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Korean Philosophical History (한국철학논집)
- Issue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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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s.18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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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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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8-5024(pISSN)
A Study on the Kim Chi-in's Life and Confucianism-Buddhism-Taoism-Unity of Namhak line on Jinan in Junbuk
전북 진안 남학계(南學系) 금치인(金致寅)의 삶과 유불선(儒佛仙) 상합론(相合論) 일고(一攷)
- Received : 2011.08.09
- Accepted : 2011.09.03
- Published : 2011.06.30
Abstract
This thesis is studing Kim Chi-in's Life and Confucianism-Buddhism-Taoism-Unity of Namhak lind on Jinan in Junbuk. He combined thought of Confucianism-Buddhism-Taoism and drawed up religious doctrine, after spotting internal and external troubles of nation. Kim Chi-in was influenced by Lee Un-gyu's thought of Confucianism-Buddhism-Taoism-Unity. He spoke with emphasis of Tao in doctrine through religious experience. The root of Tao originates in heaven. Although Tao was divided according to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for the human's aspect of thought, it is ultimately the one. In time on explaining the one, he invoked 'eum(陰)', 'yang(陽)', 'che(體)'와 'yong(用)' as concepts of Neo-Confucianism. This ididn't incline to one side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While he spoke with emphasis on Confucianism's ethics of 'yang' and 'yong' with Buddhism and Taoism's divine of 'eum' and 'che' as the center, he want to find pivot of thought. He especially seeked Younggamu(詠歌舞) of sing and dancing on training mind and body. This was that he let the people and scholars in retirement demand realization of Tao and aim at real virtue. The study of Kim Chi-in's thought and religion of Confucianism-Buddhism-Taoism-Unity will be an opportunity look around his identity for the traditional native thought and universality.
조선은 19세기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인해 큰 충격과 시련을 겪는다. 당시 사상계는 유불선(儒佛仙) 삼교가 서로 융화되지 못하였다. 몇몇 선각자는 사상과 시대를 반추하고서 유불선 삼교를 합일(合一)시켜 민생의 삶과 심정을 어루만져주면서 궁극적으로 국가의 태평성대를 도모하였다. 그들의 유불선 합일은 심신수련과 체험에 입각한 것이 많았다. 연담(淵潭) 이운규(李雲圭)는 유불선 합일사상으로 새시대를 갈망하였다. 그의 사상은 두 계열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으로 계승되는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정역(正易)"을 저술한 일부(一夫) 김항(金恒)의 계열이다. 본 논문은 김치인의 삶과 유불선 합일사상을 다루었다. 김치인은 이운규의 아들 이용래에게 나아가 수학한 이후 여러 영산(靈山)들을 찾아 심신을 수련하면서 신비한 종교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교학(敎學)를 세웠다. 그는 이론적 교학을 세우는 데 도(道)를 중시한다. 도의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 것으로 여긴다. 그 도는 인간의 사유양상으로 인하여 '유교'와 '불가 선가'로 구분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하나이다'는 것이다. 그 '하나'임을 설명할 때 성리학적 개념 즉 '음'과 '양', 그리고 '체'와 '용'을 원용하였다. 즉 '도'의 양면으로 '음'과 '양' 그리고 '체'와 '용'이 있는 것처럼 김치인은 유불선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음'이고 '체'인 '불가 선가'의 신령설(神靈說)을 중심으로 '양'이고 '용'인 유교의 윤리설을 합설하여 하나의 구심을 찾고자 하였다. 특히 그는 심신을 수련하는 데 노래를 읊조리고 춤을 추는 영가무(詠歌舞)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유교의 윤리나 불가 선가의 수련은 궁극적으로 구심이 없는 당시 민초나 처사들에게 도의 실현을 촉구하면서 참다운 선을 지향하도록 것이었다. 김치인의 유불선 합일 사상은 전통적 고유사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고찰은 김치인과 그 후학들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