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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여성 세계: <처녀자살소동>과 <마리 앙투아네트>를 중심으로

A Study on Women's World in Sofia Coppola's Early Films: Focused on and

  • 윤수인 (호서대학교 영상미디어전공)
  • 투고 : 2021.05.12
  • 심사 : 2021.06.08
  • 발행 : 2021.07.28

초록

본 연구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초기 연출 작품인 <처녀자살소동>과 <마리 앙투아네트>를 분석하여 그녀가 말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프레임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이어지는 작품인 <블링링>과 <매혹당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살펴본다. 코폴라 감독이 작품에서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영상표현방법 분석을 통해 그녀의 메시지를 파악해 본다. <처녀자살소동>의 불확실한 결론을 정리하고, 평가가 엇갈리며 논란이 잦았던 작품인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재평가를 유도하고자 한다. 비교 분석을 통해 두 작품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일관된 시각이었으며, 오히려 그 세계관이 발전하는 과정이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 두 작품에 의해 내려진 여성세계에 대한 감독의 결론이 그녀의 다음 작품에서 또 다른 논란의 소재가 되는 내용으로 연결되기에, 이 작품들에 대한 분석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그녀의 다른 작품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The study analyzed Sofia Coppola's early films and to study her views about social frames on women. Moreover, the study shows the connection to Coppola's worldview on women in her other films; and . The study also analyzed the cinematography in her films as Coppola did not convey the messages directly. In addition, the study pursues a re-evaluation on , which was a controversial film among critics, and unravels the uncertain open-ending in . Throughout the comparative analysis, the study reveals that the two films have consistent views that do not differ from each other and that it was the progress to the growth of Coppola's worldview. The conclusion of these two films connects to another controversial content in Coppola's next film. Hence, one expects the analysis of these films to provide a better understanding of Sofia Coppola's other films.

키워드

I. 서론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데뷔 이래 여성의 세계를 바라보는 그녀만의 시각을 꾸준히 스크린에 나타냈다. 그녀는 1999년 첫 장편 <처녀자살소동>에서 보여준 개성 있는 연출로 데뷔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다음 작품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유명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감독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여성감독으로 자리를 잡는다[1]. 하지만 3번째 작품 2007년 <마리 앙투아네트>는 상영 초기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칸영화제 반응부터 엇갈렸으며 이 불협화음은 앞으로 맞이할 많은 극과 극의 반응을 예고했다[2].

본 연구는 평가가 엇갈리는 이 두 작품 <처녀자살소동>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일관된 시각이었으며, 오히려 그 세계관이 발전하는 과정이었음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두 작품에 의해 내려진 감독의 결론이 그녀의 다음 작품에서 또 다른 논란의 소재가 되는 내용으로 연결되기에 이 작품들에 대한 분석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코폴라 감독은 2013년 작품 <블링링>에서 여성 비하적 표현의 혹평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만의 독특한 여성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강조한바 있는데[3] 그 이유를 이 두 작품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녀가 여성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후 작품인 <블링링>과 <매혹당한 사람들>에 잘 나타나 있다. 본연구는 <처녀들의 자살소동>과 <마리 앙투아네트> 두 작품의 분석을 통해 코폴라 감독의 세계관 형성 과정의 배경을 알아보고, 이후 작품인 <블링링>과 <매혹당한 사람들>로 이어지는 그녀의 여성 세계에 대한 메시지의 흐름을 살펴본다. 그리고 각 작품에서 감독의 주장과 주제의 전달 과정을 영상표현방법 분석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코폴라 감독의 작품 중 <마리 앙투아네트>와 <블링링>에 대한 비난은 상징적인 의미 전달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메시지 전달 과정에서 감독의 해석을 찾아보는 장면분석이 본 연구가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처녀자살소동>의 원작 소설인 제프리 나마유제스의 의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영화에서 표현되었는지에 주목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영상표현 반복에 의한 메시지 전달 과정을 살펴본다.

코폴라 감독의 작품 중, 여성에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등장하는 배우가 감독의 페르소나로도 알려진 커스틴 던스트이다[4]. 실제로 그녀가 출연한 <처녀자살소동>, <마리 앙투아네트>, <매혹당한 사람들>은코폴라 감독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대표적인 작품들이고, 본 연구에서도 주목하는 작품이다. 아래 두 그림은 두 영화의 오프닝 장면이다. 같은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 카메라를 바라본다. 두 작품 모두 관객과의 소통을 시작부터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론에서는 두 작품을 영상표현방법 중심으로 분석하고, 후반부에서는 이 후 작품과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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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처녀자살소동> 첫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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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마리 앙투아네트> 첫 장면

Ⅱ. <처녀자살소동>

영화 <처녀자살소동>의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평범한 마을에 사는 다섯 자매들이 차례로 자살하고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 소년들이 자매들의 자살 이유를 찾는다. 자매들이 자살한 이유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전문가, 미디어, 이웃들의 여러 가지 추측들이 제시되지만 관객들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 스토리상의 전개이지 실제로는 그녀들의 자살 이유에 대한 많은 단서들이 제공되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감독은 자신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씩 드러내며 그 표현을 강조하고 있고, 그것들은 다양한 영상표현 방법에 의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스토리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대화만을 가지고는 자매들의 자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에서의 영상 표현 방법과 테마 음악 사용을 살펴보면 제기된 몇 가지 추측들 가운데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자매들의 자살 이유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코폴라 감독의 냉소적이고 역설적인 표현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아래에서는 코폴라 감독이 전달하는 내용들을 살펴본다.

1. 여성을 보는 시각

영화는 자살한 자매들의 이웃 남학생들의 관찰과 추측을 따라간다. 이 소년들이 자신들이 흠모하는 이웃집 자매들을 관찰하며 그들이 자살한 이유를 추적해 나간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 전개인 것이다. 자신들의 첫사랑인 자매를 바라보던 과거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이들은 자매들을 사랑하고 동정하며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고 소통하고자 했다. 엔딩에서는 이 자매들을 탈출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즉 이 소년들이 자매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매들에게 영화적 몰입이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긍정적이고 순수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 방법은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코폴라 감독은 이 소년들의 시선과 영화 초반부터 등장하는 남성들의 관음적 시선들과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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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영화 초반 남성의시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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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영화 초반 남성의 시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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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영화초반 남성의 시선 3

이들 남성의 시각이 향하는 곳은 클로즈업과 슬로우모션, 음악에 의해 구체화되고 강조된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을 바라볼 때는 실제의 모습이 아닌 판타지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한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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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남성의 시점쇼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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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남성의 시점쇼트 2

순수하게 보일 수도 있는 소년들의 시선도 결국은 다른 남성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매들의 고통을 이해하려하고 그녀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관음적이고 일방적인 행태였다. 심지어 일반 멜로드라마 전개에서 보이는 소년들 중 누가, 자매들 중 누구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매칭 행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중반 주인공 럭스는 학교에서 인기 많은 남학생과 교제 중 문제가 생기고, 한순간에 그 마을의 타락한 여학생 취급을 받으며 부모로부터 집에 격리된다. 럭스가 실연 후 마을 남성들과 연애하는 모습을 소년들이 망원경을 돌려가며 지켜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소년들이 럭스에게 느끼는 사랑이 정상적이었다면 당연히 표현 되어야 할 질투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장면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적 의미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코폴라 감독의 시선이 느껴지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이해하려 하는 어린 소년들에게 조차 럭스는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이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코폴라 감독이 이 소년들이 자매를 보는 시각을 크게 강조한 장면이 영화 중반에 등장한다. 밝고 즐거운 음악과 함께 소년들이 자매들을 관음하고 스토킹을 하며 서로의 판타지를 공유하는 장면이다. 심지어 자살한 세실리아의 일기를 읽는 장면의 아름다운 묘사는 잔혹할 정도로 냉소적으로 보인다. 소년들 중 한 명의 내레이션에 ‘자매에 대한 가능한 모든 것을 수집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자매를 이해하려는 순수한 소년의 마음이 아니다. 스토킹이자 이차 가해에 해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행위는 사건 해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질 않는다. 소녀들에게 도움을 주지도 않았고 자살 원인을 밝히지도 못한다. 비교적 원작 소설을 비슷하게 따라간 영화이지만 이 부분은 표현 방법이 원작 소설과 구별된다. 소설의 이 장면은 낭만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5]. 코폴라 감독이 강조하기 위해 각색을 보탠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이 장면에서 소년들은 구속된 자매들과 자유롭게 세계 여행을 상상하고, 이미 자살해서 세상을 떠난 막내 세실리아까지 부활 시켜 그들의 일방적인 판타지를 완성시킨다. 소년들이 자매들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는 상상을 공유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두 했다’라며 행복해하는 이 낭만적인씬은 곱씹어 볼수록 섬뜩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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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소년들이 자매들의 일기와 상상을 공유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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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자매들과 세계여행을 상상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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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자살한 막내 세실리아를 상상에서 부활시킨 장면

영화 후반, 소년들 중 한 명은 자매들의 집에서 친구들에게 흥분한 상태로 말한다. ‘자매들은 날 미치게 만든다. 자매들 중 한 명을 느낄 수 있다면...’ 친구들은 이 말을 웃으며 듣고 있다. 목을 맨 자매 중 한 명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자매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도움을 주려 했던 이 소년들의 실체를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심지어 특정 대상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자매들 중 한 명이면 누구라도 괜찮다는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이들 소년은 단 한 번도 특정 누가 특정 누구를 좋아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어린 소년들에게 이웃 소녀들이 어떻게 보인 것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이 보는 것은 동반 자살한 자매들의 시신이다.

결국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해하려한다는 명목 아래 자매들을 피관찰자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순수해 보이는 소년들의 모습도 여성을 보는 관음이었고, 이것은 다음에서 설명할 사회적 시선으로 연결된다. 자살의 원인을 알고자 하는 것조차 관음형태로 보이는 사회에서 여성의 삶 선택지는 매우 국한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2. 사회 인식 문제로 확장

영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소년들의 시선은 사회적 인식으로 확장된다. 이성을 향한 일방적인 상상의 행태는 남성, 여성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가진 상태라면 같은 상상의 행태가 각각에게 다른 사회적 인식과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주장일 수 있다.

영화 초반, 소년 한 명(도미니크)이 실연 후 자살을 시도한다. 그 행위는 자살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위가 낮고, 실제로 그 소년은 경미한 부상조차 입지 않는다. 스토리 전개상 큰 의미가 없는 이 소년의 자살 시도는, 영화 도입부에서 다섯 자매 중 막내인 13세 소녀 세실리아의 욕실 자살 시도, 그리고 영화 중반 럭스가트립에게 버림받고 겪는 고통과 크게 비교된다. 이후 전개되는 내용에서도 남성의 실연은 개인의 고통에서 그치지만 여성의 실연은 여성이 그 실연의 상처 극복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적 시선으로 확장된다는 이 영화의 주장을 알 수 있다.

영화 중반에 갑작스러운 인터뷰 장면들이 나온다. 영상 형식 또한 실제 방송 인터뷰처럼 처리한 장면들인데 인터뷰에 답변하는 사람들만 등장하고 인터뷰어의 존재는 알 수가 없다. 영화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이 부분은 원작소설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인터뷰어는 소년들이 럭스에 대한 학우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다. 그런데 자매가 자살한 이유를 찾는 인터뷰 내용들이 모두 성적인 내용들이다. 럭스의 신체와 성행위에 대한 경험을 말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인터뷰 목적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애초에 럭스와 관계를 맺은 남학생들만 증언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 장면들은 마치 뉴스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처리되어 이들의 개인적이고 질 낮은 대화내용이 객관화되는 양상으로 보인다. 소년들은 나중에 럭스의 연인이었던 트립까지 찾아간다. 트립은 당시 알코올중독 갱생원에서 치료 중이었다. 트립은 럭스에 대한 당시의 기억을 ‘누구도 못 한사랑’ 이라고 말한다. 자매들의 엄청난 비극을 야기한 장본인에게 럭스에 대한 기억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트립의 이야기를 듣는 대상 역시 원작 소설에서만 확인되는 내용이다[6]. 소년들이 인터뷰어인 것을 영화에서 생략한 것은 이 자매들에 대한 대상화 및 객관화를 역설적이고 냉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코폴라 감독의 영상 장치로 보인다. 실제로 이 자매들의 사건을 사회적으로 객관화시키는 미디어의 역할이 영화 진행 도중 계속해서 반복된다.

자매들의 외출금지 원인이 되는 파티 준비 장면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대비하여 보여준 프레임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영화 중반, 자매들이 단체로 파티에 참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코폴라 감독은 영상 프레임을 이용해서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표현을 강조하고 있다. 자매들의 파티 참석은 남학생 대표인 트립과 자매들의 아버지에 의해 결정된다. 밀실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이두 남성이 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림 11]과 같이 극도로 강조된 프레임 안에서의 아버지와 트립의 대화 장면이 표현된다. 대화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 대화 이후 네 자매의 파티 참석이 결정되는데, 여기서 자매들의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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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자매 아버지와 트립의 대화 장면

파티를 기다리는 자매들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림 12]와 같이 표현된다. 자매들의 파티 참여가 결정되고, 자매 중 한 명이 파트너에 대한 질문을 한다. 언니가 자신들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남학생들이 추첨한다고 말한다. 자매들은 모두 같은 모양의 드레스를 입고 남학생들을 만난다. 럭스의 속옷에는 파트너 남학생인 ‘트립’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파티를 기다리며 드레스를 입은 이 자매들의 모습은 그림과 같이 프레임 안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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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남학생들을 기다리는 자매들의 모습

3. 여성 문제 인식에 대한 사회적 무기력

영화 초반, 자살을 시도한 막내 세실리아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넌 나쁜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만큼 많은 나이가 아니다” “당신은 13세 소녀가 돼보지 않았다”

세실리아의 답변이다.

소녀들의 자살 동기를 알 수 없다는 이 영화는 놀랍게도 영화 초반 이미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살할 만큼 나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남성 의사에게 이제 막 여성의 길에 들어선 소녀의 답변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13세 여성은 이미 자살할 만큼 나쁜 인생일 수 있으며, 당신을 비롯한 세상은 그것을 모른다는 세실리아의 답변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문가인 의사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이어서 정신분석의사로 보이는 박사가 세실리아를 진단한다. 그는 세실리아 자살 시도의 이유는 자살 자체가 목적이 아닌 구원요청이라고 말한다. 즉 자살이 진정한 목적이 아니라 도움을 구한 신호라는 의미의 분석을 한다. 이는 바로 뒤에 세실리아의 더욱 끔찍한 자살 시도가 이어지면서 틀린 분석이라는 것을 관객은 알게 된다. 이처럼 영화 초반에 의사나 전문가는 세실리아의 자살 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 영화는 나머지 4자매가 모두 자살하며 오히려 의문이 증폭되면서 끝이 난다. 계속 등장하는 방송 미디어를 통해 심리학자들 또한 자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다. 스트레스, 불안, 욕구불만이 자살 이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세실리아의 그런 모습들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세실리아가 유일하게 보여준 것은 성녀 이미지의 카드뿐이다. (사회적 인식과도 관련이 있는 성녀 이미지에 대해서는 4.2에서 다시 이야기 한다.)

영화에서는 생략된 원작 소설에는 한 여성 상담사가 등장한다. 자매가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상담 후 자매들의 밝아진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그 상담사는 학위나 자격증도 없는 인물이었고 나중에는 추적이 불가능한 인물로 등장한다. 사회적 무기력을 보충 설명해주는 설정인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현실에 대해 전문가도, 미디어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해결은 불구하고 오히려 기존 사회 인식의 강화로서의 역할이 커 보인다. 결론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코폴라 감독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이 연구에서 중요한 이유는 제기된 문제에 대한 극복과 해결의 의지를 이 후 작품에서 하나씩 풀어가기 때문이다.

4. 상징의 사용과 의미 (영상표현방법과 테마음악의 활용)

4.1 나무

영화 초반부터 자주 등장하는 나무는 소녀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이 나무에는 벌목 예정이라는 붉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이다. 현재는 살아있지만 곧 잘리게 될 소녀들의 현실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뒷부분에 자매들은 벌목을 막기 위해나 무를 감싼다. 나무를 제거하려는 남성 작업자들에게 우리의 나무라면서 막는 자매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무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 안 자르면 남는 나무는 없을 것이다”

남성 작업자들의 대사이다. 나무는 이미 죽었고, 전염이 되기 때문에 벌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 확산이라는 전염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들의 부모를 자매들 자살의 원인으로 볼 수도 있는 시각에 대한 답변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이 이어서 나온다. 부모들 역시 자매들을 옹호하며 나무를 보호한다. 결국 부모 역시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라는 감독의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상징적인 장면의 마지막은 미디어와의 연결이다. 4명의 자매들이 필사적으로 막던 벌목이 미디어 보도 직후 바로 행해진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벌목 예정의 붉은 딱지가 붙은 4그루의 나무가 보인다.(이 장면은 원작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기존 사회의 입장에서는 벌목꾼들이 말했던 감염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나무를 감염시키기 전에 베어져야 할 나무들인 것이다. 이 전염은 결국 엔딩에서 마을 전체를 감염시키는 상징(녹조와 악취)으로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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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벌목을 취재하는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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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4그루의 벌목 예정 나무

4.2 푸른색과 성녀 이미지

코폴라 감독은 작품 전체에서 푸른색 이미지와 테마음악의 사용으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세실리아의 자살 씬이다. 푸른 배경에 피 묻은 성녀 카드가 보이고, 욕조에 누워있는 세실리아의 모습은 성녀 이미지를 떠올리게끔 연출됐다. 성녀 이미지는 이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여성의 이분법적 분류에 해당하는 비유라고 할 수 있으며[7] 세실리아의 자살 배경이 될 수 있다. 13세 세실리아는 이제 시작되는 여성의 인생인 성녀 이미지에 둘러싸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성녀 이미지인데 이것은 나중에 이와 반대의 사회적 이미지를 쌓아가는 럭스의 모습과 대비되며 주제를 강조하는데 사용된다. 이런 성녀 이미지는 자매들의 주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성녀 이미지와 나무는 이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보이는 장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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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성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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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세실리아 자살 시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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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자매들 방 내부

실제로 세실리아 나무 벌목 이후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어항이 등장한다. 물고기가 없는 빈 어항을 보여주는데 사용된 컬러가 푸른색이고 테마음악이 함께 등장한다. 푸른 배경과 테마음악의 사용은 이 영화의 테마를 전달하는 장면이다. 아래 그림은 소녀들이 모두 자살한 후 보이는 빈집의 모습이다. 비슷한 느낌의 이두 이미지에서 영화의 테마는 결국 여성이 죽어있는 세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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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빈 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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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가족이 떠난 집

테마송과 함께 푸른 배경에서 트립에게 배신당한 럭스의 모습이다. 럭스는 트립과 성관계 후 운동장에 남겨진 채 귀가를 못하게 된다. 이 사건은 럭스뿐 아니라 나머지 자매들의 외출금지 원인이 되는데, 영화의 스토리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영화의 메시지를 추측하게 만드는 해석의 단초 또한 제공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럭스의 예로 보여준 것이다. 그녀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남학생인 트립과 연애를 시작하고, 파티에서는 퀸으로까지 선택된다. 이 행복한 순간에 트립의 변심으로 럭스는 큰 불행을 맞는다. 그렇다면 럭스의 자살 이유는 트립의 태도일까? 그것은 이유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영화에서 실연으로 괴로워하는 럭스의 모습은 없다. 그리고 다른 자매들의 자살까지 설명하기에는 트립은 미약한 존재이다. 트립은 가장 낭만적인 상태에서 남성이 여성을 보는 시각을 설명하는 예일 뿐이다. 이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소년들의 시선, 인터뷰를 한 남성들의 이야기 등과 연결되며 트립 한 명의 악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이다. 원작소설에서는 트립이 성관계를 마치자마자 럭스에 게 질렸고 그래서 럭스를 버리고 떠났다고 말한다. 코폴라 감독은 이 부분을 삭제한다. 럭스를 성녀에서 창녀로 전락시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언급을 강조하기 위해 트립 한 명에게 비난의 화살이 몰리는 것을 방지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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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푸른 공간에서 잠을 자는 럭스

테마송의 활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안에서 여러 번 등장한 테마음악은 보컬이 없는 형태였지만 마지막 테마음악은 보컬의 등장으로 가사가 확인된다. 제목 자체가 ‘플레이그라운드 연인’이다. 가사 내용은 고등학교 시절 장난스러운 사랑, 즉 영화 내내 이야기한 남성 중심의 사랑이다. 당신은 내 놀이터의 연인이라는가 사가 결국 어둡고 푸른 플레이그라운드에 남겨지고, 이후 자살을 선택하는 럭스에게 불리는 이 영화의 테마송인 것이다.

4.3 냉소적인 표현들

이 영화가 다루는 무거운 내용, 다섯 명의 어린 소녀들이 자살하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분위기는 그 내용에 비해 크게 무겁고 어둡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고 타이틀 씬은 밝은 하늘 배경을 이 영화의 타이틀인 “virgin suicides"가 낙서처럼 가득 채운다. 이어서 클로즈업으로 잡힌 커스틴 던스트의 미소와 윙크가 벨소리의 사운드이펙트와 함께 보인다. 남학생에게 버림받고 자살까지 하는 주인공 소녀가 타이틀 씬에서 관객을 향해 윙크를 하는 모습인 것이다. 이것은 화면 가득한 버진 수어사이드라는 글과 그림의 낙서에 이어 자살하는 대상의 등장인데, 하늘에서 관객을 향해 웃으며 윙크까지 한다. 시작부터 감독이 지극히 냉소적이며 역설적인 내용을 전달할 것이라는 암시가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림 21. '처녀 자살하다' 타이틀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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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하늘 배경으로 관객에게 윙크하는 럭스

무거운 주제를 희화시키고 가볍게 다루는 것은 단순히 감독의 스타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 형식에는 여성을 사회적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원인과 해결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가볍게 다루어진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영화의 분위기와 형식으로까지 전달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4.5 마지막 장면의 의미

내러티브상으로는 마지막까지 자매들의 자살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소년들은 물론 전문가나 미디어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미 죽었기 때문에 자살의 이유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라면 무엇이 이 자매들을 죽였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본론에서 설명한 사회적 시선과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엔딩에서는 질식할 듯 한 사회적 프레임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 자매들이 사라진 이후 마을에는 녹조와 악취가 등장한다. 질식이란 주제로 파티가 보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결국 세실리아로부터 시작된 전염은 이 마을 전체의 녹조로 마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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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녹조가 가득한 마지막 장면

파티 장면은 방독면을 쓸 정도로 녹조가 강조된 세상이다. 원작 소설에는 묘사가 없는 영화의 푸른색은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코폴라 감독이 보는 여성의 세계는 영화적으로 표현된 푸른색의 공간이다. 트립과의 성관계 후 플레이그라운드에 남겨진 뒤 잠에서 깨어난 푸른 공간 안에서의 럭스 모습과 이 장면에서 흐르는 테마송이 결국 이 작품의 핵심인 것이다. 질식할 듯한 사회적 프레임에서의 이제 막 눈을 뜬 장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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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 푸른 공간에서 눈을 뜬 럭스

Ⅲ. <마리 앙투아네트>

서론의 [그림 1][그림 2]에서 커스틴 던스트는 <처녀자살소동>의 럭스가 각성하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여주인공의 역할을 이어받은 느낌을 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왕궁 촬영은 실제로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장 소에서 촬영된 역사상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가 된다. 프랑스 정부가 촬영을 허락한 이유가 주목할 만하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그녀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그 이유라고 한다[8]. 그렇다면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무엇일까? 그녀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인 평가는 무엇인가? 그리고 영화에서 다루는 새로운 해석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그 새로운 해석이라는 것이 내러티브 상으로는 명확하지가 않다. 물론 음악이나 소품, 편집 등 현대적 해석은 두드러지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여성학적 해석은 분명치 않다. 그러기에 작품에 대한 해석도 엇갈린다. 그리고 감독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왜 이야기 대상이 마리 앙투아네트이었을까 또한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코폴라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프랑스 정부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 작품은 프랑스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프랑스 배우와 언어가 아닌 할리우드 배우와 영어로 관객에게 소개된다.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인물의 문화역사적인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자존심 강하다고 알려진 국가의 이런 영화 제작 허가 결정은 놀라울 수밖에 없고 그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악녀로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코폴라 감독의 새로운 해석과, 그것이 가지는 현대적인 의미를 알아본다.

이 작품에서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사용된 설정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부분들은 스토리 전개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씬들이 가지는 상징성이 크고 감독의 주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 있는 장면들이다. 이씬들을 중심으로 영상표현 방법과 마리 앙투아네트를 바라보는 시점쇼트 분석을 통해 이 작품에서의 코폴라 감독의 의도를 밝혀보고자 한다.

1. 어머니의 메시지와 프레임

영화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고국 오스트리아를 떠난 뒤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3번의 편지를 전달 받는다. 마리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이 장면들은 초반 그녀의 입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이 3번의 씬에서 코폴라 감독의 카메라는 장면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쇼트에서 마리에게 다가가거나 멀어지는 표현 방법을 선택한다. 오프닝 쇼트를 제외한 이 세 개의 씬에서 마리는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카메라 정면을 향한다. 코폴라 감독으로서는 이 부분에서의 마리에 쓰인 프레임을 관객에게 크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1.1 첫 번째 편지

고국 오스트리아를 위해 남편인 왕의 성적인 관심을 얻어 임신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전언을 듣고 마리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하나의 쇼트로 이루어진 장면이다. 옆에서는 마리가 잉태를 해야 힘이 생긴다고 말하는 대신의 모습도 보인다. 어머니의 내레이션으로는 여성이 성적매력이 없는 것이 문제이며 애교로 극복하라는 내용 또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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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5. 첫 번째 편지를 읽는 마리 앙투아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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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6. 첫 번째 편지를 읽는 마리 앙투아네트 2

1.2 두 번째 편지

이 편지에서 마리의 어머니는 2세 출산을 독촉한다. 그리고 남편의 아버지인 왕의 정부에게도 잘 대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는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하나의 쇼트에서 커다란 왕궁의 프레임과 고립된 마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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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7. 두 번째 편지를 읽는 마리앙투아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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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 두 번째 편지를 읽는 마리 앙투아네트 2

1.3 세 번째 편지

남편 동생의 2세 소식을 담은 어머니의 편지 내레이션이 나오는 장면이다. 역시 하나의 쇼트에서 궁지에 몰린 마리의 정면을 담는 장면이다. 마리는 이 장면에서 크게 좌절한다. 실제로 이후 장면부터 마리는 패션과 디저트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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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9. 세 번째 편지를 읽는 마리 앙투아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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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0. 세 번째 편지를 읽는 마리 앙투아네트 2

2. 마차 씬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차로 이동하는 장면이 3번 등장한다. 이 3장면의 영상을 비교하면 코폴라 감독이 각각의 상황에 대한 어떤 해석을 내렸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2.1 첫 번째 마차 씬

마리가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마차 외부에서 보이는 마리의 모습과 마리의 시점으로 보이는 빽빽한 잿빛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차의 창을 통해 보이는 마리의 모습은 마차의 흔들림과 창의 반사에 의해 디테일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마리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는 간접적인 표현으로도 보일 수 있다. 유리창에 의한 반사는 마리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히 전개된 마지막 마차 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리의 심리를 대변한 것으로 보이는 빽빽한 나무들 역시 엔딩의 마차 씬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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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1. 첫 번째 마차 장면의 마리 앙투아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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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2. 첫 번째 마차 장면의 마리 앙투아네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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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3. 첫 번째 마차 장면의 마리 앙투아네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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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4. 첫 번째 마차 장면의 마리 앙투아네트 4

2.2 두 번째 마차 씬

첫 번째 마차 씬과 다른 시간대에 의한 컬러의 차이는 있지만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치와 파티광으로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녀의 첫 번째 파티에서 돌아오는 장면이다. 즐거움에 눈을 뜬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분위기가 밝지 않고 표정 또한 어둡다. 여전히 마리에 대한 디테일한 시각을 갖기 부족한 느낌이다. 주변 배경이 반사되는 창에 의해 마차 내부의 마리가 보인다. 하지만 세 번째 마차 씬에서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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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5. 두 번째 마차 장면의 마리 앙투아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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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6. 두 번째 마차 장면의 마리 앙투아네트 2

2.3 세 번째 마차 씬

3번째 마차 씬은 마리가 남편인 루이 16세와 피신하는 장면이며 이 영화의 마지막 씬이다. 역사적으로는 혁명군에게 잡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일 수 있는 장면인데, 영화는 이 장면이 엔딩이다. 이 세 번째 마차 씬에서는 더 이상 마리를 마차 외부에서 보이는 시점으로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첫 번째, 두 번째 마차씬에서 마리의 시야에 나무들이 들어왔다면 여기서는 남편의 모습이 마리의 시점에 의해 잡힌다. 이들의 표정은 비극적인 엔딩을 앞에 둔 사람들답지 않게 평온하다. 아래 [그림 39][그림 40]은 첫 번째 마차 씬에 등장한 프레임 안의 두 인물이다. [그림 37][그림 38]의 마지막 마차씬과 비교해보면 이 두 인물은 이제 다른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리는 물론 루이16세도더 이상 프레임에 가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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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7. 마지막 장면의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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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8. 마지막 장면의 루이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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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9. 영화 초반 프레임 안의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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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0. 영화 초반 프레임 안의 루이 16세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이 이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의 의미는 다소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이 직전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악녀로서 비난 받을만한 행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녀가 비난을 받은 파티, 요리, 도박 등의 사치와 낭비를 연상시키는 행동은 영화 후반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 육아를 즐기기도 하고 궁전 사람들을 떠나서 자유로운 연애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코폴라 감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이유를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국가를 파탄에 빠트린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여성으로서 각성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했으며 그 실제 이유는 영화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프레임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 처음과 마지막 크게 달라진 마리를 보는 시각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현대와 결부시킬 수 있는 음악, 소품 등의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했다. 단순히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였으면 굳이 그런 장치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프레임에 의한 피해자 인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상징성은 현대까지 유효하다는 감독의 판단이 제작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처녀자살소동>과 마찬가지로 이런 프레임의 한계를 맞이한 순간 이 영화는 코폴라 감독의 다음 작품들인 <블링링>과 <매혹당한 사람들>과 연결되며 더욱 진화된 코폴라 감독의 다음 메시지를 완성 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궁전 정원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화를 한다.

“이 길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가?”

“작별을 고한다.”

동문서답 대화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호불호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이 상징하는 것은 당연히 궁중 생활이었을 것이다. 궁중생활이 그렇게도 좋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마리의 대답은 그렇다 아니다가 아닌 이제는 끝이라는 얘기를 한다. 영화 내내 안보여주는 그녀의 편안한 표정에서 그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 최고 지위인 강대국 프랑스의 왕비조차 벗어나지 못한 프레임에 대한 코폴라 감독의 해석일 수 있다.

3. 오페라씬

세 번 등장하는 오페라씬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세 번째 오페라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의 메시지가 결국 영화의 주제로 보인다.

3.1 첫 번째 오페라씬

여기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황실 공연에서는 박수를 안친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박수를 치며 극장 안의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그녀는 결국 그녀에게 동조하는 관객에게 큰 호응을 받게 된다. 실제로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안보이던 남편 루이16세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장면이 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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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1. 첫 번째 오페라의 반응

3.2 두 번째 오페라씬

두 번째 오페라 씬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궁중 생활을 떠나 자연에서의 육아, 그리고 다른 남성과의 사랑을 나눈 시기를 보여주는 장면 직후이다. 여기서 그녀는 오페라에 직접 출연한다. 노래를 마친 그녀에게 관객의 찬사가 쏟아지는 장면이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마리앙투아네트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선택적 육아와 사랑, 그리고 문화 예술적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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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2. 두 번째 오페라의 반응

3.3 세 번째 오페라씬

검은 드레스를 입고 감상하는 오페라는 곧 맞이할, 혹은 후세에 평가될 마리 앙투아네트의 미래를 암시하는듯하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소프라노는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죽게 될 운명의 여주인공이 천사처럼 등장하는 <처녀자살소동>의 오프닝 장면과 흡사하다[그림 22]. 그리고 오페라 곡은 “Pales flambeaux”인데, 창백한 횃불로 직역될 수도 있고 선구자로 해석할 수도 있는 곡의 제목이다. 패션, 문화예술의 리더로서의 두 번째 오페라 씬의 이미지를 선구자로 받는듯했지만 결과는 암울한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위의 두 공연과 대조적으로 그녀에게 철저하게 등을 돌리고 있다. 결국 이 세 번의 오페라씬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과 평가까지를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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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3. 세 번째 오페라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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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4. 오페라의 천사 이미지

Ⅳ. 결론

본론에서 살펴본 두 작품은 모두 사회적 프레임 안에서의 여성들의 이야기와 배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말이 더욱 끔찍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극의 전개에 따라 선구자로서의 이미지를 갖춘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말이기 때문이다. <처녀자살소동>에서 사회적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여성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저항했던 여성, 럭스 역할을 했던 커스틴 던스트가 다음 작품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역할을 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관습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문화 예술적 우수함과 트렌드 리더의 모습까지 갖춘 여성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극이 전개되면서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는 모두가 아는 비극적인 엔딩을 맞는다. 코폴라 감독이 왜 여성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리 앙투아네트를 택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끔찍한 최후가 증명된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점에서 그 비관적 시선이 더욱 강조된 느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처형은 궁중의 암투나 특정 인물에 의한 것이 아닌, 일반 대중에 의해 행해진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서 코폴라 감독의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위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 이며 그 외에의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그녀는 인터뷰에서 얘기한다[9]. 즉 코폴라 감독에게는 마리 앙투와네트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처벌받은 역사적 사실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작품에서 다룬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역사적 재해석이 아닌, 관습에 저항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한 여성을 현대로 소환하여 현대적 해석과 그 여성의 수용 여부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른 왕비들과 달리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냄으로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는 견해도 있다[10]. 국가를 망하게 한 장본인’인가? 아니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 피해자인가? 피해자라면 그녀가 희생양으로 지목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이 부분에서 그녀가 기존 관습을 거부하며 눈에 드러나는 역할의 여성이었다는 것으로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고, 이 부분이 코폴라 감독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처녀자살소동>과 <마리 앙투아네트> 모두 여성의 죽음 이유를 관객에게 묻고 있다. 두 영화의 오프닝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관객을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얘기했다면 그 질문은 “내가 왜 죽었을까?” 일 것이다. 그 이유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프레임이고, 그것은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두 영화를 통해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여성 세계에 대한 그녀의 해석을 이 후작 품인 <블링링>과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설명한다. 여성 세계로의 침입을 용납하지 않고, 이해를 구하지도 않는 강력한 세계관을 선보인 것이다[3].

참고문헌

  1. http://www.cine21.com/db/person/info/?person_id=19296
  2. http://m.cine21.com/news/view/?mag_id=39090
  3. 윤수인,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의 세계 - 영화 The Bling Ring을 중심으로," 연기예술연구, 제12권, pp.91-92, 2018.
  4.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8112
  5. 제프리 유제니디스, 처녀들, 자살하다, 민음사, pp.50-55, 2020.
  6. 제프리 유제니디스, 처녀들, 자살하다, 민음사, p,163, 2020.
  7. 박상영, "사설시조와 여성: 그 흔적들과 시선의 지층들," 한국시가문화연구, 제45권, p.205, 2020.
  8. https://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137855
  9. http://m.cine21.com/news/view/?mag_id=39090
  10. 朱明哲, "'왕비의 다이아먼드 목걸이 사건'의 문화적 의미," 역사학보, 제177권, pp.176-177,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