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금 실태와 현황 - 일본의 닭고기.계란 유통 실태 및 맛의 비밀(1)

  • 발행 : 2014.02.01

초록

본 자료는 필자가 2013년 말 일본 방문중에 일본 농축산업진흥기구 및 일본식육소비종합센터를 통하여 수집한 자료들과 선행연구자료를 참고하여 "일본의 닭고기.계란 유통 실태 및 닭고기 맛의 비밀"이라는 주제에 맞게 우리가 알면 좋을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따라서, 본문 내용은 저자의 주장이라기 보다는 일본에 통용되고 있는 사실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키워드

1. 일본 내 닭의 도래

맛있고 영양가 높고, 병의 예방기능도 있는 닭고기의 영양 및 기능과 일본의 식문화와 닭고기와 관련하여, 품종 개량에 의해 음식 맛의 향상, 안정된 가격 등 일상적인 식재료로 매력적인 닭고기에 얽힌 여러 시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럼, 닭의 가축화 이후 일본에 처음 도래한 다음 현재 어떤 상황인지 살펴볼까?

1) 닭은 5000년 전에 인도에서 가축화된 후, 전세계에 보급되다

닭은 약 5000년 전 인도에서 처음으로 가축화되었고, 순식간에 동서양으로 퍼져 일본에는 기원전 300년 전후 무렵인 야요이 시대에 전파되었다. 닭은 꿩과에 속하는 조류로 지금도 인도나 베트남 등지에서는 야생상태로 생식하고 있다.

닭은 인도에서 동서 양쪽으로 전파되었다. 동쪽으로는 중국에 기원전 1700년 전후를 기점으로 닭이 보급되었다고 하며, 그로부터 1000년 정도 지난 기원전 700년 전후를 기점으로 훨씬 보편적으로 닭을 사육하기 시작하여 맹자가 활동하던 기원전 300년경에‘주례’라는 책에 6축이라는 귀한 가축 중 하나가 닭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최초로 이집트에 전파되어, 투탄카멘왕의 묘에서 닭의 기름이 출토되었는데, 강한 왕권을 이용하여 일찍이 바닷길을 통해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1000년경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 지역에도 닭이 유입되었고 기원전 800년경에는 소아시아에서 그리스 토린토지역에까지 닭이 전파되었는데 이때‘페르시아 새’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어 기원전 200년 전후를 기점으로 영국에 전파되고 이어 아메리카 신대륙에 전파된 것이 기원후 1500년으로, 1709년에는 이미 아마존에서 닭을 보았다는 여행기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2) 일본에는 기원전 300년경 야요이 시대 초기에 큐슈에 도래

닭은 기원전 300년경, 야요이 시대 초기 무렵에 일본에 전해졌다. 한반도를 경유한 것과 뱃길로 직접 온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의 도래지는 큐슈일 것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헤이안시대에 들어서면서 몇 십 마리 단위로 닭을 사육하여 계란을 판매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닭은 더 이상 알을 낳을 수 없는 노계 뿐이었으므로 정말로 맛있는 닭고기가 나온 것은 메이지시대 이후가 된다. 그리고, 무로마치시대(1338∼1573)에 들어서면서 계란을 먹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양계가 전국에 보급되었다.

▲ 가이후 일족의 노력의 성과인 나고야 코친(사진제공/ 독일 가축개량센터)

메이지시대에 들어서면서 해외로부터 많은 양의 닭이 수입되었다. 처음엔 영국에서 그 생김새가 상당히 재미있어서 많이 수입했으나 미국에서 수입한 닭이 훨씬 생산성이 높아, 결국 브로일러 산업 측면에서 생김새 보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미국 육종기술 면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품질개량이 이루어지면서 양계지대가 도심부에서 주변으로 확대되었다.

3) 계란과 폐계닭은 귀중한 단백질원으로서 다뤄지며 2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소고기에 버금가는 귀중품으로 취급되었다.

다이쇼시대(1912∼1926) 제2년에 계란 생산 증가 10년 계획이 제정되었고, 마침 기술개발의 시기와 맞물려 갑작스럽게 양계는 더욱 왕성해졌다. 쇼와 6년(1931)에는 닭고기와 계란이 중요 수출산물로 지정되기에 이르고, 국내수요를 감당하고도 남아 수출까지 하였다. 그 무렵에는 암수감별 기술의 실용화도 이루어져 쓸모없게 된 수컷 병아리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주목되면서 알을 못 낳아 쓸모없는 수컷 병아리를 골라내어 식용영계로 사육하는 일이 채란양계의 부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영계는 5∼6개월 정도 된 것이나 그 보다는 조금 이른 3개월쯤 된 것으로 드디어 사람들이 식당에 가서 고급 닭고기 요리를 먹는데 돈을 소비하게 되었다. 이렇게 영계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쇼와 초기에 신주쿠의 나카무라야가 카레라이스에 닭고기를 넣어 비싼 가격에 팔았는데, 그 당시 닭고기의 규격은 특등, 1등급이 영계이고 2, 3등급이 노계, 폐계였는데 이 3등급 가격이 소고기 로스와 같은 가격이었다고 한다. 돼지고기가 소고기 가격 보다 조금 저렴하였다고 하니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닭고기가 귀했던 시대였다.

닭은 근대에 이르러 병아리와 영계가 등장하지만 식용으로는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폐계를 먹었다. 폐계라고 해도 상당히 좋은 가격에 팔렸다고 하니 아직 고기를 얻기 위한 양계는 근대가 되기까지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브로일러가 일본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양계업의 형태로 변모하여 오늘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