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번 AI 발생이 남긴 교훈
1) 철새에 의한 다양한 바이러스의 유입 대응 요구
2003년부터 ’ 16년 4월까지 여섯 차례의 AI 발생에 관여하였던 AI 바이러스의 아형은 H5N1형이 네 차례, H5N8형이 두 차례였다. 이 중 H5N1형은 한 가지 유형이, H5N8형은 세 가지 유형의 바이러스가 확인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H5N6형은 다섯 가지나 되는 바이러스의 유형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AI 발생이 거듭될수록 바이러스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바이러스의 세부 유형까지 분석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번 AI 바이러스의 다양한 유형을 감안해 볼 때 향후 국내에 유입되는 AI 바이러스가 더욱 더 다양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다양한 유형의 AI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이에 맞추어 국내 방역체계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16일 이번 AI가 처음 발생하였던 육용오리 농장의 경우 과거의 AI 발생 사례와는 달리 오리에서의 폐사가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고, 폐사가 증가함에 따라 농가에서는 조기에 방역당국에 신고를 할 수 있었는데, 이는 ’ 14~’ 16년 H5N8형이 유행했던 경우(당시에는 폐사율이 낮아 신고가 지연되었었음)와는 매우 다른 현상이었다.
야생조류의 분변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AI 바이러스들이 분리되고 있는데, ’ 16년 11월부터 금년 4월 11일까지 모두 65건의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H5N6형 52건, H5N8형 13건, H7등).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야생조류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의 검출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GPS 수신기 자료를 분석해 보면, 금년 3월부터 남방철새가 AI 발생지역인 동남아와 홍콩, 그리고 중국 등지를 경유하여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되고 있어, 최근 중국 등지에서 유행하면서 인체에 감염 시 사망자까지 발생케 하는 H7N9형(조류에게는 저병원성 임)이 국내로 유입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AI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유입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에 따라 대응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만일 가금에는 병원성이 낮지만 사람에게 감염되어 사망자를 발생할 수 있는 AI 바이러스(H7N9형의 경우 중국에서 인체 감염 시 33%에 달하는 높은 치사율을 보였음)가 국내에 유입된다면, 기존의 AI(H5N1형, H5N8형, H5N6형)와는 완전히 다른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따라서 유입이 예상되는 AI 바이러스의 아형이나 유형에 따른 좀 더 세부적인 대응방안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H7N9형처럼 조류에서는 병원성이 낮지만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고 감염 시 사망자도 발생하는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면 질병관리본부 등 범부처 간의 협력적인 방역 전략도 조속히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2) AI를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 차단방역 대책의 수립 및 시행 요구
이번에 발생한 AI는 과거와는 달리 두 가지 아형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발생하여 산란계 등 가금 산업에 큰 피해를 주었고, 사상 최대의 살처분 숫자를 기록하였다.
표 1. 이번 발생기간 중 축종·바이러스 아형별 AI 발생농장 및 살처분 수
* 살처분 수 : 3,787만수(산란계 2,518만수, 오리 332만수, 메추리 301만수, 기타 636만수)
이번 AI 발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산란계 농장에서 많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AI 발생 경험만으로는 산란계 농장에서의 이런 피해를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번에 발생한 H5N6형 AI 바이러스의 병원성은 과거에 발생하였던 H5N8형의 병원성보다는 강했지만 H5N1형의 병원성과는 비슷했다. 병원성이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산란계 농장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정확한 원인 파악이 제한되고 있다. 다만 과거보다 이번 발생기간 동안 야생조류에서의 AI 바이러스의 확인 건수가 많았는데, 이것이 산란계 농장의 큰 피해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었는지, 그리고 계란 유통을 포함한 유통구조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병원성은 유사하나 환경 저항성과 전파력이 다를 수 있고, 이들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설치류나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증가하는 등 뭔가 다른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현재 어느 것도 정확하게 피해를 증폭시켰던 원인으로 구체화 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2003년 국내에서 AI가 최초로 발생한 이후 약 14년이 경과하였다. H5N1형이 8년간 유행하였고, H5N8형이 3년간 유행하였으며, 이번에는 H5N6형이 유행하였다. AI 이외에도 한동안은 뉴캣슬병(ND)이 유행하여 가금산업에 피해를 주다가 지금은 전염성기관지염(IB) 등 새로운 전염병들이 나타나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이들 전염병이 어떤 원인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농장에서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은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 생물체들이 농장의 차단방역 망을 뚫고 가금에 감염되어 발생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경우는 명확히 AI 바이러스의 유입원인이 밝혀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AI가 발생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본 연구소에서 최근 가금사육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차단방역 설문 결과, 상당수의 농장들이 효과적인 차단방역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지금까지 축사 현대화 사업 등을 통한 농장의 규모적인 성장이 국내 산란계 산업을 양적으로 팽창시키고 계란의 국내 자급률을 높여왔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규모 성장에 걸맞는 차단방역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열세였음을 인정하고 자성해야 한다. 좀 더 냉정하게 차단방역에 대한 실태분석과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AI의 피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AI를 포함한 전염성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 차단방역 대책의 수립 및 시행이 요구된다.
3) 축사 현대화 및 축산 유통에 대한 방향 전환 요구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축사 현대화사업은 국내 가금산업의 발전을 견인해 왔다. 그러나 축사만 현대화되고 방역시설은 농장의 규모 성장과는 달리 과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농가들이 많다. 축사가 현대화되면 당연히 방역도 그 수준에 맞게 성장해야 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축사 현대화사업에도 불구하고 각종 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감수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축사시설의 현대화는 방역시설의 현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또 계란 유통 등 축산 유통구조에 따른 방역 취약성도 축사가 현대화될수록 개선되어야 한다. 축사는 초현대적인 시설을 갖추면서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여전히 계란 운반차량이 농장 안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계란 운반 차량뿐 아니라 사료 차량과 계분 차량들도 소독(?)만 하면 농장 출입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축사를 현대화하면서 방역 개념을 접목하지 못한 결과이다. 농장은 출입문과 울타리를 경계로 오염지역과 준청결(완충) 지역으로, 농장 내부와 축사는 준청결 지역과 청결 지역으로 구분하여 관리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란 운반차량의 계란 상차작업은 당연히 울타리 밖에서 이루어지도록 축사를 설계할 때 고려되었어야 한다. 또한 야생동물과 설치류의 침입을 방지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출입차량에 대한 소독 절차도 세척 후에 소독을 실시하는 등 실질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축사 한동을 더 늘리지 것보다 방역시설의 업그레이드가 축사 현대화사업 시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계란의 유통은 수많은 농장을 왕래하는 차량, 장비 및 인원에 의한 질병의 전파 위험성이 매우 높은 부분이다. 계란 운반차량이 가져온 계란 파렛트와 재사용 난좌의 농장 내 유입은 병원체가 함께 유입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에 AI가 발생한 농장 중 상당수의 계란 파렛트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었었는데 이런 점들에 착안하여 계란 등 축산물에 대한 유통체계의 방향 전환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