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국 박사의 회고록 ⑩ - 재래닭의 복원과 육용화 연구

  • Published : 2016.10.01

Abstract

본고는 양계와 한평생을 함께 한 오봉국 교수(서울대 명예 교수)가 그 동안의 인생여정을 정리하여 출간한 '축산의 비전을 심으며 살아온 나의 인생여정' 자서전 내용 중 '양계와 함께 걸어온 나의 회고' 내용을 발췌, 게재한 것이다. 오봉국 교수는 1925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학교 축산과에서 농학석사과정을 거친 후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석, 박사과정을 마친후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양성은 물론 양계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1969년에는 (사)한국가금협회장(대한양계협회 전신)을 역임하고 현재까지 대한양계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바 있으며, 현대 가금학 등 16편의 주옥같은 저서를 남겼다.

Keywords

13. 재래닭의 복원과 육용화 연구

우리나라 5,000년의 긴 역사와 함께 살아온 가축의 하나인 한국 재래닭은 1900년대 한일합방 이전까지는 우리 민족의 주요 축산물의 공급원으로 한몫을 하였으나 일인(日人)들이 1900년 초에 개량 가축을 도입하면서부터 생산성이 낮은 재래종 가축은 점차 개량종으로 대치되기 시작하였다. 재래가축 중 농사에 쓰이는 한국소를 제외하고는 재래종 돼지, 닭은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사육지역도 교통이 불편한 산간벽지에서만 사육되어 왔다. 우리나라 재래닭 중에는 꼬리의 길이가 5자나 되는 장미계(長尾鷄)가 있었고, 또한 수탉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고 길게 울음을 내는 장명계(長鳴鷄)도 있었다. 이러한 진귀한 명품(名品) 닭은 오늘날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1945년 8.15해방과 1950년 6.25사변 등 사회적으로 큰 혼란기를 맞으면서 한국 재래 가축인 소, 돼지, 닭 등 주요 가축은 난 도살과 전란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여 가축의 사육수는 크게 감소되었다. 6·25사변 후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화된 축산분야에 복구사업이 시작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UN원조기관에서 개량종 가축을 원조사업의 일환으로 1952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개량종 닭은 1952년에 21만개의 종란이 미국으로부터 도입되면서 매년 수천마리의 병아리가 외국으로부터 도입되어 도시근교 농촌에서는 개량종 닭만을 기르게 되고 재래종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국민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개량종 닭으로 생산된 축산물보다 우리 국민의 기호에 알맞은 재래닭으로부터 생산되는 닭고기와 계란을 찾는 소비층이 증가하여 재래닭 사육이 새로운 양계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재래닭은 단순히 보존차원을 벗어나 하나의 소득사업으로 자리를 잡아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재래닭의 순수화(純粹化) 혈통보존 및 육용화(肉用化) 개량을 위한 시도로 1980년대 초부터 축산시험장과 도종축장 그리고 민간 양계장에서 한국 재래닭을 수집하고 단편적이나마 재래닭의 보존사업이 시작되었으나 순수 재래닭은 거의 멸종상태에 접어들고 한편으로는 재래닭과 외래종과의 광범위한 교잡으로 잡종 닭이 보급되어 재래닭 순수혈통을 보유한 개체의 확인이 어려운 상태였다. 따라서 재래닭을 통한 UR협상과 WTO에 대응한 농가 소득원의 하나인 재래닭의 복원과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른 유일한 유전자원의 보존 및 개량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시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재래닭의 개량을 위한 유전적 특성을 규명하며 재래닭 특성에 적합한 사양관리법을 수립하여 재래닭의 순수화 개량 및 이들의 사양관리를 통해 최대의 경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육용화 개량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연구 사업을 수행하는 데는 많은 연구비가 소요되고 여러 연구기관과 다년간의 연구기간 그리고 연구 분야별 전문 연구 인력의 동원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재래닭 복원에 소요되는 닭 사육관리시설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 사업은 대형연구과제로 국가 연구 사업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있어서 근 한 달 간 밤낮을 걸려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여 당시(1993년) 허신행(許信行) 농림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연구사업의 개요를 브리핑하였더니 허(許)장관은 즉석에서 좋은 연구 과제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에 정말로 한국 재래닭은 있는 겁니까?”하고 나에게 질문하면서 시골에 가면 가는 곳마다 토종닭 음식점이 많은데 토종닭의 특화사업으로 필요한 연구 사업이라며 내 의견에 동조하여 주었다. 허(許)장관은 그 자리에서 당시 축산국 안덕수 국장을 불러 내가 제안한 연구계획서를 내보이면서 안(安)국장이 잘 검토해서 처리하라고 지시하면서 안국장도 토종닭 잘 먹지 않느냐고 농담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1994년 3월경 축산국 축정과 정진국 사무관으로부터 재래닭 연구 사업이 장관으로부터 결재가 났으니 연구사업 실행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해 달라는 전화연락이 왔다. 연구사업실행계획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우선 이 연구의 협력연구기관의 동의를 얻는 일이 필요하여 재래닭을 수집, 보전하는 사업을 주관할 연구 기관으로 국립 종축원 정상원 원장을 방문하였다.

처음에는 내가 찾아온 뜻에 동의를 하지 않고 종축원이 그간 재래닭을 수집해왔고 나름대로 혈통 보전을 하고 있으니 종축원이 독자적으로 자체에서 연구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서 거절을 당하였다. 나는 정원장에게 재래닭 연구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이 사업을 수행하는데는 수십 억 원의 연구비가 소요되고 재래닭이 순종인지 아니면 교잡종인지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첨단과학기술인 DNA분석과 혈청학적 화학분석과 면역학적 검토가 있어야 하고 축산분야와 수의분야를 망라한 최신 육종, 사양기술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을 설명하였더니 한정된 자체예산과 인원, 장비만을 가지고는 본 연구사업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내가 제안하는 연구 사업에 협력기관으로 동참하겠다는 승낙을 받아냈다. 다음으로는 축산시험장과 가축위생연구소의 협력을 구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당시 축산기술연구소에는 정선부 소장이 그리고 기술부에는 이인형 연구관이 책임자로 계셨는데 내 연구사업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기꺼이 협력해 주겠다는 승낙을 해주어서 감사하였다. 다음으로는 가축위생연구소의 동의를 얻는 일이 필요하였다. 다행이 가축위생연구소 소장으로는 박근식 박사가 계셨고, 가금질병과 과장으로는 김기석 박사가 계셨다. 이 두분은 양계산업과 관계가 깊은 분들이라 그전부터 가까이 지내던 사이여서 비교적 내 연구 사업을 잘 이해하여 주었고 기꺼이 연구 사업에 적극 협력해 주기로 다짐을 받았다.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연구사업상 필요한 전문분야별로 대학교수들의 협력을 구하는데 있어서는 이전부터 나와 사제지간이거나 연구사업상 밀접한 관계를 가진 분들이 많아서 비교적 협력을 얻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렇게 하여 재래닭 연구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주요 협력기관과 연구원은 확보하게 되었다.

본 연구사업의 사업명은 “재래닭 고품질 육용화 연구”사업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업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재래닭은 국민식성에 알맞은 독특한 맛과 육질로 인하여 고가로 판매되고 있으나 품질의 균일성이 없으며 산란성, 산육성 등 경제형질의 개량도가 낮아 생산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재래닭의 계통조차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어서 재래닭을 이용한 산업화가 곤란한 실정이다. 따라서 재래닭을 이용한 차별화 축산물의 개발을 위해 재래닭의 복원과 계통을 확립하고, 계통이 조성된 재래닭을 기초로 우량교배조합 검정사업을 통하여 우수한 경제형질을 가지는 교잡종 닭을 만들어 농가소득 작목으로 산업화함으로써 수입자유화에 대응하는 특수 축산물 생산체계를 확립하고자 농림부 용역사업으로 재래닭 고품질 육용화 연구사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재래닭 연구사업의 총괄 연구책임자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오봉국, 부총괄 책임자는 충남대학교 한성욱 교수가 책임을 맡게 되었다. 주요 연구과제와 과제별 담당자로는 <표 1>과 같다.

표 1. 주요연구과제와 과제별 담당자

과제별 고동연구자로는 종축개량부 박무균 연구관, 축산기술부의 박용윤 연구관, 이종문 연구관 그리고 대학교수로는 지규만(고려대), 이정구(강원대), 김재홍(전남대), 여정수(영남대), 최양일(충북대), 최연호(신구대), 박종수(충남대), 이규호(강원대), 하정기(경상대) 교수가참여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데 추진협의자문위원으로 도와주신 분은 당시 서성배 농림부 축산정책과장, 정선부 축기연구소장, 이인형 축산기술부장, 박근식 수의과학 연구소장, 박종운 충북도 종축과장, 유병현 미원축산연구소장, 홍승갑 현인 재래닭 농장장, 이규성 (사)대한양계협회 전무 등이다. 연구진용 중 대학교수가 16명, 연구관 8명이 동원되었으며, 4년간의 연구기간 중 연인원 84명이 여기에 관여하였다. 1994년에서 1997년까지 4년간에 투입된 총 연구비는 약 8억 2천만 원이 소요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재래닭의 특징을 지닌 닭을 수집하여 재래닭 기초계군(基礎鷄群)을 만들고 1차적으로 DNA검색을 통하여 개량종의 피를 갖고 있지 않은 닭을 선발한 후 외모특징에 따라 적갈색, 황갈색, 흑색, 백색 등 4가지 계통을 만들고 이들을 계통 번식하여 1차적으로 특징 있는 재래닭을 복원하였다. 이들 재래닭 4계통 중 한국 사람들의 기호에 알맞은 갈색계통과 흑색계통 재래닭을 기초로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서 재래닭의 산란성과 산육성 개량에 사용할 유전자원을 구하기 위해 1974년 10월 일본 재래닭 나고야종(名古屋種)을 도입하고자 일본 동경농업대학 교수로 계시는 다나까 가츠히데(田中克英) 교수에게 부탁하였으나 유전자원의 유출을 금지한다는 뜻에서 거절당하였다. 그 후 한국양계산업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 양계가인 시마다 마사다께( 田匡武)씨의 도움으로 종란을 도입하여 재래닭 개량에 사용하였다. 종란 도입을 위해 일본까지 동행하여 적극 나를 도와주신 오재정(吳在晶, 현 마니커(주) 고문)씨에게 감사드린다.

또 한편으로는 재래닭의 산육성 개량에 필요한 Cornish 품종 순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탐지하여 미국 앨라배마 주 T and S Breeders 회사로부터 흑갈색 Cornish 품종을 분양 받아 재래닭 실용계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산란성과 산육성의 형질을 첨가하여 생산성이 높은 실용계를 만들기 위해 개량종과 교배하여 재래닭으로서 산육성이 높은 3원 교배종인 실용계를 만드는데 성공하였고, 이 개량 실용계를 축산기술연구소 대전지소(가금연구기관)를 통하여 보급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재래닭과 토종닭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용어의 정의를 정리하여 보면 재래닭은 협의의 뜻에서는 외국에서 도입된 개량종의 피를 받지 않은 우리나라 고유의 순종 닭을 말하며 넓은 뜻에서는 조상세대에서 개량종의 피를 받아들인 경우가 있으나 그 후 10세대이상 순종계통번식법에 의하여 번식된 닭을 말한다. 토종닭이란 그 지방 특정지역 또는 농장에서 재래닭을 기초로 개량종 닭의 피를 도입하였으나 5세대이상 기초계통끼리 교배 번식하여 성립된 특징 있는 닭을 말한다. 용어의 개념상 재래닭과 토종닭은 구별되어야 하며 토종닭은 다분히 사업용 육용계를 지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