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脈診은 望·聞·問·切의 四診 중 切診에 해당하는 진단 방법으로 고금의 많은 醫書에서 그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黃帝內經』에서는 “장차 針을 놓으려고 할 때에 반드시 먼저 脈을 짚어 氣의 劇易를 알아야 治療할 수 있다”1)라 하며 脈診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素問』과 『靈樞』의 여러 편들을 통하여 三部九候脈法, 人迎氣口脈法 등 다양한 脈診法들을 소개하고 있다. 王叔和의 『脈經』은 中國 現存의 가장 오래된 脈을 論한 전문서적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重視되었으며2), 『黃帝內經』에 소개된 다양한 脈診法 중 특히 寸口脈을 이용하여 진단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해설한 책으로 『景岳全書』, 『瀕湖脈學』, 『醫學入門』 등 이후의 여러 醫書에 영향을 미쳤다.
『맥경(脈經)』에서는 寸·關·尺 부위의 정의 및 脈의 24가지 형태를 설명함과 더불어 좌우 寸口脈의 寸·關·尺 각 부위에 五臟과 六腑를 배치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五臟의 배치에 대해서는 좌측 寸部와 關部에 각각 心과 肝을 배치하고 우측 寸部와 關部에는 각기 肺와 脾를 배치하였으며 양측 尺部에는 腎을 배치하는 등 『素問 · 脈要精微論』에 나오는 尺膚診斷法과 유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 나온 여러 醫書들에서도 『맥경(脈經)』에서 볼 수 있는 寸·關·尺 五臟 배속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이 공통된 견해를 보이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3).
이처럼 寸口脈의 五臟 배속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으나, 臟腑 중 六腑의 寸口脈 배속에 있어서는 여러 의가의 의견이 각각 달라서 공통된 이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맥경(脈經)』에서 寸·關·尺 중 寸部에 心과 더불어 표리관계로 小腸을 같이 배속한 점과 후대에 小腸은 횡격막 아래에 있으므로 尺部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대표적인 내용으로, 이에 대하여 각 의가들의 의견이 아직 분분하여 합당한 정리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寸·關·尺의 六腑 配屬에 대한 연구를 역사적 맥락에 근거하여 살펴본 다음, 小腸과 大腸의 배속 위치가 정해진 과정과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히 ‘寸關尺 위치 중 大腸과 小腸은 어디에 존재해야하는 것이 맞다’라는 내용이 아니라 맥진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진행되어 온 내용을 인식해야 정리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본 논의는 소장, 대장의 배속문제를 근거로 脈診의 經絡診斷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본 론
1. 脈診의 發展과 寸·關·尺 臟腑 配屬
1970년대 초반 중국 長沙市 東郊에 위치한 馬王堆 1, 2, 3호의 漢墓에서는 많은 유물들과 함께 다양한 의약학 서적이 출토되었는데4), 이 중 『맥법(脈法)』에는 足內踝 근처의 動脈이 뛰는 곳을 짚어5) 그 脈象으로 병의 유무를 진단하는 방법이 나온다6).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馬王堆 出土 醫書 내용과 유사한 것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진단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素問 · 脈要精微論』에서는 “양손 척부(尺膚) 부위의 하단부 안쪽에서 계협(季脇)의 상태를 살피고, 바깥쪽에서 신장의 상태를 살피며, 중간에서 복부의 상태를 살핍니다. 척부 부위의 중단부 왼팔 바깥쪽에서 간의 상태를 살피고 안쪽에서 횡격막의 상태를 살피며, 오른팔 바깥쪽에서 위(胃)의 상태를 살피고, 안쪽에서 비장의 상태를 살핍니다. 척부 부위의 상단부 오른팔 바깥쪽에서 폐의 상태를 살피고 안쪽에서 흉중의 상태를 살피며, 왼팔 바깥쪽에서 심장의 상태를 살피고 안쪽에서 단중(膻中)의 상태를 살핍니다. 척부 부위의 앞쪽에서 몸의 앞쪽 흉복부의 상태를 살피고, 뒤쪽에서 몸의 뒤쪽 등의 상태를 살핍니다. 척부의 상단부가 끝나는 어제(魚際) 부위에서 흉부와 인후의 상태를 살피고, 하단부가 끝나는 팔꿈치의 가로금이 있는 부위에서 아랫배·허리·넓적다리·무릎·장딴지·발 등의 상태를 살핍니다.”7)라 하여 尺膚에 臟腑뿐만 아니라 신체의 부위를 배속하여 진단하는 법을 찾아볼 수 있다.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尺膚診斷法은 어제(魚際) 부위에서 부터 팔꿈치의 가로금이 있는 부위까지의 전체 영역으로 五臟 및 신체의 여러 부위들을 진단하는 방법이다. 일본에서는 이 내용을 腹診의 원리로 사용하여8) 『복증기람(腹證奇覽)』, 『복증기람익(腹證奇覽翼)』 등의 책이 출간되었으나, 후대의 대부분의 醫家들은 寸口脈의 寸關尺 부위를 나누는 근거 내용이라 인식하고 있다9). 다만 여기에서는 五臟 배치는 후대 의가의 臟腑 배속과 동일하지만 六腑의 배속은 없으며, 胸中 膻中 등 신체 부위를 배속하였다.
王叔和가 『맥경(脈經)』에서 언급한 寸口脈의 寸·關·尺의 臟腑 배치는, 『素問 · 脈要精微論』에서 제시한 배치와 비교하여 五臟의 배치는 같으나 신체 부위가 아닌 六腑를 배치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王叔和의 寸·關·尺 臟腑 배치를 도표10)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Table 1.assignment of internal organs in right and left Cun, Guan and Chi(寸·關·尺) suggested in 『Pulse Classic(脈經)』
『맥경(脈經)』 이후 『진가추요(診家樞要)』, 『이고십서(李杲十書)』, 『맥결간오(脈訣刊誤)』 등 여러 책에서 『맥경(脈經)』에 나타난 寸·關·尺의 臟腑 배속을 차용하였다. 李梴의 『의학입문(醫學入門)』 역시 『맥경(脈經)』의 내용을 받아들여 寸·關·尺의 臟腑배치를 설명하였는데, 李梴이 설명한 寸·關·尺의 臟腑배치는 다음과 같다.
Table 2.assignment of internal organs in right and left Cun, Guan and Chi(寸·關·尺) suggested in 『Introduction to Medicine(醫學入門)』
이와 같이 明代까지도 寸關尺에 인체 장부부위를 배속하는 것은 王叔和의 說을 지속적으로 따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王叔和에 대한 반론과 논의
王叔和의 이와 같은 배치에 대해 張景岳을 비롯한 후대 의가들은 이의를 제기하였다. 張景岳은 『경악전서(景岳全書)』에서 肝과 膽, 脾와 胃의 배치에 대해서는 王叔和의 의견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으나, “소위 脈의 形이 上에 나타난 것으로 上을 살피고 下에 나타난 것으로 下를 살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인 것이다. …王叔和가 心과 小腸은 左寸에 合하고 肺와 大腸은 右寸에 合한다고 말을 한 이후로 後人들이 드디어 左에는 心, 小腸이 있고 右에는 肺, 大腸이 있다고 하게 되었으니 그 잘못이 매우 심하다. 대저 小腸, 大腸은 모두가 아래에 있는 腑이니 兩尺에 응하는 것이 마땅하다.”11)고 하며 小腸과 大腸은 寸部가 아닌 尺部에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명대(明代)의 서춘보(徐春甫) 역시 『고금의통(古今醫統)』에서 “『내경(內經)』에서는 심(心)을 단중(膻中)과, 폐(肺)를 흉중(胸中)과, 간(肝)을 격(膈)과, 비(脾)를 위(胃)와 짝지었다. 양쪽 척부 바깥쪽에서 신(腎)을 진찰하고 안쪽에서 복부 속의 대장·소장·방광 삼부(三腑)를 진찰하였는데, 모두 복부 하부의 위치에 속한다. 그러므로 삼부(三部) 촌·관·척의 배치에 따른 진찰은 각기 그 臟腑의 위치에 따라야지 어찌 經絡에 구애되어 이를 진찰할 것인가?”12)라 하였다.
이처럼 王叔和의 六腑 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의가들의 경향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臟腑의 위치에 따라서 맥을 살피는 위치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각기 그 표리가 되는 臟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腑에 해당하는 膽, 胃, 膀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각각 표리가 되는 心, 肺와 크게 다른 위치에 있는 小腸과 大腸은 心, 肺와 같이 寸部에서 잡는 것이 아니라 尺部에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脈診의 위치가 臟腑의 물리적 위치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이와 같은 의견은 『素問 · 脈要精微論』의 尺膚診斷法의 五臟 및 신체 부위 배치를 볼 때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나오는 尺膚診斷法 및 다양한 脈診法들이 五臟六腑을 직접적으로 살피는 수단으로서 개발된 것이라 단정 짓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이는 후대의 의가들도 알고 있었던 바, 李時珍은 “양손의 寸·關·尺 六部는 모두 肺의 經脈이다. 특히 이 경맥을 취하여서 五臟과 六腑의 氣를 살필 따름이고, 五臟 六腑가 거기 있는 것은 아니다”13) 라는 말을 하였다.
3. 脈診의 기원과 王叔和의 주장
현재의 脈診이 직접적인 臟腑 진단의 수단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은 『황제내경(黃帝內經)』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 『내경(內經)』에는 몇몇 초기 脈診法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三部九候 診脈法은 『황제내경(黃帝內經)』의 「三部九候論」, 「八正神明論」, 「離合眞邪論」, 「寶命全形論」 등에 실려 있는 고대의 診脈法의 일종으로, 인체를 上部 · 中部 · 下部로 나누고 각각의 部를 다시 三候로 나누어 총 아홉 候의 동맥을 비교하여 맥의 변화 양상으로 九藏을 진찰하는 방법이다. 『素問 · 三部九候論』에서는 三部와 九候에 대한 설명으로 三部九候 診脈法의 소개를 시작하고 있는데, “하부(下部), 중부(中部), 상부(上部)가 있는데, 매 部마다 각기 삼후(三候)가 있습니다. 三候라는 것은 천·지·인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상부(上部)의 천후(天候)는 양쪽 이마의 태양혈(太陽穴)이 있는 곳의 동맥(動脈)입니다. 상부의 지후(地候)는 양쪽 볼의 대영혈(大迎穴)이 있는 곳의 동맥입니다. 상부의 인후(人候)는 양쪽 귀 앞의 이문혈(耳門穴)이 있는 곳의 동맥입니다. 중부(中部)의 천후는 수태음경(手太陰經)의 동맥입니다. 중부의 지후는 수양명경(手陽明經)의 동맥입니다. 중부의 인후는 수소음경(手少陰經)의 동맥입니다. 하부(下部)의 천후는 족궐음경(足厥陰經)의 동맥입니다. 하부의 지후는 족소음경(足少陰經)의 동맥입니다. 하부의 인후는 족태음경(足太陰經)의 동맥입니다.”14)라 하고 있다. 이어서 각각의 脈診부위에서 살피는 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Table 3.each sectors and their purpose of three positions and nine indicators pulse taking
三部九候論의 내용을 살펴보면 맥동처를 일컫는 데 兩額之動脈, 兩額之動脈 등 위치를 나타내는 표현뿐만 아니라 手太陰, 手陽明 등 經絡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표현도 사용함을 알 수 있다.
『靈樞 · 禁服』 편에서는 “寸口는 中을 主하고 人迎은 外를 主해서, 두 가지가 서로 응해서 함께 往來하는 것이 마치 땅겨진 줄이 굵기가 같은 것과 마찬가지인데, 봄여름엔 人迎脈이 약간 크고, 가을겨울엔 寸口脈이 약간 크니, 이와 같은 경우를 平人이라고 부른다.”15) 라 하며 人迎氣口脈法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人迎과 氣口의 두 부분에서 각각 느껴지는 脈의 大小와 盛衰의 정도를 비교하여 진단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人迎과 寸口는 『靈樞 · 衛氣』 편에 제시되어 있는 12經의 표본부위 중 足陽明經의 標 및 手太陰經의 本과 각기 일치하며, 이로 미루어 볼 때 『靈樞 · 禁服』 편에서 제시한 人迎氣口脈法은 12經脈의 표본부위를 짚어서 診斷에 활용하는 ‘標本脈法16)’의 축소판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17).
『素問 · 五臟別論』에는 “위(胃)는 수곡(水穀)의 바다이고 六腑의 큰 원천입니다. 오미(五味, 음식물)가 입으로 들어가면 우선 위(胃)에 머물고 비(脾)의 운화(運化)를 거쳐 五臟의 氣를 滋養합니다. 그런데 기구(氣口)는 手太陰肺經이 지나는 곳으로서 足太陰脾經과 서로 연계되므로 五臟六腑로 가는 기미(氣味)는 다 위(胃)에서 나와 변화되어 氣口에 반영되는 것입니다.”18)라 하여 人迎氣口脈法을 더욱 간략화하여 人迎脈을 생략한 채 오직 氣口脈19)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내경에 나타난 여러 脈診법은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寸口脈法이 그 뿌리를 臟腑 진단이 아닌 經絡 진단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며, 이는 『난경(難經)』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난경(難經)』은 “1難에 이르기를, 12經脈에 모두 脈이 뛰는 곳이 있는데, 오로지 寸口만을 취해서 五藏六府 疾病의 生死와 吉凶을 決定하는 法은 무슨 이치인가?” 물었으며 이에 답하기를, “寸口는 經脈이 크게 모이는 곳이며 手太陰肺經에서 맥이 뛰는 곳이다. 사람이 한 번 숨을 내쉴 때 脈氣는 3촌을 행하고, 한 번 숨을 들이쉴 때 脈氣는 3촌을 행하므로 한 번 호흡할 때 脈氣는 6촌을 행한다. 사람은 하루 밤낮동안 13500번 숨을 쉬고, 脈氣는 50바퀴를 돌아 온몸을 일주한다. 100각(하루)에 營氣와 衛氣는 陽分을 25바퀴, 陰分도 역시 25바퀴를 돌아 일주한다. 그러므로 50바퀴를 돌면 다시 手太陰肺經에서 모인다. 寸口는 五臟六腑가 시작하고 끝나는 곳이므로 診法을 寸口에서 취하는 것이다.”20)라 하여 寸口脈만을 이용하여 질병을 진단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1難에 이어서 『난경(難經)』에서는 脈診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내용에 대한 설명을 21難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22難에서는 是動病과 所生病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이는 臟腑가 아닌 經絡에 관한 설명으로서, 脈診에 대한 내용에 곧바로 이어지는 22難부터 奇經八脈의 病症을 설명하는 29難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 經絡에 대한 설명이며, 이러한 목차의 체계를 감안하여 보면21) 『난경(難經)』의 저자 역시 脈診이 臟腑 보다 經絡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脈診이 臟腑가 아닌 經絡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이러한 사실은 『맥경(脈經)』에서 王叔和가 寸·關·尺의 각 부위에서 무엇을 살피는지 배속하는 구절을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王叔和가 左寸脈의 배속에 대해 쓴 구절을 살펴보면, “心部在左手關前寸口是也, 卽手少陰經也, 與手太陽爲表裏, 以小腸合爲腑, 合于上焦…”22)이라 하여 좌측 ‘關前寸口’, 즉 左寸脈에 배속되는 것이 ‘心部’, 즉 ‘手少陰經’이라 하고 있다. 더욱이 王叔和는 이 구절에서 小腸을 左寸脈에 함께 배속하며 ‘與手太陽爲表裏’, 즉 手太陽經이 (手少陰經과) 더불어 표리를 이루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는 右寸脈의 배속에 대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며, “肺部在右手關前寸口是也, 手太陰經也, 與手陽明爲表裏, 以大腸合爲腑, 合于上焦,…”23)이처럼 手陽明經이 手太陰經과 표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앞에 내세우며 肺部에 大腸이 腑로서 合한다(以大腸合爲腑)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맥경(脈經)』의 구절에서 알 수 있듯 王叔和가 생각한 寸·關·尺 배속의 원리는 ‘臟腑’가 아닌 ‘經絡’이론에 근거하여 배속한 것이다. 따라서 王叔和의 의도는 『내경』에서부터 ‘診脈’의 脈은 경락(經脈)을 진단한다는 내용24)을 숙지한 상태였기에 寸口脈을 寸關尺으로 나누어 세부적으로 보고자 할 때 분석한 근거는 ‘臟腑’이론25)이 아닌 ‘經絡’이론26)을 적용한 것이다. 이는 王叔和가 診斷하고자 했던 것이 ‘臟腑’가 아니라 ‘經絡’일 수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와 같은 王叔和의 견해는 『의학입문(醫學入門)』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李梴은 『의학입문(醫學入門)』에서 脈診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의사(醫家)는 맥(脈)으로 經絡의 虛實을 알아내고, 經絡의 虛實에 따라 藥의 군신좌사(君臣佐使)와 침구(針灸)의 혈자리와 침법(穴法)을 정하니, 이 맥(脈)은 의사(醫)가 가장 터득에 힘써야 할 일(首務)이다.”27)라 하여 脈診할 때 經絡虛實 분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王叔和가 診脈을 세분화할 때 臟腑가 아닌 經絡的 관점을 적용한 사실은 명백하며 이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나온 脈診의 기원 및 발전과정과 일맥상통하다. 또한 脈診으로 臟腑 자체가 아닌 臟腑의 氣를 살피는 것이라는 李時珍의 말과도 그 뜻이 통하는 바가 있다. 따라서 張景岳 등이 장부론에 입각하여 王叔和의 寸關尺 六腑 배속을 비판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정치욱 등28)은 통시론적 관점에서 여러 醫家들의 寸口脈 배치를 다루었으나, 최종적으로는 王叔和의 시각이 틀리며 張景岳의 寸口脈 배치가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韓醫學의 가장 주요한 두 카테고리인 臟腑論과 經絡論 중 經絡論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전제 없이는 내릴 수 없는 결론이며, 이러한 전제는 옳은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앞서 다루었던 脈診의 기원과 王叔和의 『맥경(脈經)』의 서술을 함께 고려해 볼 때, 王叔和의 經絡 脈診과 후대 의가들의 臟腑 脈診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 찰
王叔和의 診脈이 經脈을 진단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한다면, 기존에 알려진 명대 이후의 장부를 진단하는 脈診과는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診脈時 동작 또는 행위 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을 것인데, 본 장에서 고찰하고 싶은 부위는 맥을 잡을 때 기준이 되는 ‘깊이’이다. 浮中沈에서 中은 浮沈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일반적으로 診脈이 숙련될수록 中의 위치는 가볍게 잡으며, 비숙련자일수록 맥을 힘주어 잡는 경향이 있다.
『난경(難經)』에는 “처음 脈을 잡을 때 콩 세 개 무게로 손가락을 얹어서 皮毛와 서로 만나는데 그것은 肺의 부위이고, 콩 여섯 개 정도 무게로 눌러서 血脈과 서로 만나는데 이것은 心의 부위이고, 콩 아홉 개 정도 무게로 눌러서 肌肉과 서로 만나면 脾의 부위이고, 콩 열두 개 정도 무게로 눌러서 筋과 서로 만나면 肝의 부위이고, 뼈에 닿을 정도로 눌렸다가 손가락을 들었을 때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腎의 부위이다.”29)라고 설명하고 있다.
『의학입문(醫學入門)』에 보면, 寸·關·尺의 배속 외에도 脈診시 누르는 깊이에 따라 臟과 腑를 나누어 살피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심과 소장은 표리관계로서 여름에 왕성해지고 좌촌맥에 위치하는데, 깊게 눌러 심을 살피고, 가볍게 짚어 소장을 살핀다. …폐와 대장은 표리관계로서, 가을에 왕성해지고, 우촌에 위치하는데, 깊게 눌러 폐를 살피고, 가볍게 짚어 대장을 살핀다30).”
『맥경(脈經)』에도 이와 동일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는데,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역시도 五臟을 직접 살피는 것이 아니라 깊이에 따라 皮膚, 血脈, 肌肉, 筋, 骨을 각기 눌러서 肺氣, 心氣, 脾氣, 肝氣, 腎氣를 살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五臟을 직접 살피는 것이 아니라 五臟의 氣를 살피는 것이라는 말은 앞서 언급했던 李時珍의 주장31)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며, 깊이 눌러서 깊이 있는 것을 짚고 가볍게 눌러서 표면 가까이 있는 것을 짚는다는 내용은 『의학입문(醫學入門)』의 六腑는 浮에서, 五臟은 沈에서 잡는 내용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이처럼 위의 문헌들을 통하여, 비록 그 대상에서는 문헌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것을 살피기 위해 脈診에서도 서로 다른 깊이를 이용한다는 뜻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王叔和가 『맥경(脈經)』을 통하여 주장했던 脈診을 經絡을 살피는 脈診으로 정의한다면, 후일 여러 의가들이 주장한 臟腑論에 입각한 脈診과는 그 살피는 대상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난경(難經)』, 『의학입문(醫學入門)』, 『동의보감(東醫寶鑑)』 등에서 주장하는 깊이에 따라 살피는 대상이 다르다는 구절을 확대 해석하여 보면, 王叔和가 주장했던 脈診은 張景岳 등이 주장했던 臟腑 중심의 脈診과는 그 按診의 깊이가 달랐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張景岳은 『경악전서(景岳全書)』에서 “人身에서 臟腑는 內에 있고 經絡은 外에 있으니 臟腑는 裏가 되고 經絡은 表가 되는 것이다”32)라 하여 사람의 몸에서 臟腑와 經絡의 깊이에 차이가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王叔和가 『맥경(脈經)』에 밝혔던 脈診은 후대 의가들이 일반적으로 언급했던 장부론에 입각한 脈診과는 그 깊이가 달랐음을 유추할 수 있으며, 張景岳이 언급한 經絡과 臟腑가 존재하는 깊이의 차이를 생각해 볼 때 王叔和의 脈診은 臟腑 脈診보다 그 깊이가 얕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脈診이 그 연원을 ‘臟腑’가 아닌 ‘經絡’의 진단에 두고 있으며 또한 明代 이후에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臟腑 중심 脈診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經絡이 臟腑에 부차적으로 딸린 것이 아니라 臟腑와 대등한 시스템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王叔和가 『맥경(脈經)』에서 寸·關·尺 배속시 ‘手少陰經’, ‘手陽明經’ 등의 단어를 골라 쓴 것과, 臟腑와 經絡의 위치에 차이가 있음을 말한 張景岳의 주장을 근거로 하여 추론한 寸口脈法의 經絡診斷은 이와 같은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근거하여 脈診 자체는 ‘經絡’을 기준으로 寸口脈法으로 간소화하였던 것을 후대로 내려오면서 寸口脈의 개별 부위가 마치 臟腑配屬인 것으로 誤認이 되었고, 이를 근거로 明代 이후에는 ‘臟腑’를 診脈하는 診斷法이 연구되었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비유하면 人迎氣口 학설이 한 때에 左手人迎 右手氣口라는 논지가 주도하였다가 후대에 이론의 원류를 고증하여 人迎氣口는 頸動脈部과 太淵部 脈動處였던 것을 밝혀냈던 것과 유사하다. 초기 脈診의 發源은 經絡論的 시각에서 비롯되었고, 그 시각에서 비롯하여 결론을 내린 王叔和의 『맥경(脈經)』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후 張景岳으로 대표되는 臟腑論的 시각에서의 脈診에 대한 접근 역시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면서 臟腑의 진단도구로 오랜 시간동안 사용되어 왔으므로 臟腑論的 시각으로 접근할 경우 王叔和가 아닌 張景岳의 의견이 옳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후대에 연구된 자료들은 초기 脈診이 내포하고 있는 經絡論的 시각과는 달리 장부배속에 중심을 두고 연구한 것이므로 이들의 자료를 재해석해야 할 것이며, 본 논고에서는 진맥시 浮中沈의 中의 위치가 장부맥진과 경락맥진의 높낮이가 달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臟腑와 經絡의 診斷에 대해서는 맥진뿐만 아니라 다른 진단체계에서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33)
결 론
이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그 기원이 언급되고 王叔和가 본격적으로 설명한 寸口脈을 잡는 脈診은 ‘臟腑’가 아닌 ‘經絡’을 살피는 脈診이었다. 따라서 王叔和가 『맥경(脈經)』에서 소개한 寸·關·尺의 六腑 배치는 經絡 脈診의 시각에서 판단했을 때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王叔和의 脈診은 후대 의가들이 언급했던 장부론적 脈診과는 그 초점이 되는 대상이 다르며, 따라서 王叔和가 『맥경(脈經)』에서 제시한 脈診은 후대 의가들이 말한 臟腑를 살피는 脈診보다는 그 진단하는 깊이가 더 얕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같은 寸口脈法을 사용하되 그 按診의 깊이로 臟腑 診斷과 經絡 診斷에 차이를 두었다는 것은 經絡이 장부에 딸린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대등하며 서로 다른 시스템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臟腑와 經絡 診斷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상과 같이 본 논문에서 제시한 新知見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王叔和가 제창한 寸口脈診은 臟腑의 상태가 아닌 經絡의 상태를 살피는 진단법이었다.
王叔和가 제창한 寸口脈診은 經絡의 診斷이 그 목적이므로 후대 의가들이 언급한 臟腑를 살피는 脈診보다 脈을 촉지하는 깊이가 얕았을 것이다.
脈診은 經絡論的 시각에서 비롯되었으므로 經絡論에 의거하여 판단한다면 王叔和의 寸口脈 배치가 옳다 할 수 있으며, 張景岳이 제시한 寸口脈 배치는 王叔和와 다른 臟腑論的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나 이후 장부의 진단도구로서 실제로 오랜 시간동안 사용되어 왔으므로 아주 근거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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