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racteristic of Mun Il-pyeong's Modern History, Joseonhak Campaign
문일평(文一平) 근대사학(近代史學)의 본령(本領), 조선학운동(朝鮮學運動)
Abstract
Mun Il-pyeong(1888-1939) is famous for a nationalist historian led history into popular style to enlighten the public. This paper aims to overview the characteristic of Mun Il-pyeong's history based on prior studies on Mun Il-pyeong's works. The characteristic of Mun Il-pyeong's history shows us people centric trend based on a struggle of classes. For the people, he insisted that description of history should be easy and scientific for the people who are host of history. And Mun Il-pyeong insisted the harmony of nationalist history and positive history. This was a progressive attitude in writing history at that time. Another characteristic of Mun Il-pyeong's history is that he considered cultural history as important. Mun Il-pyoeng wanted to overcome the ashamed political history by cultural history. In this intention, Korean history was again born proudful by him. Mun Il-pyoeng pursued open nationalism, not ultra-nationalism by connecting with other world. This paper focused on the essential part of Mun Il-pyoeng's history. Many scholars think Mun Il-pyeong focused on Korean modern history or history of foreign relation. But I think Mun Il-pyeong attached importance to Practical Learning, Sirhak in late Joseon dynasty. Because Sirhak contained Mun Il-pyeong's academic intention, Modernism and Culturism dreamed from his youth age. Therefore he led so-called Joseonhak Undong meaning study of Sirhak. Studying Sirhak made Mun Il-pyeong open a new direction Korean modern history have to go.
호암(湖岩) 문일평(文一平)(1888-1939)은 민중을 계몽하고 역사를 대중화하는 데 앞장선 민족주의 사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이 글은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문일평 사학의 특징과 본령을 종합적 관점에서 언급하고자 하였다. 문일평 사학의 특징은 계급투쟁을 의식하는 사회과학적 민중주의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또 역사의 주체인 민중 계몽을 위한 역사 서술 방법으로서 통속화와 과학화를 주장하게 되었다. 또 민족주의사학과 실증사학의 결합을 주장한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일평 사학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문화사를 강조하였다는 점에 있다. 정치사적 측면에서의 정체성을 문화적 측면에서 발전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조선 문명은 굴종의 역사가 아니라 찬란한 전통으로 재탄생하였다. 또한 종래 지배계급 중심의 역사의식을 극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를 추구하면서도 국수주의를 극복하여 세계와의 소통을 강조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추구하였다.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문일평 사학의 본령에 관한 것이었다. 문일평은 근대사나 외교사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저술의 양보다 그 사학사적 의미로 미루어 볼 때 필자는 문일평의 조선후기 실학 연구가 그의 학문적 본령에 해당하지 않나 진단하였다. 유학 이전부터 근대주의를 지향했던 문일평의 가치관은 조선후기 문화의 근대지향적 성격을 규명하려던 조선후기 실학 연구의 사조와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1934년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이하여 발표한 문일평의 논설은 당시 한국학의 지형을 뒤흔든 조선학운동의 일 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의 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일평 사학의 정수가 아닌가 한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