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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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궤요략심전(金櫃要略心典)"의 경병(涇病)조문에 대한 번역 연구

  • 이선란;이용범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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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3호통권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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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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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통과분석(通過分析)${\ulcorner}$금궤요약심전${\lrcorner}$경병조문중우재경적주석(痙病條文中尤在痙的註釋), 득출여하결론(得出如下結論) 1. 경병적원인유이(痙病的原因有二) : 외인시태양풍한중감한습(外因是太陽風寒重感寒濕); 내인시혈기음양적손상(內因是血氣陰陽的損傷), 단진액부족시기공통지처(但津液不足是其共通之處). 2. 경병기본속우표병(痙病基本屬于表病), 출현심맥시인감수습사소치(出現沈脈是因感受濕邪所致). 3. 경병(痙病), 출현강직시인감수풍사(出現强直是因感受風邪). 4. 강경유오한증상(剛痙有惡寒症狀), 단유가능인위표실증무오한증상(但有可能認爲表實證無惡寒症狀), 고장원문중적'반'자직접인용과래설명(故將原文中的反字直接引用過來說明). 5. '기맥여고'화'폭복장대'시풍사거이습사잔존적시후출현적('其脈如故’和‘暴腹腸大'是風邪去而濕邪殘存存的時侯出現的). 6. 경병적양명어열증가사용대승기탕(痙病的陽明瘀熱證可使用大承氣湯), 기병불시위료거제조실(其幷不是爲了去除燥實), 이시위료하양명어열(而是爲了下陽明瘀熱), 고실제상사용대승기탕적시후요소심근신(故實際上使用大承氣湯的時候要小心謹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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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李延)의 중풍론(中風論)과 장개빈(張介賓)의 비풍론(悲風論)의 비교 연구;관우이연중풍론화장개빈비풍론적비교연구

  • 조학준;김용진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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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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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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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통과대이연화장개빈관우중풍관점적비교연구, 이급기대중풍적분류(以及基對中風的分類), 증상(證狀), 치료(治療), 예후적관점진행분석득출여하결론(豫後的觀點進行分析得出如下結論): 이연파중풍적원인분류위진중풍(李挻把中風的原因分類爲眞中風), 겸중풍(兼中風), 류중풍(類中風), 사중풍(似中風), 종이조취료구분외풍여내풍계기(從而造就了區分外風與內風契機). 대어중풍적원인(對於中風的原因), 장개빈주장배제외풍근한어내풍적관점(張介賓主張排除外風僅限於內風的觀點). 재차기초상(在此基礎上), 설기여조헌가주장진수고갈급진화허시기원인소재(薛己與趙獻可主張眞水枯褐及眞火虛是基原因所在), 대차관점(對此觀點), 장수신적"중풍각전"중, 기유찬동적(旣有贊同的), 역유지비판의견적내용(亦有持批判意見的內容). 대어중풍적증상(對於中風的證狀), 이연근거병사소재분위중장, 중부(中부), 중혈맥(中血脈), 중경등(中經等). 우기대중경증적분류(尤基對中經證的分類), 재기타의서중시무법견도적분류적표준(在基他醫書中是無法見到的分類的標準). 저가이인위(這可以認爲), 타이 "금궤요략" 위의거(爲依據), 시부합내풍적증상분류(是符合內風的症狀分類). 장개빈파비풍적증상종대적방면분위경병화장병(張介賓把非風的症狀從大的方面分爲經病和臟病), 연후재파경병세분위경증화위증(然後在把經病細分爲經證和危證), 장병세분위초경증화위증(臟病細分爲稍經證和危證). 진관경병출현어지체(盡管經病出現於肢體), 이장병출현정신이상(而臟病出現精神異常), 단시경병여장병균유경증화위증(但是經病與臟病均有經證和危證). 저일주장시흔유지이성적. 대중풍적치료(對中風的治療), 이연대체상견지료금원이전적치료방법. 기용신한혹신온거풍화담(旣用辛寒或辛溫去風化痰), 혹용신온발한(惑用辛溫發汗), 혹용고한공리등(或用苦寒攻裏等). 장개빈지출상술방법대원기쇠약적중풍부적합사용(張介賓指出上述方法對元氣衰弱的中風不適合使用), 차장수신지출차시거풍치법실제상부적합내용풍이적합어외풍적치료(且張壽신指出此時去風治法實際上不適合內風而適合於外風的治療). 장개빈인위비풍적원인시진양여진음지허이불시풍담(張介賓認爲非風的原因是眞陽與眞陰之虛而不是風痰), 진관시급성기(盡管是急性期), 여과몰유담증(如果沒有痰證), 타견결반대사용거담지법(他堅決反對使用祛痰之法). 재중풍치료상(在中風治療上), 장개빈인위한다(張介賓認爲汗多), 소변소(小便少), 시진액부족소치(是津液不足所致), 소이수유열증역불요사용삼리지법, 병지출유뇨증시신허소치적위증(幷指出遺尿症是腎虛所致的危證), 종이진일보강조료진액적중요성(從而進一步强調了津液的重要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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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병(痙病)의 병인병기(病因病機)에 대(對)한 문헌적(文獻的) 고찰(考察) (The Thought of Etiology and Pathogenesis of Convulsion Disease)

  • 류호룡;황치원
    • 혜화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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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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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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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Through the thought of etiology and pathogenesis of convulsion disease in past document, we concluded as follow. 1. Convusion disease brings about some symptoms such as myotonia, neck stiffness, myospasm of four limbs, and in the ancient times it was called in Gye-Jong, Chu-Pung(抽風), Chi. 2. Etiologies of convulsion disease are external invasion of Pung-Han-Seub(風寒濕) and Ybul-Sa(熱邪), mistreatment, great loss of blood, deficiency of Gi-Hyul(氣血), stagnation of phlegm and blood. 3. There are four pathologic cases which arise convulsion disease. They are muscular denutrition from meridian stagnation by external invasion, muscular denutrition of heat injury, stagnation of phlegm and thrombus in meridian, muscular denutrition with deficiency of Gi-Hyul(氣血). 4. The treatment methods of convulsion disease are divided into three. If caused by external invasion, the methods are San-Han-Hae-Gi(散寒解肌), Hwa-Yung-Jo-Joong(和營調中). If caused by deficiency of Gi-Hyul(氣血), the method is Bo-Gi-Ik-Hyul(補氣益血). If caused by stagnation of phlegm and blood, the methods are Hwal-Hyul-So-Eo(活血消瘀), Do-Dam-Gun-Bi(導痰健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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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리거울의 수입과 공예품의 특징 (A Study on Glass Mirror Trade and its Characteristics of Craft after Joseon Dynasty)

  • 박진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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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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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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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유리거울을 서양경(西洋鏡), 양경(洋鏡), 파리경(玻璃鏡), 파려경(玻瓈鏡), 석경(石鏡)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고, 이를 경험하고 느꼈던 당시의 상황과 교역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이를 통해 17세기 이후 청·러시아와의 교역을 중심으로 유리거울이 수입되었고, 조선 후기에 들어와 수입금지 품목에 포함되는 등 18세기에 들어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신문물로 확인되었다. 19세기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품으로 더 크게 확대되었고, 특히 일본과의 교역이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18~19세기의 유리거울은 개인이 용모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용도에서 벗어나 상업적인 용도로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당시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에 관한 시각적 충격과 경험들을 글로 남겼고, 유리거울에 대한 유용함은 조선의 소비 욕구로 이어져 유리거울의 수입을 자극하였다. 이로 인해 18세기 이후 유리거울은 조선의 청동거울을 빠르게 대체하였고 유리거울을 이용한 새로운 공예품들이 제작 및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실내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으로 일체식 유리경갑(一體式 琉璃鏡匣)을 개발해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빗접과 함께 이용해 편리하였다. 당시 경갑의 인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를 비롯해 조선시대 풍속화에서도 잘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기형으로 볼 수 있는 경대(鏡臺)도 조선에서 많이 제작했는데 서랍 개수와 크기, 상자 형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한 여러 형태의 경대를 살필 수 있다. 또한 휴대용의 작은 면경도 조선만의 미감으로 표현한 길상 문양, 장식 기법을 통해 품격 있는 공예품들로 제작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에서도 유리거울을 수입했지만 19세기 말 이후에는 일본식의 공예품들이 성행하였다. 일본 명치~대정시대에 유행했던 유리경대가 수입되었고 대형의 유리거울을 이용한 공예품들이 사용되었다. 이른 시기부터 있었던 경병의 경우 응접실처럼 큰 공간에 진설하거나 연회를 위해 중국·일본으로부터 수입했으며, 서양식으로 거울을 벽에 걸거나 부착해 공간의 밝기를 조절하고 외부의 풍경을 들여와 실내를 장식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