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시나를 중심으로 고찰한 이슬람 의학의 이해

Islamic Medicine Based on Ibn Sina’s Medical Philosophy

  • 최효재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한방내과학교실) ;
  • 신길조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한방내과학교실)
  • Choi, Hyo-jae (Dept. of Oriental Internal Medicine, College of Oriental Medicine, Dong-Guk University) ;
  • Sh, Gil-cho (Dept. of Oriental Internal Medicine, College of Oriental Medicine, Dong-Guk University)
  • 투고 : 2015.07.21
  • 심사 : 2015.09.25
  • 발행 : 2015.09.30

초록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 is becoming a popular health care means in most countries, and more than 70% of the developing world's population is depending on CAM, including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nd ayurvedic medicine. Islamic medicine, another CAM, has shown remarkable success in healing acute and chronic diseases and has been utilized by people in Mediterranean countries. This paper aims to throw light on Islamic medicine through Ibn Sina, known as Avicenna in the West; Ibn Sina was a celebrated Persian thinker, philosopher, and physician who is remembered for his masterpiece, The Canon of Medicine. The paper also discusses the relationship between Islamic medicine and Korean medicine.

키워드

I. 緖 論

현재 전 세계적으로 현대 서양의학이 가진 한계성을 보완할 수 있는 세계 각국의 전통의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 WHO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3/4 이상이 건강관리를 전통의학에 의지하고 있다1. 오스트레일리아 국민 50%, 미국 국민 40%, 영국 국민 25%가 대체의학을 경험했다는 보고가 있으며2-4, 2011년 미국 조사에서 23,393명 중 37%가 보완대체의학을 받고 있고, 받지 않은 나머지 63%에 비해 건강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5.

최근 연구에서는 전통의학을 크게 중의학, 아유르베다 의학,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하여 유럽과 북남미로 퍼진 유럽전통의학 및 이슬람 의학으로 구별하였다6,7. 그 중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슬람 의학은 서양 근대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의 이론 연구와 임상시험 결과는 아랍의 의학 개설서나 전서에 빠짐없이 수록되었고, 그것이 다시 번역되어 유럽의 의과대학 교과서로 채택되고 임상치료에 직접 활용되었다8.

이슬람 의학자들은 페르시아 및 그리스-로마 의학서적을 번역하고 의술을 받아들여 임상에 도입하였으며, 단순히 그리스 의학을 계승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욱 발전시켜 중세 및 근대 서양의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금 까지도 이슬람 의학의 발전 과정 및 주요 이슬람 의학자들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븐 시나(Ibn sina)(980-1037)는 이슬람 의학의 대표적 인물로, 그가 쓴 ≪의학정전(al-Qanun fil-tibb)(The Canon of Medicine)≫1)은 생리학, 위생학, 병리학, 치료학, 약물학을 다룬 백과사전으로 동서양 의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서적으로 알려져 있다9,10. ≪의학정전≫은 12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600년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모든 대학에서 의학연구의 기본서로 사용되었고, 19세기 초까지 프랑스 몽펠리에 의과대학에서 강의교재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파키스탄과 인도 등에서 교육되고 있다11.

이에 저자는 이슬람 의학의 역사, 이론 및 대표적인 이슬람 의학자 이븐 시나의 의학 사상을 살펴보고, 한의학과의 상호 관련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I. 本 論

1. 이슬람 의학의 역사적 고찰

이슬람 의학의 주요 이론인 4원소론, 4체액론은 그리스 철학과 의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 시대 피타고라스학파2)인 엠페도클레스3)는 4원소론과 4 체액론을 주장하였고, 그의 학설은 히포크라테스학파로 이어졌다. 히포크라테스학파는 질병을 관찰하는 것을 강조하되 질병의 원인에 집중하기보다는 치료에 필요한 증상과 경과를 관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질병과 해부학적 변화를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았고, 질병을 급성병과 만성병, 전염병과 풍토병으로만 분류했다. 폐렴, 결핵, 산욕열, 볼거리, 말라리아와 같은 급성병에 대한 기술은 있었으나, 증상과 경과만을 중시하여 질환에 병명을 붙이지는 않았다. 치료방법은 인간에게는 스스로 병을 치료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자연치유력을 도와주는 식이요법을 주로 시행했으며, 식이요법이 실패했을 때 약제를 사용하였다12.

그 후 로마시대의 갈레노스4)가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을 이어받아 방대한 의학체계를 만들었으며, 해부학에 많은 관심을 가져 반회후두신경의 역할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히포크라테스의 체액설을 받아들였으나, 히포크라테스 학파와는 반대로 적극적인 치료를 했고, 많은 종류의 약제를 동시에 복용하게 하는 복합처방을 즐겨했으며, 피를 뽑거나 설사를 하게 하는 배출법을 사용했다12.

이슬람 의학자들은 그리스 의학의 전통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시켰는데, 알라지는 천연두와 홍역을 최초로 명확하게 비교 기술하였다. 또한 그는 저서 ≪갈레노스에 관한 의구심들≫에서 갈레노스의 주장들 중 일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도 하였다. 그는 4체액의 기본적인 틀은 받아들였지만 체액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체 안에 작동하는 다른 조절과정의 가능성에 대해서 주장했다13. 이븐 알나피스는 갈레노스가 주장한 심실중격에 구멍이 있다는 이론을 부정하고 폐순환체계를 주장하였다11. 이븐 시나는 히포크라테스 학파와는 달리 질병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비교하였는데 늑막염과 폐렴, 간염을 정확히 구별하고, 폐결핵의 전염성과 피부병, 성병, 상사병, 신경병 등의 임상증상과 그 치료법을 제시했다. 또한 병리현상을 심리현상과 결부시켜 분석하였으며, 그리스 의학과 갈레노스에서 비롯된 4체액론을 더욱 발전시켜 한열조습에 따른 체질론과 조건에 따른 한열조습 변화를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최초로 알코올을 소독제로 추천하였으며 7가지 약물연구 법칙을 통해 임상연구의 기본을 확립하였다. 또한 그 당시 이슬람의 병원은 공중보건, 예방의학 및 경영적인 측면까지도 포괄하는 현대적인 병원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8.

반면에 갈레노스 이후 중세시기 서양의학은 뚜렷한 발전이 없었다. 갈레노스가 주장한 생리학과 병리학을 절대불변의 법칙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에 유럽 전역에 수도원이 설립되었는데 이 ‘수도원 의학’시대에는 교조적 기독교 철학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죄를 짓거나 악마 때문에 질병에 걸리고, 병을 치료하는 것은 의학이 아닌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종교적인 관념으로 인해 의학이 오히려 퇴보했다12,14.

이 시기에 이슬람 의학은 꾸준히 발전하여 중세 중기에는 거꾸로 이슬람 의학이 유럽으로 수출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 시기를 ‘이슬람 의학의 시대’라고 부를 만큼 서양의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살레르노 지방5)은 중세 의학의 중심으로, 아랍의 의학서들을 번역해 유럽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12.

영국인 애덜라드6)는 초기에 아랍 학문을 서양에 전달하였는데, 아랍어로 쓰인 그리스 문헌들을 라틴어로 번역해 당시 서양에 낯설기만 한 이슬람의 과학세계를 소개했다. 1140년 무렵에는 스페인의 톨레도7)에서도 아랍의 의학서를 번역하기 시작했으며, 크레모나의 제라르드(Gerard of Cremona)8)는 70여권에 달하는 아랍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 전역에 알렸다. 1280년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아랍어로 된 알라지의 의학 서적과 갈레노스의 저술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슬람 의학 뿐만 아니라 아랍어로 쓴 그리스 의학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는데, 이는 정체되고 오히려 퇴보하던 중세 서양의학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12,15

한편, 이슬람 의학은 동양의학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 동양의학과 이슬람 의학, 인도 의학은 서로 많은 접촉을 하였는데, 이슬람 의학의 영향을 받은 아유르베다 의학은 불교의 전파 경로를 따라 중국에 전해져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당대의 유명한 의사였던 손사막도 아유르베다 의학에 뿌리를 둔 불교의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16.

12, 13세기에 몽고족은 북방에서 일어나 금을 멸망시키고, 1279년에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였다. 원의 영토가 광대하여 각 민족, 각 국가 사이의 교류가 빈번하였는데 이 시기에 이슬람 의학이 대량으로 중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元 世祖 至元 7년 (1270)에 태의원 아래 廣惠司를 설치하고 무슬림 의사를 초빙하여 回回藥物9)을 조제케 하였으며, 무슬림 의사가 준비한 36권의 처방전이 비치되었다. 무슬림 의사는 황제가 이용하는 回回藥物을 관리하고 아울러 호위병과 수도에 살고 있는 평민들을 치료하였다. 무슬림 의사의 치료법 중 사마르칸트에서 개발된 위통 치료 시럽과 두개골 절개수술은 특히 원 귀족층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至元 29년(1292)에는 大都(현 北京)와 上都(현 多倫)에 回回藥物園을 설치하였다. 당시 이슬람 의학의 유입을 가장 잘 반영한 현존하는 저서로는 ≪飮膳正要≫와 ≪回回藥方≫이 있다. ≪飮膳正要≫는 식이 방면의 전문적인 책으로 1330년에 忽思慧가 편찬하였으며, ≪飮膳正要≫는 보건을 위한 飮膳과 일상 식료품을 기록하였다. 독일학자 Paul U. Unschuld 교수는 忽思慧는 서방 무슬림의 이름이고, ≪飮膳正要≫에서 주로 사용된 육류로는 양고기가 가장 많고, 돼지고기가 가장 적은 점, 책에서 등장하는 조미료, 음료, 채소의 명칭이 대부분 아랍-페르시아어인 것은 무슬림의 음식문화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飮膳正要≫에 실린 蕃木鼈10), 押不盧11) 등 새로운 약물은 이후 한족의 주요 본초서에 수용되어 중국 약물학 속에 융합되었다. ≪回回藥方≫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回回醫藥 전문서로 현재 目錄 卷之下, 卷12, 卷30, 卷34 4권만 남아있다. 卷首가 없기 때문에 저자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元代에 만들어졌고, 回回藥物園에서 사용한 약방을 모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존하는 이 책의 일부 목록과 殘卷에서 보면 ≪回回藥方≫은 종합 의서로 그 내용은 內, 外, 婦, 兒, 五官, 骨傷 등에 걸쳐 있다. 이 책은 한문으로 쓰여 있지만 그 내용과 사용한 단어, 약명 등으로 보면 아랍과 서부 소수민족 의학을 주로 담고 있다. 수많은 약명이 아랍문이나 한문의 음역인 외래어로 되어있는데, 예를 들면 阿而馬尼(五倍子), 木黑里 (安息香), 撤答卜子(薄荷子), 法體刺撤里榮(當歸) 등이 있다. 이와 같이 ≪回回藥方≫은 回回藥物을 반영한 전문서로 중국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에 책 내용 가운데 漢書의 일부 내용과 한문의 해석이 불가피하게 섞여 들어갔으며, 약물의 용량 및 일부 제형 등도 모두 漢醫의 습관에 따랐다17-19.

중국과 이슬람 지역과의 활발한 상업적, 문화적 교류에 힘입어 元대에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중국 의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최초로 중국의서의 번역이 행해졌고 침술요법에 대한 관심이 나타났다11.

우리나라의 한의학과 이슬람 의학이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자료가 부족하다. 그러나 신라시대에서부터 이슬람 세계와 많은 교류가 있었으며, 이슬람인들의 신라 왕래에 관한 첫 기록을 남긴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는 역사지리서(845)에서 신라에서 麝香, 沈香, 肉桂 등을 수입하였다고 기술하였다. 또한 ≪고려사≫12)의 기록에 의하면 1024년과 1025년, 1040년에 아랍 상인들이 水銀, 沒藥, 蘇木 같은 약재를 가지고 상역을 위해 개경에 찾아왔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한반도에서 乳香과 安息香 등 아랍산 향료가 포함된 서역의 유물이 다수 발굴된 점으로 보아 이슬람의 약재가 수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8.

현재 이슬람 국가에서 서양의학이 주류의학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이슬람 의학도 전통의학으로서 질병 치료에 이용되고 있으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같은 인도아대륙에서는 이슬람 의학을 시행하는 의사들이 공식적인 면허와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Tibb 또는 Unani’의학이라고 불리는데, 이 의학을 가르치는 의학학교가 설립되어 공식인증 면허를 발급받은 의사들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인도의사협회에서 면허관리 및 감독을 주관한다. 파키스탄 또한 공식적인 지위와 면허를 가지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이나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도 이슬람 의학이 전통의학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11.

2. 이븐 시나의 의학사상

이븐 시나(Ibn sina)(980-1037)는 이슬람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단테는 그의 저서인 ≪신곡≫에서 이븐 시나를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와 함께 위대한 의사로 언급하였다20. 이외에도 ‘의사들의 왕자’21, ‘이슬람의 갈레노스’22, ‘아라비아인의 아리스토텔레스’23로 알려져 이슬람 의학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의학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알코올을 소독제로 추천한 최초의 의사로 저서 ≪의학정전≫에서 늑막염과 폐렴, 간염을 정확히 구별하고, 폐결핵의 전염성을 기술하였으며, 임상적 관찰을 통해 피부병, 성병, 상사병, 신경병등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하였다8.

1) ≪의학정전≫

이븐 시나는 평생 276권의 책과 논문집을 작성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책이 아랍어로 쓰였고, 소수의 책은 페르시아어로 쓰였다. 많은 책들이 소실되었으나, 아직 68권의 책과 논문집은 존재한다. 그는 의학, 철학 및 과학에 관심이 많아서 의학책 43권, 철학책 24권, 물리학책 26권, 신학책 31권, 심리학책 23권, 수학책 15권, 논리학책 22권, 꾸란 해석책 5권을 저술하였으며, 이외에도 금욕주의, 사랑, 음악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였다24.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의학정전≫은 동서양을 통틀어 의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25. 영국의 의학자 William Osler13)는 ≪의학정전≫을 “의학성경”, “지금까지의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의학 교과서”라고 표현하였다26. ≪의학정전≫의 라틴어 번역은 12세기의 유명한 번역가인 크레모나의 제라르드(Gerard of Cremona)에 의해 이루어졌고, 17세기까지 유럽대학에서 필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27. 아울러 ≪의학정전≫은 히브리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의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다28.

≪의학정전≫은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은 해부학과 의술의 기본이론, 2권은 위생학, 3권은 인체 장기와 기관의 질병들, 4권은 일반 질병들, 5권은 처방에 대해서 각각 서술하였다. 특히 3권에서 각 기관의 질병과 관련된 증상과 징후를 간단한 해부학적 설명과 함께 서술하였다. 그는 병의 분류, 원인, 역학, 증상과 징후, 진단과 치료의 순으로 서술하였는데, 이는 최근 현대 서양의학의 설명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24.

2) 의학사상

(1) 의학에 대한 정의

이븐 시나는 ≪의학정전≫의 서두에서 의학을 ‘의학은 합리적인 학문이다. 의학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건강하지 못할 때의 여러 가지 상태에 대해 배우며, 의학은 건강을 유지하게 하고 회복하게 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정의하였다29. 즉 의학은 최대한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학문임을 주장하였으며, 의학을 통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질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몸을 건강하게 하여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2) 기본 이론

이븐 시나는 그리스 의학의 사상을 계승하여 4원소론, 4체액론을 기본 이론으로 받아들였다. 그리스의 의학은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피타고라스 학파인 엠페도클레스는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 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의 4체액, 그에 따른 한, 열, 조, 습에 대한 이론을 주장하였다. 엠페도클레스의 학설은 히포크라테스 학파,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가 발전시켜 중세 의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사혈(瀉血) 같은 배출법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다12. 이븐 시나의 4원소론과 4체액론 또한 그리스 의학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븐 시나는 체액설 이외에도 한열조습에 따른 체질을 강조하였다. 더운 체질, 차가운 체질, 습한 체질, 건조한 체질로 구분하였고, 나이, 남녀, 살고 있는 지역, 신체기관에 따라서 한열조습을 세분화하여 그에 맞는 치료를 강조하였다. 한열조습에 대한 구분은 로마시대의 의학자인 갈레노스도 강조하였지만, 한열조습에 따른 체질론과 조건에 따른 체질변화론은 이븐 시나가 4체액론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각각의 체액은 4원소, 4계절, 4기질, 4단계의 인간연령 및 황도의 순환까지 연결되어 협의로는 인체의 기능과, 광의로는 천체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30.

① 4원소론

4대 원소(불, 공기, 흙, 물)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근본적으로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들로, 4대 원소의 적절한 조합으로 자연의 여러 가지 질서들이 형성된다. 그리스 자연철학에서는 자연은 4대 원소로 나눌 수 있는데 더 이상의 나눌 수 있는 원소는 없으며, 불과 공기는 가벼운 속성을 가졌고, 흙과 물은 무거운 속성을 가졌다. 그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흙은 중심에 위치하는 원소로, 이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으나 만약 중심에서 떨어져 있다면 흙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본질적 속성을 가진다. 흙의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본질적 속성 때문에 우리 몸은 고정되고, 외형이 유지된다. 또한 흙은 차갑고 마른 속성이 있다.

물은 흙을 둘러싸고 있으며, 물은 공기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이런 배열은 밀도와 관련하여 생긴다. 물의 속성은 차갑고 습하며, 물은 흙과는 다르게 즉시 분산하려는 속성이 있어 오래된 형체를 쉽게 변화시키고 즉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특성을 가진다.

공기는 물과 불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가벼움과 관련된다. 공기는 뜨겁고 습하다. 공기는 사물들을 가볍게 하고, 부드럽게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한다.

불은 제일 가벼운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4대 원소중 제일 상층부에 위치한다. 불은 뜨겁고 마른 속성이 있다. 불은 성숙시키고, 순화시키고, 사물들을 혼합시킨다. 불의 관통력은 공기를 가로지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불의 힘으로 무겁고 차가운 원소들을 포섭할 수 있고, 조화롭게 할 수 있다.

무거운 속성을 가진 2개의 원소들은 신체의 기관조직과 체액에 들어가서 그들의 안정성에 기여하며, 두 개의 가벼운 속성의 원소들은 기관의 움직임과 호흡의 움직임에 관여한다.

4원소들은 각각 서로 상대되는 힘(한열조습)이 있는데 이 힘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상호작용을 통해 기질을 형성한다. 기질 형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균형 잡힌 기질이다. 상반되는 힘이 서로 동등하거나 균형을 이룰 때이다. 두 번째는 불균형한 기질이다. 이는 상반되는 힘이 불균형하거나 한쪽의 힘이 더 강해 동등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29.

② 4체액론

4체액은 4원소와 연계되어 있다. 혈액(뜨겁고 습함)은 공기와 같고, 담즙은 불(뜨겁고 건조함)과 같고, 점액은 물(차갑고 습함)과 같고, 흑담즙은 흙(차갑고 건조함)을 닮았다. 이러한 대비는 계절변화 같은 자연계의 다른 측면들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의학정전≫에서 체액은 우리가 섭취한 영양분이 변해서 생기는 일종의 유동적 액체인 물리적 물질이라고 정의하였다. 영양분의 일부는 인체에서 특정 물질로 변할 수 있는데 영양분 그 자체로 축적되거나 또는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조직과 기관에 의해 축적된다. 조직들에 흡수되어 축적되면 건강한 체액 또는 좋은 체액이 되는 반면, 조직들에 축적되고 남은 잔여물은 해로운 혹은 병적인 체액이 된다29.

혈액은 생명력의 원천이며 담즙은 소화에 필수적인 위액이다. 무색의 모든 분비액을 포괄하는 점액은 윤활 및 냉각 역할을 한다. 땀이나 눈물이 바로 점액의 예로 춥거나 열이 날 경우 점액이 과도하게 많이 분비되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흑담즙은 순수한 형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어두운 색의 액체로, 혈액, 피부나 대변이 검은색을 띨 때처럼 다른 체액을 검게 변하게 한다. 이 4가지 체액으로 지각할 수 있는 신체현상(체온, 피부질감, 색 등)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데, 혈액은 몸을 뜨겁고 습하게, 담즙은 뜨겁고 건조하게, 점액은 차갑고 습하게, 흑담즙은 차갑고 건조하게 만든다31.

결국 4체액의 균형이 건강유지와 질병 회복의 주요 관건이 되는데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혈액이 과도하게 많아 균형이 어긋나면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식이요법을 사용한다던가 아니면 정맥절개와 사혈부항 같은 처치를 통하여 혈액을 제거하여 체액의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하였다30.

체액이론을 바탕으로 체형이나 체격까지 설명할 수 있었다. 점액이 많은 사람은 뚱뚱한 편이고, 담즙이 많은 사람은 마른 편이다. 또한 기질도 설명할 수 있는데 혈액이 많은 사람은 안색이 불그스레하고 낙천적이며 쾌활하고 활기가 넘치는 반면 충동적이고 다혈질이다. 담즙이 많은 사람은 마르거나 신랄한 기질을 갖고 있어 화를 잘 내거나 독설을 퍼붓는 경향이 있다. 점액이 많은 사람은 안색이 창백하고 성격은 차분하며 침착하나 게으르고 둔하며, 흑담즙이 많은 사람은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성격은 음울해 냉소적이고 의심이 많아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31.

이렇듯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중세 이슬람 의학까지 큰 영향을 미친 체액설은 대비되는 원형들(뜨거운 것과 찬 것, 습한 것과 건조한 것 등)을 채택하고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③ 한열조습론

이븐 시나는 갈레노스의 4체액론을 바탕으로 한열조습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인체 기관을 한열조습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하였다. 먼저 열한 것을 논하면 생체활동의 중심에 있는 심장이 몸 안에서 가장 뜨거운 기관이다. 다음으로 열한 것은 혈액이다. 혈액은 비록 간에서 생성되지만 심장을 거치기 때문에 간보다 더 뜨겁다. 그 다음은 거의 대부분의 혈액을 저장하고 있는 간이다. 그 다음은 살갗인데 이 안에는 차가운 신경이 있기 때문에 간보다 차다. 그 다음은 근육인데 근육 안에 있는 차가운 인대와 힘줄이 피부만큼 뜨겁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혈액이 파괴되고 나머지 잔류물들이 모여 있는 비장이다. 신장은 약간의 혈액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이 적다. 그 다음은 유방과 고환 및 동맥의 근층의 순서로 따뜻한 혈액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따뜻하다. 그 다음은 정맥으로 혈액이 안에 있어서 약간 따뜻하다. 마지막은 손바닥의 피부이다. 한한 것을 논하면 가장 차가운 기관은 점액이다. 그 다음은 순서대로 머리카락, 뼈, 연골, 인대, 장막, 신경, 척수, 뇌, 지방, 피부 순이다. 가장습한 것은 점액이다. 그 다음 습한 정도를 순서로 나타내면 혈액, 지방, 뇌, 척수, 유방, 고환, 폐, 간, 비장, 신장, 근육, 피부 순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건조한 것은 머리카락이다. 다음은 뼈, 연골, 인대와 힘줄, 장막, 동맥, 정맥, 운동신경, 심장, 감각신경, 피부 순으로 건조하다29.

또한 이븐 시나는 나이에 따라 한열조습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소년들과 젊은이들은 열이 많은 반면에 중년과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기운이 많다고 보았으며 소년들은 성장을 위해서 많은 양의 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소년들은 태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뼈와 신경조직이 부드러운 반면 중년과 노인들은 차가운 기운을 많이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뼈는 딱딱하고 피부는 건조하며, 나이가 많이 들어 혈액과 정액이 부족해지고 생명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건조하다고 하였다.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많아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몸집이 작으며 여자가 더 차갑기 때문에 더 습해지므로 남자보다 많은 활동을 하지 않고 여자들의 살이 남자들보다 부드럽고 성글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북쪽에 사는 사람들이 남쪽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습하고 더 차가운 기운이 많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이븐 시나는 사람들의 나이, 성별, 거주지 등 각각의 상황을 고려하여 신체의 한열조습을 평가하였다29.

(3) 이븐 시나가 바라본 정신과 육체

이븐 시나는 ≪의학정전≫에서 병리현상을 심리현상과 결부하여 면밀히 분석하였다. 상사병, 신경병 등에 대하여 상세한 임상적 관찰을 한 후 치료법을 제시하였다. 상사병은 그 증상이 체중과 체력의 감퇴, 발열 등 만성적 증상이 나타나며, 치료법으로는 사모하는 상대방과 결혼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븐 시나가 병리현상과 심리현상을 아우른 ‘심신의학법(psychosomatic medicine)’으로 한 왕자를 치료한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망상증에 걸린 왕자는 자신이 소라 믿고 소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자기를 잡아먹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븐 시나는 도살꾼으로 가장하고 왕자가 너무 여위어 앙상하니, 우선 살이 쪄야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왕자는 마음껏 먹다 보니 병이 어느새 좋아져서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이븐 시나는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하였다8.

그는 더 나아가서 영혼(혹은 생명력)에 대한 관점을 추가하였다. 주요 신체 기관인 심장, 뇌, 간 및 생식기관과 영혼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영혼이 방해를 받게 되면 인체에 질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는 영혼을 4종류로 분류하였는데. 첫 번째는 심장에 있는 영혼으로 모든 영혼의 기원이 되고, 두 번째는 뇌에 있는 영혼, 세 번째는 간에 있는 영혼, 네 번째는 생식기관에 있는 영혼으로 구분하였다32.

이와 같이 이븐 시나는 정신과 육체 사이를 매우 밀접한 관계로 보았으며, 더 나아가 사람의 영혼이 인체 내에 존재하여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더불어 심리 상태의 균형과 조화도 중요하며, 궁극적으로 영혼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음과 영혼이 신체적 건강과 관련된다는 사상은 불교나 힌두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영혼이나 정신과 분리한 그리스 철학을 수정하고, 모든 신체 과정을 신과 우주와의 내부 연결로 보는 전인적인 이슬람의 관점을 통해 정신과 육체와의 관계 설정을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4) 질병 진단

이븐 시나는 질병 진단법에 있어서 소변검사와 맥진을 중요시하였다30. ≪의학정전≫에서 30페이지를 할애하여 소변검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는 소변검사용 견본으로 아침 첫 소변을 얻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소변의 색깔, 혼탁도, 농도, 냄새, 침전물, 용량, 거품의 존재 등을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3.

또한 그는 진단에 있어서 맥을 관찰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여 ≪Book on Pulsology (Resaley-e-Ragshenasi)≫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11세기에 이 책을 저술하였는데 페르시아어로 쓰여 있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9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항목은 기질과 의술의 기초적인 개념에 대해서, 두 번째 항목은 음식의 중요성 그리고 음식의 소화 및 배출과정에 대해서, 세 번째 항목은 심혈관계에 관한 해부학적인 구조와 생리기능에 대해서 각각 기술하였고, 네 번째 항목에서는 동맥 순환에 맥진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번째 항목은 맥상의 넓은 정도, 맥박이 손에 닿는 정도, 맥박의 기간, 동맥의 생김새, 텅빈 느낌 또는 꽉 찬 느낌, 맥상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느낌 혹은 차가운 느낌, 맥박이 뛰고 난 후 다시 뛰기까지의 시간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6번째 항목은 맥의 리듬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맥박이 연이어서 같은 맥상으로 뛴다면 그것은 “유사맥” 이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다면 “다양한 맥”이라고 칭하였다. 다양한 맥인 경우에 비록 연이어서 맥상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한 주기별로 규칙적으로 맥이 뛴다면 “규칙적 맥”이라고 하고 맥상이 연이어서 다르게 나타나고 주기도 없다면 “불규칙적 맥” 이라고 불렀다. 7번째 항목은 불규칙한 맥의 종류에 대해 서술하였고, 8번째 항목은 복합 맥상의 13가지 종류에 대해 설명하였다. 즉 각 맥상은 각각 특별한 이름이 있는데 두꺼운 맥, 얇은 맥, 거대한 맥, 사슴맥, 물결모양맥, 구불구불하게 연동하는 맥, 개미맥, 쥐꼬리맥, 톱니모양맥, 방추형맥, 2개 박동맥, 떨어지는 맥, 떨리는 맥 등으로 나누었다. 9번째 항목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서 맥이 달라지는 경우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븐 시나는 과도한 걱정을 하거나, 혈액 사혈을 너무 많이 하거나, 불면증이 있거나, 사람이 수척해지거나, 과도한 운동을 하면 맥이 약해진다고 보았다. 또한 사람의 나이, 성별, 수면 같은 각기 다른 요소에 의해서도 맥이 달라진다고 하였다34.

(5) 임상 연구

18세기에 제임스 린드(James Lind)14)가 약물에 관한 정규적인 실험평가를 시작하였지만, 이슬람 의학에서는 이미 10세기 무렵에 알라지가 대조군을 이용한 실험을 하였다. 이븐 시나는 ≪의학정전≫에서 약물의 효과를 발견하고 증명하는 7가지 기본 법칙을 서술하였는데, 이는 현대 임상연구 및 임상약리학의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35,36.

이븐 시나가 주장한 약물 평가 방법의 7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36,37.

① 평가받을 약물은 열기나 냉기 또는 외부 물질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상태여야 한다.

② 약물은 반드시 한 가지 조건에서만 평가받아야 한다.

③ 약물은 반대되는 질환에서도 평가받아야 한다. 만약 해당 질환과 반대되는 질환 모두에서 효과가 있다면 특정질환에 이 약물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

④ 약물의 강도는 질병의 경중에 비례하여야 한다. 약물을 저용량으로부터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점차 용량을 늘려 약물의 효능을 결정하여야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⑤ 약물의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시간을 명확하게 고려해야 한다. 만약 약이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면 그것은 분명히 약으로부터 효과를 얻은 것이지만, 반대로 효과가 늦거나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약의 효능 유무를 알기 어렵다.

⑥ 약물을 투여한 후 지속적인 효과나 일정기간 동안의 효과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효과가 사실이라면 약효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거나 또는 많은 경우에서 나타날 것이다.

⑦ 약물의 강도와 효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물이 아닌 인간에게 실험해보아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즉 이븐 시나가 주장한 7개의 원칙은 “순수한 약물의 사용, 약물을 1가지 질환에만 사용하여 평가할 것, 대조군의 사용, 약물용량의 단계적인 증가, 장기간 관찰, 재현성 있는 결과, 동물이 아닌 임상실험의 결과”로 정리되는데, 이는 현대 임상연구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규칙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36.

3. 이슬람 의학과 한의학과의 상관성

1) 자연을 이용한 세계관

이슬람 의학은 그리스 철학과 의학의 영향을 받아 4원소(물, 불, 흙, 공기)를 근간으로 한 의학체계를 세웠다. 각각의 4원소에 대한 이해와 인체에 대한 대입은 자연에서의 물, 불, 흙, 공기의 속성에서 유추되었다. 또한 4원소, 4계절, 4기질, 4단계의 인간연령 그리고 황도의 순환까지 연결되어 협의로는 인체의 기능과, 광의로는 천체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아 사고체계를 확장시켰다30.

한의학도 음양오행을 근간으로 자연에서 유추한 음양오행의 속성을 인체에 대입하였고, 나아가 오행의 상생상극을 이용하여 각 장부의 관계를 파악하였으며, 자연이 인체에 미치는 원리를 설명한 五運六氣論으로 발전하여 한의학의 의학체계를 구성하였다.

이와 같이 이슬람 의학과 한의학은 자연을 통한 세계관으로 인간의 생리병리현상을 자연이 가지는 특징적 속성과 연결시켜 인체에 대입시켰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

2) 통합과 균형을 중시

신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서양의학과는 달리 이슬람 의학과 한의학은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관점에서 인체를 바라보았다. 이슬람 의학은 4체액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진 인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체액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체액의 불균형이 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의 균형뿐만 아니라 한열조습 개념을 사용하여 인체의 한열조습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의학에서는 陰陽의 균형을 중시하여 陰陽의 불균형을 병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陰證과 陽證, 五行의 相生 相剋에 따른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八綱辨證을 통해 한열조습을 구분하여 진단하고 균형을 유지시키려고 하는 점에서 이슬람 의학과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38.

3) 맥진을 주요 진단법으로 사용

이슬람 의학과 한의학은 질병의 진단방법에서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한의학에서 병의 진단법은 觀形察色을 통한 望診, 환자의 증상을 듣는 聞診, 인체의 증상을 물어보는 問診, 직접 신체의 맥이나 복부, 배부 등의 상태를 알아보는 切診 등이 있다. 切診의 하나인 脈診은 한의학의 대표적인 진단법 중의 하나인데, 이슬람 의학에서도 질병을 진단하는데 있어 脈診을 중요시하였다. 한의학에서는 王淑和의 ≪脈經≫, ≪難經≫의 脈法, ≪醫學入門≫의 諸脈體狀 등 맥에 관해 많은 설명을 기술하였는데 예를 들어 澁脈은 대나무 껍질을 쓰다듬는 느낌, 滑脈은 옥구슬이 구르는 느낌, 弦脈은 팽팽한 활줄을 만지는 느낌 등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다. 이슬람 의학에서도 이에 못지않게 두꺼운 맥, 얇은 맥, 거대한 맥, 사슴맥, 물결모양의 맥, 구불구불하는 연동하는 맥, 개미맥, 쥐꼬리맥, 톱니모양의 맥, 방추형 맥, 2개 박동맥, 떨어지는 맥, 떨리는 맥등 맥에 대해서 세밀한 묘사를 하였다.

4) 유사한 치료법 사용과 한열조습 속성을 활용한 약용이론

이슬람 의학과 한의학은 그 치료법과 약용 이론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이슬람 의학에서 치료방법으로 약초를 달여서 복용하거나 사혈요법이나 부항을 사용하였는데, 침구 치료를 제외하고는 한의학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약초를 한열조습의 원리에 따라 사용하는 것도 한의학과 유사하다. 이슬람 의학이 계승한 갈레노스는 각 약물마다 한열조습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해 서술하였고 그 정도를 약한 것에서 강한 순으로 1도에서 4도로 구분하였다. 예를 들어 아카시아는 3도의 건조함을 가지고 있고, 1도의 차가움을 가지고 있으나 아카시아를 씻으면 2도의 차가움을 가지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약물의 성질을 이용하여 의사들은 체액과 기질에 따른 균형을 맞추기 위한 약물을 치료에 사용하였다30. 이븐 시나는 약물을 신체를 시원하게 해주는 냉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온제로 나누었으며, 약물마다 각각 熱한지 寒한지 濕한지 燥한지를 정하여 그 약물의 특성을 서술하였다.

이러한 약물 사용은 한의학에서 本草 氣味論을 이용해 치료하는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 本草學에서는 藥性을 寒熱溫凉의 四氣로 나누었는데 四氣는 陰陽에 입각한 藥性의 분류체계로 인체에 미치는 생리활성도를 네 가지로 표현한 것이다. 溫熱작용은 陽性을 띠고 寒凉은 陰性을 나타내며 熱性藥物과 寒性藥物은 그 작용이 강하고 溫性藥物과 凉性藥物은 작용이 완만하여 서서히 치유되는 효과가 있다. 즉 四氣로서 인간의 개인적인 신체의 특성과 천연약물을 하나로 일치시켜 생리적 기능을 증가시키는 것은 물론 병적요인을 제거하는 치료법인데39 이는 이슬람 의학의 약물 이론과 유사하다. 약물의 효능을 추론하는 방법 또한 한의학과 비슷한 점을 알 수 있다. 이슬람 의학의 약초학은 크기, 모양, 색깔, 촉감, 맛 등 약초의 물리적인 특징이 치료 목적을 위한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콩팥 모양을 닮았기 때문에 신결석을 치료하는데 쓰인다거나, 인체의 형상과 비슷하게 생긴 뿌리 혹은 사람의 고환과 닮은 과일이 성기능을 향상시키는데 쓰이는데40, 이러한 방법은 약초의 形, 色, 氣, 味로 藥性을 감별한 한의학 본초이론과 유사하다39,41.

5)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중시한 점

이슬람 의학과 한의학은 구조적인 육체만을 파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다른 존재 즉 精神과 영혼을 중요시하는 전일개념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슬람 의학에서 영혼의 개념은 한의학의 ‘神’이란 개념과 대비해 볼 수 있다. 神이 생명체의 始生과 함께 발생한다고 하였고, 그 작용면에서 장부 기능과의 상관성에 따라 神을 肝藏魂, 心藏神, 脾藏意, 肺藏魄, 腎藏志로 나누어 五臟과 관련지어 그 기능을 구체화하고 있다38. 이슬람 의학에서도 神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영혼’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븐 시나는 저서인 ≪Treatise on Pulse≫에서 영혼의 생성과정과 위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영혼의 발생과 영양은 심장에서 이루어지며 심장에 있는 영혼은 모든 영혼의 기원이 된다, 두 번째는 뇌에 영혼이 있으며, 세 번째로는 영혼이 간에 있으며, 네 번째는 영혼이 생식기관에 거주하여 그 기능을 발휘한다고 보았다32. 즉 한의학에서 神이 五臟에 있다면 이슬람 의학에서는 영혼이 심장, 뇌, 간, 생식기관에 있다고 보았다.

 

IV. 結 論

이슬람 의학의 역사에 따른 발전 변화 및 이슬람 의학의 대표적 인물인 이븐 시나의 의학사상을 고찰하고, 아울러 한의학과의 상관성에 대해 비교 고찰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이슬람 의학은 엠페도클레스,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로마 철학과 의학을 계승하였으며,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또한 중세시기 교조적 기독교 철학의 영향으로 서양의학이 ‘수도원 의학’ 시대로 뚜렷한 발전이 없을 때 이슬람 의학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서양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이슬람 의학의 영향을 받은 아유르베다 의학은 불교의 전파경로를 따라 중국에 전해져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元대에는 중국과 이슬람 지역과의 활발한 상업적,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져 ≪回回藥方≫과 ≪飮膳正要≫ 같은 서적이 편찬되었다.

3. 이븐 시나는 이슬람 의학의 대표적인 의학자로 그리스 의학과 갈레노스에서 비롯된 4체액론을 더욱 발전시켜 한열조습에 따른 체질론과 조건에 따른 한열조습 변화를 강조하였다. 그는 정신과 육체 사이를 매우 밀접하게 보았으며, 진단의 방법으로 소변검사와 맥진을 이용하였다. 또한 7가지 약물연구 법칙을 통해 임상연구의 기본을 확립하였다.

4. 이슬람 의학과 한의학은 자연을 통한 세계관으로 인간의 생리병리현상을 자연이 가지는 특징적 속성과 연결시켜 인체에 대입시켰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 또한 인체를 부분적이 아닌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였고, 맥진을 주요 진단법으로 사용하였으며, 자연에서 나온 약초를 이용해 서로 유사한 이론으로 약물을 사용하였고,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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