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를 중심으로 양계인 하나 되어야~
▲ 심준식 회장
1. 운동과 늘 가까이
강동 라이온스 클럽 사무실에서 만난 심준식 회장은 여전히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인상을 풍겨주었다. 2005년 산란계와 양돈 경영을 접고 사회 활동에 전념해 왔지만 양계업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아직도 과거 양계를 하던 ‘동축회’ 회원들과 1달에 1번씩 만나 정기모임을 갖고 있으며, 현재까지 양계업을 하고 있는 회원들을 통해 양계산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과거 축구협회 회장을 맡아 매주 해왔던 축구를 잊지 못하고 가끔 후배들 격려차 운동장을 찾기도 한다. 또한 뒤늦게 배운 골프에 대한 열의가 높아 매주 2~3차례 인도어에서 연습을 하는가 하면 매월 2~3회 정기적으로 라운딩을 할 정도로 운동을 통해 마음과 몸을 단련시키고 있다. 그동안 암사동에서 30년 넘게 주택에서 살다가 최근에 아파트로 이사해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양계협회 근황은 어떻습니까? AI 피해로 산란계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은 자주 듣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곧 신임 회장을 뽑는다죠? 역량 있고 협회를 대변할 수 있는 좋은 분이 뽑혔으면 좋겠습니다.”심준식 회장은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양계업을 떠난 지 1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양계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양계산업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며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2. 전국 계우회 연합회 협회 조직으로 통합
’ 70~’ 80년대를 풍미하던 천호계 우회(채란지부)는 도시화로 인해 회원들이 업을 그만두면서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과거 그 명성은 대단했다. 천호 채란지부의 결재가 나지 않으면 전국의 난가 가 적용이 안 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심준식 회장은 일찍이 천호계 우회를 결성하고 전국을 묶어 전국 계우회 연합회를 만들어 연합회장까지 지내면서 채란산업에 막대한 힘을 키워갔다. 대한양계협회 채란 분과위원장을 맡았던 1987년에는 계우회 연합회를 양계협회 사무실로 끌어들였고 결국 협회 조직으로 통합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당시 생산자들이 상인들에게 장기(영수증)를 끊어주도록 하는 등 악덕 상인 퇴치 운동에 나서면서 농가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힘썼다.
양계 초창기에 서울에는 천호계 우회와 청량리 계우회가 양 산맥을 이루며 산업을 이끌어 왔다. 초창기에는 계란 가격을 항상 청량리계 우회가 천호 계우 회보다 1원 낮게 발표했었다. 청량리계 우회가 무게를 1g 낮게 판매했기 때문에 서로 간의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무게에 따른 표준화된 계란 중량이 필요했기 때문에 심 회장을 주축으로 협회를 통해 농림부에 정식으로 요청을 하여 계란 중량을 규격화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3. 마음은 항상 양계인으로
인터뷰를 하던 날 특별한 손님들이 사무실을 찾았다. 양계를 같이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동축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 회원들은 아직도 끈끈한 정을 나누며 과거 천호 채란지부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서 정기모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 중 부화협회 5대 회장이며 최초 감별사로 활동했던 윤경중 회장이 방문하였고 이어 회원들이 속속 도착하여 그동안 못 다했던 얘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김영환(한양 부화장) 회장, 김인영(양지 부화장) 회장도 같은 구성원이지만 AI가 아직도 전국에 발생하고 있는 관계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구성원이 한때 20명까지 되었지만 이제는 10여 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양계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2~3명에 불과하다.
▲ 과거 양계를 했던‘동축회’회원들은 아직도 1달에 1번씩 모임을 갖는다.(4월 5일 모임당시 사진 아래 좌부터 황석규 전 흥성사료 상무, 심준식 회장, 신근호(칠목농장) 사장, 위 좌부터 이두형(두재농장) 사장, 김선용 사장, 최정삼(정화농장) 사장, 윤경중(서울부화장, 5대 초생추감별협회장) 회장, 조대현(부흥농장) 사장, 곽노익(호암농장) 사장
심준식 회장은 1968년 하남에서 산란계 2천 수를 시작으로 양계업에 뛰어들어 37년간 산란계 6 만수와 양돈 2천 두를 사육하다 2005년에 업을 그만두었다. 심 회장은 과거에 비해 현재의 양계산업이 자동화, 대형화되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AI 등 질병 피해 등으로 더 힘들 것이라 평가했다. 심 회장이 양계를 할 때에도 ND, 가금티푸스 등 질병으로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과거보다 수익도 적고 위험요소가 많아 업을 영위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계란을 판매할 때 선수금을 받고 판매할 정도로 생산자들이 주도권을 잡았었는데 이제는 과잉생산으로 상인들에게 끌려 다니는 형국이 되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지금은 AI로 이러한 상황이 역전되었지만 내년 연초로 접어들면 과잉생산이 되어 상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수급조절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 조언했다.
그리고 과거에도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규모 사육업자들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고 지적하고 이제는 농가 숫자도 줄어들고 같은 배를 탔기 때문에 앞으로는 대규모 사육업자들이 협회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양계산업 발전에 중요한 키로 작용할 것이라 강조했다. 심 회장은 업계는 떠났지만 항상 양계인들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