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호남지역(湖南地域)의 왜계자료(倭系資料)와 전방후원형고분(前方後圓形古墳)

The Relics of Wae Lineage and the Keyhole-Shaped Mounds in the Honam Area

  • 투고 : 2018.03.30
  • 심사 : 2018.05.23
  • 발행 : 2018.06.30

초록

호남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한일 고고 고대사학 연구자 사이에서 항상 큰 관심을 받았던 지역이다. 근래 이 지역에서 왜계 고고자료 발견 사례가 양적 질적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선행 연구와 견해를 재검토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기존에 13기로 알려졌지만 최근 발견 사례가 17기까지 증가했다. 한 곳에서 3기가 조영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으며, 또 일본의 고분시대(古墳時代)를 특징짓는 형상식윤(形象埴輪)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호남지역 출토 왜계 고고자료에 대한 선행연구는 특정 자료나 특정 유적 유구에 한정된 사례가 많았다. 본고에서는 호남의 모든 왜계 고고자료를 대상으로 수량 고고자료의 종류 출토 위치를 파악한 후 그 변천을 추적하였다. 시기별 특징이나 변화상 등을 바탕으로 왜와 마한세력의 관계 의도 동향을 문헌 자료 등과 관련시켜 검토하였다. 호남지역 출토 왜계 고고자료는 5세기 전엽부터 증가 및 광범위한 분포를 보여주며 7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4세기 말~5세기 전엽에는 왜계 무구와 왜계 매장주체부, 5세기 중엽~후엽에는 수혜기(須惠器)(계(系)), 5세기 말~6세기 전엽에는 전방후원형 고분과 왜계 횡혈식석실, 6세기 중엽~7세기 초에는 왜계 무구 석침이 중심을 이루어 시기마다 양상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4세기 말~5세기 전엽의 왜계 고고자료에 대해서는 이 시기에 집중된 백제와 왜의 왕래 기사를 근거로 외교 사절단을 수행했을 무인계층과의 관련성을 상정했다. 5세기 중엽~후엽에는 수혜기(須惠器)(계(系)) 토기가 호남 내륙부로 확산되었다. 물자의 집적에 유리한 지점에서 주로 출토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전방후원형 고분의 피장자를 북구주(北九州) 제세력에 속한 왜인을 중심으로 한 교역자 집단으로 해석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대체로 기본적으로 기존 수장묘가 조영되지 않던 지역에서 특별한 세력 기반 없이 돌연 출현했다. 그러나 재지인의 협조 없이 전방후원형 고분을 축조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일본 현지와 호남지역 전방후원형 고분의 구축 기술 차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한편 일부 전방후원형 고분은 재지 수장묘와 동시기 아니면 직후에 조영되었다는 점에서 재지 집단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5세기 초 금관가야가 몰락하자 왜 제국(諸國)은 새로운 교섭 상대로 호남지역을 선택하였다. 그 배경에는 왜에서 구하기 어려운 (지하)자원이나 물자를 확보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약 200년에 걸쳐서 사용되고 매장된 호남지역의 왜계 고고자료는 왜인의 다양한 교섭 노력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From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ism up to the present, the researchers of archaeology and ancient history in Korea and Japan have paid much attention to the Honam area. Recently the ruins and relics of Wae lineage are often discovered at archaeological excavation sites in this region. In particular, at least 17 keyhole-shaped mounds were confirmed. The fact that three mounds were built on one site was newly revealed. Haniwa, a representative earthenware object of the Kofun period in Japan, was discovered as well. Therefore, the study of a historical meaning of archaeological materials about Wae lineage in the Honam area thus far must be reexamined. The ruins and relics of Wae lineage in the Honam area have been studied by selecting only specific cases. I identified all the ruins and relics of Wae lineage in the Honam area and analyzed the process of their change in this paper. I reviewed the relationship between Wae and Mahan, and the purpose of their negotiation based on archaeological characteristics, changing processes, and historical records on a quarterly basis. The ruins and relics of Wae lineage have increased and widely spread since the early period of the 5th century in the Honam area. This tendency continued until the late period of the 6th century. Weapons of Wae lineage were introduced and tombs in the style of Wae were built from the late 4th century to the early period of the 5th century (TG232~TK216 period). Sueki was introduced from the middle to late period of the 5th century (TK208~TK23 period). Keyhole-shaped mounds and tombs in the style of Wae were built from the late period of the 5th century to the early period of the 6th century (TK47~MT15 period). Japanese weapons were introduced from the middle to late period of the 6th century (TK10~TK209 period). In other words, the archaeological appearance is different in each quarterly period. There was an intensive diplomatic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Wae in the TG232~TK216 period. The military might be included in a mission of Wae. The materials of Wae lineage of this period are likely to be related to this. Sueki spread to the inland part of the Honam area in the TK208~TK23 period. This Sueki tends to be excavated on advantageous sites for the accumulation and distribution of supplies. The main characters of the keyhole-shaped mounds are presumed to be a group of traders which were under the control of a certain influence in the north of Kyushu. The keyhole-shaped mounds were abruptly built at some distance from mounds of the leaders in the Honam area. Additionally, there was no special influence base to which the characters of the keyhole-shaped mounds belonged in the surroundings. However, it might have been impossible for the group of traders to build the keyhole-shaped mounds without the support from the residents at all because there was a big difference in the building technology of the keyhole-shaped mounds between Japan and the Honam area. The time of building some keyhole-shaped mounds is the same or almost the same with that of the mounds built for the regional leaders. This proves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residents as well. What do the archaeological materials of Wae lineage which have been used and buried mean over 200 years in the Honam area? Geumgwan Gaya, which had exported iron resources to Japan, perished in the early period of the 5th century. Instead of Gaya, the Honam area might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to supply the necessary resources to Japan. We assume that the Japanese (Wae) actively worked to acquire various resources focusing on the underground resources in the Honam area.

키워드

참고문헌

  1. 三國志
  2. 三國史記
  3. 世宗東國與地勝覽
  4. 東國與地勝覽
  5. 大東輿地圖
  6. 林園經濟志
  7. 遊瑞石錄
  8. 日本書紀
  9. 國立羅州文化財硏究所, 2010, 羅州 伏岩里遺蹟 I
  10. 國立羅州文化財硏究所, 2017, 羅州 伏岩里 丁村古墳
  11. 國立文化財硏究所, 2001, 羅州 伏岩里 3號墳
  12. 權宅章, 2014, 高興 野幕古墳의 年代와 登場背景에 대한 檢討 古墳을 통해 본 湖南地域의 對外交流와 年代觀, 國立羅州文化財硏究所, pp.39-53
  13. 金奎運.金俊植, 2010, 韓半島 前方後圓墳과 倭系石室의 分布類型 檢討 韓國上古史學報 第70號, 韓國上古史學會, pp.69-98
  14. 金吉植, 2012, 百濟地域 橫穴墓의 鐵器副葬 習俗 및 葬法의 特徵과 系統 公州 丹芝里 橫穴式에 나타난 百濟의 國際性, 忠淸文化財硏究院, pp.171-212
  15. 金洛中, 2006, 6世紀 栄山江流域의 装飾大刀와 倭 羅州 伏岩里 3号墳과 栄山江流域 古代文化, 国立羅州文化財研究所, pp.55-101
  16. 金洛中, 2009, 榮山江流域 古墳 硏究, 서울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pp.1-288
  17. 金洛中, 2012, 榮山江 流域 古代 社會의 成長과 變動 過程-3-6世紀 古墳 資料를 中心으로- 百濟와 榮山江, 學硏文化社, pp.133-184
  18. 金洛中, 2013, 5-6世紀 南海岸 地域 倭系古墳의 特性과 意味 湖南考古學報 43輯, 湖南考古學會, pp.157-203
  19. 김다미, 2017, 高麗 武人政權期 漕運制의 運用과 그 變化像: 漕運遺跡을 中心으로, 明知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3
  20. 金想民, 2011, 3-6世紀 湖南地域의 鐵器生産과 流通에 대한 試論-榮山江流域 資料를 中心으로- 湖南考古學報 37輯, 湖南考古學會, pp.61-98
  21. 金榮珉, 2014, 韓國 出土 帶金具 板甲의 諸問題 武器.武具 農工具.漁具-韓日 三國.古墳時代 資料-, '日韓交涉の考古學-古墳時代 -' 硏究會, pp.11-27
  22. 金恩延.河承哲, 2011, 第2章 遺物集成 日本 韓國 出土 外來遺物 2, 韓國文化財調査硏究機關協會, pp.947-1010
  23.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편, 2011, 韓半島의 前方後圓墳, 學硏文化社
  24. 남영웅, 2018, 加耶, 百濟圈域 倭系 墓制의 性格, 釜山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p.26-27
  25. 東北亞支石墓硏究所, 2016, 和順 雲農里 農所遺蹟
  26. 鈴木靖民, 2003, 倭와 百濟의 府官制 古代 東亞細亞와 百濟, 書景, pp.337-362
  27. 武末純一, 2013, 湖南考古學會와 日本考古學 湖南考古學會20年, 그 回顧와 展望 (第21回 湖南考古學會 學術大會), 湖南考古學會
  28. 文安植, 2000, 百濟의 領域擴大와 邊方勢力의 推移, 東國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pp.173-175
  29. 文安植, 2014, 百濟의 海上活動과 新衣島 上西古墳群의 築造 背景 全南 西南海地域의 海上交流와 古代文化 (全南文化芸術財團 全南文化財硏究所編), 혜안, pp.117-174
  30. 文安植.李釩起.宋章宣.崔權鎬.林東中, 2015, 咸平 金山里 方臺形古墳, 全南文化財硏究所
  31. 朴淳發, 2000, 百濟의 南遷과 榮山江流域 政治體의 再編 韓國의 前方後圓墳, 忠南大學校出版部, pp.115-155
  32. 朴永勳, 2008, 前方後圓形古墳에 對한 硏究, 木浦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80
  33. 朴天秀, 2006, 榮山江流域 前方後圓墳을 통해 본 5-6世紀 韓半島와 日本列島 百濟硏究 第43輯,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pp.25-59
  34. 朴天秀, 2011, 榮山江流域 前方後圓墳에 대한 硏究史 檢討와 새로운 照明 韓半島의 前方後圓墳 (大韓文化遺産硏究센터편), 學硏文化社, pp.176-255
  35. 徐賢珠, 2007, 榮山江流域 長鼓墳의 特徵과 出現背景 韓國古代史硏究 47, 韓國古代史學會, pp.77-116
  36. 徐賢珠, 2012, 榮山江 流域의 土器 文化와 百濟化 過程 百濟와 榮山江, 學硏文化社, pp.185-226
  37. 小栗明彦, 2000, 全南地方 出土 埴輪의 意義 百濟硏究 第32輯,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pp.111-148
  38. 宋浣範, 2011, 韓半島南部 倭人의 殘像-交流와 共存의 時點에서- 日本硏究 第15輯, 고려대학교 일본학연구센터, pp.403-420
  39. 申敬澈, 2000, 古代의 洛東江, 榮山江, 그리고 倭 韓國의 前方後圓墳, 忠南大學校出版部, pp.163-198
  40. 申大坤, 2001, 榮山江流域의 前方後圓墳 科技考古硏究 7, 亞洲大學校博物館, pp.65-80
  41. 辻秀人, 2006, 榮山江流域의 前方後圓形古墳과 周緣地域의 前方後圓形古墳 百濟硏究 第44輯,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pp.211-244
  42. 梁起錫, 2013, 百濟의 國際關係, 書景文化社, pp.259-260
  43. 延敏洙, 2011, 榮山江流域의 前方後圓墳 被葬者와 그 性格 韓半島의 前方後圓墳 (大韓文化遺産硏究센터편), 學硏文化社, pp.116-147
  44. 吳東墠, 2008, 湖南地域 甕棺墓의 變遷, 全南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p.83-84
  45. 吳東墠, 2017, 5-6世紀 榮山江流域圈의 動向과 倭系古墳의 意味 百濟學報 第20號, 百濟學會, pp.173-212
  46. 禹在柄, 2004, 榮山江流域 前方後圓墳의 出現과 그 背景 湖西考古學 第10輯, 湖西考古學會, pp.63-82
  47. 예지은, 2011, 韓半島 出土 彌生系土器의 硏究, 嶺南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p.47-49
  48. 李道學, 2012, 馬韓 殘余故地 前方後圓墳의 造成 背景 東아시아古代學 第28輯, 東아시아古代學會, pp.169-203
  49. 李釩起, 2015, 榮山江流域 古墳 出土 鐵器 硏究, 木浦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p.94
  50. 李相玉, 1994, 韓國 在來市場의 變遷과 流通近代化에 관한 硏究, 檀國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p.62
  51. 李永植, 2007, 4-6世紀 百濟와 倭의 交流史 百濟와 對外交涉, 忠淸南道歷史文化硏究院, pp.279-338
  52. 李暎澈.金永熙, 2011, 2010 未發掘 前方後圓墳 韓半島의 前方後圓墳 (大韓文化遺産硏究센터편), 學硏文化社, pp.152-173
  53. 李暎澈, 2016, 榮山江流域과 日本의 4-5世紀 日常土器.土師器.須惠器-土師器와 軟質 日常土器 情報交換 段階- 日韓4-5世紀の 土器.鐵器生産と集落, 日韓交涉の考古學硏究會, pp.83-96
  54. 李正鎬, 2001, 榮山江流域 古墳과 變遷에 대하여 嶺湖南의 古代墓制, 昌原大學校博物館
  55. 李正鎬, 2014, 新安 배널리古墳의 對外交流像과 年代觀 古墳을 통해 본 湖南地域의 對外交流와 年代觀, 國立羅州文化財硏究所, pp.19-34
  56. 李知熙, 2015, 韓半島 出土 須惠器의 時空間的 分布 硏究, 慶北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p.1-144
  57. 李哲漢, 2009, 安佐島 沈沒船의 構造 硏究, 木浦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19
  58. 李漢祥, 2009, 裝身具 賜與體制로 본 百濟의 地方支配, 書景文化社, p.218
  59. 李漢祥, 2017, 燕岐 羅城里4號墓 帶金具의 龍文 復元과 豫察 考古學探究 第20號, 考古學探究會, pp.17-46
  60. 李浩炯, 2008, 公州 丹芝里 橫穴墓를 통해 본 古代 韓日交流 韓國古代史硏究 50, 韓國古代史學會, pp.233-264
  61. 李弘鍾.許義行, 2014, 漢城百濟期 據點都市의 構造와 機能-羅城里遺蹟을 中心으로- 百濟硏究 第60輯,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pp.87-118
  62. 李弘鍾.許義行.조보람.李仁學, 2015, 燕岐 羅城里遺蹟, 韓國考古環境硏究所
  63. 林永珍, 1996, 全南 古代 墓制의 變遷 全南의 古代 墓制, 全羅南道.木浦大學校博物館, pp.775-786
  64. 林永珍.趙鎮先.徐賢珠, 1999, 伏岩里古墳群 全南大学校博物館
  65. 林永珍, 2012, 3-5世紀 榮山江 流域圈 馬韓 勢力의 成長 背景과 限界 百濟와 榮山江, 學硏文化社, pp.83-132
  66. 林永珍, 2017, 全南 海岸島嶼地域의 倭系 古墳과 倭 5王의 中國 遣使 百濟文化 第56輯, 公州大學校百濟文化硏究所, pp.297-319
  67. 田中俊明, 2000, 榮山江流域에서의 前方後圓形古墳의 性格 榮山江流域 古代社會의 새로운 照明, 歷史文化學會.木浦大學校博物館, pp.195-212
  68. 鄭基鎭, 2014, 全南 西部地域 前方後圓形墳 築造勢力 檢討 野外考古學 第19號, 韓國文化財調査硏究機關協會, pp.49-83
  69. 鄭一, 2013, 麗水 峰守.屯田遺蹟, 全南文化財硏究院
  70. 鄭載潤, 2010, 榮山江流域 前方後圓形墳 築造와 그 主體 歷史와 談論 第56輯, 湖西史學會, pp.233-269
  71. 朱甫暾, 2000, 百濟의 榮山江流域 支配方式과 前方後圓墳 被葬者의 性格 韓國의 前方後圓墳, 忠南大學校出版部, pp.49-99
  72. 崔盛洛, 2004, 前方後圓形古墳 性格에 대한 再考 韓國上古史學報 第44輯, 韓國上古史學會, pp.87-106
  73. 崔榮柱, 2017, 古墳 副葬品을 통해 본 榮山江流域 馬韓勢力의 對外交流 百濟學報 第20號, 百濟學會, pp.133-172
  74. 土生田純之, 2000, 韓.日 前方後圓墳의 比較檢討-石室構造와 葬送儀禮를 中心으로- 韓國의 前方後圓墳, 忠南大學校出版部, pp.1-23
  75. 土田純子, 2011, 日本 出土 百濟(系)土器:出現과 變遷 百濟硏究 第54輯,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pp.1-81
  76. 土田純子 2012, 百濟遺蹟 出土 倭系遺物에 대한 檢討-百濟土器와 共伴된 資料를 中心으로- 百濟와 周邊世界, 진인진, pp.302-324
  77. 河上邦彦, 2000, 日本 前方後圓墳과 橫穴式石室 百濟硏究 第31輯,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pp.93-102
  78. 韓國文化財調査硏究機關協會, 2012, 韓半島의 製鐵遺蹟, pp.254-257, pp.260-262
  79. 韓玉珉, 2016, 榮山江流域 古墳의 墳形과 築造過程 硏究, 木浦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p.205
  80. 咸舜燮, 1997, 小倉 collection 金製帶冠의 製作技法과 그 系統 古代硏究 第5輯, 古代硏究會, pp.69-102
  81. 湖南文化財硏究院, 2009, 光州 龍岡.龍谷.金谷遺蹟
  82. 洪潽植, 2006, 韓半島 南部地域의 倭系 要素-紀元後 3-6世紀를 中心으로- 韓國古代史硏究 44, 韓國古代史學會, pp.21-58
  83. 洪潽植, 2014, 新羅.加耶系 遺物年代論 榮山江流域 古墳 土木技術의 旅程과 時間을 찾아서 (2014年 下半期 國際學術大會), 大韓文化財硏究院, pp.181-211
  84. 洪性和, 2009, 古代 韓日關係史 硏究-韓半島 南部 經營論 批判을 中心으로-, 高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pp.91-119
  85. 諫早直人, 2016, 韓.倭の馬具-榮山江流域出土馬具を中心に- 古代日韓交涉の實態:予稿集, 人間文化硏究機構國立歷史民俗博物館, pp.121-136
  86. 岡內三眞, 1996, 前方後圓墳の築造モデル 韓國の前方後圓形墳, 雄山閣, pp.65-82
  87. 高久健二, 2004, 韓國の倭系遺物 國立歷史民俗博物館硏究報告 第110集, 國立歷史民俗博物館, pp.367-402
  88. 高橋浩二, 2016, 韓半島出土翡翠勾玉集成-忠清道.全羅道編- 平成24-平成27年度科学研究費基盤研究(C)研究成果報告書, pp.1-50
  89. 高田貫太, 2014, 5.6世紀における百濟, 榮山江流域と倭の交涉 全南 西南海地域의 海上交流와 古代文化 (全南文化芸術財團 全南文化財硏究所編), 혜안, pp.179-216
  90. 高田貫太, 2017, 海の向こうから見た倭國, 講談社, p.262
  91. 館野和己, 2004, ヤマト王權の列島支配 日本史講座 第1卷, 東京大學出版會, pp.135-164
  92. 菊池芳朗, 2010, 古墳時代史の展開と東北地, 大阪大學出版部, p.95
  93. 菊池芳朗, 2014, 古墳時代環頭大刀集成, 大阪大學大學院文學硏究科, pp.1-59
  94. 近藤浩一, 2008, 韓國榮山江流域 古代史關係文獻目錄(稿) 古代日本の異文化交流, 勉誠出版, pp.544-550
  95. 吉井秀夫, 2010, 古代朝鮮 墳墓にみる國家形成, 京都大學學術出版會, p.215
  96. 金宇大, 2017, 金工品から讀む古代朝鮮と倭-新しい地域關係史へ, 京都大學學術出版會, p.228.252.246.251
  97. 奈良縣立橿原考古學硏究所附屬博物館, 1997, 大和の考古學, 常設展示圖錄, p.70
  98. 東潮, 2006, 倭と加耶の國際環境, 吉川弘文館, pp.294-298
  99. 藤田憲司, 2016, 邪馬臺國とヤマト王權, えにし書房, p.46.57
  100. 鈴木英夫, 2008, 韓國の前方後圓墳と倭の史的動向 古代日本の異文化交流, 勉誠社, pp.520-537
  101. 鈴木一有, 2014, 朝鮮半島出土の倭系武裝にみる日韓交流 武器.武具 農工具.漁具-韓日 三國.古墳時代 資料-, '日韓交涉の考古學 -古墳時代-'硏究會, pp.33-47
  102. 鈴木靖民, 2012, 倭國史の展開と東アジア, 岩波書店, p.237
  103. 柳澤一男, 2001, 全南地方の榮山江型橫穴式石室の系譜と前方後圓墳 朝鮮學報 179, 朝鮮學會, pp.113-155
  104. 柳澤一男, 2014, 筑紫君磐井と 磐井の亂, 新泉社, p.84
  105. 朴天秀, 2002, 榮山江流域における前方後圓墳の被葬者の出自と性格 考古學硏究 49-2, 考古學硏究會, pp.42-59
  106. 朴天秀, 2007, 加耶と倭-韓半島と日本列島の考古學-, 講談社選書メチェ, p.154
  107. 朴天秀, 2018, 倭系古墳からみた百濟と倭-5-6世紀韓半島南部の倭系古墳出現の歷史的背景- 日韓 埴輪の比較.檢討と倭系古墳出現の歷史的背景 (第3回古代韓日古墳硏究交流會.第34回古墳文化硏究會), 京都國立博物館科學硏究費硏究會.慶北大學校, pp.135-150
  108. 白石太一郞, 2007, 古墳時代槪說 日本の考古學下, 學生社, pp.414-435
  109. 福永伸哉, 2007, 繼体王權と韓半島の前方後圓墳-勝福寺古墳築造期の時代背景をめぐって- 勝福寺古墳の硏究, 大阪大學文學硏究科, pp.425-434
  110. 山尾幸久, 1999, 筑紫君磐井の戰爭-東アジアのなかの古代國家-, 新日本出版社, p.202
  111. 山尾幸久, 2002, 五, 六世紀の日朝關係-韓國の前方後圓墳の一解釋- 前方後圓墳と古代日朝關係, 同成社, pp.301-343
  112. 西谷正, 2002, 韓國の前方後圓墳をめぐる諸問題 前方後圓墳と古代日朝關係, 同成社, pp.3-23
  113. 西谷正, 2014, 古代日本と朝鮮半島の交流史, 同成社, p.146
  114. 小林敏男, 2004, 日本の古代國家形成過程-五, 六世紀を中心に 倭人のクニから日本へ, 學生社, pp.88-105
  115. 松尾充晶, 2005, 硏究の目的と方法 裝飾付大刀と後期古墳, 島根県敎育廳古代文化センター, pp.1-6
  116. 杉山晋作, 2006, 6世紀に朝鮮半島へ渡った日本列島人たち 文化遺産の世界 21號, 國際航業株式會社, pp.2-3
  117. 新井隆一, 2008, 古代九州の古墳文化と韓國の前方後圓墳 關係論文(日本語文)目錄(稿) 古代日本の異文化交流, 勉誠出版, pp.551-569
  118. 林永珍(白井克也譯), 2005, 韓國長鼓墳(前方後圓墳古墳)の被葬者と築造背景 考古學雜誌 第89卷第1號, 日本考古學會, pp.68-83
  119. 田中史生, 2016, 國際交易の古代列島, 角川學藝出版, p.56
  120. 井上裕一.賀來孝代.辻川哲朗, 2018, 咸平金山里方臺形墳出土埴輪について 日韓 埴輪の比較.檢討と倭系古墳出現の歷史的背景 (第3回古代韓日古墳硏究交流會.第34回古墳文化硏究會), 京都國立博物館科學硏究費硏究會.慶北大學校, pp.70-89
  121. 中久保辰夫, 2017, 日本古代國家の形成過程と對外交流, 大阪大學出版會, pp.107-109
  122. 酒井淸治, 2013, 土器から見た古墳時代の日韓交流, 同成社, pp.251-278
  123. 村上恭通, 2017, 金屬器が語る古代の技術 モノと技術の古代史, 吉川弘文館, pp.1-11
  124. 土生田純之, 1996, 朝鮮半島の前方後圓墳 人文科學年報 26, 專修大學人文科學硏究所, pp.1-24
  125. 土屋隆史, 2015, 古墳時代における廣帶二山式冠の出現とその意義 日本考古學 第40號, 日本考古學協會, pp.69-88
  126. 土田純子, 2017, 東アジアと百濟土器, 同成社, pp.60-188
  127. 坂靖, 2015, 近畿地方の埴輪と韓半島南部の埴輪 韓國의 圓筒形土器(墳周土器) II, 國立羅州文化財硏究所, pp.116-136
  128. 下原幸裕, 2015, 日本 北部九州地域と榮山江流域の橫穴式石室の構造比較 三國時代 伏岩里 勢力의 位相과 周邊地域의 動向, 國立羅州文化財硏究所, pp.159-177
  129. 和田晴吾, 2004, 古墳文化論 日本史講座 第1卷, 東京大學出版會, pp.167-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