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현재는 디지털 지식정보사회이다. 1차 농경사회에서 2차 산업사회, 3차 지식정보화사회로 변화하면서 토지, 노동, 자본 이외에 지식이 근본적 경제활동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지식사회에서는 지적 창의력, 아이디어, 상상력이 결합된 소프트적 경쟁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따라서 지식사회의 핵심 주체는 사람이며, 인적자원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 경쟁력의 원천이다.1)
한의학은 이와 같은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국가 고부가가치 창출의 우선순위에 있다. 한국은 2006년부터 한의약 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최근 「제2차 한의약육성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2) 박근혜 정부는 국정추진 전략을 6가지(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일자리 창출형 성장동력 강화,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성장을 뒷받침 하는 경제운영)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한의약에 관해서는 추진전략 2번째인 ‘일자리 창출형 성장동력 강화 : 보건의료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에서 한의약 세계화, 해외환자유치 활성화와 양·한방 융합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3) 외부에서 볼 때 한의학은 미래유망 학문이고 훌륭한 전통의학을 과학적으로 계승하는 열정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자료를 보면 위와 같은 상황을 인지하기는 어렵다. 한의의료기관의 진료비는 전체 요양기관 진료비 대비 2004, 2005년 4.4%가 최고치이며, 2012년도도 4.0%를 기록하여 최근 10년간 큰 변동 폭이 없으며 오히려 약간 낮아진 듯한 경향도 보인다.4) 진료비가 상승했다고 해도 양방의료기관의 상승률을 감안하면 전체 의료비중은 대한민국에서 4% 정도라고 판정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양방과 한방의 이원화 체계를 유지하는 한국의 의료실정에서 보면 보다 높여야하는 수치이다.
또한, 전통의학의 과학화, 세계화, 국제화라는 명목으로 한의계에서 매년 나오고 있는 실험논문들의 양적 성장을 고려하면 한의학계는 매우 풍부한 논의 속에서 외부와 상생 발전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까지 부각할 만한 학문적 성취 또는 한방과 양방의 융합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으며, 한의계 내부의 추가적인 발전 동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시대변화에 따라 대학 및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인재상 정립을 중요시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한의학계에서도 현시대에 적절한 인재상 정립이 필요함을 역설할 것이다. 이런 인재상은 결국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의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의와 현재 한의학의 연구 및 교육 범주를 명확히 정리하는 데에서 시작이 될 것이므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한의사의 인재상을 한의사의 이론적 역량과 실천적 역량 측면에서 제시하고자 하였다. 단, 모든 한의사의 역량을 제시하기에는 연구의 범주가 넓어지므로 이론과 실천에서 구체적인 인재상을 구현하기에 필요한 강조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지만 어느 것이 효율적인지 알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진정으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을 설정할 수 있고 향후 그 목적에 최적화될 수 있는 ‘수단’을 선정하여 보다 빠르게 한의계가 공동으로 연계하여 발전할 수 있는 기초적 토대를 정립할 방법이라 생각한다.
본 론
1. 시대변화에 따른 한의사 인재상 정립의 필요성
교육의 주요 사명 중 하나는 시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개인적·사회적 능력의 함양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이곳’이라는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삶의 문제를 통찰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5). 따라서 그러한 작업은 교육의 목표와 교육에 맞는 인재상을 정하는 시대적 배경과 장소에 따라 항상 변화해야 한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기업 또는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이 바뀌고 있다. 대학 또는 기업들은 왜 인재상을 중시하고 있을까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인재상 정립의 필요성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지금 사회는 앞서 제시하였듯이 디지털 지식정보사회이다. 따라서 지식사회의 핵심 주체는 사람이며, 인적자원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 경쟁력의 원천이다.6) 이러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식 사회 속의 한의사는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가 인재상 정립의 중요한 지점일 것이다. 이제는 바람직한 인재상에 대하여 한의계 내부에서 정립을 해야 할 시기이며,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 우리가 원하는 한의사 인재상은 어떠한 것”이며, “이를 위한 설정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은가”, 또한, “디지털 지식정보 사회인 21세기에 필요한 구체적인 한의사 상 또는 역할모델은 어떤 것인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기초적 지식으로 대학 또는 기업체들이 바라는 인재상을 정리하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토대로 한의사의 인재상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1) 대학교육 및 기업에 필요한 인재상 정립
인재상 정립에 대해서는 대학교육을 위주로 살피는 것이 정석이겠으나, 기존 한국의 교육 이념 등은 외부 환경 및 통치자의 교시에 의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재상을 정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연구자료는 미미한 상황이다. 반면 시대가 변하면서 기업들은 각자 기업에 맞는 인재상을 찾았고, 그러한 인재상을 필요에 따라 변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의 인재상은 그 정립 과정을 볼 수 있고, 이에 대한 연구자료도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기업들의 인재상 정립을 기준으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인재상’이란 그 기업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인재의 모습으로 기업의 비전(vision)과 경영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은 암묵적으로 자사의 인재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각 기업의 인재상은 전지전능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거나 또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표현으로 사원들의 이해가 어렵고 인재상의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7). 이러한 전지전능형 인간상과 추상적인 표현은 교육 분야와 기업 상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인재에 대한 성찰은 디지털 지식정보사회에 접어들면서 조직화·체계화를 갖춘 고도의 전략적 ‘인재 확보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개인에서 학교, 기업을 비롯한 각종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영재 교육’, ‘핵심 인재 양성’, ‘인적 자원 개발’ 등 인간 사이의 경쟁을 심화하며 인재 선발과 육성이 필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인재’라는 개념을 정립하려고 보니 그 의미를 단일한 요소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인재’의 개념을 심도 있게 다룬 논저를 찾기 힘들뿐만 아니라, 교육계·기업계·경제계에서도 의미나 개념 규정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8)
신창호9)는 “우리는 지금까지 ‘인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양성해 왔는가? 전통 사회에서 현재까지 인재에 관한 여러 생각이 스케치 되지만, 인재가 무엇이며 어떤 양성 시스템을 구축했는지 쉽게 명확한 그림을 잡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기업, 국가, 국제사회, 인류 사회 등)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라는 거시적이면서도 모호하고 추상적인 구호로 인재 양성을 대변해 왔으며, 인재 교육은 궁극적으로 교육과 학습을 통해 도달해야 할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2) 기업 비전과 인재양성
기업은 일반적으로 글로벌 환경 하에서 전문지식과 프로근성을 갖고 올바른 가치관,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조직구성원과 상호 협력하여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국제화된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기업은 학교성적이나 학벌이 아니라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기발한 끼가 필요하다. 잠재 능력을 바탕으로 가치창출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즉 지식은 도처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느냐 보다는,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거나 컨셉트를 파악하고 그를 행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야 한다.10) 즉, 문제와 주변 환경을 자기주도적으로 파악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있는’ 인재를 원하는 것이다.
주요 국내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서 개인역량은 “기본에 충실하되 폭넓은 교양과 끊임없는 자기개발로 노력하며 변화를 리드하는 프로페셔널”이다11).
최근에 『가치관 경영』12)이라는 테마가 화두이다. 미션(Mission), 비전(Vision), 핵심가치(core value)를 3대 축으로 하고 있으며, 기업 경영에서 구성원 대부분이 공유하는 핵심가치를 위주로 운영을 하면 기업 구성원 공동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성공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가치를 도출하기 위해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한의사의 인재상을 정립하는데도 이러한 방법은 효율적으로 보인다.
가치관 경영의 3대 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명(Mission)은 한마디로 기업의 존재이유다. ‘우리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이다. 비전(Vision)은 ‘우리 기업이 갖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이다. 즉, 비현실적인 백일몽이 아닌 최선의 시나리오가 연속되었을 때 달성 가능한 현실적이고 원대한 목표로, 구성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구성원들의 합의하에 도출되어 모두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13). 또한 기업에서 내려지는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을 정리한 것이 ‘핵심가치(Core Value)’이다. ‘핵심가치’의 모습은 기업에 따라 각양각색이며,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과 기준이고, 구성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3) 한의계 인재상
이상의 논의를 살펴보면, 기업들의 전지전능한 인간상이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표현은 삼가야 하며, 기본에 충실한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고, 비전(Vision) 관점에서 보면 막연한 것이 아니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모델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한의사는 어떤 사람일까?’라고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역할모델 또는 구체적 한의사 인재상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비전(Vision)에 해당하는 바람직한 인재상이 현실의 한의사와 동일할 필요는 없다.
전국 12개 한의학과와 한의전의 교육 목적 및 목표를 살펴보면 table 1과 정리 요약된다. 수도권 기반으로 학생 수가 일정규모가 되는 두 대학의 예를 들어보면,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육목적은 “인류건강증진에 기여하는 학구적이고 유능한 한의사 양성”이고 교육목표는 “첫째, 건강증진, 질병의 예방, 치료를 수행하기 위한 가치관, 지식, 기술을 습득하고 둘째, 창의적인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기 위한 폭 넓은 사고력, 탐구심을 기르고 최신 정보를 습득, 셋째, 제3의학의 창출을 위해 서양의학과 인접 학문에 대한 기초 지식과 이해력을 배양, 넷째, 지역 사회의 의료 및 보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봉사심을 함양”하는 것이다14).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육목표는 창의적 의료인을 위해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정신을 바탕으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통해 사회봉사하는 창의적 의료인을 양성한다.”이며, 한의예·학과의 교육목표는 유능한 한의사로 “한의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과학화 능력을 배양하여 사회봉사하는 유능한 한의사를 양성한다.”이다17). 다른 대학도 대략 ‘유능하고 능력있는 한의사’를 배양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우수한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는 교육목적 및 목표를 통해서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역할모델 또는 인재상이 한의학 교육과정에서 필요하다. 이러한 구체적 인재상을 정립해야만 어떻게 전통의학을 계승 발전하는 유능한 한의사를 교육시킬 방법이 정해질 것이다.
Table 1.Purpose of Education in Colleges of Korean Medicine15)16)
구체적인 한의사의 인재상을 정하기 위해서는 앞 장에서 설명한 기업체 인재상 정립과 가치관 경영에서 정의하는 미션과 비전, 그리고 핵심가치에 대해서 한의학 교육에 적용하는 방법이 하나의 접근론이 될 것이다.
사명(Mission)은 한의학의 존재이유가 되어야 한다. ‘한의학은 왜 존재하는가’이다. 비전(Vision)은 ‘한의학이 추구하는 이상적 꿈 또는 이상적 인재상은 무엇인가’에 해당한다. 즉, 전통의학을 계승발전하고 현대과학을 접목하여 새로운 의료를 발휘하는 대부분의 대학목표에 해당한다. 다만, 달성 가능한 현실적이고 원대한 목표로 한의계 구성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구성원들의 합의하에 도출되어 모두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이러한 사명과 비전이 정립이 되어야 한의계 내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정리된 ‘핵심가치(Core Value)’가 존재할 것이다. ‘핵심가치’의 모습은 한의계를 구성하는 개인 및 집단에 대해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한의계가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과 기준이고, 한의계를 하나로 묶는 가장 중요하고 공통적인 요소이어야 한다.
한의학의 존재 이유에서 ‘환자를 고치는 것’은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를 위한 비전(Vision)은 다양한 제시가 나올 수 있지만 각 대학에서 제시하는 교육 목표 등을 고려할 때 ‘환자를 잘 고치는 유능한 한의사’는 공통적 요소라 볼 수 있다. 가치관 경영에서는 막연하거나 비현실적인 비전은 의미가 없으며,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가능한 도달해야 할 이상적 목표가 필요하다고 하였으므로, 이 시대 상황을 반영한 한의계에 필요한 ‘유능하고 바람직한 이상적인 한의사’의 모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2. 한의사 위상의 역사적 연원
21세기 한의사 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과거 한의사들의 위상 변화 등에 의해 현재 보건의료환경 조성에 어떤 쟁점들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한의사의 역사적인 연원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조선시대의 한의사의 기능과 위상
조선 초부터 조정에서는 어떠한 정치 상황에도 관계없이 의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태조 때부터 의료제도를 정비하고 의서의 간행에 힘을 기울이는 등 정치·경제 분야에 못지않게 관심을 쏟았다18). 나라에서는 『동의보감』 이전에도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의 여러 의서와 그 언해본(諺解本)을 출판하여 국민보건을 위해 조선 전역에 보급을 하였고, 또한 중앙과 지방의 의료 기구에 수준 높은 의관(醫官)을 공급하고자 의학 교육과 의관의 선발 및 관리에 공을 들였다.
조선시대 의관은 인명을 다루는 관직이어서 혜택도 있었지만, 임용에 까다로운 제한조건이 비교적 많았다. 의관임용의 원칙은 의술이 뛰어난 의원에게 좋은 관직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단순한 시험성적뿐만 아니라 실제 임상의 실력도 같이 평가되었다.19) 따라서 일반 내과뿐만 아니라 전염병 및 수술을 포함한 모든 의학을 담당한 한의학은 지난 역사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 확고한 주류의학이었다.
이와 같이 주류의학으로서 확고했던 한의학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국제정세의 변화와 외부의 환경에 의한 강압 때문이었다.
2) 일제 강점기 한의사의 위상과 한의계의 부흥노력
일본은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서양의학을 중심 의학으로 채택했으며 한의학은 열등하고 한시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이는 일본이 근대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의 결과였다20). 즉 식민지 정책으로 기존 조선의 주류의학인 “한의학은 열등하다”라는 주장과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주류 의학인 “양의학은 우수하다”는 주장으로 일본의 조선 강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1906년 통감부 설치 직후부터 일본제국주의는 식민지 조선의 한의학 정책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1912-1914년 한의약 관련 여러 법령과 규정의 공포로 일단락되었다21). 그 내용으로는 조선총독부 위생과에서 마련한 한의학 관련 법령인 약품급약품영업취체령(藥品及藥品營業取締令) (1912년 제령 제22호), 의생규칙(醫生規則) (1913년 11월 15일 총독부령 제102호), 1914년 10월 안마술·침술·구술영업 취체규칙(按摩術․鍼術․灸術營業取締規則) (경무총감부령 제10호)과 그 시행규칙(경무총감부 훈령 갑 제55호) 등이 있었다. 한약을 다루는 한약종상의 행위에 대해서는 한약취체(漢藥取締)에 관(關)한 건(件) (위수(衛收) 제4697호)이 위생과 방침으로 규정했다. 이상의 법령과 방침을 통해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한의학 정책에 대한 구상을 드러냈다. 그 주된 내용은 몇 가지가 있으나 핵심 내용은 한의학의 지위를 서양의학보다 저열한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서양의학 시술자를 ‘의사(醫師)’라 하고 한의학 시술자를 ‘의생(醫生)’이라 규정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의사는 스승의 뜻을, 의생은 학생의 뜻을 담고 있다22). 현재 대한민국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양의사의 진료권이 의료행위에서 절대적인 것에 비해 한의사는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고 권한이 적은 것은 이때부터이다.
당시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한의학 정책을 신동원의 의견으로 바라보면, 식민지 조선의 한의학 정책은 일본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우선 한의사 제도의 폐지 방침, 침구·안마술 독립 등은 일본에서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의사를 의사보다 저열하게 규정한 것, 한의사에 대한 신규면허 부여, 한약종상의 진료 관행 용인은 일본의 경우와 크게 다르다. 일본에서는 한의사를 정리하면서 그들이 일생 동안 의사 면허로 의술을 펼칠 수 있도록 했으며 한의사 신규면허는 불허한데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한의사는 의생(醫生) 제도로 고착했으며 이후 5년 한시의 신규면허를 허용했다. 한약종상 진료의 경우 식민지 조선의 특수한 상황이었으며,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이러한 차이는 양쪽의 근대화 의지의 차이였으며 그것은 곧 식민지적 상황의 반영이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국가 의료 전체를 서구적으로 근대화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엄청난 재원을 서양의학에 투자하면서 한의 관련 제도를 무력화했다. 이에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그럴 의지가 박약했으며 그럴 능력 또한 부족했다. 따라서 의사보다 한 등급 낮은 의생 제도를 고안하고 5년 한시의 신규 면허를 허용함으로써 일제는 식민 본국과 식민지 사이의 괴리를 해소하려고 했다. 한의학을 서양의학보다 하등으로 규정하고 한시적으로 존치함으로써 일제는 신정(新政) 즉 서구적인 근대화의 의지를 과시했다. 하지만 한의제도를 인정함으로써 식민지 보건현실을 미봉하고자 했다.23) 이와 같이 일본의 경우는 한의사가 전원 의사(양의사)로 전환이 되었지만 조선에서는 대표 한의사격인 궁중에 있었던 한의사들이 갑자기 해고를 당하는 등 한의학 탄압으로 진행이 되었다.
궁중에 있었던 한의사들은 앞서 광제원 축출사건24)뿐 아니라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공중의료부문에서 축출되고 그 자리를 서양의학을 전공한 양의사들이 차지했다. 1907년 7월에 이르러서는 정미칠조약이 체결되면서 행정부에서 일하던 한의사들이 면직되고, 같은 해 9월에는 군 해산령으로 한의사 출신 군의를 포함한 52명의 군의관이 해직되는 등 한의사들은 관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25).
이런 억울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한의학 인사들이 한의학 탄압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즉, 서양의학이 들어와 의료체계의 중심에 자리 잡은 후로 한의계 인사들은 한의학을 소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일부 인사들은 한의사단체를 조직하여 조직적인 대응에 힘썼고, 일부는 학술잡지의 간행과 의서의 출간으로 열세를 만회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논리와 과학 지상주의가 대세였던 일제 간섭기 이후에는 어떤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26).
한의학 교육도 서양의학이 들어오고 일제에 의해 지속적으로 민족말살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위기에 직면했다. 서양식 의학교육이 부흥하고 한의학교육이 약화됨에 따라 한의학 존립 자체의 위협을 느낀 이27)들이 1904년 대한한의학교를 설립할 것을 고종에게 주청해서 허가를 받아 세운 것이 “동제의학교(同濟醫學校)”이다. 하지만 동제의학교는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됨에 따라 개교한지 3년만에 문을 닫게 되고, 그 후 1909년에 한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회가 동서의학강습소를 만들어 한의학 교육의 부흥을 도모하였다28).
이 당시 유명한 ‘의사’로 알려져 있는 지석영 선생의 자료는 특기할 만하다. 그는 ‘한의사’로서 활동을 한 사람이다. 즉, 종두법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지석영 선생은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이후 한의사로만 활동한 인물이다. 구한말에는 종두법을 보급하면서 양의사들에게 서양의학을 교육시켰다. 일제가 한국을 점령한 이후로 일체의 공직활동을 하지 않았고, 1914년 의생규칙이 반포되자 지금의 한의사인 ‘의생’으로 등록을 하였다. 1915년은 전국의생대회가 열릴 때에는 ‘조선의학의 유래와 발전’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이때 전선의회29)의 회장으로 추대되었다30).
이상을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전후의 한의사의 위상은 제국주의 논리에 의해 의사에서 ‘의생’으로 강등당하고 하루아침에 주류의학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한의계의 노력은 동제의학교 등을 통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3) 해방 후 대한민국의 한의사
일제 강점기에 억눌려 있던 한의사들은 해방과 함께 한의학 교육기관의 설립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948년 설립된 ‘동양대학관(東洋大學館)’이 그 노력의 결실이다. 이 학교는 부산 피난 시절인 1951년 서울한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55년 ‘동양의약대학’31)으로 교명을 변경했다32).
현재의 한의사 제도는 수많은 한의사들의 노력을 통해 진행이 되었다. 1950년 보건부는 보건제도 수립을 위해 제정하려던 국민의료법제정시 보건의료행정법안에 대한 논의에서 한의사를 배제했다. 이에 당시 12만 통의 반대 진정서가 접수되었고 조헌영 등이 강력한 반대 운동을 벌이자 법안이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같은 해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해 피난지 부산에서 한의사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활동이 윤무상 등을 중심으로 한 ‘오인동지회’ 등을 위주로 진행되었다33). 이로써 1951년 9월 25일 입법된 국민의료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한의사의 명칭 및 의료기관의 명칭, 면허 및 자격요건 등을 고려할 때 한의사와 양의사가 동등한 수준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이원제 의료제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34). 의료법 제2조(의료인)에서 '의료인은 종별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임무를 수행하여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다.' 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35)고 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의료법에서 의사의 업무와 한의사의 업무는 그 방면이 나누어진 이원화 제도를 이루고 있다36). 그러나 의료법 제정 이후 60여년이 흘렀지만, 현재 ‘두 의학사이에 교류와 협력이 원활하여 국민 보건에 이바지하고 있다’ 라고는 볼 수 없는 상태이다37). 이렇듯 양·한방이 이원화된 체계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의료이용에 대한 많은 불편을 야기하였다. 그 주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이후 주류의학으로 정해진 양의학이 전반적 보건의료 역할을 하면서 대등한 이원화가 현실화되지 않고, 의료 전반의 일부분만 한의학이 담당하면서 한의학은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의학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이 성립된 것은 현대 과학이 발달되기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그 사상과 이론체계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38). 하지만 한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적 발전 및 변화에 따라 한의학도 변화하였고 그 경향이 환경에 영향을 받아왔다. 따라서 지금 21세기의 환경을 충분히 이용한 적절한 한의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양의학과 대등하기 위해서는 내용적으로도 서로 대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논문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보면, “한의학이 변화하는 의료사회 속에서, 그리고 의학의 발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옛 사람들에게서 얻은 한의학적 지식을 현대 과학적39)으로 검증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라는 문장40)은 매우 타당한 것 같지만 한의학41)을 기존의 양의학 의료사회에 편입시키기 위해 ‘의(醫)’42)는 포기하고 전통 및 경험적 지식의 산물인 ‘약(藥)’만을 추출하여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와 같은 주장43)은 결과적으로 한의학보다는 양의학을 풍성하게 해주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궁극적으로 ‘한의’는 발전하지 않고, 천연물 ‘약’만 발전할 공산이 크다. 또한 예컨대 한의학에서 약재로 많이 쓰이는 인삼44)의 유용성을 연구한다 하더라도 연구 과정에 한의학 이론이 배제되어 있으면 그와 같은 연구는 한의학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우리라 사료된다. 이러한 단순 천연물 수준의 ‘한약’의 약리적 과학화는 현대 과학화를 통해 전통적 한의학을 검증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결코 한의학 이론의 학문적 발전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현재의 한의학 체계 내에서의 한의학적 치료에도 그다지 도움이 될 수 없다45). 물론 한의학의 과학화 현대화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겠으나 한의계가 중시해야 할 것은 이 시대에 걸맞은 ‘한의’의 현대화의 필요성이지 한의학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한약’의 주요성분을 추출하여 애엽 추출물인 스틸렌정46) 같은 ‘양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이와 같은 한약의 약리적 연구가 한의학의 과학화를 대변할 수는 없다. 또한 이러한 단순 천연물 수준의 한약을 소재로 한 약리학적 연구가 한의학 실험연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면 분명 한의학 이론의 체계화와 현대화에 적용될 연구 성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과학적 연구의 산물을 보면 천연물(한약재)을 갖고 연구하는 것이 한의약 발전인 양 제시되곤 하는데, 이런 많은 국제학술논문들이 과연 한의학에 무슨 발전을 가지고 오는지는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현실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이원화된 의료체계에서도 아직까지 한의학의 주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명의47)로는 편작, 화타, 장중경, 손사막, 이시진, 허준 등이 있을 것이다. 과거의 한의사들은 대부분 ‘명의’가 되려고 노력했으며, 이들 명의가 곧 과거 한의사들의 바람직한 인재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필요한 한의사 인재상은 지금의 의료환경을 반영하고, 한의사로서의 역량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역할모델(한의사 인재상)이 필요하다.
3. 한의학의 연구 및 교육 범위
1) 한의학 연구 현실 및 방향성
대학은 고등기관으로 교육의 방향성은 그 학문의 연구 목표에 의해 좌우된다. 연구의 방향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는 것은 본 논고의 주제인 한의사 인재상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한의학 연구 목표를 알기 위해서 한의학 기초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한방생리학에 대한 연구방법론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윤길영은 ‘한방생리학의 방법론연구’를 5회에 걸쳐 게재하였는데, 이 글은 그가 바라보는 한방생리학이라는 학문의 정체성을 글로 표현한 논문들이다. 서문에서 과학적 연구방법론이 생명현상을 파악하는 데에 미흡한 점을 비판하고 한방생리학의 방법론을 찾아내어 “과학적으로 검토하여 그 과학성을 밝혀서 생명현상을 생명으로서 분석, 연구하는 과학적 방법을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 하에 본론에서 순차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라고 했다48).
윤길영이 주장하는 한방생리학을 연구할 때 주의할 점은, 첫째, 한방생리학의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히 양방의 생리학적 체계에서 비판하고 연구하는 것, 둘째, 한방생리학의 기초이론이 음양오운육기론으로 되었다 하여 상념적 추리에 빠져서 대상 관찰을 떠난 음양오행의 관념적 전개에 蠱惑하는 것, 셋째, 양방학설을 억지로 부회시키려 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양방에서 성숙한 지식을 무조건 배척하며 현대과학방법의 도입을 꺼리고 과거의 방법만을 굳게 지키려는 것 등이었다49).
이상의 의견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방생리학의 기본 방향성은 음양 오운육기를 중심으로 한의학을 연구하되 추상적 관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양방학설을 이해하여 한의학의 폭을 넓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한의과대학의 교수업적 평가에 있어서 한의학의 특성을 외면한 채 정량적 평가와 세계적 권위를 가진 저널(SCI 등) 위주의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의계 역시 “SCI” 열풍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50). 문제는 국제저명학술지에 실리고 있는 한의계 논문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면 천연물을 이용했다는 것 말고는 대부분 생명과학 또는 약대에서 논문을 쓴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의계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한의사는 국제저명학술지(SCI)에 게재할 생명과학 연구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것만을 추구하고 한의학적 이론으로 치료 술기, 예를 들면 대표적으로 침과 약 등을 한의학 이론에 따라 사용하여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으며, 윤길영의 생리학 방법론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해야 한다.
2) 한의학 교육 현실 및 방향성
한의학 교육의 개념을 만들 때는 한의학의 학문적 특성과 철학적 배경 및 교육목표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교육 철학과 교육목표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한의과대학의 교육목표는 대학교육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국가교육이념과 대학고유의 교육목적을 반영하여야 하며, 전문직의 이상과 한의학의 전문적 특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전문인의 소양을 갖추고 지식과 기술적인 훈련을 목표로 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목표가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체계적인 교육목표의 설정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교육계획의 편성과 운영 및 교육의 효능을 가늠하는 지침이 된다. 즉 교육과정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의학 교육목표는 학문적 차원, 직업적 차원, 개인적 차원, 및 사회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51).
현재 전국 한의대 교육목표는 대부분 “유능한 한의사”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다양한 능력을 원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김남일은 “한의과대학의 교육 목표는 유능한 한의사를 양성하는 데에 있다. 여기에는 뛰어난 임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임상 한의사뿐만 아니라 한의학의 기초학문을 연구하여 한의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해낼 수 있는 연구자, 임상 연구를 통해 객관적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임상연구자, 한의학 관련 정책을 연구하여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도모하는 행정가 등을 포함한다. 국제적 안목을 가진 한의사들의 수요가 점차 요구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교육 목표는 점차 국제화 되어야 할 것”52)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한창호는 한의학 교육의 목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본적인 한의학 지식과 한의사로서 수행해야 하는 술기에 익숙해지도록 하여야 하며, 평생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의료현장에서 직면하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단순한 질병치료만이 아닌 전인적인 치료와 질병예방 및 건강증진을 수행할 수 있는 한의사를 양성하고,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지도자적 인격을 가진 한의사로 양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한국의 전통의학의 전문가로서 민족전통의 인간관과 사회관, 생명관과 우주관, 그리고 질병관과 치료원리 및 방법을 이해하고 서양의학을 활용하여 통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포함하여야 한다.53)
이들의 설명을 이해하면, 의료현장에서 직면하는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추가적으로 전인적 또는 국제화 능력까지 배양해야 한다. 또한 한의학 기초 학문을 연구할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이와 같이 아직까지는 한의학 교육의 개략적인 개념의 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확고한 한의학교육 개념의 틀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개략적 이해는 있으나 구체적 합의에까지 도달한 것 같지는 않다54). 이를 위해서는 한의계가 원하는 인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기 내용을 보면 확실한 것은 의료인으로서 능력이 요구되고 있으며, 한의사로서 유능한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렇게 분석하는 이유는 21세기 한의사는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양의와 대등한 의료인이기에 기본적인 의료인으로서의 지식과 술기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한의사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항목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유능한 한의사’인 인재상을 정립하기 위해 ‘한의사로서 요구되는 이론적인 구현 능력’과 ‘의료인으로서 요구되는 실천적인 능력’을 보다 상세히 제시하고자 한다.
4. 한의사의 바람직한 인재상
현대를 살아가는 한의사가 갖춰야할 역량과 이를 통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활동 시에 필요한 한의사의 능력에는 다양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본 장은 그 역량과 능력 중에서 보다 구체적인 인재상을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즉 한의사로서 한의학 이론을 갖춰서 한의술을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심으로 이론적 역량을 갖춘 한의사를 조명하고, 실천적인 부분은 기초와 임상의 연계도 중요하지만 현시대의 글로벌한 의료체계 내에서 업무를 적절히 수행하기에 필수적인 1차 진료의로서 한의사 역량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1) 이론적 역량을 갖춘 한의사
한의사가 궁극적으로 ‘한의사’일 수 있는 이유는 한의학을 통해 환자를 고치기 때문이다. 이는 한의사가 한의학적 방법론을 통해 침과 약 등의 수단을 적절히 사용해서 환자를 치유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표준진료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한 한의사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여기서는 구체적인 인재상을 표현하기 위해 침과 약을 위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한의사가 사용하는 침법과 약법은 음양오행 등 한의학 기초이론에 장부, 경락 등 생리이론이 복합되어서 사용되는 진료행위로 한의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연구 및 이론적 배경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대표적 치료도구인 침과 약을 기준으로 ‘유능한 한의사’의 모델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런 논의 이전에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한약과 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한의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약 규격품은 51455)개로 알려져 있다. 한의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기본 처방은 사군자탕, 사물탕, 보중익기탕, 육미지황탕 등으로 대부분 약물 구성이 10개 내외로 구성되어 있으며 많게는 30여개의 한약재로 구성이 되어 있다. 한의사들은 현재 기성 처방(방제)를 기준으로 가감을 하여서 처방을 한다. 최종 소비자인 환자들은 한의사들의 처방된 방제, 즉 한약을 복용하게 된다.
여기서 주지할 사실은 한약(방제)은 한약재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의학 연구자들은 변증을 하여 처방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증은 현재 일반적으로 처방(방제) 단위의 변증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를 들어 ‘氣虛’를 판단해도 결국은 ‘황기 인삼 백출’을 넣을지, ‘인삼 백출 복령’을 넣을지, ‘감초’를 넣을지 뺄지는 결정하려면 단순히 ‘氣虛’라는 변증으로는 구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약을 사용함에 개별 본초 단위의 약을 한의학적 이론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방제(처방) 단위의 변증 보다 더 정밀하다. 따라서 ‘유능한 한의사’라면 본초 단위의 변증까지 체계적으로 보다 더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합당하다.
물론 이런 것은 비전(Vision)에 해당한다. 현실적으로는 상한론에 사용된 약재 등 100여 종만이 비교적 정확한 한의학적 약리가 설명되어 있을 뿐, 상용 약재가 아닌 경우는 그 주치 효능의 원리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침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침은 원래 『영추(靈樞)』에서는 九鍼으로 9종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호침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침은 361혈을 위주로 자침한다. 혹 동씨침과 같이 경외혈자리가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침 시술은 경혈들의 조합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유능한 한의사라면 경혈들을 선택한 이유 또는 특정 경혈을 배제한 이유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로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예컨대, A혈과 B혈을 선택했을 때 A를 먼저 놓아야 하는 이유, C혈이 아닌 굳이 B혈이어야 하는 이유 등도 한의학적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침법도 침처방 수준이 아닌 ‘경혈’ 수준에서 한의학 이론 및 방법론이 체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임상에서 허리가 아프다고 허리주변에 침을 놓는 것은 아시혈 요법에 해당한다. 이 방법도 임상에서 우수한 치료효과를 나타내지만 한의학적 이론을 정밀하게 사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아시혈 위주의 침법으로는 증상 중심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많으며, 한의학에서 추구하는 원인 해결에는 미흡한 효과를 보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유능한 한의사’는 ‘경혈’ 수준에서 이론을 펼쳐야 하고, 선혈(選穴)의 이유가 체계적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한의학 이론을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본초 단위 또는 경혈 단위까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이론체계에 근거해야 한다. 기존의 음양, 오행, 육기에 대한 이론이 현실적인 임상에 까지 적용하기 위해 더욱 정밀해져야 하며, 상한론 금궤 온병 등으로 설명되는 약물의 임상적 기전이 음양오행의 한의학 이론과 장부론, 경락론을 통해 서로 연계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런 이론-임상 연계를 통해 나온 논리적 토대를 현실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곧 한의학의 과학화가 될 것이며, 이런 현실적 검증을 진행한 논문들이야 말로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에 이바지하는 논문이 될 것이다.
2) 실천적 역량을 갖춘 한의사
한의과대학의 교육 목표는 유능한 한의사 양성이다. 실천적 역량으로 보면 기본적인 의료인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한의학 임상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필요시 한의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의 추세를 반영하면 당연히 국제화적 감각을 갖춘 한의사를 요구한다.
(1) 한의사의 1차 진료의 역할
바람직한 한의사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역량이다.
한·양방 이원화 체계 속에 살고 있는 21세기라는 이 시대에서 필요한 의료인의 역량은 ‘의사’로서의 기본적 자질이다. 즉 최소한 수련의를 마치지 않은 일반 양방의사의 수준, 즉 21세기의 일반 의료인의 자질과 소양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최초의 질병을 분류 진단할 수 있는 ‘1차 진료의’로서 한의사가 ‘유능한 한의사’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일차의료의 개념에 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대표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56).
첫째, 미국 의학연구소(IOM, 1994)의 정의에 따르면 일차의료란 임상의사에 의해 제공되는 통합적이고 접근 가능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의미하며, 이때 의사는 인구집단의 개별적인 보건의료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고, 환자들과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며, 가족 및 지역사회와 밀접한 연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이다.
둘째, 일차의료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는 Starfield의 정의57)(Kurt Stange, 2011)는 4가지 기본적인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일차의료는 단순한 접근성이 아니라 최초 접촉자이어야 한다는 점, 분절적인 전문적 진료의 합이 아닌 포괄적이어야 한다는 점, 단순한 문지기가 아닌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단순히 진료의 지속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변화를 다루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일차의료 개념 정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차의료란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접하는 보건의료”로 정의하고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단골의사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며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하여 주민에게 흔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로 정의되어 있다58).
한편 일차의료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1978년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제시된 “일차보건의료”라는 개념이 있다59). 이 정의에 따르면 일차보건의료란 보건 및 사회경제분야의 핵심 부분으로 보건의료체계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며 개인,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보건의료체계에 처음 접촉하는 단계로써 지속적 보건의료과정의 첫 번째 요소를 의미한다. 앞서 정의한 일차의료뿐 아니라 건강증진, 예방, 치료 및 재활 등의 서비스가 통합된 기능으로 포괄적 보건의료제공체계를 일컫는다.
세계보건기구의 일차보건의료는 일차의료의 여러 개념보다는 보다 거시적인 개념으로 진료현장을 넘어서 지역사회 단위에서 제공되어야 할 의료서비스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단순한 의료서비스 제공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포괄적인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60).
이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1차 진료의의 역할은 환자의 최초 접근자로 포괄적이면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한의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범주이다. 추가적으로 보건의료체계는 정부가 진행하는 지역의료서비스로 당연히 한의사들은 국민 의료의 일익을 담당하여 향후 보건의료 파트너로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따라서 보건정책에서 요구하는 1차 진료의로서 역할을 한의사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한의학 이론을 통한 한의학 술기를 적절히 사용하는 한의사가 되어야 한다.
(2) KCD 코드
본 논의에서 유능한 한의사는 ‘1차 진료의’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1차 진료의는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1차 진료의 수준에서 질병을 진단할 수 있고, 치료 내용을 숙지해야 하며, 이를 근거로 필요시 상급 진료기관으로 이송을 판단 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병을 진단할 수 있어야 하며, 한국에서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Korean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를 능숙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KCD코드는 국제적 표준코드인 IC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국제질병분류)에 기반하여 작성되었다. 국제화 감각이 있는 한의사란 표현은 해외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한의사가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한의진료를 사용할 수 있는 한의사를 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통 질병분류코드를 분류해서 외국 의료기관과 상호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협회 차원에서 KCD 코드는 몇 번 안내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포괄적으로 KCD 코드에 대한 고민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61).
‘병분류’란 설정된 기준에 따라 질병명을 묶어놓은 하나의 범주체계라 할 수 있다. 질병분류의 목적은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상이한 시기에 수집된 사망과 질병이환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해석하며 분석과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데 있다. 표준분류는 자료를 손쉽게 저장하고 찾아보며 분석할 수 있도록 질병의 진단명과 기타 보건문제에 관한 말들을 알파벳과 숫자가 결합된 분류번호로 바꾸는데 사용된다62).
표준분류의 기초는 3단위분류를 단일분류 목록으로 각각은 10개의 4단위 분류로 세분할 수 있다. 숫자번호 체계로 이루어진 이전 분류를 대신하여 제3차 개정 분류부터는 분류번호의 첫 자리에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였고 둘째, 셋째 및 넷째는 숫자를 사용하였다. 4단위분류는 소수점 뒤에 위치한다. 결과적으로 사용 가능한 분류번호는 A00.0에서 Z99.9이다63).
이상의 내용을 기반으로 KCD 제정의 이유와 목적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실제로, 표준분류는 전반적인 역학과 보건관리 목적을 위한 표준진단 분류가 되었다. 이러한 목적에는 인구집단의 전반적인 보건상태에 대한 분석과 질병의 이환율 및 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특성 및 환경 등과 같은 다른 변수와 관련된 기타 보건문제의 감시등이 포함된다. 표준분류는 임상적으로 특이한 질병의 색인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진료비 청구나 의료자원 배분과 같은 재정적인 측면의 연구에 사용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이 표준분류는 모든 형태의 보건 및 인구동태 기록에 기재되어 있는 질병 및 기타 보건문제를 분류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본래 사망신고서에 기재되는 사인을 분류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후에 그 영역이 질병의 진단명까지 확대되었다.
비록 표준분류가 주로 공식적인 진단에 따른 질병과 손상을 분류하기 위한 것이지만 보건 서비스를 받게 되는 모든 문제나 이유가 이 방식으로 다 분류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64)
결과적으로, 이 표준분류는 보건과 관련된 기록의 진단명란에 기재되어 있는 다양한 징후, 증상, 이상소견, 호소 및 사회 환경 등을 분류할 수 있는 내용도 마련되었다. 따라서 통계 및 기타 보건상황 정보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자료의 ‘진단’, ‘입원이유’, ‘치료한 병태’, ‘협의진단(consultation)’ 등과 같은 항목 아래 기록된 자료를 분류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65)
현재는 사용되는 KCD 코드에서 한의 분야인 ‘제3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한의)’는 제2차 개정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한의)에 대한 개정판으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5)를 전면 수용, 코드 A00-Z99는 KCD-5와 동일하고, U코드에 한의병명 및 한의병증을 추가시켰다. 특히 U00-U49는 불확실한 병인의 신종질환의 잠정적 지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남겨놓은 것이고, U50-U99는 연구목적에 이용할 수 있는 코드로 지정하였다.66) 참고로 한의계에서도 표준질병분류코드를 중시하여 자체 지침서67)를 발간한 적이 있다.
따라서 ‘유능한 한의사’라면 의료인인 1차 진료의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KCD 코드를 익숙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68).
이와 같은 구체적 실기능력을 갖춘 한의사가 준비되어야 하며, 앞에서 제시한 침과 약을 경혈과 본초 수준까지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한의사가 이 시대의 실천적 한의사의 모델이라 판단된다69).
고 찰
이상과 같이 바람직한 ‘유능한 한의사’의 구체적인 사항들을 점검해 보았다. 대표적으로 한의학적 방법론으로 약(본초)과 침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다시 고민되는 부분은 과연 현재의 한의학 기초이론이 임상에서 필요한 처방(약, 침 포함)을 구사하기에 충분한 기초이론을 확보해주고 있느냐하는 점이다.
현재 한의학의 기본 이론이 음양오행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교적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음양오행설을 부정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그 이유가 한의학에서 교육되고 있는 음양오행의 질적 수준에 있다고 본다. 음양오행은 宇宙觀 象數易 등이 발전하면서 한의학과 접목되면서 진행되었다. 음양오행은 각각 따로 음양과 오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조적이며,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10干 12支의 干支論을 위주로 분석해야 하나, 운기론에서만 干支를 사용할 뿐 실제 한의학 총론에서는 10干論을 중심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70). 이런 경향은 臟과 腑, 五體, 五官의 이론적 구분을 미약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肝機能系라고 할지라도 肝과 눈, 筋肉은 엄연히 다른 것이며, 한약을 이용해서 간을 치료하는 것과 눈병을 치료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들을 동일한 간기능계로 보는 것이 일면 타당할 수 있으나 임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섬세한 구분을 해야 하며 그 구분의 이유는 한의학 이론에서 설명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한의학 교재 등에서 보이는 음양오행을 더욱 상세하게 장부, 경락론과 연계할 필요가 있으며, 임상적 감별 요구에 부응할 장부, 경락 체계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한의학적 메커니즘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초이론의 정밀함이 한의학의 과학화 현대화 물결에 한의학의 주체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바람직한 인재상을 만들기 위해서 21세기 국제화 시대에 대두될 수 있는 중요 이슈는 ‘한의학의 과학화’이다. 그러나 기존의 실험 및 연구 논문들을 보면 양방 및 과학의 기준에 맞추어 천연물을 연구한 것이 대부분이며, ‘한의’의 과학화를 위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즉 대부분 천연물의 제약 및 과학적 검증을 위한 것으로 이것은 천연물 관련 생명과학 또는 한약재를 재료로 쓴 ‘약학’이지 ‘한의’의 과학화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의학의 과학화는 한의학적 ‘이론’을 현대적 ‘이론’과 합리적 연결을 시도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통해 현실적인 접점을 찾는 것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의이론의 과학화를 위해서는 한의학의 이론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해야 하며, 기존의 단순한 음양오행 분류를 바탕으로 한 한의학 이론으로 한의학 임상을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서술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의학 기초, 즉 한방생리학에 대한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인식한 다음 그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주제 또는 양의학의 한계를 한방생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주를 정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결 론
이상의 논의에서 21세기 현대에 필요한 구체적인 한의사 인재상을 그려보았다. ‘유능한 한의사’라는 명제는 모두 공유하였지만 그 유능한 것의 구체적인 제시가 기존에 제시되지 않아서 본 논고에서는 KCD 코드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1차 진료의가 되는 것과 한의학적 이론을 근거로 체계적으로 침과 약을 경혈 및 본초 수준에서 진료할 수 있는 한의사가 되는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한의사가 양의사에 대비하여 열등한 조건을 갖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로 현재 대한민국의 이원화 구조 속에서도 아직까지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혔고, 향후 주체적 한의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의학 기초이론의 보다 치밀한 연구가 필요한 실정임을 말했다.
이후 한의학 이론에 근거한 우수한 임상 한의사가 되기 위한 학습 방법을 추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의학 교육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의 장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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