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통계청의 2016년 고령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7,257,000천 명으로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초과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1]. 현재의 노인인구 증가추이로 미루어 2026년에는 고령인구비율이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약 9년으로, 독일(37년), 미국(21년), 일본(12년)과 비교해볼 때 매우 빠른 속도다. 초고령사회는 지금까지 사회가 감당해 온 문제들과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는데, 치매가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를 69만 명으로 추산하고 2030년에는 127만 명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2]. 그러나 아직까지 치매에 대한 인식 부재, 인프라 부족 등으로 조기진단과 치료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 상당수의 환자가 적절한 진단이나 치료 없이 단순 보호 또는 방치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노인복지법에 치매의 정의를 신설하고 보건소에 치매상담센터를 설치하였으며 치매종합관리대책(2008–2014) 수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국가 차원의 치매관리를 시작하였다. 2012년에는 치매를 별도로 관리하기 위한 치매관리법이 제정되었으며, 법에 따라 정부는 국가치매관리위원회 구성 및 운영, 제1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2013–2015) 및 제2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 수립, 중앙치매센터의 설치 등을 통해 치매정책을 추진해왔다[2].
2017년 9월 18일 발표된 치매 국가책임제의 내용을 살펴보면, (1) 일대일 맞춤형 사례관리, (2) 장기요양서비스 확대, (3) 치매 환자 의료지원 강화, (4) 요양비·의료비 부담 완화, (5)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 (6) 연구개발 지원, (7) 치매정책 행정체계 정비가 포함되어 있다. 계획 시행을 위해 전국 252개 보건소에는 상담, 검진, 관리, 서비스 연결까지 통합적 지원을 담당하는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고 상담과 사례관리 내역은 치매노인등록관리시스템을 통해 전국 어느 곳에서나 연속적으로 관리된다. 치매안심센터 시설 내부에는 치매 단기쉼터와 치매 카페가 만들어져 치매 초기 환자의 안정화와 치매 가족의 정서적 지지를 지원한다. 치매로 진단되어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대상자는 인지활동프로그램이나 가정방문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으며, 확충되는 치매 안심형 주야간보호시설, 입소시설, 치매 전문 안심요양병원의 이용이 가능해진다. 대상자의 자격기준은 신체기능이 양호한 경증 치매 노인까지 확대되며, 의료비 본인부담률은 10% 수준으로 인하된다. 의료비에서는 치매 확진검사를 위한 검사비가, 장기요양비에서는 본인부담금과 복지용구비 부담이 순차적으로 경감된다. 그밖에도 치매 친화적 사회환경 조성을 위해 노인 여가시설인 노인복지관에 치매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66세부터 2년 주기로 국가건강검진에서 인지기능검사를 제공한다. 치매가족휴가제, 치매어르신실종예방사업, 치매노인공공 후견인제도도 도입된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국가치매연구개발위원회를 통해 국가 치매 연구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 치매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정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보건복지부 내에 치매정책 전담부서인 치매정책과를 설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사업에 국고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정부가 치매안심센터, 치매안심형 시설, 치매전문 안심병원이라는 시설 인프라와 연구개발 및 정책추진의 근거 확보를 위한 제도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점이다. 다른한편이용자의의료비, 장기요양비부담이줄어들며치매관리는 기반시설 설치부터 서비스 이용요금까지 문자 그대로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가 되었다. 이는 국민들의 치매 의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공적 부문 공급 위주 정책으로 추진된다는 근본적 문제로부터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전반적으로 치매 환자 본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접근보다는 보호자의 돌봄 부담 경감에 초점이 맞춰진점은 현행제도가 치매노인을‘지역사회 주민’으로인식하기 보다는 ‘환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치매 노인을 환자로 규정함으로 인해 그 치료와 돌봄의 사회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공적 의료체계로 떠넘겨진다. 둘째, 치료와 돌봄의 경로에서 보건소가 조정(coordination)의 중심기관 역할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수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치매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적 지원의 보장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며, 동시에 장기요양 등일상적 지원에 대한 전문성도 확보하지 못하여 투입 비용 대비 효과성과 지속 가능성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방법
1. 연구목적
본고는 우리나라 치매관리제도의 본격적인 출발 시점에서 일본 치매관리제도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 후 일본 쿠마모토 지역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 시사점을 통해 우리나라 치매관리체계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연구방법
연구자는 일본 치매관리제도에 대한 주요 문건을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를 통해 수집, 검토하고 우수사례로 소개된 쿠마모토현 쿠마모토시의 쿠마모토 모델 시행 주요 기관을 2018년 3월 6–7일 방문하였다. 방문기관은 쿠마모토현 기간형 인지증질환의료센터인 현립쿠마모토대학의학부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쿠마모토현 인지증 환자 콜센터, 공익사단법인 인지증환자가족협회 인지증 카페, 쿠마모토현 내 의료복지법인 미츠구동산 데이케어센터, 인지증요양센터, 진료소이다. 각 방문기관에서 기관 책임자와 실무자에 대한 비구조화된 집단 인터뷰를 각각 수행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인터뷰 대상자는 총 4개 집단, 10명이었다(Table 1). 인터뷰는 일본어로 진행되었으며 원활한 진행을 위해 통역사를 배치하였고, 인터뷰 시간은 각각 2–3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Table 1. List of interviewees
결과
1. 일본 신오렌지플랜(新オレンジプラン)의 주요 내용
일본은 1970년 고령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7%를 초과하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으며 24년 후인 1994년 고령사회로, 다시 12년 후인 2006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인지증(認知症)1) 노인 수는 2012년 기준 462만 명으로, 베이비붐세대가 75세 이상이 되는 2025년에는 약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3]. 이는 65세 이상 노인의 약 5명 중 1명에 달하는 수치다. 일본 정부는 2006년 개호보험법의 목적에 ‘고령자의 존엄 유지’를 추가하여 개정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인지증 환자 지원을 시작하였고, 2012년에는 다시 ‘인지증에 관한 조사연구’를 포함한 재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향후 인지증 시책의 방향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2013년, 인지증 발생 후에도 노인이 익숙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지증 시책 추진 5개년 계획(오렌지플랜)’이 수립되었다[4]. 이는 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의료시설 입원이나 요양시설 입소보다는 거주하던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재택 생활지원서비스 지원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표준 인지증 케어 경로(dementia care path)’를 구축하고, 그 실행 전략으로 (1) 표준적인 인지증 케어 경로의 작성 및 보급, (2) 조기진단 및 조기대응, (3) 지역에서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의료서비스 구축, (4) 지역에서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개호서비스 구축, (5) 지역에서의 일상생활 및 가족 지원 강화, (6) 초로기 인지증 정책 강화, (7) 의료 및 개호서비스를 담당할 인재 육성을 추진하였다. 해당 계획의 시행을 위해서는 감별진단과 전문의료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지역보건및의료관계자와의협력역할을수행하는인지증의료센터 (Medical Center for Dementia)가 설치되었으며, 2014년 기준 전국 280개로 보고되었다. 이러한 오렌지플랜의 시행결과 일본의 인지증 케어는 국공립병원과 민간 비영리기관(non profit organization)의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는 기본 틀에 인지증의료센터를 중심으로 의료, 개호, 지역사회가 연계하여 각 지역특성에 맞는 경로와 서비스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인재 육성과 초로기 인지증 같이 당장 대응이 어려운 거시적 비전은 장기적 계획에 따라 국가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2014년 11월 도쿄에서 개최된 인지증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초로 인지증 시책을 국가 종합전략으로서 수립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인 대응을 위해 오렌지플랜의 보완전략을 조기에 수립하였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015년 1월 발표된 ‘인지증 시책 추진 종합전략(신오렌지플랜)’은 내각 관방, 내각부, 경찰청, 금융기관청, 소비자청, 총무성, 법무성, 문부과학성, 농림수산성, 경제산업성, 국토교통성 총 11개의 부처가 관여한 국가적 전략으로 규모가 커지며, ‘인지증 노인에 좋은 지역 만들기’를 위한 7개의 추진전략을 포함하게 되었다[5].
각 추진전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지증에 대한 이해를 위한 보급·계발의 추진’은 인지증을 모두에게 익숙한 질병으로 사회 내 인식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인지증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인지증 서포터 양성교육을 시정촌이나 직장 등에서 실시하여 2017년까지 약 800만 명의 교육 이수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인지증의 상태에 따라 적시에·적절한 의료·개호 등의 제공’은 기존 오렌지플랜 추진계획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자기주체성’을 기본으로 한 의료·개호 등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인지증의 상태 변화에 따라 가장 적절한 의료·개호 등이 순환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건강한 노인에서는 발병예방을 위한 운동, 구강기능 향상, 취미활동 등을 장려하고 조기진단·조기 대응을 위해 인지증질환 의료센터 설치, 인지증 서포트 의사 양성을 추진한다. 환자의 경우 증상 발생 초기부터 중기까지는 익숙한 지역사회에서 기존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말기에도 환자의 존엄을 존중한다. (3) ‘젊은 인지증 시책의 강화’는 65세 미만에서 발병하는 ‘청장년성 인지증’ 환자(4만 명으로 추정)의 종합적 지원을 강구한다는 내용이다. 이들 젊은 연령대의 인지증 환자들은 개호보험의 대상자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취업이나 경제적 문제에 대한 지원을 위해 사회복지서비스와의 연계가 추진된다. (4) ‘인지증 환자의 보호자에 대한 지원’은 가족 등 간병인의 정신적 신체적 부담의 경감과 생활개호의 양립을 지원하여 인지증 환자의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인지증 카페 등의 설치를 추진하고 간호로봇 등의 개발을 지원한다. (5) ‘인지증 환자를 포함한 고령자 친화적 지역 만들기 추진’은 서비스 고령자용 주택 등 다양한 노인 주거 확보 지원, 대중교통시설이나 건축물 등의 베리어 프리 (barrier free) 추진, 대중교통 보충에 의한 고령자의 이동수단의 확보 추진 등 환경정비와 가사활동 지원과 같은 서비스 지원, 안전 확보, 취업과 사회참여 지원을 모두 포괄한다. (6) ‘인지증 예방법, 진단법, 치료, 재활모델·개호모델 등 연구개발 및 그 성과의 보급 추진’은 인지증의 원인이 되는 질환 각각의 병태, 행동·심리증상(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BPSD)의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인지증 예방법, 진단법, 치료, 재활모델, 간호모델 등의 연구개발을 추진한다. 이들 6개 전략의 기반에는 ‘인지증 환자와 그 가족의 관점의 중시’라는 이념을 전체 정책 추진의 비전으로 제시하여 해당 정책이 단순한 서비스의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관점을 고려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오렌지플랜과 비교할 때 신오렌지플랜은 지역사회 역할 수행의 영역을 일차의료와 개호서비스 지원의 공간으로서뿐만 아니라 보호자 지원, 인식 개선, 환경정비 및 사회서비스 제공으로 확대 제시한다. 또 세부전략에서 의료와 개호의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정신과 의료와의 연계 추진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어 이를 계기로 정신과 의료가 인지증 정책에서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Table 2). 연구 개발 추진과 사각지대의 환자인 청장년층 인지증 환자를 의료보험과 사회복지제도로 지원하는 전략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Table 2. Comparison on policy area between ‘Orange Plan’ and ‘New Orange Plan’
2. 쿠마모토 지역 사례
복수보험자 사회보험방식의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은 피용자보험(직장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농립수산업 종사자, 자영업자, 소규모사업소의피용자나무직자에대한국민건강보험을 지역의 시정촌에서 운영, 제공한다. 따라서 의료나 개호에 대해 보험자인 각 시·정·촌(市·丁·寸)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세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쿠마모토현 역시 중앙부처의 전략 목표 달성을 위한 지역사업의 세부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 시행해왔다.
쿠마모토 지역의 인지증 관련 사업은 1989년 발표된 ‘고령자보건복지추진 10개년 전략(일명 골드플랜)’에 기반하여 노인성인지증 질환센터를 설치한 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6]. 1994년 ‘신(新) 골드플랜’에 이어 2000년 ‘골드플랜21’이 수립되며 개호보험법이 제정되고 성년후견인제도가 도입되는 등 노인의 권위가 강화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2005년 인지증서포트 의사 양성 연수, 2006년 가정의 인지증 대응력 향상 연수를 개시하였고 2008년 현재의 인지증질환의료센터를 설치하여 인지증 의료와 생활의 질을 높이는 긴급 프로젝트를 실시한 바 있다. 2009년 현청 내에 인지증 대책 지역 지원 추진실을 설치하였으며, 2010년 인지증 대책 지역 케어 추진을 위해 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오렌지플랜과 신오렌지플랜이 추진되면서 쿠마모토현은 지역특성을 반영한 독자적인 인지증관리체계 모델인 쿠마모토 모델을 개발하였다. 2015년 노인 보건사업 추진비 등 보조금(노인 보건건강증진 등 사업 분) 사업으로 수행된 치매질환 의료센터의 실태에 관한 조사연구 사업보고서는 쿠마모토 모델을 전국 13개의 우수사례 중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쿠마모토 모델이란 정신과 의료와 개호의 효과적 연계를 통해 인지증의 조기진단, 감별진단, 치료를 제공하는 모형이다[6]. 현 전체를 통괄하는 기간(基幹)형 센터(인지증질환의료센터 1개소)와 현 내 각 지역에서 거점기능을 담당하는 지역형 센터(2차 의료기관 10개소, 1차 의료기관-클리닉형 1개소)2)라는 2개 층위 구조를 기초로 하고 인재육성과 지역사회 연계를 통해 지역의 인지증 전문의와 가정의를 연계하는 3번째 층위가 이를 지원한다(Figure 1).
Figure 1. Structure of Kumamoto Model.
모델의 구성요소별 인지증 케어 역할은 다음과 같다(Figure 2). 모델의 중심인 기간형 인지증질환의료센터는 현립쿠마모토대학의 학부부속병원 신경정신과3)에 설치되어 인지증 전문의료 제공, 개호서비스사업소 등의 관계기관 연계를 담당하는 중추 핵심역할을 수행한다. 해당 센터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인지증의 전문적 치료로 진단검사장비를 갖추고 고도화된 치료가 가능한 상급병원으로서 의원이나 2차 의료기관에서 의뢰되는 진단이 어려운 환자, 중증 기저질환을 동반한 환자 등에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는 현 내 거점지역에 설치된 지역형 센터에 대한 관리로, 매주 전문의를 파견하여 각 센터의 운영현황을 확인하고 표준화된 전문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례 검토회를 실시한다. 사례검토회는 연 6회 개최되는데, 매회 3–4건의 사례검토와 인지증 연구에 대한 강의로 이루어진다. 현재까지 총 44회, 127건의 사례를 검토하였으며, 기간형 센터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통해 일반적 사례뿐만 아니라 특수 사례에서도 인지증의 진단과 치료를 표준화하였다. 셋째는 전문의료진 양성과 교육이다. 지역사회의 가정의(우리나라의 의원급의료기관)에게 2010년부터 공통교육 이외에도 자체적인 인지증 증상 대응력 향상 연수를 제공하여 현재까지 기본교육 이수자 706명과 추가연수 이수자 266명을 확보하였다. ‘인지증서포트의사’에게는 2011년부터 지역연계 전문연수를 제공하는데, 연수프로그램에는 인지증의 진단, 치료, 관리뿐 아니라 연계와 관련된 행정절차, 포괄지원센터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까지 기본교육 이수자는 153명 추가연수 이수자는 190명이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정신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 등 인지증 치료와 관련된 다직종 전문가의 기술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정기적인 양성 강좌도 2012년부터 제공하고 있다[7].
Figure 2. Dementia care service system in Kumamoto Model. 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모델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형 센터(2차의료기관)의 기능은 지역 내의 급성, 만성 중증 사례의 치료와 지역사회 연계를 포괄한다. 특히 인지증 발생 초기 환자에게 입원 설득, 가족 지원, 초기 치료 등을 제공하며 급성기 환자와 관련된 긴급대응 일체를 책임지고있다. 치료가 어려운 만성형 환자의 경우 입원치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급성기 증상이 완화되었거나 지역사회에서 관리가 가능한 경증 인지증 환자의 경우 환자의 증상에 따라 개호서비스가 연계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동시에 의료자문을 제공한다. 이들 지역형 센터에서는 치료의 표준화를 위해 자체 사례검토회를 실시하고 의무기록통계를 작성하며, 이는 현청에 정기적으로 보고된다. 각 센터의 운영비용은 국비와 지방비(현비)에서 각각 50%가 지원된다.
기간형 센터, 지역형 센터와 연계되어 작동하는 지역지원사업은 관청의 직접 사업 또는 위탁형 사업의 형태로 실현된다. 주요 사업으로는 초중등학교와 공공기관, 직장 등에서 인지증서포터의 양성 및 모니터링 활동, 인지증 카페 설치 지원, 콜센터 운영, 고령자 권리 옹호(성년후견제도등) 등이 있다.
인지증 서포터 양성은 2015년 발표된 신오렌지플랜의 주요 목표중 하나로 인지증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환자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인식개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6시간의 교육을 이수한 수료자는지지와옹호의의미를담은‘오렌지팔찌’를받을수있다. 쿠마모토현의 교육 이수자 수는 2017년 12월 기준 302,99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8].
인지증 카페란 인지증 환자나 그 가족이 지역주민, 전문가와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교류의 장소로 지역포괄지원센터 등에 설치되어 있다. 쿠마모토현 인지증 콜센터는 2009년 현청에서 설치, ‘공익사단법인 인지증 환자와 가족의 모임 쿠마모토현 지부‘가 위탁운영하고 있으며 주요 기능은 전화, 면담, 방문 상담을 통해 인지증 가족을 지원하는 것이다. 2016년 총 1,461건(월평균 22건)의상담이제공되었다. 상담사는전문가 1인, 환자가족 1인의 2인 1조 체제로 배치되며 상담 환자의 상태, 니즈를 고려하여 환자를기간형센터, 지역형센터, 지역포괄지원센터또는사회복지 자원으로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신오렌지플랜의 추진목표 중 하나인 ‘젊은 인지증’(청장년성 인지증)‘의 발견과 지원을 위해 2016년부터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청장년성인지증 코디네이터의 배치가 의무화되었는데, 쿠마모토현의 경우 콜센터를 통해 2014년부터 청장년성 인지증상담 및 지원사업을 실시해왔다[8].
지역사회에서 주민과 보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가정의는 진료소 방문 환자 또는 방문진료 환자의 감별진단 필요성을 확인하고 진단을 의뢰하거나 BPSD 증상에 대응한다. 지역사회 내 인지증전문의료기관은 2차병원으로부터 회송된 환자에게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의료서비스와 개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료-개호의 연계에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형태의 쿠마모토 모델의 효과는 정량적으로는 상담 건수, 신환자 수, 외래환자 수의 증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쿠마모토 모델이 본격적으로 정착되어 운영된 2010년을 기점으로 상담 건수는 전년도인 2009년 143건에서 471건으로 320% 증가하였으며 신환자는 106명에서 203명으로, 외래환자는 2,777명에서 3,200명으로 증가하였고 지속적으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Table 3). 정신과 의료가 중심이 되는 의료개호 연계체계의 이러한 성과는 신오렌지플렌이 발표될 당시 아직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높았던 일본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모형의 효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정성적 성과는 주로 교육훈련 분야에서 확인되었는데, 교육참여자로부터 인지증 진료의 기술 향상, 개별 스태프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확보, 센터 간의 연계 강화, 직종 간 이해 향상, 치료와 지원의 시야확대 등의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
Table 3. Number of consultations, new patients, outpatients of Central Dementia Medical Center for Kumamoto Model
쿠마모토 모델의 특징과 시사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쿠마모토 모델은 국공립대학 신경정신과가 모델 개발부터 운영까지 사업 전반에 대한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다. 고도 의료의 신속한 개입을 필요로 하는 인지증 케어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는 전문진료과의 중심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의료서비스의 표준화와 인재양성을 통해 현 내 모든 지역에서 질 높은 인지증의료서비스에접근할수있도록한것은민간의료기관이나관청이 수행할 수 없는 역할이다. 높아진 의료접근성은 지역사회의 의심환자를 조기에 신속하게 발견하게 하였으며 전반적인 인지증 관리체계 및 치료의 질 향상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운영하는 지자체와 보건소가 치매사업의 예산을 운용하는 주체로서 치매정책사업의 주요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으며 학계와 민간이 협력하는 형태의 거버넌스 모형이 구축되어 있다. 이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신속하게 활용하기에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가용자원의 확보도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치매의료에 대한 접근성이나 조기발견을 저해할 수 있다.
둘째, 쿠마모토 모델의 개발부터 운영 전반에서 중심이 되는 현립 쿠마모토대학 의학부부속병원 신경정신과는 코디네이션 전문가인 정신보건복지사4)를 활용하여 조정역할을 직접 수행한다. 정신보건복지사는 환자의 유입부터 의료기관과 환자를 연결하는 의료영역 내에서의 수직적 코디네이션을 전담한다. 또 지역사회에서 자원의 배치와 조정이라는 수평적 코디네이션 전담자인 지역포괄 지원센터의 케어매니저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의료영역 밖에서의 개호를 의료와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사례관리와 조정을 담당하는 상담/등록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자의 자격을 간호사, 사회복지사(1급), 임상심리사라는 전문가로 제한하고 있지만, 상담/등록관리팀의 설치가 의무화되어있지 않아 각 지자체는 여건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팀의 업무범위는 의료기관으로의 연계, 조정을 포함하지 않아 수평적 코디네이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이때 배치하는 자원은 치매 국가책임제 사업자원으로 한정된다. 지역사회의 사회서비스자원을 관리하는 동사무소 사례관리자와의 연계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조정기능의 발휘가 사업의 테두리 내로 제한됨에 따라 여전히 의료와 복지 사이에는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셋째, 정신과 진료를 꺼리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캠페인을 실시하고, 지역사회 내 치매 카페 등의 관련 시설을 설치하며, 콜센터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등 적극적 교육홍보정책을 시행하여 신오렌지플랜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토양을 확보한 것이다. 쿠마모토 모델 내에서 이것은 관청의 역할이었는데, 이러한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관청의 역할을 제한함으로써 민간 의료/개호복지 자원이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이는 치매에 대한 인식수준이 신오렌지플랜이 시행되기 이전의 일본과 비슷한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쿠마모토 모델 전반에서 인지증 환자는 사회로부터 구분되어 의료시설에 수용되어야 하는 사회적 타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복귀 가능한 주민의 일부로 전제되어 있다. 이는 지역사회가 인지증 환자 케어에 일정 부분 역할을 부담하고 수행하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의료기관에는 병상 수나 인력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 모델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한다. 치매 환자에 대한 의료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지역사회와 돌봄 책임을 공유함으로써 보험재정 절감과 동시에 공적 공급에 대한 부담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쿠마모토 모델은 ‘인지증 시책 추진 종합전략(신오렌지플랜)’에 기반하여 고도의 의료기능을 가진 국공립대학(기간형 센터)의 신경정신과를 중심으로 2차의료기관(지역형 센터)과 지역 1차의료기관으로 이어지는 고도 의료-지역사회 복귀의 양방향 의료전달체계를확보한의료-개호연계모델이다. 이는인지증환자의조기발견과 개입을 통해 임상적 치료성과를 도모하는 한편 일시적으로 고도화된 전문의료서비스의 제공을 필요로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일반적인 개호보험의 생활지원서비스가 요구되는 인지증 환자의 삶의 질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쿠마모토 모델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인지증(치매) 환자의 핵심적인 문제를 의학적 문제로 인식하고 가장 중요한 대응서비스가 의료서비스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둘째, 포괄서비스의 관리 주체를 대학병원(기간형), 지역사회병원(지역형)이 담당함으로써 단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이 아닌, 대학병원, 지역병원, 가정의를 포함하는 연계 체계를 통해 인지증 환자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를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셋째, 지역사회 공공기관은 공동의 돌봄을 위한 인식개선 및 참여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이다. 이는 보건소 중심의 치매안심센터를 코디네이션센터로 추진함으로써 거버넌스의 비효율성과 조정역할의 비현실성이 우려되는 우리나라 치매국가책임제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우리나라 치매관리체계 및 고령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커뮤니티 케어체계를 구상함에 있어 구마모토 모델이 갖는 의료서비스와 사회서비스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연계방식은 적극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감사의 글
이 연구는 서울대학교병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연구내용은 현립쿠마모토대학의학부속병원 하시모토교수님 이하 관계자분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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