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계의 금석

  • 발행 : 1977.09.29

초록

우리나라 임학은 전후 황무지와도 같은 벌판을 개척해 왔다고 볼수 있다. 사실 광복직후는 사회질서 정치질서의 혼란으로 학계의 체통같은 것은 생각 할 수도 없었고 그 정리에 착수한다는 것도 쉽게 될수 없었다. 임업기술 같은 것은 멀리 이조의 실학에 까지 찾아 볼수 있으나 전전 우리나라에서 임학다운 교육이 실시된 곳은 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 임학과라고 볼수 밖에 없다. 이밖에 주로 일본의 대학 또는 고등농림학굥서 수학한 분들이 임학의 초석으로서 개척이라는 어려운 시련앞에 서게 되었든 것이다. 소위 해방이란 것은 당시 모든것은 백지상황에서 출발시켰다. 이의 열외가 될수 없듯이 임학도 첫머리부터 실을 풀고 마디를 맺어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후 약 30년이 흘렀는데 일단 이것을 10년을 구분해서 그 간의 임학계의 성격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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