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간의대 복원을 위한 기초연구

  • 발행 : 2011.04.05

초록

13C이후 동아시아에서는 대규모의 천문관측시설들이 건설되었다. 중국 원대(元代) 북경(北京)에는 사천대(司天臺, 1276)라는 천문대가 축조되었다. 이 천문대 위에는 간의, 앙의, 규표를 비롯한 다양한 천문의기가 사용되었다. 명대(明代)에는 사천대의 자리에 관성대(觀星臺, 1442)가 만들어진다. 이후 관성대는 청대(淸代)에 관상대(觀象臺, 현재 古觀象臺로 불림)로 이름이 변화되었다. 관상대 위에는 청대에 제작한 8종의 천문의기가 남아 있다. 원대 등봉(登封)에도 대규모 천문대인 관성대(觀星臺)가 축조되었다. 현재 등봉에는 관성대와 40척 규표(圭表)가 남아있다. 조선에서는 1433년 간의대(簡儀臺)가 건설되었다. 간위대 위에는 간의(簡儀)와 정방안(正方案)을 설치하였다. 간의대 주변에는 보루각(報漏閣, 자격루 운영)과 흠경각(欽敬閣, 옥루 운영)이 위치해 있고, 다양한 천문관측기기가 설치되었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간의대 주변의 천문시설들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이후 일부 관측기기가 새롭게 복원되었지만 조선 초기의 운영 형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간의대는 조선 후기까지 천문관측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간의대 위에 놓여진 관측기기에 대한 뚜렷한 언급은 없었지만 천상의 이치를 논하거나 세종의 공덕을 기리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우리는 간의대 문헌자료를 분석하고, 중국에 남아있는 천문대 유적을 조사하여 간의대 복원을 위한 기초연구를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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