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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Ginseng Digger's Digging Custom and Its Special Servitude of Korean Civil Act

산삼 심마니 채삼 관습과 민법상 특수지역권

  • 배병일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Received : 2022.10.23
  • Accepted : 2022.12.15
  • Published : 2023.03.02

Abstract

This study looks at the origin of a wild-ginseng, Korean ginseng, and traces the origin of associated wild-ginseng digging customs back to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ese historical customs helped Korea gain control over its wild ginseng resources following Japanese colonization acts, Korea's present-day forest laws, and Korean Civil Law. Prior to Japanese colonial rule in Korea (1910-1945), ginseng digging was a common custom, but Imperial Japan distorted Korea's own legal principles of the public rights of wild-ginseng digging during this colonial period. Distorted legal principles concerning digging customs continued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and were maintained until the enforcement of the Korean Civil Law in 1960, when legal principles of the right of common were changed to special servitude. The origin of the right of common can be found in the Sichojang of the Joseon Dynasty. The Sichojang, a place where local residents jointly collected firewood and fed livestock, was the minimum right to life and interest at the time. Since the right of common was the right to life, Imperial Japan attempted to abolish it, but it was never successful. In addition, distorted legal principles have been maintained in present-day forestry-related laws and regulations. Over 75 years since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in 1945, it is imperative to break away from the distorted legal principles and acknowledge that digging custom rights have changed from common customs to a special servitude under Korean Civil Law. Hence, an organization of wild-ginseng diggers is an unincorporated association, and their wild-ginseng digging customs can be constituted as a special servitude. Hence, their practices should be considered valid under customary law. Through this, it will be possible to clarify the legal nature and grounds for ginseng-related wild-ginseng digging activities, as well as the civil responsibility for the activities of wild-ginseng diggers.

우리나라를 인삼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한 고려인삼의 기원은 산삼이다. 그 산삼의 채삼 관습의 근거를 조선왕조실록, 일제 강점기 법령, 우리나라 산림법령과 민법 등에서 찾고자 하였다.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심마니 채삼 관습은 입회관행으로 존재하였지만, 1910년 일제는 강점기 동안 우리나라 고유한 입회권 법리를 왜곡하였다. 일제가 왜곡한 입회권 법리는 해방 이후에 계속돼 1960년 민법 시행 때까지 유지되었다. 민법 시행 이후 입회권 법리는 특수지역권으로 바뀌었다. 입회권의 연원은 조선 시대의 시초장으로 난방용 땔감이나 사료용 풀을 채취할 수 있는 시초장은 조선 시대 그 당시 지역주민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권이자 권익이었다. 생존권으로서의 입회권이었기 때문에 일제가 이를 폐지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일제가 왜곡한 입회권 법리는 산림관련법령 등에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1945년 광복이 된 지 70년이 지난 이제는 일제의 심마니 채삼 관습에 관한 왜곡된 법리에서 탈피하여야 하고, 채삼 관행의 근거가 입회관행에서 민법상 특수지역권으로 변화된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에 심마니 단체는 법인 아닌 사단이고, 심마니의 채삼 관행은 민법상 특수지역권으로 법리 구성할 수 있고, 심마니의 산삼 채삼 행위는 관습법적으로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인삼과 관련된 산삼 채취행위에 관한 법적 성질과 그 근거를 명확히 할 수 있고, 심마니 채삼 행위의 민사법적 책임소재도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s

Acknowledgement

이 논문은 2021년 사단법인 고려인삼학회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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