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임리정(臨履亭)과 팔괘정(八卦亭)의 입지 및 조영 특성 - 죽림서원(竹林書院)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Locational and Constructional Characteristics of Imrijeong & Palgwae-jeong in Nonsan - Focused on the Relation with Jukrim-Seowon -

  • 이현우 (전북대학교 조경학과) ;
  • 노재현 (우석대학교 조경도시디자인학과)
  • Lee, Hyun-Woo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
  • Rho, Jae-Hyun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 Woosuk University)
  • 발행 : 2013.06.30

초록

논산 강경읍 소재, 죽림서원과 임리정 그리고 팔괘정의 입지 및 조형 특성을 검토하는 한편, 이들 3개 공간의 상호 관련성을 "사계연보(沙溪年譜) 죽림서원도록(竹林書院都錄) 임리정기(臨履亭記) 죽림서원묘정비(竹林書院廟庭碑) 남유록(南遊錄) 당시 상소기록" 등의 문헌을 통해, 추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육현(六賢)을 모신 죽림서원은 강당이 배제된 채 '홍살문-외삼문-동재(헌장당(憲章堂)) 서재-내삼문(신문(神門))-사우(죽림사(竹林祠))'의 위계를 보인다. 죽림서원과 각각 50m와 100m 거리를 두고 조영된 사계 김장생의 임리정과 우암 송시열의 팔괘정은 좌향은 물론 규모 지붕 및 평면 창호 편액 등 세부 의장까지 거의 동일시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임리정과 팔괘정은 죽림서원을 중심으로 암괴로 구성된 부지여건을 고려한다면 최대한의 좌우대칭을 유지하며 사우를 위요한 형상이다. 죽림서원은 인조반정 후 정치적 여건 등으로 서원건립이 재추진되면서 율곡 우계를 향사한 묘우(廟宇) 단일 건물만을 우선 영건하고, 기존 강학당으로 쓰던 임리정을 더해 황산서원이라 통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최소한 중건 이후, 양정(兩亭)을 서원의 강학당으로 존치 활용함으로써 서원 구성의 기본적 질서인 좌우대칭적 규범을 최대한 도모하기 위한 필연적 결과이다. 결국 시대차를 두고 이루어진 임리정과 사우의 영건으로 초래된 황산서원의 위계와 시각배치상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 바로 황산 몽괘벽(夢卦壁) 아래 영건된 팔괘정이다. 이와 같은 추론을 종합해 볼 때 죽림서원은 사우를 새로 건립하고, 기존 강학당으로 쓰던 임리정과 이후 중건을 통해 보완된 팔괘정을 강당의 성격을 갖춘 공간으로 통합해 완성된 '사우 중심의 서원'으로, 팔괘정의 영건과 임리정과의 조형적 일치는 죽림서원의 강당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보정할 의도 하에 이루어진 결과로 판단된다. 본 연구는 기존의 누정의 기능과 역할이 서원 강학당의 보완적 시설로서 영건되고 존립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서, 서원과 누정의 상호 보완적 기능을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In this study, the locational and constructional characteristics of Jukrimseowon, pavilion Imrijeong, and Palgwaejeong located in Nonsan, Ganggyung-eup were reviewed and the interrelation of these three places were studied through references including records of those days; Sagyeyonbo(沙溪年譜), Jukrimseowon dorok(竹林書院都錄), Imrijeonggi(臨履亭記), Jukrimseowon Myojeongbi(竹林書院廟庭碑), Namyurok(南遊錄). The result is as follows. Jukrimseowon enshrining Yukhyeon(六賢) is arranged as 'Hongsalmoon-Woisalmoon-Dongjae(憲章堂; Heonjangdang)' and 'LIbrary-Naesammoon(神門; shin moon)-Sau(竹林祠: Jukimsa)', excluding a lecture hall. In case of Sagye Jangsang Kim's Imrijeong(沙溪金長生) and Uam Shiyoel Song(尤庵宋時烈)'s Palgwaejeong respectively constructed 50 meters and 10 meters each away from Jurimseowon, detail designs such as scale, roofs, surface, windows, doors, and tablets as well as its prospect are nearly identified. Especially Taking Imrijeong and Palgwaejeong's locational conditions composed of rocks centered on Jukrimseowon, those are maintain the bilateral symmetry as much as possible and surround the shrine. It appeared that the Jukrimseowon's shrine enshrining Yulgok(栗谷) and Ugye(牛溪) was rebuilt during the reconstruction of auditoriums because of political conditions after the renovation of Kiing Injo and it was called as 'Hwangsanseowon(黃山書院)' with Imrijeong which was a lecture hall. It was an inevitable consequence to keep the bilateral symmetry which is a basic order of auditorium structure by maintaining and using Imrijeong and Palgwaejeong as a lecture hall of the auditorium after the reconstruction at least. Consequently, the desperate attempt to adjust the arrangement and visual imbalance of Imrijeong built with periodical differences and Hwangsanseowon resulted from the construction of shrine was Palgwaejeong built under Monggoibyuk of Hwansan Taken these circumstances together, Jukrimseowon is a 'shrine-centered auditorium' with characteristics of auditorium, constructed by integrating Imrijeong which was used as a lecture hall after the construction of shrine and Palgwaejeong repaired through the reconstruction. The construction of Palgwaejeong and the formative conformity with Imrijeong are assumed as an consequence intended for the compensation of Jukrimseowon's function and role as an auditorium. This study will provide an opportunity to focus on the auditorium and pavilion's complementary function as well as the Confucian and constructional functions by revealing the fact that pavilions were established as a complementary facility for the lecture hall of auditorium.

키워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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