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남산은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여타의 다른 산과 달리 도심의 공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본 연구는 남산이 공원으로 인식되는 시점인 대한제국기와 식민지기를 주요 배경으로 변화와 변용의 과정 및 내용을 살폈다. 남산이 공원이 되고 공원이 다시 종교시설로 변용되는 일련의 과정이, 실은 일본의 도시 식민지화 과정과 식민지적 공간 통치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일본이 왜성대공원(矮城臺公園)을 시작으로 경성공원(京城公園), 한양공원(漢陽公園)에 이르기까지 도성 안 남산을 모두 공원화한 것은 한성부에 대한 일본의 세력 확장과 관련한 것으로, 여기서 공원은 일본이 한성부를 점거하는 전략적 도구가 되었다. 그러므로 남산의 공원화는 단순히 위락과 여가시설의 확보가 아니라 공원 조성을 명분으로 한 타자의 공간 점유로 보아야 한다. 이 시기 남산의 공원 가운데 왜성대공원과 한양공원은 각각 경성신사(京城神社)와 조선신궁(朝鮮神宮)으로 변용되는데, 주체와 목적에 따라 그 양상은 점진적이기도 하고 폭력적이기도 하였다. 공원에 일본의 문화가 이식되고 공원이 지배자의 공간으로 치환되는 이러한 사실은 일본이 공원을 이용해 남산을 물리적으로 점거한 것과는 또 다른 공간 지배 양상을 의미한다. 즉 남산의 공원화가 한성부 내 일본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이후의 변용은 식민지 지배를 공간의 양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남산은 공원이라 불렸지만 실제로 공원으로 이용된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나마 남산이 공원으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경성공원 일대의 산림자원 덕분인데, 그 배경에는 신사와 신궁을 위한 신원의 보존과 관리가 있다. 이 또한 식민 공간 통치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Unlike other mountains in Korea, Seoul Namsan(南山), which is one of the landmarks that represent the country's capital city, is perceived as a city park. This article aims to study the process that Namsan became a park and the transformation of its place in Korean Emperor and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serial changes in Namsan, in early modern era, mean that is associated with the colonial urbanization and the rule of space by Japan. The stages of Waeseongdae Park(倭城臺公園), Gyeongseong Park(京城公園) and Hanyang Park(漢陽公園) under the leadership of Japan, due to the extension of Japan's power, Namsan has became the park. Here, the park has become a strategic tool of other's occupying Hanseongbu(漢城府), a capital city. The process that Namsan became a park dose not mean making the space for recreation and rest, but is an excuse for using the land. Since then, Namsan's parks barely fulfilled its original function as park as it was transformed into a shrine, Gyeongseong Jinjya(京城神社), for Japanese warriors or was incurred upon by Joseon Singung(朝鮮神宮), which was established as a facility to govern Korea, sometimes is gradually and sometimes is mercilessly. The fact, transplantation of Japanese culture and replacement as ruler space, is another aspect of occupying and govern place. In other words, while the process that Namsan became a park is the way of establishing Japanese force, the transformation of its place show a colonial rule as an aspect of space. Meanwhile, in spite of transformation to shrine, Namsan became accepted as a park for a long time, because of the forest of Namsan. Japan managed forest as a sacred place. It is also a result of the Japanese rule of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