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Close Looking at Gilles Deleuze's Any-Space-Whatever

무규정 공간 자세히 보기

  • Received : 2021.08.03
  • Accepted : 2021.08.27
  • Published : 2021.12.28

Abstract

The affection-image is the close-up of the face with real connections in space-time, or with virtual conjunction, outside spatio-temporal co-ordinates. The close-up can carry its own space-time in background. with deframing and fragmentation, Space itself has left behind its own space-time connection and become any-space-whatever that is the affection-image. The elements of any-space-whatever are the shadows, lyrical abstraction, the colors, the disconnected parts, the empty space. Deleuze examines any-space-whatever through the close ups, fragmentation of space and de-framing in Dreyer and Bresson's cinema.

사람의 얼굴을 비롯한 클로즈업은 인접한 숏들과의 실제적, 잠재적 관계를 통해서 정서를 유발한다. 클로즈업이 아닌 공간도 정서를 표출해내는 감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러한 공간은 무규정 공간이 된다. 탈 프레임화로 이뤄진 숏들이 파편화되어 제시된 공간은 가로, 세로, 깊이의 3차원상의 좌표를 확인할 수 없는 공간이 되고, 이러한 공간은 4차원 시간과 5차원 정신의 영역을 통해서만 그 공간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에서 나온 공간이지만, 더 이상 현실의 공간이 아닌 셈이다. 무규정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림자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서정적 추상, 색채, 비어 있는 공간 등을 들 수 있다. 질 들뢰즈는 칼 드레이어와 로베르 브레송의 클로즈업과 공간의 파편화, 탈 프레임화를 통해서, 어떻게 무규정 공간을 구축하고 초월적 스타일로 나아가는지를 살펴본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서정적 추상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처한 선택의 문제, 선택의 조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Keywords

I. 서론

들뢰즈는 얼굴과 클로즈업이 감화(感化) 이미지 (the affection-image)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클로즈업은 쿨레쇼프의 몽타주 실험에서 쿨레쇼프 효과처럼 클로즈업과 인접한 숏과의 관계에서 정서가 파생되는 직접적인 정서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는 고전적 할리우드콘티뉴어티 시스템에서 한 설명과 유사하다. 그런데 들뢰즈는 클로즈업과 인접한 숏들의 직접적 연관 이외에 잠재적 연결에 의한 감화 이미지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혹은 사람을 포함하거나 포함하지 않는, 공간을 보여주는 숏으로도 감화 이미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감화 이미지는 얼굴의 클로즈업이 아닌 공간에서도 일어난다. 공간이 감화 이미지를 발생시킨다면 무규정 공간 (any-space-whatever, espace quelconque) 이 된다. the affection-image를 감정-이미지[1], 혹은 감화-이미지[2]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유진상은 affection 이란 ‘마음을 움직임’을 기술하는 타동형 명사이므로 ‘감정’과 ‘영향’의 두 가지 의미가 혼재된다고 보았다[3]. 단순히 감정, 정서로는 정서를 유발하는 것에 대한 의미 전달이 미흡하므로 여기에서는 감화-이미지를 사용하나 영어 단어 그대로 쓰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유진상은 any-space-whatever에 대해서는 불특정한 공간으로 번역하고, 주은우는 무규정(無規定)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무규정 공간으로 통일하고자 한다.

무규정 공간에 대한 낮은 수준의 설명은 어떤 정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무규정 공간은 때로는 비어 있는 공간이거나 그 공간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변경될 수 없거나 고정되지 않은 공간이다. 영화에서 무규정 공간은 할리우드 콘티뉴어티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즉 공간 속에 인물이나 사물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 풀 숏이나 롱숏 등을 활용한 설정 숏나 재설정 숏이 없는 시퀸스의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은 미디엄 숏을 중심으로보여지며 파편화되고 탈 프레임화되어 제시된다[4].

그 공간의 구체적인 시공간 상의 좌표도 파악하기 힘들어서, 서울역이든 리용역이든, 우리에게는 단지 기차역으로, 어디에나 있음 직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그런 공간이다. 홍옥, 부사, 아오리 등 사과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정 품종을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과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이 공간을 다루는 숏들 사이에는 시공간 상의 연속성에서의 연결이 아닌, 잠재적, 가상현실적 연결이 존재한다. 즉 탈 프레임화와 파편화, 원근법의 억제, 평면화 등을 통해서 공간을 연결할 단서들을 제거하거나 억제하여 제시되었을 때, 우리는 잠재적 혹은 또 다른 연결을 찾게 된다. 3차원 공간에서의 공간이 아니므로 우리는 이제 다른 차원을 보게 된다. X축, Y축의 평면에 깊이를 부여하는 Z축의 3차원 공간에서의 구체적 좌표가 아니라, 4차원, 5차원 즉 시간과 정신(Sprit)의 차원이 더해진 것이다. 무규정 공간에서 표현되거나 노출된 정서 혹은 감화는 질-기호 (Qualisign, potsign)이다[5]. 무규정 공간은 인간에게서 유래되지 않는 감화이다. 순수하게 객관적인 기체 적지 각을 이끌어 낸다. 운동-이미지의 붕괴처럼 무규정 공간은 감각-운동 시스템에서 자유롭다[6].

들뢰즈는 무규정 공간의 요소들로서 그림자, 백색들, 색채들, 끊임없이 계속되는 진전, 매정한 환원, 상승한 평면, 단절된 부분들, 텅 빈 전체(세트)를 든다[7].

들뢰즈의 <시네마 1: 운동 이미지>의 7장의 1절은 클로즈업의 실제적 연결 이외에 잠재적 연결에 의해서도 정감이 표현된다는 점을 피력하고, 클로즈업의 내적 인구성과 외적인 구성을 다룬다.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 the Passion of Joan of Arc>(1928)>에서의클로즈업을 통해서, 드레이어가 얼굴이나 신체 일부만을 담아내는 부분 클로즈업 cutting close ups과 심도의 부재나 원근법의 억압에 의해서 미디엄 숏이나 풀숏을 클로즈업으로 취급할 수 있는 카메라 움직임에 의한 클로즈업 Flowing close-ups을 통해서 감정적 데쿠파쥬를 얻어내고 있다고 보았다. 드레이어는 대기 원근법을 억압하여 이뤄낸 2차원적 공간을 정감과, 4차원 시간, 5차원 정신과 이어지도록 한다고 보았다. 7장의 2절에서는 브레송의 잔 다르크 영화가 파편화와 탈 프레임화를 통해서 클로즈업을 넘어서서, 미디엄 숏이나그에 상응하는 공간 속에서 정감을 표출한다고 보았다. 3절에서는 무규정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살펴본다.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무규정 공간의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고, 무규정 공간의 개념에 대해서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들뢰즈는 브레송의 영화를 통해서, 파스칼과 키에르케고르 철학에서의 선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선택의 문제가 서정적 추상과 표현주의를 구분 짓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글에서는 6장에서 시작된 감화 이미지의 클로즈업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보다는, 3절의 무규정 공간을 중심으로, 들뢰즈의 텍스트를 자세히 읽으면서 언급되는 영화의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들뢰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Ⅱ. 클로즈업

1. 실제적 연결과 잠재적 연결: 액션 이미지와 미디엄 숏, 감화 이미지와 클로즈업

독일의 극작가 프랭크 베데킨트 Fank Wedekinds의연극 <룰루 LULU>를 대본으로 한 파브스트의 <판도라의 상자 Pandora’s Box>(1929)의 2시간8분대에 룰루를 포옹하고 있는 잭의 눈에 나이프가 들어온다. 창녀가 된 룰루가 베푼 호의에 항상 지니고 있던 칼을 버리고 들어왔으나 탁상 위의 나이프를 보고서는 다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살인마 잭은 룰루를 죽인다. 룰루의 얼굴, 탁상 위 램프, 나이프, 그리고 살인마 잭 등은 서로의 연관성에 의해서 실제 모습을 갖춘다. 즉 숏들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파생된다. 그런데 들뢰즈는이들 개별 숏들에서 그것들이 단독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는 이를 순수한 ‘가능태 possibles’, 아주 독특한 질들 qualities 또는 잠재태 potentialities라고 보았다. 힘-질 (power-qualities) 은 사람들과 사물들 그리고 사물의 상태와 연관되어 있다. 힘-질들은 그것들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들 간의 관계가 아닌 그것들 그 자체를 표출하는 특별한 기능도 힘- 질은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힘-질즉 감화 affects를 두 가지 상태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각각의 숏들의 실제적인 연관 속에서 현실화된것 즉 숏들의 관계, 특정한 공간과 시간, 특정 인물, 역할들의 관계에서 나오는 정감이며 이는 액션 이미지와 미디엄 숏들의 핵심적인 영역이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시간-공간적 좌표 밖에서 개별 숏들의 특이성과 잠재적인 연결만을 지닌 채 그 숏 단독으로 표출할 수 있는 정감이다. 이는 감화 이미지 혹은 클로즈업을 구성한다[8].

어느 한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숏나 사물을 클로즈업한 숏들은 모든 공간-시간의 좌표로부터 얼굴이나 사물을 분리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완벽히 그 얼굴이나 사물이 속한 공간-시간, 시야에서 분리되지 않고 그것들을 포함하게 된다. 클로즈업은 시야심도를 지니게 되어 배경을 화면에 담게 되어 시공간의 위치 관계를 드러낸다. 원근법과 심도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여 심도의 부재나 원근법의 억압에 의해서, 또는 평면적인 구도, 하얀 배경을 사용하여 미디엄 숏나 풀 숏이 클로즈업으로서 기능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정감이스스로의 힘만으로 공간을 획득하고, 얼굴이 없더라도 얼굴의 클로즈업이 할 수 있는 정감을 표현할 수 있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01.png 이미지

그림 1. <판도라의 상자 Pandora’s Box>(1929)의 2시간 8분대

(창녀이지만 순수하고 깨끗한 얼굴의 룰루를 보고 런던의 살인마 잭은 칼을 버리고 들어온다. 그러나 룰루를 포옹하는 와중에 어깨너머로 책상 위의 나이프를 보고서는 다시 살인의 충동과 광기에 휩싸인다. 그의 얼굴은 사랑을 갈구하던 얼굴에서 광기를 표출하며 변한다.)

2. 클로즈업의 내면적 구성과 외면적인 구성

클로즈업과 다른 숏 간의 관계 그리고 다른 유형의 이미지 간의 관계를 클로즈업의 외적 구성이라고 한다면, 특정 클로즈업의 다른 클로즈업들이나 그 자신과의 관계, 요소들과 차원들의 관계는 내적 구성이다. 이때 클로즈업의 내적 구성은 감화적인 프레이밍, 커팅(데쿠파쥬), 그리고 몽타주에 의해 이뤄진다. 이때의 내적 구성은 특이성을 포함하는, 표현된 복잡한 전체, 즉 특이성을 표현하는 얼굴이거나 얼굴들, 이 경우 구별되는 부분들과 부분들의 다양한 관계들을 포함한다. 어떤 얼굴이 굳어지거나 부드러워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내적구성은 특이성들간의 잠재적 접속이 이뤄지는 공간, 이 경우, 특이성들은 얼굴이거나 아니면 그것 이상이 된다. 즉 얼굴이나 얼굴들이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는 것으로 이 공간을 열어주고 묘사하게 된다. 클로즈업은또한 그 자체가 시공간의 좌표에서 떨어져 나오고 추출되었던 것처럼 클로즈업 자체 내에 깊이나 표면을 통해서 시공간을 포함한다.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이반 대제 2부 보야르의 음모 Ivan the Terrible, Part II The Boyars' Plot>(1958)의 2분대에서 전경에 이반의 얼굴의 측면을 커다랗게 배치하고 후경에는 군중들이 꾸불꾸불한 줄을 이루고 탄원하러 오는 모습이 배치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02.png 이미지

그림 2. <이반 대제 2부 보야르의 음모>(1958)의 2분대, 이반의 클로즈업

CCTHCV_2021_v21n12_765_f0003.png 이미지

그림 3. <이반 대제 1부 Ivan the Terrible, Part 1> (1945) 70분대 그림자의 활용

또 다른 클로즈업의 사례로 들뢰즈가 마뉴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이름만 언급하고 작품명을 밝히지 않은 영화는 <프란시스카 Francisca>(1981) 이다[9]. 이 영화의 50분대와 53분대에 남자 2명이 화면의 전경에 앉아 고개를 정면으로 향한 채 대화를 나누고 있고, 두 사람 사이의 후경에는 호세가 타고 온 말이 있다. 들뢰즈는 이 말이 유혹의 감정들을 예시하는 계단 사이에 묶여 있고 앞으로 있을 경쾌한 승마를 예시한다고 보았다 [10]. 올리베이라는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게 연출하기보다는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이야기하듯이 카메라 정면을 향해서 말하게 연출한다. 그리고 세트를 후경은 작게 만들고 전경은 크게 하여 원근법의 과장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거울을 활용하여, 화면에 여러 시점을 배치하기도 한다. 정감이 실체로 표현될 때, 빅 클로즈업, 클로즈업이나클로즈 숏, 투 숏 등 기술적인 구분은 무의미해진다[11].

CCTHCV_2021_v21n12_765_f0004.png 이미지

그림 4. <프란시스카>(1981) 전경의 두 남자와 후경의 말의 배치

(왼쪽: 50분대, 오른쪽: 53분대)

CCTHCV_2021_v21n12_765_f0005.png 이미지

그림 5. <프란시스카>(1981) 원근감이 과장된 세트

(왼쪽: 39분대, 오른쪽: 44분대)

CCTHCV_2021_v21n12_765_f0006.png 이미지

그림 6. <프란시스카>(1981) 거울을 활용한 장면

(왼쪽: 25분대, 무도회장에서, 오른쪽: 114분대, 만찬에서)

CCTHCV_2021_v21n12_765_f0007.png 이미지

그림 7. <프란시스카>(1981) 거울 활용 다중 시점 획득 장면

(왼쪽: 73분대, 오른쪽: 76분대)

3. 최고의 감화적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

칼 드레이어(1889-1968)의 <잔 다르크의 수난>(1928) 은 감화적 영화의 최고라고 여겨진다. 드레이어의 감화적인 프레이밍은 얼굴의 부분들을 잘라낸 과감한 클로즈업들에 의해서 성취된다. 드레이어는 얼굴이나 얼굴 부분들의 클로즈업을 액션이나 지각에서 요구되는 앵글이 아닌 특이한 앵글의 위치에서 보통 탈 프레임화를 통해서 제시하고, 얼굴과 얼굴들의 클로즈업의 실제적인 공간적 위치 관계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즉 이러한 클로즈업들이 액션 이미지의 일부분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숏-역 숏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화면 가득히 채우는 클로즈업이 아니라 프레임 내 일부분만을 채우는 클로즈업을 통해서 각각의 얼굴들을 분리시키고제시함으로써, 누가 오른쪽에 있고 다른 이가 왼쪽에 있다는 식의, 실제 인물들의 위치 관계가 아닌 잠재적 연결로 유도한다[12]. 감화적인 커팅은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서 하나의 숏이 끊어지지 않고 클로즈업에서 미디엄 또는 풀 숏으로 변하게 되는 데에서도 이뤄진다. 이 경우, 미디엄 숏과 풀 숏은 깊이감이 없거나 원근법의 왜곡으로 인해서 클로즈업으로서 기능한다. 즉 공간과의 관계에 따른 구분에서 기인하는 프레임 사이즈에 대한 구분이 희미해지고 모든 프레임 사이즈의 숏들이 클로즈업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한다. 공기 중에 수증기나 먼지 입자에 의한 빛의 산란 등으로 멀리 있는 물체는 흐릿하고 색이 선명하지 않게 표현되는 대기 원근법을 억누름으로써, 드레이어는 세속적이거나 시간적 원근법을 이겨낸다. 그리고 3차원 공간을 평평하게 함으로써, 그는 2차원 공간을 즉시 감화와 관련되게 만들고 나아가서 4차원, 5차원과의 관계로까지, 즉 시간과 영혼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드레이어는 그의 영화들에서 깊이와 원근법을 부정함으로써 미디엄 숏이나 풀 숏을 클로즈업과 동일화하게 만들어서 특정 공간이나 하얀 배경을 클로즈업과 동일한 위상을 부여한다. <오데트>(1954)와 <게르트루드>(1964)에서는 클로즈업과 함께, 평면적인 단일 숏 시퀸스가 결합하여, 즉 커팅과 물 흐르듯 움직이는 카메라의 관계에 기인한, 감화 몽타주를 만들어낸다[13].

4. 브레송 영화에서의 정신적 감화와 공간

클로즈업이 시공간의 좌표에서 얼굴이나 그에 상응하는 것들을 추출하기는 하지만, 클로즈업 자체가 완전히 시공간과 분리될 수 없다. 즉 클로즈업된 얼굴이나 사물 뒤에 보이는 배경의 시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그 배경은 피사계 심도(被寫界 深度, depth of field) 로도확보되지만, 때로는 원근법과 깊이를 무시함으로써, 미디엄 숏이 클로즈업과 동격이 되면서 얻어진다. 들뢰즈는 사람 얼굴의 클로즈업을 통해서 감화가 얻어지는데, 이때에도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나아가서 얼굴이 없이, 즉 클로즈업이나 클로즈업을 나타내는 준거들과는 독립되어서 공간만으로 감화가 획득될 수 있다고 보았다[14]. 들뢰즈는 로베르 브레송 (1901-1999)의 < 잔 다르크의 재판 The Trial of Joan of Arc>(1961)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1928)을 비교한다. 이 두 편의 영화의 주요 유사성은 이 영화들이 감화를 복잡한 정신적인 독립체 (complex spiritual entity)로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브레송의 영화는 미디엄 숏들과 숏 /리버스 숏들로이뤄졌다. 브레송의 영화에서 공간은 파편으로 제시된다. 테이블들이나 문들이 롱 숏으로 온전하게 보여지지않고, 관객들은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숏들을 통해서 그 모습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숏들은 매 순간 닫힌 실체이지만 또한 무한히 닫힌 실체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은 각각의 부분들을 자유자재로 연결 지을 수 있게 되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숏들은 기존의 결정요인과는 다른 속도와 운동, 리듬의 조건들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 지을 수 있게 된다. 들뢰즈는 브레송의 <소매치기 Pickpocket>(1959)의 3분대의 롱샴(Lon champ) 경마장과 46분대의 리용역 (the Gare de Lyon)이 방대한 파편화된 공간들이라고 보고 소매치기의 감화에 상응하는 리드미컬한 연속적인 숏들로변형되었다고 보았다. 이로써 공간은 원래의 시공간 상의 좌표나 물리적 단위들에서 벗어나게 되고 하나의 촉각적인 공간(tactile space)이 된다. 들뢰즈는 브레송이 드레이어가 간접적으로만 성취한 것을 이뤄내었다고 보았다. 정신적인(영성적인) 감화(the spirital affect)가 더 이상 얼굴로 표현되지 않고 공간이 더 이상 클로즈업과 동화되거나 종속되지 않고, 공간 자체가 하나의 클로즈업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감화는 이제 미디엄 숏으로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공간에서 제시된다. 브레송은 자신의 영화에서 배우들로 하여금 감정이 없고, 톤이 없는 음성으로 대사를 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백색 음성 white voices(voix blanches)이다. 백색 음성은 모든 표현에 있어서 자유 간접 화법을 고양시키는것이며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와 무엇이 표현되는가에 대한 상승작용을 나타낸다. 즉 공간이 순수한 잠재태로 표현된 감화와 동격의 대접을 받는다[15].

공간은 더 이상 특정의 확정된 공간이 아니라 그 어떤 공간, 무규정 공간이 된다. 불특정 공간은 부분들의 물리적 관계나 연결에서의 원칙이 사라진, 즉 균질성을 잃어버린 공간이다. 그래서 부분들의 연결은 무한정의 방법으로 가능해지는 공간이다.

액션 이미지를 확정된 공간(사물들의 상태)에서 현실화된 질(quality)이나 힘(power)을 가지고 정의한다면, 감화 이미지는 얼굴 위에서 짐작할 수 있는 실제의 상태에서의 질과 힘 이상이다. 감화 이미지에는 두 가지의 기호 즉 일차성의 두 가지 형상이 있다. 얼굴이나 그에 상응하는 것에서 표현되는 힘-질(power-quality) 가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불특정 공간에서 표현되는 힘 -질이다. 앞의 것은 도상(Icon)이고 뒤의 것은 질기호 (Qualisign) 또는 능력 기호(potisign)이다. 얼굴은 복잡하고 미묘한 정서를 표현하는 운동을 다루는 하나의 커다란 단위(unit)로 남아있다. 쿨레쇼프의 실험을 통한 쿨레쇼프 효과가 이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얼굴과 클로즈업을 벗어나고, 클로즈업, 미디엄숏과 롱 숏의 단순한 구분을 벗어나는 복잡한 숏들을고려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정서 시스템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시스템은 더욱 미묘하고 층위가 있고, 파악하기 쉽지 않으며,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정감을 유도할 수 있는 감정들의 체계이다[16].

Ⅲ. 무규정 공간을 구성하는 것들

무규정 공간은 때때로 텅 빈 공간, 또는 그 공간의 부분들 연결이 변경될 수 있거나, 고정되지 않은 그런 공간이다. 그러한 무규정 공간에서 정서가 표현되거나 노출됨을 알려주는 기호는 피어스가 사용한 질기호 혹은 능력 기호(Qualisign, potisign) 이다[17]. 들뢰즈는무규정 공간의 요소들로서 그림자, 백색들, 색채들, 빛과 어둠의 교차를 통한 서정적 추상, 텅 빈 전체 등을 든다. 서정적 추상은 계속되는 빛과 어둠의 교차를 통해서 끊임없이 계속하여 프레임 밖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하고,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1. 그림자

그림자는 크게 물체가 빛을 차단하면서 발생하는 캐스트 섀도 (Cast Shadow)와 프레임 상에 빛이 닿지 않아서 발생하는 가짜 그림자인 보거스 섀도 (Bogus Shadow)로 구분할 수 있다. 보거스 섀도는 계조(tonal Graduation)의 문제이다. 그림자는 질감을 표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측면광을 사용하면 대상의 질감을 극대화하여 표현하고 정면광을 활용하면 그림자가 없는 대상을 담아서 질감의 표현이 위축된다[17]. 원근감의 표현에 있어서 밝은 대상은 어두운 대상보다 가까이 있게 느껴진다. 무규정 공간을 구축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그림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림자들로 가득 찬 공간이나 그림자들로 뒤덮인 공간은 무규정 공간이 된다. 밝음과 어둠은 함께 작용하여 공간에 깊이를 제공하고 두드러지고 왜곡된 원근법을 제공한다. 이 공간은 그림자들로 채워지거나 때로는 명암대비의 키아로스쿠로의 형태로, 때로는 흑백이 교차하면서 연속되는 줄무늬의 형태로 채워진다. 공간을 어둠에 싸이게 하여 그 공간의 디테일과 3차원적인 느낌을 배제할 수도 있고, 하얀 배경에 밝은 조명을 통해서 마찬가지의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the man who wasn’t there>(2001)의 마지막 부분에서 역광조명 아래에 주인공의 얼굴의 디테일은 사라지고 형태로만 존재하고, 하얀 배경에 균질한 조명으로 인해서 공간의 디테일이 사라져서 실제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08.png 이미지

그림 8. <그 남자 거기 없었다>(2001) 108분대

(왼쪽: 실루엣으로 디테일은 사라지고 윤곽만 남아있는 주인공)

(오른쪽: 하얀 배경과 균질한 조명으로 서 있는 남자의 그림자나 물체의 그림자도 없고 공간에 밝고 어둠이 없어서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부여한다.)

<카프카 Kafka>(1991)에서는 그림자가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게도 하고, 공간에 깊이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또한 화면의 많은 부분을 어둠에 싸이게 하여 공간의 디테일을 인지하지 못 하게 할 수도 있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09.png 이미지

그림 9. <카프카>(1991)

(왼쪽: 3분대 희생자에게 다가오는 그림자. 위협적이다.)

(오른쪽: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면서 공간에 깊이감을 부여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10.png 이미지

그림 10. <카프카>(1991)

(70분대 어둠이 대세를 이루고 일부만 빛이 있어서 디테일을 알 수 없다.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면서 측 후면에서 오는 불빛으로 인해서 터널 벽의 디테일을 알 수 있고 주인공이 있는 공간을 짐작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빛과 그림자, 백색의 관계는 서로 간의 대립, 갈등, 투쟁의 원리 즉 어둠과 벌이는 정신의 투쟁을 나타낸다[18].

그림자는 또한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게 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보통 그림자는 위협적인 정감을 담고 있다. 그러한 예는 무르나우(1888-1931)의 <타르투페 Tartuffe>(1925)와 <노스페라투 Nosferatu>(1922) 의 그림자에서, 그리고 <타부 Tabu>(1931)의 주술사의 그림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르나우의 <타르투페[19]>(1925)는 몰리에르의 희곡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영화 속 영화의 액자 구조로 되어 있다. 영화 속 영화에서 오르공은 타르튀프의 종교적 꾀임에 이성을 잃고 전 재산을 타르튀프에게 상속하는 유언장을 작성하려 한다. 오르공의 아내 엘미르는 사이비 종교인인 타르튀프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그를 유혹한다. 오르공이 타르튀프의 가짜 신앙심에 빠져서 집에 있는 네 명의 하인들을 해고하는 장면에서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하인들이 들고 있는 촛불에 의해서 2층 난간이 오르공에게 쇠창살이나 거미줄처럼 움직이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오르공의 영혼이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11.png 이미지

그림 11. <타르투페>(1925) 25분대 광원이 움직임에 따라서 인물은 난간의 그림자 창살에 갇힌다.

유일하게 남은 하녀가 촛불을 들고 움직일 때도 벽에 만들어진 그림자는 크기가 확대되고 캐리커처나 애니메이션처럼 단순한 윤곽선만을 만들어내어 과장된 움직임을 벽에 만들어낸다. 카메라 가까이에 광원이 있으므로 해서 전통적 원근법에서 가까이에 있는 것이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이 작아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멀리 있는 것이 크게 보인다. 37분대에 엘미르 부인이 타르튀프를 만날 때도 화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엘미르가 타르튀프의 마수에 잡혀 있는, 새장 속에 갇힐 위험이 있는 듯한 암시를 준다. 오르공과 엘미르가 함께 있는 42분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에서 흡혈귀 올락 백작은 그림자를 통해서 실제 보다 과장되며 여인의 목도 그림자가 조인다. 무르나우의 <타부>(1931)의 55분대에 마타히(matahi)와 레리(Reri)가 낮잠을 자고 있는 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주어진 메모에는 3일간의 시간을 주고 남자 곁을 떠나라는 협박이 담겨있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12.png 이미지

그림 12. <타르투페>(1925) 23분대 광원을 들고 움직이는 하녀의 그림자가 벽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그 자체로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연기를 한 듯하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13.png 이미지

그림 13. <타르투페>(1925) 37분대

(왼쪽: 타르튀프와 엘미르 부인)

(오른쪽: 아르공과 엘미르 부인)

CCTHCV_2021_v21n12_765_f0014.png 이미지

그림 14. <노스페라투>(1922) 87분대

(왼쪽: 올락 백작은 그림자로만 나타나며 실제보다 과장되게 커져 있다.) (오른쪽: 여인의 목을 조르는 올락 백작의 손그림자)

CCTHCV_2021_v21n12_765_f0015.png 이미지

그림 15. <타부>(1931) 55분대 드리워진 그림자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일부로 간주되는 미국 출신 독일 감독 아서 로빈슨 Arthur Robinson이 감독한 < 경고의 그림자 warning shadows(Schatten)>(1923)에서는 중국 그림자 인형극이 백작 부부의 파티에서 공연이 되고, 백작 부인을 다른 남자들이 어루만지고 있는 것처럼 그림자로 착각하게 만들어서 백작으로 하여금 질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서로 간에 신체적 접촉은 없지만, 촛불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놀이는 3명의 남자가 백작 부인의 신체 여기저기를 더듬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그림자놀이는 백작에게 질투에 휩싸이게 한다. 모호한 그림자들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각각 자신들의 무의식적 욕망을 투사한다. 그림자가 살아있는 인간 존재를 대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림자의 모호성은 프로이트적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20].

CCTHCV_2021_v21n12_765_f0016.png 이미지

그림 16. <경고의 그림자>(1923) 12분대 남자들이 백작 부인의 그림자에 장난을 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17.png 이미지

그림 17. <경고의 그림자>(1923) 13분대 백작이 창문을 통해서 비치는 그림자들을 보고 오해를 하고 질투를 하게 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18.png 이미지

그림 18. <경고의 그림자>(1923) 13분대 그림자를 만들어낸 양초를 들고 서 있는 마술사

CCTHCV_2021_v21n12_765_f0019.png 이미지

그림 19. <경고의 그림자>(1923)

(왼쪽: 21분대 그림자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

(오른쪽: 33분대 만찬 중 중국식 그림자 인형극을 본다.)

표현주의 고딕적인 세계는 공포영화의 신 고딕적 공간으로 변화하는데, 영국 공포영화의 대표 제작사 Hammer Studio에서 테렌스 피셔가 만든 <드라큘라의 신부들 the brides of Dracula>(1960)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 헬싱 박사는 드라큘라를 죽이기 위해서 풍차의 날개에 매달려 십자가 형상이 되도록 위치를 조정한다. 불에 타는 풍차가 만들어내는 풍차 날개의 그림자는 십자가의 형상이며 마침내 드라큘라는 죽게 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20.png 이미지

그림 20. <드라큘라의 신부들>(1960) 84분대

(왼쪽: 풍차 날개가 움직여 십자가 형상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드라큘라는 죽는다.)

(오른쪽: 화염에 휩싸인 십자가 형상의 풍차 날개)

2. 서정적 추상: 흑과 백, 빛과 어둠

무규정 공간을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은 서정적 추상 lyrical abstraction이다. 여기에서도 그림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표현주의는 빛이 어둠과 벌이는 정신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정적 추상에서는 어둠에 대한 정신의 투쟁이 아닌, 양자택일 즉 사물의 상태와 그 자체와 잠재성 사이의 양자택일을 표현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 점에서 자크 튀르뇌르가 엷게 빛이 나는 공간들, 빛이 있는 배경과 대비되는 밤들을 통해서 공포영화의 고딕전통과 단절한다고 보았다[22].

1982년에 나온 <캣피플 cat people >의 원작이 되는 <캣피플 cat people>(1942)에서 튀르뇌르는 빛을 이용한 밤을 통해서 서정적 추상의 대표자가 된다. 51 분대의 수영장 장면에서 우리는 동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수영장 물에 반사된 빛이 어두운 실내에 만들어내는 빛과 어둠의 물결을 보게 된다. 위협은 하얀 벽에 만들어지는 그림자들로만 보인다. 앨리스는 공포에 휩싸인다. 탈출한 표범이 다가오다가 사라진 것인지 리드 부인이 표범으로 변했다가 다시 인간이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장면은 폴 슈레더의 <캣피플>(1982)에서도 92분대에 색채화면으로 반복되는데 장면의 모호함과 공포스러움은 흑백화면에서 더욱 표출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21.png 이미지

그림 21. <캣피플>(1942) 51분대

(출처를 알 수 없는 동물 울음소리가 수영장에 가득 차고 벽면과 천장에는 물결에 반사된 빛의 얼룩이 마치 음성 파장처럼 요동친다. 앨리스가 지른 비명은 수영장 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공명하고, 무어 부인이 실내등을 밝힌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22.png 이미지

그림 22. <캣피플>(1982) 92분대

(위: 수영장 물에 반사된 빛이 만들어내는 물결)

(아래: 수영장 불이 켜진다.)

자크 튀르뇌르 Jacques Tourneur(1904-1977)의 경우에는 데이 포 나이트 (Day for night 혹은 American Night) 기법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지대를 만들어낸다. 자크 튀르뇌르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I walked with a Zombie>(1943)에서 위협은 부두교 여사제에게 복종하는 좀비라기보다는, 선교사의 미망인이자 남편의 어머니인 랜드 부인의 영향 아래에 있는 제시카 (홀랜드 부인)이다. 66분대에,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제시카를 죽이고, 바다에 뛰어들어 같이 죽는 사람은 한때 제시카가 사랑했던, 아버지가 다른 남편의 동생 웨슬리이다. 데이 포 나이트 즉 밤 장면을 낮에 찍은 이 장면에서는 완벽한 어둠은 없고 전체적으로 밤인지 낮인지 모호한 분위기이다. 자살하는 웨슬리의 뒤를 따라가는 이는 부두교의 좀비이고 제시카의 시체를 들고 오는 이도 바로 이 좀비이다. 즉 이 좀비는 영화중반부부터 위협적으로 등장하였으나 위협적인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랜드부인은 첫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아들 폴의 아내 제시카가 두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아들 웨슬리를 사랑하자 부두 주술로 제시카를 좀비로 만들었다고 하나, 의사는 제시카가 걸렸던 열병의 후유증이라고 한다. 명확한 것은 제시카와 웨슬리가 죽었다는 것뿐이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23.png 이미지

그림 23.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왼쪽: 39분대. 밤 같지 않은 밤 간호사 코넬은 제시카를 부두교 모임으로 데려간다.)

(오른쪽: 53분대. 흑인 좀비의 그림자)

CCTHCV_2021_v21n12_765_f0024.png 이미지

그림 24.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왼쪽: 66분대. 밤 같지 않은 밤. 죽은 제시카를 안은 웨슬리는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이들을 따라가는 좀비.)

(오른쪽: 68분대. 바다에서 찾은 제시카의 시신을 안고 오는 좀비)

3. 양자택일의 선택

서정적 추상에서 영혼, 정신 혹은 사람은 어둠과의 전투 중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양자택일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그것의 제물이 된다. 양자택일은 스턴버그의 경우에서처럼 심미적이거나 열정적인 것일 수 있고, 드레이어처럼 윤리적이거나 브레송처럼 종교적 형태를 띨 수도 있으며 이들 서로 다른 형태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21]. 심미적인 양자택일, 관능적인 양자택일을 보여주는 스턴버그(1894-1969)의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은 백색 남성복을 입거나 재기 넘치는 차가운 표정의 안드로진 (양성구유자)와 남자를 유혹하는 혹은 가정적인 여자 사이에서 선택하여야 한다. 이러한 선택은 <모로코 Morroco>(1930), <금발의 비너스 Blonde Venus>(1932), <상하이 익스프레스 Shanghai Express>(1932)에서는 명확하게 발생한다. 이 세 편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모두 마를렌느 디트리히이다[24]. <금발의 비너스>(1932)에서 독일 카바레여가수 헬렌은 미국인 남편을 만나서 아들을 낳고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남편의 심각한 병을 독일에서 치료하기 위해서는 1, 550달러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카바레 가수로 나서고 부자에게 돈을 빌리고 부자와 함께 산다. 병을 치료하고 독일에서 돌아온 남편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헬렌은 아들을 남편에게 돌려보내고는 유럽으로 공연을 떠난다. 유럽에서 이전의 부자를 다시 만나 약혼을 하나 미국으로 돌아와 아들을 만나면서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여주인공은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는 아들을 목욕시키는 헌신적인 가정주부의 모습이었다가 남자를 유혹하는 가수로 돌아가고, 부자와 헤어질 때는 남성적인 옷차림을 하고, 유럽에서 다시 부자를 만날 때는 백색의 턱시도 의상을 입는다. 뉴욕으로 돌아와서 아들의 어머니가 될 때는 여성스러운 의상을 입는다. 가정적이고 모성애를 지닌 엄마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얀 턱시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모로코>(1930)에서 여주인공은 모로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를 때 검정 턱시도 정장을 입고 공연 중 여자 손님에게 키스한다. 공연 후 손님들에게 사과를 팔기 위해서는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후반부에 자신이 사랑하던 외인 부대원을 찾아갈 때는 하얀 바바리코트를 입어서 중성적인 느낌을 준다. <진홍의 여왕 The Scarlet Empress>(1934)에서 캐서린 대제(예카테리나 여제) 는자신의 남편 표트르 3세를 몰아내고 러시아의 여자 황제가 된다. 97분대에 군대가 캐서린 대제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그녀의 얼굴에는 깃발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25]. 그녀는 백색의 남성 군복을 입고 말을 탄다.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의 28분대에 상하이 백합 마들렌은 옛 애인을 다시 만나 그의 군모를 쓴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25.png 이미지

그림 25. <금발의 비너스>(1932)

(왼쪽: 6분대 아들을 목욕시키는 가정주부 헬렌)

(오른쪽: 89분대 유럽 공연에서 돌아와 아들을 재우는 헬렌)

CCTHCV_2021_v21n12_765_f0026.png 이미지

그림 26. <금발의 비너스>(1932)

(왼쪽: 43분대 남편에게 돌아가기 위해 부자 연인과 헤어지는 헬렌. 남성복 스타일의 치마 정장을 입고 있다.)

(오른쪽: 80분대 유럽 공연 중 부자 연인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헬렌. 하얀색의 턱시도 정장을 입고 있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27.png 이미지

그림 27. <모로코>(1930) 18분대, 모로코 카바레에서 공연 중 여자 관객에게 키스하는 여주인공. 검정 턱시도 정장.

CCTHCV_2021_v21n12_765_f0028.png 이미지

그림 28. <모로코>(1930)

(왼쪽: 24분대 사과를 팔다가 외인 부대원을 만난다.)

(오른쪽: 82분대 외인 부대원을 찾는 에이미 졸리)

CCTHCV_2021_v21n12_765_f0029.png 이미지

그림 29. <진홍의 여왕>(1934) 33분대, 표트르 3세와 애정없는 결혼식을 올리는 캐서린 대제, 이 장면도 파편화되어 제시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30.png 이미지

그림 30. <진홍의 여왕> (1934) 97분대 남성복을 입은 캐서린 대제

CCTHCV_2021_v21n12_765_f0031.png 이미지

그림 31.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의 28분대, 군모를 쓴 주인공

4. 조건과 대립 항, 그리고 선택에 관한 5가지 유형의 캐릭터들

들뢰즈는 서정적 추상은 표현주의가 서로 대립하는 두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인 반면에, 조건들의 선택에 대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브레송과 드레이어, 그리고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선택에 관한 다섯 가지 캐릭터를 분류한다. 즉 백을 선택하는 자, 흑을 선택하는 자, 그리고 아직 판단을 유보하거나 망설이는, 회색을 선택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이들 세 유형은 자신들이 선택의 상황에 있음을 모르고 선택하는 유형이고, 네 번째 유형은 자신이 선택의 상황에 부닥쳐있음을 알고 있는 유형이며 다섯 번째는 순진무구하여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이다. 들뢰즈는 선택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파스칼,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등 철학자들의 사상을 도입하고, 브레송에게서는 파스칼과 종교적 선택을, 드레이어에게서는 키에르케고르와 윤리적 선택을 발견한다. 백색을 강조하는 서정적 추상은 표현주의와는 다른 두 가지 결과를 끌어낸다. 표현주의의 서로 반대되는 반 대항 중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조건(terms)의 선택, 그리고 싸움이나 투쟁 대신에 정신적 선택이다. 그래도 화면에서는 흑과 백을 번갈아 나타내는 교호 alternation 이다. 빛을 담고 있는 백색, 빛이 멈추는 지점에서의 흑색 그리고 때로는 중간 톤으로도 나타나는 흑색 즉 회색이다. 백색은 우리의 의무, 힘을 나타내고, 흑색은 우리의 무력함이나 악에 대한 갈망을, 회색은 불확실성, 무언가에 대한 추구나 무관심을 표시한다[22]. 이러한 교대는 이미지 간에도 발생하고 하나의 이미지 내에서도 발생한다.

4.1 파스칼과 브레송

브레송의 영화 <시골 사제의 일기 Diary of a Country priest>(1951)와 <호수의 란슬롯 Lancelot du lac>(1974) 에서는 밤과 낮의 교대가 나타나고, 드레이어의 경우에는 색조의 구성과 공간의 모자이크를 통해서 교호가 기하학적 구도에서 일어난다. 다른 하나는 대립하는 항(an oppositon)의 교호(an alternation) 대신에 조건들 (terms)의 교호이다. 이것은 투쟁이나 싸움이 아니라 양자택일로 선택 가능한 대안 (an alternative), 영 성적인 선택(a spiritual choice)이다. 영성적인 양자택일은 조건들의 교호, 즉 선, 악, 그리고 불확실성이나 무관심 등의 교호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반드시 백색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선과 악에서 반드시 선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불확실하다. <진홍의 여왕>(1934)에서 선택된 백색은 자신의 남편인 표트르 3세와의 친밀한 관계를 잔인하게 포기하는 것을 암시하고 <금발의 비너스>(1932)에서는 백색 턱시도를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와서 친밀한 가족관계를 다시 발견한다.

양자택일이 조건 간에서가 아니라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의 존재 양식 사이에서 일어난다. 들뢰즈는 이러한 생각이 파스칼부터 키에르케고르에 의해서 발전되어왔다고 보았다. 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선택할 것이 없다고 설득하는 조건에서 행해지는 선택들이 있다. 이러한 선택은 때로는 도덕적 필요(선과 악), 때로는 물리적 필요 (사물의 상태, 상황), 때로는 심리적 필요(어떤 대상에 가지게 되는 욕망) 때문에 행해진다. 영성적 선택은 선택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하는 사람의 존재 양식과 선택의 문제이므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존재 양식 사이에서 이뤄진다. 즉 선택이냐, 선택 아니냐의 문제처럼 보인다. 내가 선택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이미 선택이라는 것은 없다는 존재 양식을 따르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 된다. 들뢰즈는 이것이 파스칼의 내기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조건들의 양자택일은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 부정, 그리고 판단 유보 (의심, 불확실성)과 같다. 그런데 영성적인 양자택일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내기를 거는 인간의 존재 양식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내기를 걸거나 내기를 하려 하지 않는 인간의 존재 양식 간의 선택 문제이다.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은 팡세에서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내기를 통해서 논증한다[23].

파스칼에 따르면 신의 존재를 믿는 자만이 이것이 선택의 문제라고 의식한다고 보았고 나머지들은 무엇에 관계된 것인지 모르는 조건에서 선택하게 된다고 보았다[24]. 얀세니즘과 파스칼에 바탕을 둔 기독교적 주제는 <시골 사제의 일기> (1950), <잔 다르크의 재판>(1961), <호수의 란슬롯>(1973)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만, 브레송의 작품 전반에 걸쳐서 그러한 경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파스칼의 팡세와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25]에 대한 비교분석이 행하여지기도 했다[26].

4.2 선택에 관한 다섯가지 캐릭터 유형

서정적 추상을 다루는 영화감독들의 영화에는 이러한 존재 양식들이 구체화한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이들 영화에는 신을 따르고 선과 도덕을 따르는 백색의 사람들, 파스칼을 따르는 열성 신도들, 도덕이나 종교적 필요성이라는 명목으로 질서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독재적이거나 위선적인 수호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드레이어의 <뱀파이어 Vampyr>(1932)나 브레송의 <호수의 란슬롯>(1974), <소매치기>(1959)의 주인공처럼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불확실의 회색 인간들도 있다. 그리고 <볼로뉴 숲의 여인들 Les Dames du Bois de Boulogne>(1945)에서 복수하는 헬렌,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 (1966)의 사악한 제라르, <소매치기>(1959)의 도둑질하는 주인공, <돈 L’Argent>(1983)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본처럼, 악의 화신들도 존재한다. <소매치기>(1959)에서 미쉘은 소매치기를 한다. 영화의 10분대에서 미쉘은 그를 주시하는 형사에게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초인이라면 법을 어겨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고, 형사는 그가 초인이라는 것을 누가 증명하는가 되묻으며, 한번 시작한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27].

가난하고 병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미쉘은 자신의 운명이 그러하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죽은 후, 어머니를 보살펴주던 쟌느에게 우리가 심판을 받는지 물으며 자신은 신을 3분 정도만 믿는다고 말한다. 35분대에서 형사는 미셸에게 당신이 소매치기 혹은 초인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54분대에 형사는 미셸의 어머니가 1년 전 아들이 자신의 돈을 훔친 것을 알고 있었다고 전해준다. 미쉘은 다시 경마장에서 소매치기하다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갇히고, 미혼모인 쟌느가그를 찾아온다. 마침내 미쉘은 쟌느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다른 길을 선택하였는지를 말하며 다소 희망 적으로 영화는 끝난다.

<볼로뉴 숲의 여인들>(1945)에서 엘렌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 장에게 창녀 아네스를 소개해주고, 두 사람의 결혼식 날, 아네스의 이전 손님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새신랑 장만 모르고 손님들은 아네스가 창녀임을 아는 것이다. 엘렌느는 장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로 이렇게 했다면서 장에게 오늘 결혼한 신부 아네스가 창녀임을, 그리고 그녀의 손님들이 모두 결혼식에 왔음을 알린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32.png 이미지

그림 32. <볼로뉴 숲의 여인들>(1945)

(왼쪽: 79분대 신부가 창녀임을 신랑에게 밝히는 엘렌느)

(오른쪽: 82분대 신랑에게 고백하고 죽는 아네스)

인간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없이는 그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으며 인간의 운명은 어떤 형식으로든 결정되어 있다는, 윤리적으로 극도의 엄격 주의를 추구하는 얀세니즘에 바탕을 둔 브레송은 선과 악의 관점에서 작품 속에서 악행을 보여준다. 브레송의 <돈>(1983) 에서 이본은 다른 사람의 조건(위조지폐) 때문에 범죄 세계에 들어서게 되고, 루시앙은 이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고 부의 재분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고 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33.png 이미지

그림 33. <돈>(1983)

(왼쪽: 50분대 재판정에서 절도가 부의 재분배라는 루시앙)

(오른쪽: 80분대 일련의 살인 후 자수하는 이본)

브레송의 <돈>(1983)에서 주유소 직원 이본은 타인이 기름값으로 준 위조지폐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고 직업을 잃게 된다. 그는 범죄의 세계에 흘러들어 은행강도를 하다가 실패하여 교도소를 가게 되고, 그의 아내와 아이는 그를 떠나게 된다. 자살을 시도했다 회복한 그는 출옥 후 돈 때문에 호텔주인을 죽이고, 죽여주기를 바라는 여인의 아버지와 여동생 식구를 살인하고 자수한다. 이본이 범죄의 소굴로 들어서게 된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타인의 건넨 위조지폐 때문이다[32].

고용주를 위해 자선을 베풀기 위해 이본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한 루시앙은 고용주의 돈을 횡령하다 해고된다. 본격적으로 절도에 나선 루시앙은 훔친 돈으로 자선을 베풀기도 하다가 체포되어 재판에서 자신은 부의 재분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네 번째 유형의 캐릭터를 제시하는데 이들은 진정한 선택을 하는, 즉 선택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캐릭터이다. 백색의 인간, 회색의 인간, 그리고 흑색의 인간 모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인간 유형이라고 보았다. 즉 이들 유형들은 선택이 있다는, 여전히 선택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조건에서 선택을 하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즉 이들은 선택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선택이라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식 없이 선택을 할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인간이 끊임없이 변함없이 영성적 결정을 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선택은 선이나 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순간에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된다. 진정한 선택을 하는 유형은 브레송의 영화에서 희생하거나 희생을 넘어서는 것을 선택하는 인물에게서 발견되고 재발견된다. 브레송 영화에서 잔 다르크, 사형수, 교구 신부들이 이에 해당하고 드레이어의 영화에서는 잔 다르크, <분노의 날 Day Of Wrath>(1943)에서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리던 17세기 노르웨이, 나이 많고 엄격한 목사의 두 번째 부인으로 목사의 아들 마틴을 사랑하여 남편인 압살론이 죽기를 바라는 앤, <말씀 ordet>(1954)의 셋째아이를 출산 중에 의식을 잃는 잉거, <게루트루드 Gertrud>(1964)에서변호사 남편 카닝과의 애정없는 결혼에서 벗어나고자 시인, 피아니스트, 작가와 연애를 하는 게르트루드가 이에 해당한다. 진정한 선택을 하는 캐릭터는 감화를 순수한 힘이나 잠재력으로까지 고양시킨다. <호수의 란슬롯>(1974)의 란슬롯은 결혼한 귀부인에 대해서 변함없는 기사도적인 사랑을 보인다.

들뢰즈는 브레송이 선택에 관한 다섯 번째 캐릭터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당나귀 발타자르>(1966)의 당나귀와 나쁜 짓인지 모르고 나쁜 짓을 행하는 제라르가 해당한다. 이들은 순진무구함을 가지고 있고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유형이다. <당나귀 발타자르>(1966)에서 제라르는 마리를 겁탈하고, 당나귀를 괴롭히고 돈을 훔치는 등 온갖 나쁜 짓을 해댄다. 그는 선악의 개념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악동이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34.png 이미지

그림 34. <당나귀 발타자르> (1966) 28분대

(왼쪽: 순진무구한 악동 제라르)

(오른쪽: 마리)

4.3 로메르와 로셀리니

들뢰즈는 에릭 로메르의 도덕 영화들은 존재 양식, 선택, 가짜 선택, 선택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의식의 이야기라고 보았다.<아름다운 결혼 La beau marriage>(1982) 에서 주인공은 결혼하기로 선택하고서는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같은 이유로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하며, 이러한 선택이 영원히 무한정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my night at Maud’s>(1969) 에서 가톨릭 신자 장 루이는 마르크시스트 대학교수 인비 달과 카페에서 파스칼의 내기를 언급하며 신앙과 사상을 이야기하다가 비달의 애인 모드의 집에서 함께 신앙, 애정, 신의 은총, 남녀 간의 사랑 등을 가지고 대화를 나눈다. 고다르의 <그녀의 생을 살다 Vivre sa vie (my life to live, 자기만의 인생)>(1962)의 14분대에서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1928) 영화를 보았던 매춘부는 65분대, 11장에서 카페 옆자리에 앉은 남자와 철학적 대화를 나눈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 브라이스파랑 (Brice Parain)인데, 로메르는 1965년에 만든 <파스칼에 관하여 on pascal> 라는 TV 인터뷰 물에서는 이 철학자와 종교 철학자이며 수도사인 도미니크 듀발(Dominique Dubarle) 간의 파스칼에 대한 대담을 담았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후기로 갈수록 신앙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1972년에는 파스칼에 관한 전기 영화 <브레이즈 파스칼 Blaise pascal>을 만들었다.

4.4 키에르케고르

쇠렌 오뷔에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의 병든 첫 번째 부인을 돌보던 하녀에게서 1813년 태어났다. 이러한 출생의 이력은 창세기 11장~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 그 자신이 매달리게 되는 원인이 되고, <두려움과 떨림>(1843)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아브라함은 99세가 되고 사라가 90세가 되던 해, 여호와가 나타나 그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한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 신의 사자가 나타나 그가 시험에 통과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무한한 체념의 운동’을 통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후에 자아를 획득하게 되고, ‘믿음의 운동’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포기하며 자신을 희생했고, 키에르케고르는 레기네를 포기하며 자신을 희생했다[28]. 스물한 살의 키에르케고르가 레기네 올젠을 처음 만났을 때, 레기네는 열네 살로 키에르케고르는 3년을 기다린 후에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29]. 1840년에 신학과 시험에 합격하고, 레기네와 약혼하지만, 1년 후에 신께서 결혼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약혼을 파기한다. 자신이 결혼생활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30].

키에르케고르는 1843년 헤겔의 “이것과 저것”에 대조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제1부 마지막, 유혹자의 일기에서 파혼에 대해서 다룬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은 실존의 의의를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직접적인 생존단계인 심미적 실존, 인간이 자기 실존의 의의를 잘 알면서 윤리적인 사명에 충실하는 윤리적 실존, 마지막으로 종교적 실존의 3단계로 구분 지었다. 심미적 실존에서 향락을 추구하던 인간은 피로와 권태에 빠지게 되고,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는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여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버림과 체념을 통해서 진정한 믿음을 얻게 된다. 이렇듯 선택은 철학이나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진정한 선택을 위해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은 서정적 추상의 이야기이다. 백색과 흑색 그리고 회색은 우리가 선택이 없다는, 혹은, 더 이상 선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을 선택한다는, 즉 선택이라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백색, 흑색, 회색을 넘어선 정신적 빛이다. 백색의 공간이나 흑색의 공간, 그리고 회색의 공간이라 하더라고 빛이 들어오면 이 공간은 물리적 공간에서 정신적 공간으로 이르게 된다.

5. 색채: 바르다와 미넬리의 경우

정신의 투쟁과 어둠, 정신의 대안과 백색은 공간이 무규정 공간을 만드는, 처음 두 가지 방법이다. 이를 통해서 무규정 공간은 빛을 발하는 발광체의 정신적 힘으로까지 이르게 된다[31].

무규정 공간을 구성하는 세 번째는 색채이다. 색채는 표현주의의 공간이나 서정적 추상의 백색이 아니라 색채 공간이다. 이것은 동양의 수묵화나 단일 색의 농담이나 명암으로 그리는 단색법 (monochromy)이나 몇 가지 색이 확연히 구분되게 채색되는 다색채색법(polychromy)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들뢰즈는 영화에 한정된 색채는 운동 색채라고 보았다. 이것은 하나의 톤에서 다른 톤으로 색채가 흐르는 것으로 뮤지컬 코미디 영화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들뢰즈는 이 운동 색채가 사물들의 일반적인 상태에서 무제한의 잠재적 세계를 추출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영화에서의 색채 이미지와 회화가 공유하는 색채의 특징은 색이 액체처럼 스며들어 다른 것의 표면을 통해서 흡수되는 성질 (absorption)이라고 보았다. 즉 같은 빨간색이라도 어떤 것에 칼라가 더해졌는가에 따라서 무한한 빨간색이 나온다. 칼라가 결합하는 모든 사물과 잠재적 결합을 이뤄내므로 색채 자체가 감화될 수 있다.

5.1 아그네스 바르다

아그네스 바르다의 <행복 Le Bonheur>(1965)이 보색 관계의 색채들을 활용한 복잡한 운동을 통해서, 관객을 흡수하고, 등장인물 자신들을 흡수하고, 상황들을 흡수한다. 이 영화에서 보라색, 자주색, 오렌지 골드는 각각의 보색인 연두색, 녹색, 감청색과 함께 사용된다. 이들 칼라는 화면 전체를 덮는 색채로도 사용되고, 때로는 같은 색깔로 칠해진 공간의 색채로도 활용된다. 이러한 공간에 등장인물들은 흡수된다. 아그네스 바르다의 <행복>(1965)은 프랑수아와 테레즈라는 부부와 두 명의 자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프랑수아는 우체국에서 일하는 에밀을 사랑하게 되고, 왜 최근에 이렇게 행복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우리 가족의 사랑과 에밀과의 사랑으로 더 행복하다고 답한다. 테레즈는 남편과 사랑을 나누고, 남편이 잠든 사이에 자살하고, 프랑수아는 에밀과 함께, 두 자녀를 데리고 다시 행복하게 산다. 영화는 장 르누아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숲속의 장면들이 있으며 로케이션과 세트에서의 색채를 두드러지게 계획하였으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서 페이드를 녹색, 파란색, 빨간색, 파란색, 빨간색, 하얀색, 녹색, 노란색, 보라색, 황토색의 순으로 사용한다[32]. 여기서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프랑수아가 테레즈와 그리고 나중에 에밀과 가지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동화와 같은 세팅에서 보게 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35.png 이미지

그림 35. <행복>(1965)

(왼쪽: 32분대 프랑수아와 테레즈)

(오른쪽: 75분대 프랑수와와 에밀)

아그네스 바르다의 첫 연출작이며 흑백영화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La Point Courte (짧은 송곳)>(1955)에서는 백색과 흑색이 보색관계로 다뤄진다. 백색은 백색 일, 백색 사랑과 죽음 등 여성적인 입장을 취하고 흑색은 남성적인 측면을 다룬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커플의 남녀 주인공들은 마을 거닐면서 다른 선택지로서의 공간이나 다른 상호 보완적인 공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파리의 한 커플이 프랑스 남부의 어촌에 내려와서 자신들의 관계와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과 이 어촌의 남자와 여자들의 삶의 스케치가 다룬 한 부분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줄곧 하얀색의 옷을 입고 여주인공은 검은색의 옷을 주로 입는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빨랫줄에 걸린 하얀색의 천들, 그리고 10분대의 하얀 빨래를 걷는 여인들의 검은 옷 등, 백색과 흑색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마지막 부분에 곤돌라 경기를 하는 축제 부분에서는 모두 하얀색의 옷을 입는다. 46분대에 어부의 아들이 죽을 때에는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검은색이며, 검은색 스타킹이 걸린 빨랫줄 밑을 검은 고양이가 지나간다. 어촌의 노동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 이들 주변을 맴돌며 대화를 주고받는 커플들도 대조를 이룬다[38].

CCTHCV_2021_v21n12_765_f0036.png 이미지

그림 36.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

(왼쪽:9분대 하얀 빨래)

(오른쪽: 46분대 검은 빨래와 검은 고양이)

5.2 빈센트 미넬리

13편의 뮤지컬, 10편의 코미디, 11편의 멜로드라마를 만든 빈센트 미넬리 감독(1903-1986) 은 자신의 뮤지컬 영화에 댄스, 꿈이라는 주제, 비현실적인 색채 의사용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흡수 (absorption)’ 를새로운 차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힘으로 사용하였다. 미넬리는 자신의 작품에서 꿈을 많이 활용하였는데 이러한 꿈은 흡수된 형태의 색채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등장인물은 자기 자신의 꿈에 흡수되든지, 다른 이들의 꿈에 흡수되든지, 아니면 타인의 과거에 흡수된다. 장 두셰는 미넬리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내적인 꿈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뮤지컬에서는 경이로운 꿈이고, 코미디에서는 헛된 꿈, 멜로드라마에서는 정서적으로 강렬한 꿈인데 이들 주인공의 꿈은 그들의 존재 자체이다[33].

미넬리 영화에서 현실은 누군가의 꿈이기에, 꿈과 현실의 갈등은 두 개의 꿈이나 두 개의 세트 간의 갈등으로 다가온다[34]. 이러한 등장인물이 나오는 영화들로 <욜란다와 도둑 Yolanda and the Thief>(1945), <해적 the Pirate>(1948), <지지 Gigi>(1958), <멜린다 Melinda> 로 들뢰즈가 언급한[41] 뮤지컬 <맑은 날 영원히 볼 수 있으리 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ever>(1970) 를 들 수 있다. 테크니 칼라 뮤지컬 영화 <욜란다와 도둑>(1945)에서 사기꾼 조니 리그는 부자 상속녀가 수호천사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재산을 탐내어 접근한다. 42분대에 죠니는 꿈속에서 욜란다와 춤을 추고 결혼을 꿈꾼다. 이때, 빨간색의 옷을 입은 빨래하는 여자들은 침대 시트로 남자를 포획하려 한다[35].

CCTHCV_2021_v21n12_765_f0037.png 이미지

그림 37. <욜란다와 도둑>(1945) 42분대 빨래로 남자를 가두려는 빨래하는 여자들

또 다른 테크니 컬러 뮤지컬 <해적>(1948)에서 부자 남자와 결혼이 예정된 마뉴엘라는 전설의 해적 마 코코와의 사랑을 꿈꾼다. 마을을 지나던 서커스 배우는 그녀에게 최면을 걸어서 그녀가 몰래 해적 마코코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그 해적인 것처럼 행세한다. 28 분대에 그녀는 최면에 걸려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38.png 이미지

그림 38. <해적>(1948) 28분대 최면에 걸린 마뉴엘라

시네마스코프, 메트로 칼라로 만들어진 뮤지컬 <지지>(1958)는 20세기 초반 파리 볼로뉴 숲에서 부자이고 나이 든 독신남 라샬리에가 자신의 조카 가스통과 10대 여자 지지가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면서 시작되고 끝맺는다. 지지의 가족들은 그녀를라샬리에의 정부로 만들기 위해 교육하나 지지는 가스통에 호감을 느끼면서도 서로 간에 플라토닉 사랑을 하자고 하며 서로 거리를 두다가 마침내 결심을 맺는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39.png 이미지

그림 39. <지지>(1958) 왼쪽: 4분대, 오른쪽: 48분대

미넬리의 마지막 뮤지컬 <맑은 날 영원히 볼 수 있으리>(1970)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연기한 데이지 갬블은 담배를 끊기 위해 최면 치료를 받는다. 정신과 의사 마크 샤보트는 최면 치료 중에 그녀가 19세기 귀족의 사생아 멜린다의 환생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나중에 14개의 또 다른 삶을 사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40.png 이미지

그림 40. <맑은 날 영원히 볼 수 있으리>(1970) 최면에 빠져드는 주인공

(왼쪽: 27분대, 오른쪽: 75분대)

타인의 힘에 대한 꿈에 사로잡힌 인물들은 <마법사들 Les Ensorceles>라는 제목으로 들뢰즈가 언급한[43], 흑백영화 <배드 앤 뷰티 the bad and the Beautiful>(1952) 을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한물간 영화제작자 조나단 쉴즈의 마지막 영화제작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때 그와 일을 했으나 이제는 갈라선 영화감독 프레드, 여배우 조지아, 시나리오 작가 제임스는 영화제작가 해리의 사무실에 모여서 자신과 조나단과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마지막에 이 세 사람은 다시 파리에 있는 조나단의 영화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41.png 이미지

그림 41. <배드 앤 뷰티>(1952)에서 꿈을 이야기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42.png 이미지

그림 42. <배드 앤 뷰티>(1952)

(왼쪽: 20분대에서 꿈을 이야기하는 주인공)

(오른쪽: 108분대 꿈꾸던 영화 연출하는 주인공)

<묵시록의 4기사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1962)에서는 줄리오라는 존재가 다가올 전쟁의 악몽에 사로잡혀 있는 데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시네마스코프, 메트로 칼라로 만들어졌으나 뮤지컬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음악이 계속 사용되고 엑스트라의 움직임에 있어서 율동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부자 줄리오의 사위는 한 명은 프랑스계이고 다른 한 명은 독일계이다. 1938년에 독일계 사위 하인리히는 가족 모임에서 나치에 가담했음을 밝힌다. 줄리오는 충격을 받고 묵시록의 4기사와 전쟁이 다가오는 환상을 겪으면서 심장마비로 죽게 되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들 가족은 2 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유지하게 된다.

줄리오의 악몽 외에 다른 꿈은 나치의 집단적이고 단일한 꿈이다. 객관적이어야 하고 흑백으로 현실을 보여줄 나치들의 기록 영화들은 추하게 왜곡되어 영화에 사용된다[36].

CCTHCV_2021_v21n12_765_f0043.png 이미지

그림 43. <묵시록의 4기사>(1962) 21분대 환상을 보는 줄 리오와 묵시록의 4기사

CCTHCV_2021_v21n12_765_f0044.png 이미지

그림 44. <묵시록의 4기사>(1962) 뮤지컬처럼 연출된 군중장면

(왼쪽: 59분대, 오른쪽:81분대)

미넬리의 영화에서 꿈은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은 거미줄 같은 공간으로, 꿈꾸는 자 그 자신보다는 몽상가가 매혹된 살아 있는 먹잇감을 위한 공간이다. 사물의 상태가 움직이는 세계가 되듯이, 캐릭터가 춤을 추는 형상(figure)이 되듯이, 사물의 상태는 웅장한 색채와 분리할 수 없으며, 포악하고 파괴적이며 집어 삼킬듯한, 흡수 기능과도 분리할 수 없다.

(1954) 에서 밝은 노란색의 캠핑카는 주인공 신혼부부와 함께 영화 속에서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이 영화는 Ansco color 영화이며 뮤지컬 영화가 아닌 코미디다. 영화는 새신랑 니콜라스가 캠핑 트레일러 파크에 와서 관리원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니콜라스와 테이시는 신혼여행으로 트레일러 여행을 계획한다. 그러나 밝은 노란색의 트레일러는 하나의 캐릭터로 역할을 하면서 두 사람을 여행 내내 말썽에 빠지게 한다. 질서정연한 중산층의 미국적 삶을 꿈꾸던 새신랑의 계획은 현대사회의 온갖 편의를 제공할 것으로 여겨졌던 트레일러가 절벽이나 내리막길 등에서 고초를 겪게 되면서 좌초하게 된다. 망가진 꿈 때문에 신혼여행 중 부부는 헤어졌고, 신부 테이시는 트레일러를 가지고 트레일러 파크에 혼자와 있고, 니콜라스가 그녀를 데리러 와서 화해한다[37].

CCTHCV_2021_v21n12_765_f0045.png 이미지

그림 45. (1954)의 캠핑 트레일러

미넬리의 영화 < 열정의 랩소디 lust for life>(1956) 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색채에 대해서 주저함과 공포 그리고 존경을 나타낸다. 자기파괴적으로 강박관념에 휩싸여있는 반 고흐는 자신의 색채를 발견하고 탁월한 색채를 창조하고 그 자신이 만든 것 속으로 흡수되어간다. 즉 그의 존재와 그의 정신이 엘로우로 흡수되어간다.

이 영화는 Ansco Color로 촬영된 마지막 영화이다. 이 칼라 필름은 아그파(Agfa)에서 만들었다. 1950년대 중반 MGM은 테크니 칼라에보다 저렴한 앤스코 칼라를 거쳐서 더 저렴하고 색채가 덜 화려한 코닥의 이스트만 칼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영화의 프린트는 이스트만 칼라로 만들어졌다[38]. 영화의 초반부는 색채를 강조하지 않는다. 대체로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며 탈색되어 나타난다. 벨기에 광산촌 보리나지 (Borinage) 에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볼 때나, 네덜란드의 헤이그, 네덜란드 뉘넌에서의 가족과 만남에서도 회색과 검은 갈색의 흙색 톤이 유지되고 여자의 의상도 검정 의상을 입는다. 어두운 올리브색, 회색, 갈색이 주조를 이루는 이 부분에서 반 고흐는 주로 분필과 목탄으로 드로잉을 하지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이때까지의 장면연출은 미넬리의 멜로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앙드레바쟁적인 리얼리즘 즉 롱테이크, 깊은 공간, 도덕적 불확실성을 보여주고 있다[39]. 48분대에 파리로 오면서 반 고흐가 인상주의 화가 전시회를 구경하면서 색채는 밝고 가벼운 색채로 이동한다. 60분대에서 복숭아나무의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이 나오는 부분부터 색채가 강렬해진다. 반 고흐가 경험하는 세계가 몽타주와 카메라 움직임에 의해서 반 고흐가 그리는 세상과 같아지게 된다[40]. 아를 지방에서 반 고흐는 미친 듯이 그림이 그리다가 카페에서 쓰러진다. 이 카페는 부분적으로 현실이고 부분적으로 그림이며 부분적으로는 꿈이다. 마치 미넬리 영화의 환각적인 세팅처럼 말이다[41].

미넬리 영화의 중심에서 반 고흐는 점차 미쳐가면서 자신의 작품 속으로 흡수되어가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42].

6. 텅 빈 공간과 안토니오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1912-2007)는 차가운 색채들을 흡수 기능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넘치고 강력하게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영화 속에서는 변형된 등장인물들과 상황들을 꿈이나 악몽 같은 공간에서 유지하고 있다. 안토니오니 영화에서 색채는 공간을 진공의 상태 즉 텅 빈 상태로까지 이끌어 간다. 색채는 색채 자신이 흡수되어진 것들을 지워나간다.

<정사 L’Avventura>(1960) 이후로 안토니오니는 텅 빈 숏, 사람들이 있었던 흔적이 제거된 (deshabité) 숏을 다룬다. 안토니오니의 영화는 비구상의 영역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듯이 보인다. 그 결과는 얼굴의 사라짐, 인물들의 소멸이다. 안토니오니의 <여행자(승객) The passenger>(1975)에서 기자 로크는 외화면 영역 (horse-champ)에서 살해된다[43]. 기자 로크는 죽은 무기 밀매상 로버슨의 신원을 도용하는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의 롱테이크가 진행되는 동안 침대에 누워있던 로크는 암살자들에게 암살되고, 그의 시체를 본 그의 아내는 그가 로크가 아니라고 하고, 여학생은 그가 로버슨이라고 믿는다. 이 롱테이크는 호텔 침대를 거쳐서 창문으로 빠져나가 스페인 남부 Osuna 사막의 풍경을 보여주는 동안 총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경찰과 그의 아내가 신원을 확인하는 장면을 커트 없이 보게 된다. 즉 롱테이크 숏 속의 시공간은 분리되지 않으나, 롱테이크의 끝 무렵에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들뢰즈는 안 토니 오니는 같은 공간을 한때는 사람들이 가득 있다가 나중에 텅 빈 모습인 것을 병치시키는 데에 색채를 가지고 조절한다고 보았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46.png 이미지

그림 46. <여행자>(1975) 106분대 롱테이크의 시작과 끝

영화 속에서 하나의 공간이 한때는 사람들로 가득 찬 상태로 보여줬다가 나중에 텅 빈 상태를 병치하여 보여줌으로써 정서적으로 강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오래전에 확인된 것들이다.

스턴버그의 <푸른 천사 The Blue Angel>(1930)에서 대학교수 엠마누엘은 카바레 가수를 사랑함으로써 대학교수 자리도 잃고 여인에게도 버림받는다. 한때 가득 찼던 교실은 텅 비어 있다 카바레 여가수의 대기실도 한때는 그녀를 흠모하던 남성들로 가득 차 있었으나, 엠마누엘과의 결혼 후에는 매니저와 여가수, 그리고 남편만이 있는 공간이 되고 마지막에는 남편만이 남는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47.png 이미지

그림 47. <푸른 천사>(1930)

(왼쪽: 64분대 학생들이 가득한 강의실)

(오른쪽: 106분대 강의실 탁자를 붙잡고 쓰러져 있는 주인공 텅 비어 있는 강의실)

7. 2차 대전 이후의 영화들: 무규정 공간과 액션이 미지의 위기

무규정 공간은 그림자들, 백색들과 색채들이 생산하고 구성할 수 있다. 이 무규정 공간은 연결되지 않거나 비어 있는 공간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영화들은 전후 파괴되거나 재건되는 마을, 버려진 땅, 피난민의 판자집촌 등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전쟁의 상처가 없는, 사용되지 않은 장소, 항구, 창고, 건축자재 야적장 등도 전후 상황을 보여주는 이런 영화들의 배경이 된다. 이러한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은 점점 감각-운동에 기반을 둔 상황들에 덜 처하게 되고, 이러한 공간을 떠돌거나, 산책하거나, 배회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이는 순수 광학적 청각적 상황들이고 액션 이미지의 위기를 보여주는 실마리다[44]. 액션 이미지는 약해지고, 확실했던 장소들은 모호해져서 무규정 공간이 돋아나게 한다. 이 무규정 공간에서는 불안과 애착, 상실 같은 현대적인 정서들이 드러나고, 새로움, 빠른 속도감, 그리고 지겹고 짜증 날 정도로 끝없이 계속되는 기다림이 자라나고 있다. 영화 배경 장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에 대한 구체성과 리얼리티가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즉 예전의 리얼리즘이 제공하던 장소의 공간적 좌표가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네오리얼리즘은 리얼리즘과 다르다.

로베르토 로셀리니(1906-1977)의 <전화의 저편 Paisa>(1946)은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는 시기의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미군 등의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성을 탈환하는 미군과 이탈리아 여인과의 이야기를 다루는 9분대의 경우, 그 성은 야간에 보여주며 단지 성이라고만 인식되지, 구체적으로 어느 곳이라고 할 수 없어 세트와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105분대에 이탈리아 레지스탕스가 독일군하고 전투를 벌이는 늪지대의 구체적 위치는 중요치 않고 여기에서는 레지스탕스와 독일군이 싸운다는 행위가 중요하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48.png 이미지

그림 48. <전화의 저편>(1946)

(왼쪽: 14분대 성안의 미군과 이탈리아 여인)

(오른쪽: 112분대 늪지대 전투에서 독일군에 체포된 레지스탕스)

<유럽 51 Europa 51>(1952)에서 중산층 아내 이렌 느는 아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보다 못한 처지인 사람들을 보살핀다. 아픈 여자를 대신하여 공장일을 하러 간 이렌느는 자신이 보고 듣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이 공장은 리얼리티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채워놓았다기보다는 많은 것을 제거하고 단지 공장이라는 느낌의 추상성을 제시한다[45].

CCTHCV_2021_v21n12_765_f0049.png 이미지

그림 49. <유럽 51>(1952) 58분대 공장의 소음에 괴로워하는 이렌느

고다르의 <경멸 contempt>(1963)의 38분대에서 아직 내부 인테리어가 완성되지 않은 그래서 뭔가 부조화하고 변형된 아파트에서 시나리오 작가 폴은 문틀만 달린 문을 여닫거나 문틀을 통과하여 자신의 서재로 들락날락한다. 여자친구는 판넬이 없는 닫힌 문틀을 넘어서 서재의 폴에게 다가가기도 한다[56]. 폴은 끊임없이 이문을 통해서 들락날락하여 음악적인 가치도 지니고 감화를 동반하여 관객에게 정서를 제공한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50.png 이미지

그림 50. <경멸 contempt>(1963)

(왼쪽: 38분대, 판넬이 없는 문틀을 열고 서재로 들어가는 폴)

(오른쪽: 59분대, 서재에 있는 폴에게 문틀을 통과하여 들어오는 여자친구)

파스빈더와 다니엘 슈미트 같은 불안을 다루는 독일 감독들은 실외 장면에서 도시를 삭막한 사막으로, 실내장면은 거울을 통해서 공간을 두 개로 나누거나, 화면의 시점에 대한 단서를 최소로 제공하거나 아니며 서로 연관 없는 시점들을 증식시킨다.

다니엘 슈미트의 <비올란타 Violanta)(1978)의 실내장면에서는 거울을 활용하여 화면 구성에서 하나의 시점을 부여하지 않거나 화면을 분할시킨다[57].

CCTHCV_2021_v21n12_765_f0051.png 이미지

그림 51. <비올란타>(1978)

(왼쪽: 22분대, 거울을 사용한 화면 분할과 다중 시점의 존재)

(오른쪽: 32분대, 전경의 노파, 거울 속 소녀, 거울 뒤편의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통해서 화면 분할과 다중 시점 구현)

8. 시드니 루멧과 존 카사베테츠

산이 많지 않고 넓은 평지에 자리 잡은 도시 로스앤젤레스는 수평으로 넓게 펼쳐져서 도시가 옆으로 팽창되어 있다. 반면에 뉴욕은 맨해튼이라는 한정된 섬에도 시가 자리 잡아서 고층빌딩을 중심으로 하여 수직으로 확장되어 있다. 이런 뉴욕을 조감하려면 맨해튼 내의 고층 빌딩에 올라가서 도시를 내려보든지, 다리를 건너 뉴저지에서 맨해튼을 바라봐야 하거나, 도로 위에서 고개를 쳐들고 빌딩들을 봐야 한다. 숲을 보려면 높은 곳, 산 위에 올라가서 봐야지 숲속에 들어가면 내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이 숲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높이 솟아있는 나무의 기둥들만 보게 된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영화감독 중에 시드니 루멧 같은 감독은 사건과 인생이 일어나는 도로 위나 보도블록 위의 지표면의 높이에서 도시의 수평적 모습을 제한하여 보여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체적 위치가 구별되지 않은 공간이 그의 영화에 남게 된다.

뉴욕에서 연극연출가로 출발하여 영화감독을 한 시드니 루멧(1924-2011)은 많은 영화를 뉴욕을 배경으로 하여 연출하였으나, 여러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뉴욕의 어디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하지 않아서 영화 속 사건들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이것은 뉴욕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게 한다. 그렇게 하려는 방법으로는 야외 장면에서도 도시 배경을 화면에 작게 잡거나 프레임에서 감추고 인물을 타이트한 숏으로 잡는다. 그러한 사례로 <서피코 Serpico>(1973), <도시의 왕자 Prince of the City)(1981)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개 같은 날의 오후 Dog Day Afternoon>(1975) 는 영화의 시작을 평온한 뉴욕의 거리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브루클린의 저축은행 강도를 벌이는 주인공으로 바로 들어간다. 이런 거리 스케치에서 시드니 루멧은 화면의 전경에 공동묘지의 묘비들이 늘어서 있고 후경에는 뉴욕의 마천루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숏을 사용한다. 이 영화에서는 은행 내부에서 사건이 주로 발생하나, 항공 촬영 등을 통해서 이곳이 구체적으로 뉴욕이라는 리얼리티를 확고히 하고 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전당포 주인을 다룬 <전당포 The pawnbroker>(1965) 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전당포 내부에서 발생하나 외부를 보여줄 때는 흑백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것처럼 핸드헬드로 도시의 차가운 아스팔트를 보여주면서 이곳이 어디인지를 실감 나게 느끼게 해준다. 잘 만들어지고 리얼리티가 풍부한 전당포 내부에서는 카메라는 고정되고 안정된 숏들을 제공하나 야외의 장면들은 주인공의 집과 정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핸드헬드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의 장면이 없다면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려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52.png 이미지

그림 52. <개 같은 날의 오후>(1975) 2분 30초대 뉴욕 도시의 빌딩들, 전경의 공동묘지 비석들과 후경의 고층빌딩들이 수직으로 유사하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53.png 이미지

그림 53. <전당포>(1965) 113분대 다큐멘터리적인 거리 촬영, 도로 표지판까지 화면에 담겨서 이곳의 구체 적지도 상의 좌표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뉴욕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 존 카사베테츠 (1929-1989)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연결되지 않는 공간들로 구성된 클로즈업으로, 강한 감화적 분위기를 풍기면서 영화를 시작한다[58].

<그림자들 shadows>(1959)는 파티를 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뉴욕의 길거리를 걷는 인물을 핸드헬드로 보여주고는 카페에 모인 사람들도 이어진다. <얼굴들 Faces>(1968)도 회사에 걸어들어오는 사장을 핸드헬드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타이틀이 나온 뒤 4분대에 잠깐 심야의 주택가를 보여주는 것 외에는 집, 카바레, 등 실내로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카사베테츠는 연결되지 않은 공간들로 구성하는데 강한 정서적 단조로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칼라 영화인 <어느 중국인 마권 업자 살인 the Killing of a Chinese Bookie>(1976)는 낮의 거리에서 시작은 하나 인물을 따라가는 타이트한 숏으로 인해서 지정학적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렵고 곧바로 실내와 밤의 클럽으로 이어지며 공간들은 파편화된다. <너무 늦은 블루스 Too Late Blues>(1961)의 경우도 블루스 밴드의 음악을 듣는 흑인 아이들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밴드가 주로 머무는 술집, 파티장, 공연장 등 실내로만 영화가 구성된다. 유일하게 외부를 보여주는 장면도 34분대 야구장인 있는 공원에서 곡을 연주하는 밴드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여기서도 설정숏 다음에 바로 타이트한 인물 단독으로 이어지는 등 구체적으로 이 공원이 어디에 있음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실내 공간은 세트들도 많이 사용되었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54.png 이미지

그림 54. < 너무 늦은 블루스>(1961) 55분대 공원에서 연주 장면 익스트림 롱샷과 클로즈업이 음악으로 연결된다.

카사베테츠는 하나의 감화 이미지에서 다른 감화 이미지로 나아간다.

그는 시공간의 좌표에서 추출한 얼굴이나, 완전하게 실현된 것 이상으로 나아간 사건들처럼, 공간을 해체한다. 이때 사건들은 질질 끌거나, 해소되기도 하고 너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글로리아 Gloria>(1980)의 57분대에서, 기차역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글로리아와 소년의 뒤편으로 후경에 보이는 좌석에 여자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이나 관객의 주의를 끌지는 않는다. 소년과 글로리아가 대사를 주고받는 동안에 그 뒷좌석의 손님들은 일어나서 나가고 다시 소년과 글로리아의 숏들이 있고 난 뒤 다시 글로리아의 뒷모습을 전경에 두고 후경의 뒷좌석이 보일 때에는 이미 험상궂은 남자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계속 글로리아와 소년에게 주의를 기울이느라 그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나 글로리아가 일어나서 뒷좌석으로 가서 갱들을 상대할 때 비로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들은 마치 그 장소에 글로리아가 있는 시간 내내 있는 듯이 보이거나, 아니면, 장소 그 자체의 좌표가 갑자기 바뀌어서, 그 장소가 글로리아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장소가 아니든가, 아니면 같은 장소인데 무규정 공간인가 의문을 자아낸다. 이번에는 텅 빈 공간이 갑자기 가득 채워진 것이다[46].

CCTHCV_2021_v21n12_765_f0055.png 이미지

그림 55. <글로리아>(1980) 57분대

(왼쪽 위: 글로리아와 소년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성들이 일어나서 자리를 비운다.)

(오른쪽 위, 왼쪽 아래: 소년이 아이스크림을 재촉할 때 뒷좌석에는 남자들이 와서 앉는다.)

(오른쪽 아래: 글로리아가 그들에게 다가가 협상을 시도한다.)

9. 무규정 공간의 정점: 실험영화, 마이클 스노우와마그리드 뒤라스

무규정 공간은 액션 나레티브와 확실한 장소들에 대한 지각에서 벗어나 있는 실험영화들에서 빈번히 볼 수 있다. 실험영화가 인간 이전 혹은 인간 이후의 지각을 추구한다면, 마찬가지로 공간에 대해서도 인간이 부여한 좌표에서 해방된 무규정 공간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들뢰즈는 무규정 공간이 극대화되어 드러나는 영화들을 실험영화에서 찾는다. 마이클 스노우의 <중심지대 La Région Centrale>(1971)는 지각을 가공되지 않고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물질의 보편적 변주로까지 끌어 올리면서 동시에, 그 물질에서 땅과 하늘, 수평과 수직이 교차되는,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체적 기준점들이 없는 공간을 추출해내고 있다[60]. <중심지대>(1971)는 저울추와 같은 장치에 카메라를 매달아서 상하, 좌우 회전 운동에서 얻어지는 이미지와 전자음으로 영상을 구성하고 있다. 문명의 흔적은 카메라를 매달은 장비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간혹 들리는 사람의 말소리뿐이고 나머지는 황량한 대지이다.

CCTHCV_2021_v21n12_765_f0056.png 이미지

그림 56. <중심지대>(1971) 52분대

마이클 스노우의 <파장 wavelength>(1967) 은 실내에서 창밖을 향한 카메라가 줌인과 색상변환, 네거티브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사운드로는 전자음을 들려주고 마지막에서는 창가 벽에 걸려있는 파도의 이미지를 보여준다[61]. <파장>(1967)은 45분간 한쪽 벽에서 다른 쪽 벽까지의 방을 탐색하기 위해서 줌인을 한다. 맞은편 벽에는 바다를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이 방에서 마이클 스노우는 잠재적 공간을 추출해내는데, 이 공간의 힘과 질은 마이클 스노우가 점진적으로 고갈시켜 나간다. 그러는 사이, 방은 서서히 공간(낮 동안, 밤에, 칼라톤을 사용할 필름, 필터를 사용하거나 때로는 네거티브필름으로)을 닫는다. 마이클 스노우에 따르면, 방(방과 줌)은 죽음을 포함하여 4가지 인간이 개입하는 사건으로 중간중간 멈추어 선다. 이때 음향은 1초에 50 사이클의 가장 낮은 음에서 1초에 12000 사이클의 가장 높은 음으로 지속되는 사인파와 동조음향, 음악과 대화로 구성된다. 여자가 책장을 옮기는 것을 지시하고 나중에 다른 여자와 돌아와서 라디오를 듣는다. 비틀스의 노래 “strawberry fields forever”의 몇 구절이 흘러나온다. 영화 중반에 한 남자가 외화면 공간에 있는 문의 유리를 깨뜨리고 층계를 오른다. 우리에게는 외화면 사운드로 들린다. 그 남자는 방의 바닥에 쓰러지는데 카메라의 렌즈는 이미 방의 절반을 건너가고 있어서 우리는 잠시 그를 볼 뿐이다. 카메라는 그를 지나치고, 한 여자가 돌아와서, 화면 전체를 채우는 후방 벽에 있는 전화로 가고, 리처드라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안에 시체가 있다고 전한다. 이때 여자가 여자의 모습은 비연속적 섬광의 흑백화면으로 마치 유령 이미지처럼 보여진다. 그 후 카메라는 벽에 걸려있는 정적인 바다로 향하는데 이는 열린 공간에서 차원적 환영의 총체적 경험에 대한 은유이다[47].

공간은 다시 텅 빈 바다로 들어서는데 무규정 공간의 구성 요소들, 즉 그림자들, 화이트, 색채, 거침없이 계속되는 진전, 거침없는 축소와 환원, 기준평면에 수직하고각을 표현하려는 벡터를 포함한 앙각 면 elevetion plane, 분리된 부분들, 텅 빈 세트, 이것들이 모두 아담스 시트니가 정의한 구조영화 structural film’에서 작동한다[63].

CCTHCV_2021_v21n12_765_f0057.png 이미지

그림 57. <파장>(1967)

마그리드 뒤라스의 <아가타 혹은 끝없는 독서 Agatha And The Limitless Readings (Agatha et les lectures illimitées)>(1981)은 남녀의 해설 나레이션과 텅 빈 바닷가 주변 공간의 숏들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설정을 설명하는 스크롤 자막으로 시작하여, 여자의 보이스오버 속에 실내에서 바닷가가 보이는 문을 비춰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좀 더 문틀에 다가간 다음숏에서 우리는 겨울 바닷가의 한적한 모습을 보게 된다. 여자와 남자의 보이스오버는 서로 간에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과거 어린 시절의 일화 등을 회상한다. 계속 이미지는 텅 빈 정지된 바닷가와 주변의 건물, 상가, 길거리, 호텔 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9분대에 우리는 화자로 추정되는 여자를 보게 되고, 그 여자가 언급하는 남자가 문밖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4분대에는 거울에 반사되어 촬영하는 스태프와 카메라가 보이며 여자주인공도 프레임 내에 등장한다. 때로는 180도에 가까운 패닝으로 때로는 극단적인 틸트 업으로, 그리고 대부분은 정지된 텅 빈 공간들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끝부분에서 우리는 나레이션을 통해서 이 남녀가 같은 어머니를 둔 남녀로 근친상간의 관계임을 알게 된다[64].

CCTHCV_2021_v21n12_765_f0058.png 이미지

그림 58. (1981) 시작 부분 자막과 문 정지 숏

CCTHCV_2021_v21n12_765_f0059.png 이미지

그림 59. (1981) 시작 부분 문을 통해서 보이는 바닷가 풍경과 수평선

CCTHCV_2021_v21n12_765_f0060.png 이미지

그림 60. (1981) 9분대 여자와 남자의 첫 등장

CCTHCV_2021_v21n12_765_f0061.png 이미지

그림 61. (1981)

(왼쪽: 24분대, 카메라와 촬영 스태프가 거울을 통해서 보이고 여자는 앞에서 움직인다.)

(오른쪽: 60분대, 하나의 프레임에 있는 남자와 여자)

Ⅳ. 맺는말

노엘 버치는 인접한 두 개의 숏을 잇는 방법을 시간을 기준으로는 5가지로, 공간을 기준으로는 3가지를 제시한다. 공간을 기준으로는 두 개의 숏 사이에 공간적 연속성이 유지되는 경우(Spatial continuity) , 공간 연속성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Spatial Discontinuity), 그리고 완벽하고 급진적으로 공간적 불연속성이 발생하는 경우(Complete & Radical Spacial Discontinuity로 나눴다. 시간을 기준으로는, 완벽하게 시간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경우(Absolutely Continuous Two Shots), 두 개의 숏 사이에 시간의 생략이 조금 있는 경우 (Temporal Ellipsis, Time Abridgment), 어느 정도 생략이 이뤄졌는지 알기 힘든 경우(Indefinite Ellipsis), 시간의 역전(Time Reversal), 제한 없는 시간 역전 (Indefinite Time Reversal ), 이렇게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시간과 공간을 모두 고려한다면, 두 개의 숏을 잇는 방법에는 15가지가 있게 된다[48].

여기에는 프레임의 사이즈나 카메라 움직임 등은 배제한 조건에서다. 공간의 파편화는 불연속적인 공간에서부터 시작되고, 시간의 파편화는 약한 생략과 축약에서부터 시작된다. 파편화와 탈 프레임화는 공간적 비연속성과 시간의 비연속성의 결합에 의해서 이뤄진다. 16 세기 이후 회화에서 원근법이 지배 이데올로기였다면,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들은 원근법 이전의 그림들에서 해답을 찾거나, 탈 프레임화와 다중 시점의 도입 등을 통해서 이뤄진다. 고전적 할리우드 콘티뉴어티 시스템이 영화 만들기에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라면, 이에 대한 도전은 초창기 영화의 재발견과 파편화와 불연속성을 통해서 이뤄진다. 최근의 할리우드 경향이 고전적 콘티뉴어티 시스템의 쇠퇴가 아니냐는 의견들이 있으나, 데이비드 보드웰은 할리우드 콘티뉴어티 시스템에서 일부만이 강하게 사용되는 강화된 콘티뉴어티 Intensified continuity) 시스템 이라고 보았다. 빠른 편집, 극단적인 광각과 망원렌즈의 사용, 클로즈 숏을통한 타이트한 프레임 구성, 움직이는 카메라의 사용 등의 현상은 TV나 스마트폰 등 시청 환경의 변화, 디지털 편집과 디지털 시네마 등 제작 환경의 변화와 함께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혁신의 결과로서 고전적 할리우드 이후라기보다는 특정 몇몇 것들을 집중해서 사용하는 양상이라고 보았다[49].

81세의 에릭 로메르(1920-2010)가 만든 첫 디지털영화 <영국인과 공작 the lady and the duke>(2001) 에서는 18세기 회화를 닮은 배경과 블루 스크린으로 촬영된 배우들의 결합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배경의 원근법이나 구도상의 불일치가 발생하여, 실제 공간에서의 느낌보다는 회화적 공간과 영화적 공간이 결합된 듯한 느낌을 제공한다. 마치 회화 속에 인물이 덧붙여진 느낌을 준다. 그런가 하면, 최근의 영화들은 연기자들이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고, 나중에 실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거나, 그림으로 만들어진 VFX 배경과 결합하게 되는데, 이 경우 엄격하게 원근법과 180도 라인 등을 지켜서 마치 실사 촬영인 것처럼 리얼리티를 제공하고자 하는 경우도 많다. <기생충>(2019) 의 경우에서처럼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마치 어딘가에 실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잠재적인 것이 가상의 virtual 공간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무규정 공간은 단순히 파편화되고 탈 프레임화된 공간만은 아니다. 감화 이미지를 가져오는 그러한 공간은 들뢰즈가 브레송 영화의 다섯 가지 인물 유형을 다루듯이, 선택에 관한 철학적 문제와 감독의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글의 목표는 이것은 무규정 공간이다, 아니다, 혹은 이렇게 하면 무규정 공간을 만들 수있다에 있지 않다. 무규정 공간을 담아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은 관객의 마음속에 살아남아서 수많은 영화 속에 한 영화로 혹은 수많은 이미지 중에 튀어나온 이미지로 존재하여야 무규정 공간이 된다고 본다. 단순한 소매치기 이야기를 신앙과 선택, 구원의 문제로 승화시키고, 영화 자체를 우뚝 서게 하여 초월적인 스타일[50]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감독의 철학적 고민과 함께 그를 표출하는 연출 스타일이 있어서다. 이미지로 사고하는 여행을 통해서 보다 풍부한 연출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들뢰즈는 제시하고 있다. 미넬리의 영화 중 <멜린다 Melinda>로 들뢰즈가언급한 영화는 뮤지컬 <맑은 날 영원히 볼 수 있으리 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ever>(1970)이고, <마법사들 Les Ensorceles>은 <배드 앤 뷰티 the bad and the Beautiful>(1952) 임을 확인하였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비롯한 프랑스에서의 미넬리 감독에 대한 작가주의적 접근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들뢰즈가 감독 이름만 언급하고 작품명을 밝히지 않은 마뉴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는 <프란시스카 Francisca>(1981) 임을 또한 확인하였다.

References

  1.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2011.
  2. 질 들뢰즈, 유진상 역, 시네마 1: 운동 이미지, 시각과 언어, p.195, 2002.
  3. 질 들뢰즈, 유진상 역, 시네마 1: 운동 이미지, 시각과 언어, p.416, 2002.
  4. 김정호, 김재성, "들뢰즈의 프레임: 영화제작 관점에서 읽기,"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19권, 제11호, pp.527-548, 2019. https://doi.org/10.5392/JKCA.2019.19.11.527
  5.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391, 2011.
  6. D. Deamer, Deleuze's Cinema Books, Edingburgh Univ.press, pp.59-85, 2016.
  7.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33, 2011.
  8.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02, 2011.
  9. S. Viega, "Toward a Cinematic Pedagogy: Gilles Deleuze and Manoel de Oliveira," the journal of Aesthetic Education, Vol.50, No.1, p.114, 2016. https://doi.org/10.5406/jaesteduc.50.4.0114
  10.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04, 2011.
  11.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05, 2011.
  12.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09, 2011.
  13.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10, 2011.
  14.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11, 2011.
  15.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12, 2011.
  16.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14, 2011.
  17. F. Viera, Lighting for Film and Electronic Cinematography, Wadsworth Inc. p.9, 1993.
  18.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17, 2011.
  19. https://www.youtube.com/watch?v=CoXxIyF93Z4, 2021.8.2.
  20. L. H. Eisner, Haunted Screen: Expressionism in the German Cinema and the Influence of Max Reinhardt,first published in France 1952, California Press, p.136, 2008.
  21.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18, 2011.
  22.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25, 2011.
  23. 토마스 V. 모리스, 유자화 외 역, 파스칼의 질문, 필로소픽, pp.144-165, 2012.
  24. 블레이즈 파스칼, 정봉구역, 팡세, 올재, pp.125-159, 2013.
  25. 로베르 브레송, 오일환 외 역,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동문선, 2003.
  26. 미렐라 조나 아프론, 최윤나 역, 브레송과 파스칼: 수사학적 유사성, 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테크 부산, pp.209-238, 2003.
  27.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21, 2011.
  28. 도날드 파머, 정영은 역, 키에르케고르 실존극장, 필로소픽, p.124, 2016.
  29. 도날드 파머, 정영은 역, 키에르케고르 실존극장, 필로소픽, p.17, 2016.
  30.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24, 2011.
  31.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26, 2011.
  32.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27, 2011.
  33. J. Douchet, "The Red and the Green: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Cahiers du cinema, Vol.129, pp.43, 1962.
  34. B. Krohn, Specters at the Feast: French Viewpoints on Minnelli's Comedies, Vincente Minnelli: The Art of Entertainment, Wayne State Univ. press, Detroit, p.59, 2009.
  35. 질 들뢰즈, 이정하 역, 시네마 2: 시간-이미지, 시각과 언어, p.130, 2005.
  36. J. Douchet, "The Red and the Green: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Cahiers du cinema, Vol.129, pp.44-49, 1962.
  37.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28, 2011.
  38. S. Bukatman, Brushstrokes in CinemaScope: Minnelli's Action Painting in Lust for Life, Vincente Minnelli: The Art of Entertainment, Wayne State Univ. press, Detroit, p.302, 2009.
  39. S. Bukatman, Brushstrokes in CinemaScope: Minnelli's Action Painting in Lust for Life, Vincente Minnelli: The Art of Entertainment, Wayne State Univ. press, Detroit, p.304, 2009.
  40. S. Bukatman, Brushstrokes in CinemaScope: Minnelli's Action Painting in Lust for Life, Vincente Minnelli: The Art of Entertainment, Wayne State Univ. press, Detroit, p.305, 2009.
  41. S. Bukatman, Brushstrokes in CinemaScope: Minnelli's Action Painting in Lust for Life, Vincente Minnelli: The Art of Entertainment, Wayne State Univ. press, Detroit, p.306, 2009.
  42. S. Bukatman, Brushstrokes in CinemaScope: Minnelli's Action Painting in Lust for Life, Vincente Minnelli: The Art of Entertainment, Wayne State Univ press, Detroit, p.314, 2009.
  43. 파스칼 보니체, 김건, 홍영주 역, 비가시 영역: 영화적 리얼리즘에 관하여, 도서 출판 정주, p.83, 2001.
  44.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30, 2011.
  45.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31, 2011.
  46. 질 들뢰즈, 주은우, 정원 역, 영화: 운동 이미지, 개정판, 새길, p.232, 2011.
  47. 아담스 시트니, 박동현 역, 시각 영화, 평사리, pp.429-430, 2002.
  48. 노엘 버치, 이윤경 역, 영화의 실천, 아카넷, pp.23-42, 2013.
  49. D. Boardwell, The way Hollywood Tells it, California Press, pp.121-189, 2006.
  50. P. Schrader, Transcendental Style In Film: Ozu, Bresson, Dreyer, Da Capo Press,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