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明治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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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견문기(Ⅲ)

  • 이종수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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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통권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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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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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명치유신 전 수백년 동안 쇄국정책을 펴온 일본. 그러나 양학에 눈을 뜬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쇄국의 문을 허물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 활용하게 되었다. 일본은 외국인 교사를 각료급 월급으로 우대하면서 일본 땅에 과학의 뿌리를 내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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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기(明治期) 일본(日本) 소학교건축(小學校建築)의 표준화 과정 및 특성에 관한 연구 - 문부성 제정 표준도 분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hange and Characteristics of Stereotyped Japanese Elementary School in Meiji Era - Focusing on the Standard Drawings by Japanese Ministry of Education -)

  • 이정우;심우갑
    • 교육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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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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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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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is study aims to examine Japanese elementary school architecture in Meiji Era, in which Japanese modern education system was settled down and the school architecture flourished by mass construction of stereotyped school buildings. It is assumed that stereotyped school architecture is due to the influence of the standard drawings made by Japanese Ministry of Education, therefore standard drawings could be a key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stereotyped school buildings in Meiji Era. In this perspective this study attempts to analyze 4 standard drawings and interpret it in relation to regulations and design guidelines for school architecture in that time. As results of this study the change and characteristics of stereotyped school architecture in Meiji Era are clarified in several categories. They are as follows : the deviation of classroom and corridor, the change of classroom size fixing to 4 kan(間) by 5 kan(間), the absolute use of north-lacing single corridor type block-plan, and the change of other space such as waiting room(控所), special instruction room, auditorium and gymnasium.

갑오개혁기 기록관리제도와 등기실체제(Registry System) (Record management system and Registry System in the Gabo Reform)

  • 이승휘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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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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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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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갑오개혁기 기록관리의 특징 중에 하나는 왕복과, 이후 문서과가 기록의 생산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업무가 종료된 기록은 기록과로 넘겨져 분류와 정리가 이루어졌다. 기존 연구들에서는 갑오개혁기의 이런 기록관리제도는 일본을 통해서 수입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본고는 명치유신 이후 정착된 일본의 새로운 기록관리제도가 당시 프로이센의 등기실체제를 받아들인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등기실체제는 현용기록을 관리하는 체제이고, 이는 기밀국가기록보존소(아카이브즈)를 통해 시민에게 기록을 공개하는 근대적 기록관리체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명치기 일본은 프로이센의 현행 기록관리체제인 등기실체제만 수용하였고, 아카이브즈의 설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갑오개혁기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갑오개혁기 일련의 법규 속의 기록관리관련 규정을 '근대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갑오개혁기의 기록관련 법규는, 기록에 대한 시민의 권리, 즉 기록의 공개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근대적 기록법규'는 아니었다. 그러나 갑오개혁기 기록관리제도가 우리나라의 기록관리제 도사에 큰 의미를 주는 것이 있으니, 기록의 가치와 기구와 명칭이 기록의 라이프사이클과 명실상부하다는 점이다. 현용기록을 관리하는 기구가 문서과였고, 업무가 끝난 기록을 분류 정리하여 편철하는 기구가 기록과였다. "현용기록=문서=문서과, 비현용기록=기록=기록과"의 개념은 이후 계승되지 못하고, 오늘날에도 현용기록이나 비현용기록이나 기록으로 사용하고 있고, 관리기구의 명칭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견문기(Ⅷ)

  • 이종수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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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6호통권3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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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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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일본의 높은 과학기술수준은 명치유신(1868년) 이후 배출된 많은 지도자들의 열정과 공헌에 따른 것이다. 9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원자력산업회의 회장으로 활약한 아리자와 히로미 박사는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기술계 지도자였다. 그의 후계자인 무카이보 다카시, 금속물리학자 가야 세이지, 외무부대신을 지낸 나카야마 타로 박사 등 많은 지도자들이 일본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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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견문기(ⅩI)

  • 이종수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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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0호통권3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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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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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명치 초기이후 일본은 게이오대학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지를 비롯해 이화학연구소 이사장 아리마 아키도박사 등 많은 과학계몽가들이 활약해왔다. 아리마 아키도박사는 "청소년들이 과학을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서 독창적인 인재를 길러내야 일본의 내일이 열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많은 과학계몽가들의 활약으로 일본의 세계 제2의 과학기술국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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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관리코너 - 인체 중심과 운동

  • 장의찬
    • 방재와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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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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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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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사과에도 중심(core)이 있고 지구도 지표면과 안으로 중심이 있듯이 인체에도 몸의 중심 부위가 있다. 보통 단전 부위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설명을 한다. 단전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으로 분류학 상단전은 뇌 부분, 중단전은 심장에서 명치 부분, 하단전은 배꼽 아래 부분에 있다고 한다. 단전이라고 할 때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랫배 부근을 가르키며, 기해라고도 한다. 특히 하단전은 모든 경락이 모이는 곳으로서 원기를 저장하는 곳이며 기 흐름의 요체이다. 또한 생명력을 배양하는 곳이자 복식호흡의 기본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의학적으로는 어떤 것을 신체 중심(core)이라고 이야기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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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 냉매를 이용한 냉동탑차용 핀-관 증발기의 서리성장에 따른 열교환기 성능에 관한 해석적 연구 (Theoretical Study on Heat Exchanger Performance of a Fin-tube Evaporator with Frost Growth in a $CO_2$ Refrigerator Truck)

  • 명치욱;조홍현
    • 한국지열·수열에너지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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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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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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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o analyze the cooling performance of fin-tube evaporator in the refrigerator truck using R744 according to frost growth, the analytical model of evaporator was developed under frost and non-frost conditions. The performance of fin-tube evaporator was investigated with frost thickness and indoor temperature. Besides, the performance of evaporator under frost condition was compared to that under non-frost condition. As a result, area of air passage and system performance were decreased as the frost thickness increased. The cooling capacity was reduced by 10%, 20%, 30% when the frost thickness was 0.7 mm, 1.1 mm, and 1.6 mm respectively. At these conditions, the block ratio was 31%, 48%, and 71%. In addition, the outlet quality of refrigerant was not over 1 when the frost thickness was 1.6 mm in spite of high indoor air temperature.

일본 디자인 교육의 개황과 미래의 비젼 (An Outlook of Design Education in Japan and its Vision in the Future.)

  • 김명석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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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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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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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일본의 디자인 운동은 187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제4기로 구분하는데, 그 중 제 1기를 명치시대(Meiji era)개국에서 제 1차 세계대전가지로, 제 2기를 제 2차 세계대전가지, 제 3기를 제 2차 대전 직후부터 고도경제성장기 직전인 1960년까지 그리고 제 4기를 1960년 이후로 구분한다. 일본의 디자인 교육은 이러한 시대구분 속에서 2차 대전 전에는 유럽에서 시작된 갖가지 근대디자인운동, 즉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독일공작연맹,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대전 후에는 미국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일찍이 서구문명을 도입한 일본은 독자적인 디자인교육을 표방하여 1940년도에는 대학에 디자인 학과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그 후 정부의 디자인 정책에 힘입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전 대학에서는 교육개혁의 바람이 크게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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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리거울의 수입과 공예품의 특징 (A Study on Glass Mirror Trade and its Characteristics of Craft after Joseon Dynasty)

  • 박진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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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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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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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유리거울을 서양경(西洋鏡), 양경(洋鏡), 파리경(玻璃鏡), 파려경(玻瓈鏡), 석경(石鏡)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고, 이를 경험하고 느꼈던 당시의 상황과 교역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이를 통해 17세기 이후 청·러시아와의 교역을 중심으로 유리거울이 수입되었고, 조선 후기에 들어와 수입금지 품목에 포함되는 등 18세기에 들어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신문물로 확인되었다. 19세기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품으로 더 크게 확대되었고, 특히 일본과의 교역이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18~19세기의 유리거울은 개인이 용모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용도에서 벗어나 상업적인 용도로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당시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에 관한 시각적 충격과 경험들을 글로 남겼고, 유리거울에 대한 유용함은 조선의 소비 욕구로 이어져 유리거울의 수입을 자극하였다. 이로 인해 18세기 이후 유리거울은 조선의 청동거울을 빠르게 대체하였고 유리거울을 이용한 새로운 공예품들이 제작 및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실내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으로 일체식 유리경갑(一體式 琉璃鏡匣)을 개발해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빗접과 함께 이용해 편리하였다. 당시 경갑의 인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를 비롯해 조선시대 풍속화에서도 잘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기형으로 볼 수 있는 경대(鏡臺)도 조선에서 많이 제작했는데 서랍 개수와 크기, 상자 형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한 여러 형태의 경대를 살필 수 있다. 또한 휴대용의 작은 면경도 조선만의 미감으로 표현한 길상 문양, 장식 기법을 통해 품격 있는 공예품들로 제작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에서도 유리거울을 수입했지만 19세기 말 이후에는 일본식의 공예품들이 성행하였다. 일본 명치~대정시대에 유행했던 유리경대가 수입되었고 대형의 유리거울을 이용한 공예품들이 사용되었다. 이른 시기부터 있었던 경병의 경우 응접실처럼 큰 공간에 진설하거나 연회를 위해 중국·일본으로부터 수입했으며, 서양식으로 거울을 벽에 걸거나 부착해 공간의 밝기를 조절하고 외부의 풍경을 들여와 실내를 장식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