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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orming the Wongaksa Bell[Buddhist Bell] to the Bosingak Bell[Court Bell]: An Example of the Debuddhismizat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원각사종(圓覺寺鐘)에서 보신각종(普信閣鍾)으로 -조선시대 탈불교화의 일례-

  • Nam Dongsin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Seoul National University)
  • Received : 2023.10.05
  • Accepted : 2023.11.23
  • Published : 2023.12.20

Abstract

The Bronze Bell of Wongaksa Temple, also known as the Bosingak Bell, was produced in 1468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for dedication at Wongaksa Temple in the middle of the capital Hanyang in celebration of the tenth anniversary of his accession to the throne. It is currently heavily damaged and cannot be struck. This paper focuses on the man-made damage inflicted on the Bosingak Bell and explores when, why, and by whom the bell was damaged along with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is damage. In the first section, the relevant literature is reviewed and the problems concerned, research perspective, and methodology are presented. The history of related theories is investigated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osingak Bell and Wongaksa Bell. The perspective that Bosingak Bell and Wongaksa Bell are the same is introduced. My discussion will be developed from this perspective. In the second section, the background to King Sejo's construction of Wongaksa Bell is examined. Specifically, the bells commissioned by the kings of the early Joseon era are divided into court bells (jojong) and Buddhist bells (beomjong). They total four court bells and three Buddhist bells. The former are the Jongnu Tower Bell commissioned by King Taejo, Donhwamun Gate Bell by King Taejong, Gwanghwamun Gate Bell by King Sejong, and Sajeongjeon Hall Bell by King Sejo. The latter are the bells of Yongmunsa, Heungcheonsa (or Jeongneungsa) and Wongaksa Temples, all of which were made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Sejo also made Wongaksa Bell and gave it the meaning that the monarch and the Buddha both wish to enlighten the people through the sound of the bells. In the third section, traces of the man-made damage done to Bosingak Bell are closely examined. By observing the current condition of Bosingak Bell and comparing it with the contemporaneous Heungcheongsa Bell (1462) and Bongseonsa Bell (1469), the components of Bosingak Bell that were damaged can be identified. The damaged parts are again divided into Buddhist elements and non-Buddhist elements. The former includes the reversed lotus petals on the shoulder band, four standing bodhisattvas, and the inscription of the bell composed by Choe Hang. The latter includes lists of chief supervisors (dojejo). I describe the phenomenon of deliberately damaging Buddhist elements on bells as "effacement of Buddhism," meaning Buddhist images and inscriptions are eliminated, and I note the prevailing rejection of Buddhism theory among Neo-Confucianists as its ideological root. The erasure of non-Buddhist images was probably caused by political conflicts such as Yeonsangun's purge in 1504. Since both ideological and political factors played a role in the changes made to Bosingak Bell, the damage was possibly done between the Purge of 1504 and the abdication of Yeonsangun in 1506. Chapter four traces the transformation of the Buddhist bell of Wongaksa Temple into the Bosingak court bell. Finally completed in 1468, the Wongaksa Bell only served its role as a Buddhist bell at related services for a relatively brief period of 36 years (until 1504). Wongaksa Temple was closed down and the bell lost its Buddhist function. In 1536, it was moved from Wongaksa Temple to Namdaemun Gate, where it remained silent for the next 90 years until it was struck again in November 1594. However, after the destruction of the Jongnu Bell in a fir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1592-1598), the Buddhist bell from Wongaksa Temple became a court bell. The Wongaksa Temple bell was relocated to Jongnu Tower in 1619, traveling through Myeongdong Pass. From then on, as the official Jongnu Bell (later renamed Bosingak Bell), it was regularly rung at dawn and dusk every day for nearly 300 years until 1908, when Japanese authorities halted the ritual. The transformation of the Wongaksa Bell (a Buddhist bell) to Bosingak Bell (a court bell) means that the voice of the Buddha was changed to the voice of the king. The concept of "effacement of Buddhism," evident in the transformation of Wongaksa Bell to Bosingak Bell, was practiced widely on almost every manifestation of Buddhism throughout the Joseon period. In short, the damage evident in Bosingak Bell underscores the debuddhismization in Korean society during the Joseon Dynasty.

보신각종은 호불군주 세조가 즉위 10년을 맞이하여 한양 도성 한복판에 원각사를 건립하면서 그곳에 봉안하고자 1468년에 조성한 범종(梵鐘)이었다. 현재 보신각종은 타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손상되었는데, 그것은 원각사종에서 보신각종으로의 역사적 변천을 잘 보여준다. 필자는 본고에서 보신각종에 가해진 인위적 훼손에 주목하여, 누가, 언제, 왜 훼손하였으며, 그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먼저 제1장에서는 관련되는 선행 연구성과를 검토하여 필자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점 및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특히 가장 주된 논점인 보신각종과 원각사종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학설사를 검토하여, '보신각종=원각사종'의 관점에서 필자가 논의를 전개함을 밝혔다. 이어서 제2장에서는 세조가 원각사종을 조성하게 된 배경을 검토하였다. 구체적으로 조선 초에 왕명으로 조성한 종들을 조종(朝鍾)과 범종(梵鐘)으로 나눈 다음, 조종 4구-태조의 종루종, 태종의 돈화문종, 세종의 광화문종, 세조의 사정전종-와, 범종 3구-세조의 용문사종, 흥천사종(또는 정릉사종) 및 원각사종-를 만든 시기순으로 정리하였다. 요컨대, 세조는 만년에 원각사종을 조성하면서, 거기에 한 마음으로 임금과 부처가 소리로써 백성을 교화하겠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보신각종에 보이는 인위적 훼손의 흔적을 면밀하게 고찰하였다. 먼저 보신 각종의 현상을 관찰한 다음, 이를 보신각종을 전후하여 조성한 흥천사종(1462) 및 봉선사종(1469)과 비교하여, 범종의 구성 요소 가운데 무엇이 얼마나 훼손되었는가를 추적하였다. 훼손된 구성 요소는 다시 불교적 요소-견대(肩帶)의 복련(伏蓮), 보살입상 4구, 최항(崔恒)이 지은 종명(鐘銘)-와, 비(非)불교적 요소-주종 관계자 가운데 도제조(都提調) 명단-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원각사종에서 불교 문자와 상징이 지워졌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불교지우기'라 명명하고 그 이념적 요인으로 동시대 유자(儒者)들의 맹렬한 벽불론(闢佛論)을 주목하였으며, 후자는 정치적 요인으로 연산군의 갑자사화를 지목하였다. 그리고 보신각종의 인위적 훼손에는 이념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그 시기를 갑자사화(1504년)부터 연산군 퇴위까지로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범종으로서의 원각사종이 조종으로서의 보신각종으로 바뀌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변신의 의미를 종소리의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어 음미하였다. 1468년 최종적으로 완성된 원각사종은 1504년까지 36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예불(禮佛)을 위한 범종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504년 원각사가 폐사되면서 그 역할도 끝났다. 1536년에는 원각사지에서 남대문으로 옮겨졌으며, 1594년 11월 다시 타종할 때까지 전후 90년 동안 침묵 속에 방치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의 병화로 종루종이 파괴되면서 원각사종은 조종으로 재탄생하였으며, 명동 고개를 거쳐 1619년 종루로 이전되었다. 이때부터 명실상부한 종루종[보신각종]으로서 1908년 일제가 타종을 중단시킬 때까지 300년 가까이 매일 새벽[파루(罷漏)]과 저녁[인정(人定)]마다 규칙적으로 타종되었다. 원각사종[범종]에서 보신각종[조종]으로의 변신은, 종소리가 상징하는 바가 부처의 소리에서 임금의 소리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원각사종이 보신각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불교지우기'는, 조선 전시기에 걸쳐 불교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요컨대, 보신각종에서 확인되는 불교지우기야말로 조선시대 한국 사회의 탈불교화를 역설한다 하겠다.

Keywords

Acknowledgement

이 연구는 2022년도 서울대학교 미래기초학문분야 기반조성사업으로 지원되는 연구비에 의하여 수행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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