祖等人). 4. 주장상한론적정수재어변증론치(主張傷寒論的精髓在於辨證論治), 선우운용칙능득상한핵심리론적학파시변증론치학파(善于運用則能得傷寒核心理論的學派是辨證論治學派). 저학파분사개계통(這學派分四?系統), 이처방수집증상적의가유허굉(以處方收集證狀的醫家有許宏), 가금(柯琴), 서대춘(徐大椿); 이치법수집증상적의가유오인구(以治法收集證狀的醫家有吳人駒), 우이(尤怡); 이분유륙경찰증상적의가유진념조(以分有六經察證狀的醫家有陳念祖), 포성(包誠); 이증상분류증후적의가유류순(以證狀分類證候的醫家有劉純), 왕긍당(王肯堂), 진지정(秦之楨), 침금오등인(沈金鰲等人). 5. 회통파유량종류형(?通派有兩種類型), 일시수통상한여온병적학파(一是誰通傷寒與溫病的學派), 간칭회통파(簡稱?通派), 대표의가유도화(代表醫家有陶華), 오정(吳貞), 유근초등인(兪根初等人), 령일개유회통중의여서의적립장상해석상한적의가당종해(?一?有?通中醫與西醫的立場上解釋傷寒的醫家唐宗海). 6. 경전학파시이상한론위보귀적경전래인식(經典學派是以傷寒論爲保貴的經典來認識), 병차지유숭상차경여사상적학파(幷且持有崇尙此經與思想的學派), 차리분량개편우원문적고증래연구적경전고증파(此里分兩?偏于原文的考證來硏究的經典考證派), 화인위지유상한론(和認爲只有傷寒論), 재능총괄치료외감병(才能總括治療外感病), 부정온병학설병배척적경전림상파(否定溫病學說幷排斥的經典臨床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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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의 사상적 분화와 전개양상에 관한 연구 - 황간(黃?)과 원대(元代) 금화학파(金華學派)의 사상적 연관성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differentiation and development aspects of Zhu-zi xue - centering around the connection between Huang Gan and Jin-hua school in Yuan period)

  • 지준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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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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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7-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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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 논문은 주자문인인 황간과 원대 금화학파의 사상적 연관성을 연구함으로써 주자문인 및 주자 후학에 의한 주자학의 분화와 발전 과정을 분석하였다. 황간은 주자의 적통을 이어받은 도학파 주자문인이며, 그의 학문은 절강(浙江) 금화학파(金華學派), 강서(江西) 쌍봉학파(雙峰學派), 신안(新安) 주자학파(朱子學派) 등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사상사적인 흐름 속에서 도통론을 기반으로 황간의 학문을 계승한 대표적인 학파, 즉 사상사적으로 면재(勉齋) 황간(黃?)으로부터 하기(何基), 왕백(王柏), 금리상(金履祥), 허겸(許謙)으로 학통이 이어지는 절강(浙江) 금화학파(金華學派)를 연구의 주요 범위로 하고 있다. 황간과 원대 금화학파의 사상적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특징지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종법적인 도통관이다. 황간의 도통설은 주자의 도통관을 진일보 발전시킨 것으로서 주자가 유가의 도통을 집대성하였음을 논증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황간의 도동관은 특히 주자학의 적전(嫡傳)을 자부하는 금화학파에 의하여 계승된다. 둘째, 체용론과 관련한 "분수이리일(分殊而理一)"이라는 인식방법이다. 황간은 태극과 음양의 관계를 '도겸체용(道兼體用)'의 측면에서 일종의 '이일분수(理一分殊)' 또는 '일이이(一而二)'로 설명한 바 있다. 황간은 '도(道)의 체(體)는 형태가 없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들므로 우리들은 여러 만물에 산재해 있는 이(理)를 통하여 도(道)의 체(體)를 이해할 수 있다'라는 '유용이언체(由用而言體)' 또는 '인용이명체(因用而明體)'라는 구체적인 인식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인식방법 역시 황간의 후학인 금화학파에 의하여 계승된다. 셋째, 격물치지의 공부론이다. 황간은 존덕성과 도문학을 모두 중시하였으며, 금화학파 역시 존덕성과 도문학을 모두 중시하였다. 특히 허겸(許謙)은 '격물치지'의 공부론을 통하여 심(心)의 문제를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금화학파는 당시 상산학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도문학의 의의를 상대적으로 보다 강조하게 된다. 따라서 유가 경전의 독서와 훈석(訓釋)을 중시하고 있으며 "분수이일(分殊理一)"의 인식방법을 자신들의 학문에 응용함으로써 "유전이구경(由傳以求經)"이라는 특색을 지니게 된다.

한국(韓國) 『상서(尚書)』학(學) 연구(硏究)의 회고(回顧)와 전망(展望)

  • 진역령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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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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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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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한국에서의 유가(儒家) 경전의 수용은 삼국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신라(新羅)시대 태학(太學) 교육 중의 한 과목이 "상서(?書)"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상서(?書)"는 고대 정치제도 및 정치사상과 매우 긴밀한 관련을 갖는 경전인 까닭에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통치자들의 시정방침(施政方針)상의 중요한 근간(根幹)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상서(?書)" 연구를 통해서 경서 내용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사상도 알 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서 경학 연구는 중국과 달리 전통적 사서오경(四書五經) 혹은 십삼경(十三經)이 아니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개별 경전에 대한 연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사서(四書)"의 경우, 특히 "논어(論語)"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삼경(三經)의 경우, "주역(周易)"이나 "시경(詩經)"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 "상서(?書)" 연구는 아직 전자만큼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성균관대학교에 발간한 "한국경학자료집성(韓國經學資料集成)"을 살펴보면, 한국 경학 저술 총 145권 가운데 "상서(?書)" 부분이 22권을 차지하고 있다. 즉 거의 6분의 1이 "상서(?書)" 관련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학술총람"과 공구서(工具書) 전자 시스템에 수록된 1901년부터 2014년 상반기에 이르기까지의 100여 년 동안 한국(韓國)에서 발표된 "상서(?書)" 관련 학술단행본 학위논문 학술지논문 등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한국에서의 "상서(?書)"학(學) 연구(硏究)를 회고(回顧)하고 또 그 미래를 전망(展望)해 보도록 할 것이다. 전적으로 보면 한국 "상서(?書)"학 연구는 3가지를 포함한다. 첫째는 한국에서 중국 고전 "상서(?書)" 원전(原典)에 대한 탐구(探究)인데 이를 '중국 "상서(?書)" 연구' 라고 칭하였다. 둘째는 조선시대 유학자의 서경 저술을 중점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이를 '한국 "서경"학 연구'라고 이름 하였다. 셋째는 한국 이외 다른 나라 학자들의 조선시대 "서경" 저술에 대한 연구이다. 이상 3가지를 모두 대상으로 삼아야 온전한 한국 "상서(?書)"학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의 연구 방향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역본의 연구 (2)학파별 연구 (3)문헌적 연구 (4)경연과 과거시험의 각 나라 비교 연구이다. 한국 "서경"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의 사상과 문화 특히 정치사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전통시대 동아시아 각국의 학문 양상까지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아직까지 한국의 학계에서 한국 "서경"학을 중심으로 하여 이러한 측면을 밝히는 연구는 부족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그렇기에 연구할 영역이 더욱 많은 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연구영역들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앞으로 더 깊이 있고 폭 넓은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 '고방파(古方派)' 의학에 관한 연구

  • 박현국;김기욱;정경호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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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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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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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재일본규주황한의학적전통의학지전신취시중국전통의학적지식(在日本叫做皇漢醫學的傳統醫學之前身就是中國傳統醫學的知識). 16세기이래(16世記以來), 일본불단수도이개조중국의학적최신성과(日本不斷收到而改造中國醫學的最新成果), 동양원류우부동홍류적한방의학체계점점형성적과정전후(同樣源流又不同洪流的漢方醫學體系점점形成的過程前后), 출현료4개학문유파(出現了4個學問流派). 저취시(저就是)"후세파(后世派)"."고방파(古方派)"."절충파(折衷派)"."고증파(考證派)". 소우호세파(소于호世派), 논자이경재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적제19권3호상보고료(논者已경在大한한의학原典학회紙的第19卷3호上보告了), 본논문시연속적연구성과(本논文是연속的硏究成果). 종이재본논문상(종而在本논文上), 이한국적이정환(以한국的李政桓), 백유상(白裕相), 정창현등적연구여중국양영적연구위기초(丁彰炫等的硏究與中國梁嶸的硏九爲基礎), 요개략지보고일본의학방면상적‘고방파’(要槪略地報告日本의학方面上的'古方派'). "고방파"지칭부정근세송명의학이지지지한대장중경적"상한잡병론"지일본의가("古方派"指稱否定近世宋明醫學而只支持漢代張仲景的"傷寒雜病論"之日本醫家). 일반"상한론"전파우일본적실정시대(一般"傷寒論"傳播于日本的室町時代), 명응년간(明應年間)(1492${\sim}$1500)판정운재명유학후(阪淨運在明留학후), 타회도일본적시후(他回到日本的시候), 종명수입(종明수入)"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 이후일본후세한의칭송료이관동지역적영전덕본(以후日本후世漢醫칭송了以關東地域的永田德本)(1513-1603)위(爲)"고방파적선구자(古方派的先구者)". 도강호시대재일본학술계출현료복고사조(到江戶時代在日本學術係出現了復古思潮). 이등인제(伊藤仁劑)(1627${\sim}$1705)앙망료유학적경전(仰望了儒學的經典), 이차적극지주장료의학적복고(而且積極地主張了醫學的復古), 이후적생조래(以후荻生組徠)(1666${\sim}$1728)대우복여성인적학문부단노력(對于復與聖人的學問不斷努力). 인차복고적학문재덕천시대성위일대학파(因此復古的學問在德川時代成爲一代學派), 18세기상반기시전성시기(18世紀上半期是全盛시期). 주요의가시명고옥현의(主要醫家是名古屋玄議)(1628${\sim}$1696), 후등양산(後藤양山)(1659${\sim}$1733), 산협동양(山脅東洋), 병하천민(병河天民)(1679${\sim}$1719), 송원유악(松原維嶽)(1689${\sim}$1765), 향천수암(香川修庵)(1683${\sim}$1755), 타문복고적유학영향도흔다의학방면(他문復古的儒學影향到흔多의학方面). 중요의가길익동동(重要醫家吉益東洞)(1702${\sim}$1773)도후대피평위고방적'태두'(到后代被평위古方的'泰斗'), 동시'마귀'(同시'魔鬼'). 인차본논문소우황한의학지중"후세파"여반대후세파적"고방파"(因此本論文소于皇漢醫學之中"后世派"與反대后世派的"古方派"), 통과학파명칭여역사지위(通過學派名稱與歷史地位), 주요의가적생애(主要醫家的生涯), 학술적요지(學術的要旨), 저서등(著書等), 이연구병보고타문적학문주장(以硏究병報告他們的學問主張). 이차진저차궤회(而且진저次机회), 상회고아문한의학연착여하역사적궤적(想回고我문韓醫學沿着如何歷史的軌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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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에서의 선진(先秦) 제자학(諸子學) 수용 양상 - 순자(荀子)에 대한 비판과 이해를 중심으로 - (The Aspect to Receive Pre-Chin Study of One Hundred Schools in Cho Sun Dynasty-Centered on the criticism and understanding of Hsün Tzu)

  • 윤무학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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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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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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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한국사상사에 있어서 선진 제자학을 위상을 검토하고 아울러 순자사상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여말선초부터 18-19세기에 이르는 지식인들의 문집을 통하여 순자에 대한 이해양상과 시대별 흐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부터 고려 중엽까지는 지식인들이 선진 제자학 가운데 다른 학파나 사상가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비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여말선초 이래 "맹자"가 유가의 정통 경전으로 확립되면서부터 순자를 비롯한 선진 제가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고려부터 선초에 이르는 지식인들의 순자의 성악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으며, 다만 순자에 대한 이해의 심도가 점차 깊어짐을 알 수 있다. 성리학 전성기에 이르면 선초에 비해 순자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 강도가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맹자의 성선설을 토대로 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이미 확립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성악설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대체로 순자의 다른 사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원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17세기에 이르면 순자를 법가로 귀결시키는 논의도 일부 보이지만, 주자학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실학적 토대 위에서 제자학을 적극 수용하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18세기에 이르면 순자에 대한 이해 범위가 보다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글자 고증에 있어서 순자의 원문 및 주석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조선조 지식인들의 순자 비판은 시종일관 그의 성악설에 근거하며 나아가 분서갱유를 주도한 이사(李斯) 등의 법가와 연계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다. 반면에 이를 제외한 순자의 기타 사상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수용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순자를 비판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제자서를 쉽게 접하거나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학문태도를 지녔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