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differences in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and system of Jobok by comparing the three relics Ui, Sang, and Daedae, which comprised Jeon-Sik's Jobok, with the data in the literature and five excavated Jobok relics, Sin Kyung-yu, Kwon-Woo, Hwasan-Gun, Milchang-Gun, and Lee Ik-jeong, from the 17th and 18th centuries. Jeon-Sik'sJobok was designated as a Gyeongbuk tangible cultural heritage, Sangju JeonSik Jobok and Crafts, in 2021. The three components of Jeon-Sik's Jobok are valuable as historical data since they are the oldest relics confirming colors. Regrettably, the edging fabric of the Ui made of red twill was mostly lost, with only traces remaining. Based on records, it was presumed that the edging fabric was black. It was confirmed that white decorative lines were yet to be used. In Jeon Sik's Sang, only the three front widths and one rear width remain, but the shape of the four rear widths can be inferred, and the creases were held only at the waist. Eighteenth-century Sang was connected at intervals at the end of the waist. Seventeenth-century Sang was connected with a slight overlapping of the rear Sang below the front Sang; therefore, it is assumed that Jeon Sik's Sang was also connected by overlapping the rear by more or less than 5cm below the front. After Hwasan-gun, the Sang was first made using black lines, then white lines were inserted, and, finally, it was pleated from the waist to the hem. The Daedae made the Yo and the Sin by folding the corners to form a 冂 shape with a single long band. The white Ju(紬) and the green yumunsa were used for the Daedae and the edges. This matches the color of the Daedae seen in the Jobok portraits of Milchang-gun, Lee Ik-jeong, and Jeong Hwi-ryang from the 18th century. In the 17th century, the Daedae made the Yo and the Sin by folding a long band like the Daedae of Jeon-Sik. After the 18th century, the Yo and the Sin were made separately and connected. To tie the Daedae to the waist, thin straps were attached at both ends. The relics of Jeon-Sik can be evaluated as reflecting the 17th-century Jobok system in terms of color and shape. Furthermore, it can be said that they are important historical data complementing the insufficient or inaccurate records of the Gukjoolyeui-seolye and Gyeongguk-daejeon.
이 연구는 2021년 경북 유형문화재 <상주 전식 조복 및 공예품 일괄>로 지정된 유물 중 전식(全湜, 1563~1642)의 조복 구성물인 3점(의·상·대대)의 유물을 17~18세기 5건(신경유, 권우, 화산군 이연, 밀창군 이직, 이익정)의 출토 조복 구성물과 문헌자료를 비교하면서 유물의 조형적 특징과 제도와의 차이점을 밝히고자 함에 목적을 두었다. 전식의 조복 구성물 3점은 색상을 확인할 수 있는 최고(最古)의 조복 유물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붉은 색 능직물로 제작한 상의(上衣)는 아쉽게도 가선이 소실된 상태이지만 흔적이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 기록이나 초상화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흑색 가선[黑緣]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흑선과 바탕 옷감 사이에 끼우는 흰 장식선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하상(下裳)은 전3폭 후4폭 중 전3폭과 후1폭만 남은 상태이다. 그러나 후4폭의 형태를 유추할 수는 있었다. 주름 흔적으로 볼 때 허리 부분에만 주름을 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18세기의 밀창군, 이익정 묘 조복 상은 허리말기에 간격을 두고 연결되어 있으나 신경유, 권우, 화산군 이연 묘 조복 상 등 17세기 조복 상은 전상 아래로 후상이 겹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전식의 조복 상 역시 전상 아래에 5cm 전후로 후상을 겹쳐 연결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화산군 이연(李渷, 1647~1702) 이후 흑선과 바탕과의 사이에 백색 장식선을 끼운 뒤 허리부분에서 밑단까지 주름을 잡은 형태였다. 대대는(大帶)는 '경(冂)' 모양인데 소색(素色)의 주(紬)에 녹색 문사(紋紗) 선을 둘러 긴 띠를 만든 후 모서리를 접어 요(腰)와 신(紳)을 만들었다. 18세기 밀창군과 이익정, 정휘량의 조복본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대대의 색상과 일치하였다. 18세기 초 화산군 이연 묘 대대 이후는 요와 신 부분을 따로 재단하여 이은 형태였으나 전식의 대대를 포함한 17세기 신경유 묘, 권우 묘의 대대는 긴 띠를 접어 요와 신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 매기 위해 양 끝에 가는 끈을 달았다. 전식의 조복 유물은 색상이나 형태면에서 17세기 조복제도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국조오례의 서례』·『경국대전』조복제도의간략하거나부정확한기록을보완해주는사료로서의중요한가치를지니고있다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